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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송시학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 1. 송시학의 수용, 1) 이인로와 죽고칠현의 등장(조통& 황보항&함순&이담지)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송시학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 1. 송시학의 수용, 1) 이인로와 죽고칠현의 등장(조통& 황보항&함순&이담지)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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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통(趙通, ?~?, 亦樂)임춘(林春)보다도 선배(先輩)였던 것으로 보아 칠현중(七賢中)에서도 연장(年長)이었던 것 같다. 그는 명성(名聲)이 명종(明宗)에게 들리어 자주 부름을 받았으며, 등제후(登第後)에 금()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삼년간(三年間)이나 구류(拘留) 되었으나 금인(金人)이 그의 재주를 애석(愛惜)하게 여겨 환국(還國)할 수 있었다. 이인로(李仁老)는 그를 사수우(山水友)로 추대(推戴)하였으며 임춘(林春)도 그에게 두 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내니 쇠퇴(衰退)한 문장(文章)을 일으켜 새로운 문풍(文風)을 진작(振作)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기대(期待)가 컸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시작(詩作)동문선(東文選)1()만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황보항(皇甫沆, ?~?)은 특히 임춘(林春)과 친교(親交)가 있어 임춘(林春)은 그의 여황보약수서(與皇甫若水書), 증희약수(贈戱若水)(), 송황보항부충주서(送皇甫沆赴忠州序)등의 시문(詩文)을 통하여 황보항(皇甫沆)박학(博學)과 문사(文辭)를 칭도하고 있으며 특히 여황보약수서(與皇甫若水書)에서는 저술의 광장을 멋대로 보며 서한(西漢)의 문장을 흥기시킬 수 있는 사람이 족하를 빼고 누구랴[闊視於綴述之場, 可以興西漢之文章者, 捨足下誰耶]?’라 하여 저술(著述)의 마당에 크게 눈 떠 서한(西漢)의 문장(文章)을 일으켜 줄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문학(文學) 역시 명가(名家)의 수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편(詩篇)은 후대(後代)의 선발책자(選拔冊子)에서 뽑아주지 않았다.

 

 

함순(咸淳, ?~?) 역시 고려사(高麗史)문장과 절도에 맞는 행동으로 당시에 이름났다[以文章節行, 名於時].’라 한 것으로 보아 문장(文章)으로 그의 이름이 일시(一時)에 알려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인(騷人)으로서의 함순(咸淳)임춘(林春)의 송서(送序) 송함순부익령서(送咸淳赴翼嶺序)와 시화서(詩話書)에 전하는 일화(逸話)를 통하여 그 풍류(風流)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담지(李湛之, ?~?)는 칠현(七賢) 가운데서도 특히 임춘(林春)이인로(李仁老)와 친교(親交)가 있었으며 이인로(李仁老)의 이른바 사우중(四友中) 한 사람이다. 이인로(李仁老)의 사우(四友)백락천(白樂天)의 사우(四友)를 의방(擬放)한 것으로 임춘(林春)시우(詩友)’, 조통(趙通)삼림우(山林友)’, 이담지(李湛之)를 주우(酒友), 석종령(釋宗聆)공문우(空門友)’라 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학문(學問)을 닦던 시절엔 이인로(李仁老)와 함께 독서(讀書)를 했으며이인로(李仁老), 파한집(破閑集)卷上 특히 술을 좋아하므로 이인로(李仁老)가 주우(酒友)로서 우대(優待)한 것이다.

 

그러나 임춘(林春)이 그에게 바친 증이담지(贈李湛之)(五律), 여이미수회담지가(與李眉叟會湛之家)(五律) 등의 시편(詩篇)으로 보아 평란후(平亂後) 서울에 돌아와서도 임춘(林春)이인로(李仁老)와 더불어 그의 집에서 시주(詩酒)로써 자오(自娛)한 것을 알 수 있으나 그의 시작(詩作)을 따로 뽑아 준 선발책자(選拔冊子)는 없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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