이데올로기
Ideology
“나라라는 게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어려운 일도 아니죠. 누굴 죽일 필요도 없고 무엇을 위해 죽을 필요도 없어요(Imagine there's no countries / It isn't hard to do / Nothing to kill or die for / And no religion too).”
비틀스 출신의 존 레넌이 부른 〈이매진(Imagine)>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노랫말 전체가 ‘상상’이니까 현실은 그 반대다. 즉 현실에서는 나라가 존재하며, 개인이 서로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바칠 만한 일도 있다. 인간은 생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념을 위해서도 싸운다. 그런 신념이 체계화된 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는 ‘아이디어(idea)’와 같은 어원이니까 말뜻 자체로는 생각이나 관념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단순한 아이디어와 달리 이데올로기는 여러 가지 생각과 관념이 뭉친 덩어리를 가리킨다. 생각이나 관념은 그 자체의 뜻보다 어떤 생각과 어떤 관념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는 정의하는 사람마다 달라지며, 매우 폭넓은 의미의 그물을 가진다.
우선 이데올로기를 이론 체계로 보는 입장이 있다. 가장 가까운 우리말로는 ‘사상(思想)’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한 개별 이론보다는 철학자나 정치가, 경제학자 개인의 포괄적 이론 체계를 가리켜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분업 이론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지만 자유경쟁 자본주의에 관한 그의 경제 사상 전반은 이데올로기에 해당한다.
가치중립적인 이론 체계에 비해 약간 가치가 개입된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흔히 ‘이념(理念)’이라고 번역한다. 대표적인 예는 정치 이데올로기다. 이것도 이론 체계처럼 복합적인 이념의 덩어리를 가리키며, 대중을 정치적 행동으로 이끌고자 할 때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해방 직후 우리 사회를 얼룩지게 했던 좌익 세력과 우익 세력의 이데올로기 투쟁이 그런 경우다.
그보다 부정적인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허위의식(虛僞意識)’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지식사회학에서는 특정한 계급과 계층이 자신들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배후에 숨기고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내세우는 이념이나 관념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는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경제성장 정책을 마치 사회의 각계각층에 골고루 이익이 돌아가는 것처럼 선전할 때 그 이데올로기는 진실을 은폐하는 허위의식으로 기능한다. 이런 의미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가 별도의 이데올로기로 규정된다는 아이러니는 이데올로기가 포괄하는 의미망이 얼마나 넓은지 말해준다.
더 포괄적인 용도로, 이데올로기를 추상적인 담론 체계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는 전통적 형이상학에 바탕을 둔 거대 담론을 비판하는데,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사실상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리오타르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는 과거와 같은 통합적인 사회 체계가 아니다. 과거에는 사회의 각 부분이 단일한 목적 아래 결집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게 전혀 불가능하다. 부분은 이제 전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독자적인 존재와 운동의 방식을 가진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거대 담론으로 세계의 기원과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기획은 파산했다고 본다.
심지어 인간 해방을 지향하는 혁명적 이념 - 예컨대 마르크스주의 - 조차 거대 담론의 일반적인 결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것은 모두 무의미하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역사적으로 실패했으며, 탈현대에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거대 담론은 항상 ‘통합’이라는 목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결국 그릇된 목적론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리오타르는 마르크스주의란 낡은 계몽주의의 기치를 현대에 되살리려는 환상이라고 단정한다. 계몽, 자유, 해방 같은 근대의 거창한 이념들은 중세의 신을 대체한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1990)처럼 이데올로기를 특수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이 아니며 심지어 ‘의식’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이다. 노란 색안경을 쓰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듯이 이데올로기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늘 쓰고 있어야 하고 쓸 수밖에 없는 색안경과 같다. 주체가 이데올로기를 가지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주체이도록 만들어준다(→ 생산).
이렇게 이데올로기는 사상과 이념, 허위의식, 심지어 무의식까지 극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개념이다. 현대를 이데올로기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곧 현대가 그만큼 무정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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