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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이성(Reason)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이성(Reason)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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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Reason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특징은 뭘까? 언어도 있고 노동도 있지만 인간을 인간이도록 해주는 것은 역시 이성이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지배하고 문명을 일굴 수 있었다. 언어와 노동도 이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요소다.

 

이성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같다. 흔히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탄생했을 때 인간의 이성이 개화된 것으로 말하지만 그것은 철학적 이성과 과학적 이성에 한해서만 통용되는 주장이다. 그 이전에 종교와 주술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이성은 존재했고 활동했다. 종교와 주술 자체가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신학의 시대인 중세를 이성의 암흑기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중세에는 모든 사고의 중심이 신에게 있었고 신을 세상 만물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보았으나 신의 관념 역시 이성의 산물이므로 중세는 신학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봐야 한다.

 

 

그렇지만 명실상부한 이성의 시대는 역시 근대 이후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명제(코기토)로 출발한 근대의 철학적ㆍ과학적 이성은 학문적으로 인식론을 완성하고 과학기술의 혁명을 이루었으며, 사회적으로 현대 민주주의와 산업혁명, 자본주의를 낳았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속도를 기준으로 현대 문명의 가속화 과정을 예시한다.

기원전 6000년에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시속 8마일인 낙타였다. 2륜 마차가 발명되어 시속 20마일의 속도를 내게 된 것은 기원전 1600년경이었다. 증기기관차의 도움으로 시속 100마일의 속도에 도달한 것은 1880년대의 일이었다. 인간이 이 기록을 달성하는 데는 수백만 년이 걸렸다. 그러나 50여 년 뒤인 1938년에는 비행기를 이용하여 시속 400마일대를 돌파했으며, 다시 20여 년 뒤인 1960년대에는 로켓 비행기가 시속 4천 마일에 도달했고, 유인 우주선이 지구를 시속 18천 마일의 속도로 돌게 되었다. -토플러, 미래의 충격

 

 

하지만 잘나가는 집안의 사생아처럼 이성의 빛나는 업적의 배후에는 어두운 면이 숨겨져 있었다. 이성은 통제되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예상외의 기질이 있었다. 신학적 이성의 시대에는 신과 교회의 권위가 이성의 무분별한 표출을 억제하면서 질서를 유지했으나 그 권위가 사라지자 이성은 본색을 드러냈다. 17세기부터 유럽 역사에 국제전이 빈번해지는 현상은 총체적 권위의 부재와 이성의 심각한 폐해를 반영한다.

 

17세기의 30년 전쟁을 필두로 18세기의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미국 독립전쟁, 19세기의 나폴레옹전쟁, 크림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거치며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으로 끝나는 유럽 근·현대의 전쟁사는 이성의 양면성(兩面性)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을 지닌 이성은 아직도 살아 있는 걸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성의 시대가 끝났다는 입장과 아직 이성의 효용을 믿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로 대표되는 반이성주의의 진영에서는 전통적인 개념의 이성을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은 이미 그 자신이 초래한 수많은 학문적ㆍ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설명할 수조차 없다.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형이상학은 이미 그 체계 내에서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성은 형이상학에서 믿어온 것처럼 인간의 정신을 대표하는 속성이 아니고 동질적인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이성 이외에 감정욕망의 측면이 있으며, 그동안 정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시되어왔던 신체도 인간의 중요한 요소다. 반이성주의는 이성으로 욕망과 신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욕망과 신체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요소이므로 원래 이성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들을 인정하고 이성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이성 만능주의의 시대에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권력에 의해 욕망과 신체가 지나치게 억압된 탓에 심각한 불균형이 초래되었다. 그 억압적 권력으로부터 욕망과 신체를 해방시키려면 이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버려야 한다.

 

 

반이성주의의 주장에 맞서 이성주의를 여전히 신봉하는 진영에서는 학문과 현실에서 드러난 이성의 부정적인 측면은 이성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의한 부작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성은 인지적-도구적 이성, 규범적-도덕적 이성, 표현적-미학적 이성으로 나뉘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첫째인 도구적 이성일 뿐이고 나머지 이성들은 언제나 제대로 기능해왔다.

 

도구적 이성은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성보다 특별히 비대하게 발달했다. 비판철학자인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1969)는 이성이 다른 모든 도구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보편적인 도구가 되었다. -계몽의 변증법고 말한다. 이렇게 도구화된 이성은 인간이 지배하기 쉽도록 자연을 양화시켜 계산과 측정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며, 이를 통해 모든 것을 동질화ㆍ획일화하고, 결국에는 이성 자체까지 파괴하는 자기분열적 양상을 띠게 된다그 역사적 사례가 바로 파시즘이다.

 

하지만 뿌린 자가 거두는 게 순리이듯이 이성이 저지른 폐해는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이성주의는 도구적 이성을 통제하고 도덕적 이성과 미학적 이성을 부활시켜 이성 본래의 치유력을 이용하자는 해법을 제안한다.

 

이성은 수명을 다한 걸까? 아니면 아직 이성의 기획이 완성되지 않은 걸까? 이성을 반대하는 입장이나 찬양하는 입장이나 공통적인 관심사는 억압적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한 측에서는 억압을 가져오는 것을 이성으로 보는 반면 다른 측에서는 해방을 가져오는 것을 이성으로 보기 때문에 양측의 말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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