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陳澕)는 무인(武人)의 가계(家系)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서장관(書狀官)으로 금(金)에 다녀온 뒤 직한림원(直翰林院)에 뽑히어 우사간(右司諫) 지제고(知制誥)로 지공주사(知公州事)로 나갔다가 죽었다. 그의 문집(文集)인 『매호유고(梅湖遺稿)』가 전하고 있지만 이는 조선조 영조대(英祖代)에 편집된 것이며【진화(陳澕), 『매화유고(梅湖遺稿)』ㆍ서문(序文) 참조(參照)】 그 내용은 대개 역대(歷代)의 시화서(詩話書)에서 수집한 것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시선집(詩選集)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진화(陳澕)의 시(詩)는 대개 청신(淸新)ㆍ유려(流麗)한 것으로 정평(定評)되어 있지만 그러나 그의 시세계는 최자(崔滋)가 『보한집(補閑集)』 권중 3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변태백출(變態百出)하여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그래서 후대인(後代人)의 비평도 각양각색이다.
시화집 | 작품명 | 품평 |
『역옹패설(櫟翁稗說)』 後集 14 | 「유(柳)」 | 情致流麗 |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 4 | 「야보(野步)」 | 淸新幻眇 閑遠有美 |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 3 | 「송도(松都)」 | 淸新美麗 |
『성수시화(惺叟詩話)』 7번 | 「야보(野步)」 | 淸勁可詠 |
『지봉유설(芝峰類說)』 동시10 | 詩甚淸麗 |
이에 반하여 진화(陳澕)의 시(詩)를 두고 기호의활(氣豪意濶)한 송시(宋詩)의 여향(餘響)으로 파악한 비평도 없지 않다. 호장계열(豪壯系列)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매호유고(梅湖遺稿)』 서(序) | 雄俊淸麗 |
『동인시화(東人詩話)』 권상 52 | 七言長句. 豪健峭壯得之詭奇 |
이규보(李奎報),「진군부화차운증지서(陳君復和次韻贈之序)」 | 辭語奔放 |
서거정(徐居正)의 경우 시작(詩作)에 따라서 청려계(淸麗系)를 택하기도 하고 호장계(豪壯系)를 택하기도 하여 작품에 따라 그의 표준척(標準尺)도 변질되고 있음을 본다. 김종직(金宗直)이 그의 『동문수(東文粹)』에서 진화(陳澕)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야보(野步)」를 뽑아주지 않은 것도 청신(淸新)ㆍ완려(婉麗)를 싫어하는 그의 시관(詩觀)이 철저하게 작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진화(陳澕) 시(詩)의 일면만 보고 당시(唐詩)와의 관계를 논하거나【유준(柳俊), 「진화(陳澕)의 성당적(盛唐的) 시풍(詩風)」, 『한국한문학연구(韓國漢文學硏究)』6, 參照】 또는 설의(設意)를 중요시한 것으로 파악하는 성과【김성기(金聖基), 「진화(陳澕)의 시(詩)에 대하여」, 『백영 정병욱선생 환갑기념논총』, 參照】도 나옴직한 것이다. 시선집(詩選集)에 수록된 시작(詩作)은 30여편에 이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시가(詩家)의 사랑을 받은 것은 「춘만(春晩)」(七絶), 「춘흥(春興)」(一云野步)(七絶), 「상춘정옥예화(賞春亭玉蘂花)」(七律), 「감흥화구매(感興和歐梅)」(五古) 등이다.
「야보(野步)」는 다음과 같다.
小梅零落柳僛垂 | 매화 떨어지고 버들은 어지러이 춤추는데 |
閑踏淸嵐步步遲 | 한가로이 산(山) 기운 밟으니 걸음마다 더디네. |
漁店閉門人語小 | 어점은 문을 닫고 사람 소리 적은데 |
一江春雨碧絲絲 | 온 강 봄비가 실실이 푸르네. |
이미 앞에서 보인 바와 같이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 권하(卷下) 4번에서 이 작품을 이규보(李奎報)의 「하일즉사(夏日卽事)」와 대비하여 ‘마치 한 손에서 나온 것 같다[品藻韻格如出一手].’고 하였지만, 그러나 「하일즉사(夏日卽事)」는 그 미감의 표현이 동적(動的)인데 반하여 이는 정적(靜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자연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속에 몰입하는 일이 없이 문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情)보다는 경(景)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마치 한 폭의 스케치를 보는 듯하다.
정지상(鄭知常)의 시와 더불어 ‘류려(流麗)’로써 묶어진 소이(所以)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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