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맹손재가 상례를 가장 잘 치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장자에 따르면 사유 현재가 꿈과 같은 것이라면, 존재 현재는 깨어남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자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전언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비관적이고 나아가 잔인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다. 불교에는 여실(如實)이라는 말이 있다. 한 마디로 현실과 같이 사태와 자신을 바로 보라는 말이다.
어느 날 어느 여인이 울면서 부처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제 사랑하는 아이가 죽었는데, 죽었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보고 싶고 또 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 너무 슬픕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는 말했다. “네가 어느 집이나 가서 그 집 중 만약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이 있다면 그 집에서 곡식 한 알을 구해와라. 그러면 내가 너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 집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떤 집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없었다.
놀랍게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녀의 고통은 서서히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이 집 저 집 곡식알을 구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장자가 우리에게 사유 현재로부터 깨어나서 존재 현재에 살라고 한 이유도 바로 이런 불교의 여실의 정신과 마찬가지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발제 원문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발제 원문의 내용은 맹손재(孟孫才)라는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노나라에서 가장 상례를 잘 치른 사람으로 유명해졌다는 역설에 관한 것이다. 발제 원문은 공자와 그의 수제자 안연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고 마음이 슬프다는 정감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유학의 논리다. 아니 유학을 떠나서 이런 정감은 현대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공자의 입을 빌려서 장자는 맹손재는 진실로 죽음과 죽은 자를 보내는 상례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맹손재는 지금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맹손재는 사유 현재를 부정하고 있지, 결코 존재 현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맹손재는 ‘관념적으로 기억된 과거의식[先]과 관념적으로 예기된 미래의식[後]을 알지 못하며, 변화를 따라서 그 변화에 맞추어 개별자가 된[不如孰先, 不知孰後, 若化爲物]’ 사람이었다.
공자의 입을 빌려 장자는 자신이나 안연은 모두 꿈을 꾸고 있는 자이고, 단지 맹손재만이 홀로 깨어 있는 자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장자는 자신이 꿈으로 의미하려고 했던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공자는 자신과 안연은 모두 서로를 나라고 여기는[吾之] 인칭적 자의식의 소유자라고 하면서, 자신이 꿈으로 의미하고 있던 것이 이런 인칭적 동일성에 사로잡혀 있는 사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장자는 공자의 입을 빌려, 맹손재가 비인칭적이고 유동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상징한다면, 지적인 판단과 평가를 수행하고 있던 공자나 안연은 인칭적이고 고착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장자의 논의에 따르면 꿈으로 비유되는 실존 양태와 깨어남으로 비유되는 실존양태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들이 있다. 첫째, 전자가 주체 중심적이고 사유 중심적인 실존형태라면, 후자는 타자 중심적이고 존재 중심적인 실존형태라는 점이다. 둘째, 사유 현재 속에 작동하고 있는 전자가 ‘나는 나라’는 인칭적 자의식에 근거해서 타자를 삶의 짝이 아니라 사변적인 관조나 평가의 대상으로 여기는 마음이라면, 존재 현재 속에 작동하고 있는 후자는 비인칭적이고 유동적인 마음으로 도래하는 타자에 맞게 임시적 자의식을 구성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점이다.
사유중심적 진리관 | 존재중심적 진리관 |
주체의 역량 강조 | 타자의 고유성 강조 |
사유란 자기동일성을 전제함 | 유동성 |
인칭성 | 비인칭성 |
夢 | 覺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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