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趙沖, 1171 명종 1~1220 고종7, 자 湛若) 역시 일찍이 사원(詞苑)에 있어서 고문대책(古文對策)을 많이 쓰고 여러 번 예위(禮圍)를 맡아 명사(名士)를 선발하였다.
김양경(金良鏡, ?~1235 고종 22, 초명 仁鏡)은 조충(趙沖)을 따라 거란(契丹)을 토벌한 바 있거니와, 문무이재(文武吏才)를 구비(具備)하고 시사(詩詞)를 잘하여 일시에 이름을 드날렸다.
그의 시작(詩作)은 9편이 시선집(詩選集)에 전하고 있을 뿐이지만 최자(崔滋)가 『보한집(補閑集)』 권중 3에서 그를 평하여 ‘글자를 사용함에 반드시 맑고도 신선하였기 때문에 매번 한 편의 글이 나오면 당시의 풍속을 감동시키며 놀래켰다[凡使字必欲淸新 故每出一篇 動驚時俗]’이라 한 것을 보면 청신(淸新)한 그의 시(詩)가 일시를 울렸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전(現傳)하는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서보좌후장상(書黼座後障上)」(五絶)과 「내직(內直)」(七絶)이 널리 알려진 명작이다. 「서보좌후장상(書黼座後障上)」을 보인다.
園花紅錦繡 宮柳碧絲綸 | 동산의 꽃들은 비단 수놓은 것보다 붉고 궁중의 버들은 실 가지보다 푸르네. |
喉舌千般巧 春鶯却勝人 | 목구멍과 혀가 천 가지로 공교하지만 봄 꾀꼬리가 도리어 사람보다 낫구나. |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는 이수(二首) 가운데 두 번째 것이다. 희종년간(熙宗年間) 대관전(大觀殿) 보좌(黼座)의 후장(後障)이 훼손되자 거기에 무일도(無逸圖)를 그리게 하고 김양경으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때 지어 바친 것이 이 작품이다.
주어진 명제(命題)의 구속을 받으면서도 간결하게 우의(寓意)를 투입한 솜씨가 일품이다. 안짝은 임금을 칭송한 부분이고, 바깥짝은 후설지직(喉舌之職)에 종사하는 군왕(君王)의 측근(側近)을 경계한 것이다. ‘벽사륜(碧絲綸)’은 버드나무가 실낱같이 푸르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왕(王)의 말은 실과 같이 가늘지만 일단 나가면 밧줄처럼 굵어진다는 ‘사륜(絲綸)’의 원 뜻이 숨겨져 있다. ‘후설(喉舌)’은 사람 몸에서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군왕(君王)을 모시는 벼슬자리도 후설지직(喉舌之職)이라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인간들의 후설(喉舌)보다 오히려 꾀꼬리의 소리가 더 낫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지(主旨)다.
임유정(林惟正, ?~?)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집구시인(集句詩人)이며 그의 시작(詩作)도 30여 수나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동문선(東文選)』에서 뽑아준 것이며 그 밖의 시선집(詩選集)에선 그의 시작(詩作)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집구시(集句詩)에 대해서는 특히 조선후기 이덕무(李德懋)가 이에 관심을 보여 자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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