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오(黃五, ?~?, 호 綠此)는 그를 알게 해주는 어떤 문자(文字)에도 그의 신분이 밝혀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히 사회로부터 대접받지 못한 신분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최영년(崔永年)이 쓴 「황녹차선생시집서(黃綠此先生詩集序)」에 의하면, 황오(黃五)가 불가와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가 없다[先生佛緣出世, 卓犖不羈, 寄托高風].
두둥실 거침없이 내닫기만 한 그의 삶의 방식은 그가 이룩한 시의 세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재가 광범할 뿐 아니라 꾸미는 일을 도무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세고 거칠고 힘찰 뿐이다. 다음의 작품을 보기로 한다.
小姑十四大於余 | 아가씨는 열네살 나보다 큰데 |
學得秋千飛鷰如 | 그네를 배워서 제비처럼 나네. |
隔窓未敢高聲語 | 창문 너머 감히 큰 소리로 말 못하고 |
柿葉題投數字書 | 감잎에 몇 글자 글을 써서 던진다. |
「추천(秋千)」이라는 작품의 네번째 것이다. 황오(黃五)의 거칠고 진솔한 삶이 아니고서는 이와 같이 체험적인 염정시를 대담하게 생산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한선(寒蟬)」이다. 이에서 과시한 그의 오만(傲慢)이 바로 그의 높은 풍도(風度)임을 알게 해 준다.
寒蟬曉脫去 殼在靑山中 | 쓰르라미가 새벽에 빠져 나가고 껍질이 청산에 남아 있다네. |
樵童摘歸視 天下生秋風 | 초동이 주워서 집에 돌아와 보니 천하에 갑자기 가을 바람이 일어나네. |
원제(原題)는 「탈각(脫殼)」이지만 「한선(寒蟬)」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초동적귀시(樵童摘歸視)”는 전혀 꾸밈을 고려하지 않은 무잡(蕪雜)과 오만(傲慢)을 그대로 보인 것이다. 이는 우리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나 “천하생추풍(天下生秋風)”에 이르러 대인(大人)같은 그의 풍도(風度)를 절감케 한다. 이러한 기세(氣勢)로 사소한 불평음(不平音)을 초극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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