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운(卞鍾運, 1790 정조14~1866 고종3, 자 朋七, 호 肅欠齋)은 역관 출신으로 시문에 능하였다. 이유원(李裕元)ㆍ윤정현(尹定鉉)ㆍ김공철(金公轍) 등과 깊은 친분을 맺고, 이들이 사행(使行) 길에 오를 때에는 반드시 수행했다 한다. 이유원은 변종운(卞鍾運)의 시를 가리켜 “고상하고 예스러우며 편벽됨을 피했다[高古避僻].”이라 하였고, 이재원은 “성정이 발하는 것에 수식의 화려함을 힘쓰지 않았고 음운과 격조는 고상하길 바라지 않아도 스스로 고상했다[性情所發, 不務藻華, 其音韻格調不冀高而自高].”라 하였는데, 이러한 평가는 바로 변종운(卞鍾運)의 시가 대체로 평이하면서도 격조가 높음을 가리킨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는 그의 불평음(不平音)을 토로할 때에도 그 분위기는 안온하며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완곡함을 잃지 않았다. 다음의 「중야문금(中夜聞琴)」을 본다.
中夜萬籟寂 何人弄淸琴 | 한 밤 온갖 소리 죽은 듯 고요한데 어떤 사람이 저렇게 거문고를 울리나? |
摵摵庭前葉 西風吹古林 | 우수수 마당 앞에는 잎 떨어지고 서풍은 옛 숲에 부는구나. |
幽人聽未半 愀然坐整㯲 | 은자는 듣기를 반나마도 못한 채 근심스레 앉아 옷깃을 여미네. |
寒虫秋自語 豈盡不平音 | 귀뚜라미는 가을엔 절로 울지만 어찌 불평한 심사를 다 말하겠는가? |
皎皎天上月 照人不照心 | 하늘 위 밝은 달은 사람만 비추고 마음은 비추지 않는구나. |
오언고시로 된 이 작품은 평이한 표현 속에 절제된 시인의 서정이 녹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항인의 불평한 심사를 가을 밤에 우는 귀뚜라미에 의탁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귀뚜라미는 저절로 우는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 어찌 불평한 심사를 다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이 위항시인(委巷詩人)이 노린 것이다. ‘추연좌정금(愀然坐整㯲)’은 소식의 ‘추연정금위좌(愀然正㯲危坐)’에서 따왔으나, 변종운(卞鍾運)의 시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새로운 맛을 만들고 있다.
한편 변종운(卞鍾運)은 「지기설(知己說)」을 펴 지기(知己)의 의미를 ‘지아심(知我心)’으로 푸는 등 지기(知己)를 구하는 시를 많이 남기고 있다. 다음의 시에서 보듯이, 자신의 우울한 심정을 토로하여 신분적 한계를 초월한 이해를 원하였음에도 이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한탄하고 있다. 「이이의(而已矣)」를 보인다.
我有數卷書 | 나에게 몇권의 책이 있건만 |
恨不同學鄒魯諸君子 | 공맹(孔孟) 제군자(諸君子)를 배우지 못해 한스럽네. |
我有一壺酒 | 나에게 한 병 술이 있건만 |
恨不同飮燕趙悲歌士 | 연(燕)과 조(趙) 슬픈 노래 주인공 함께 마시지 못함이 서러워라. |
一未能遂平生志 | 평생의 뜻 하나도 이룬 것 없는데 |
白髮數莖而已矣 | 백발만 몇 가닥 났을 뿐이네. |
忽然一陣芭蕉葉上雨 | 홀연히 파초잎에 한바탕 비가 듣더니 |
胡爲乎滿庭樹木秋聲起 | 어찌하여 왼 뜰의 나무에 가을 소리 일어나는가? |
여기서 초성(楚聲)은 나라의 슬픈 노래를 가리키는 것으로 때를 만나지 못한 한을 말한다. 연조비가사(燕趙悲歌士)는 한유(韓愈)의 「송동소남서(送董邵南序)」에 보이는 ‘연조(燕趙)는 옛부터 감개비가지사(感慨悲歌之士)가 많다[燕趙古稱感慨悲歌之士]’에서 온 것이거니와 벼슬에 뜻을 얻지 못하는 선비를 가리킨다. 박윤묵(朴允默)이 “강개격절(慷慨激切)하여 비가격공(悲歌擊筇)의 풍(風)이 있다[慷慨激切 有悲歌擊筇之風者. 「嚴氏三世稿序」, 『存齋集』 권23]”라 한 것이라든가 최영년(崔永年)이 “초소(楚騷)의 완측(惋側)과 조식(曹植)ㆍ사령운(謝靈運)의 침울(沈鬱)을 방불케 한다[楚騷之惋側, 曹子建謝靈運之沈鬱 『四名子詩集』, 「四名子詩集序」].”고 한 것과 정래교(鄭來僑)가 “연조감개지음(燕趙感慨之音)이 있다[議歌詠者, 亦多有燕趙感慨之音也. 『完巖集』 「金澤甫萬最墓誌銘」]”고 한 비평도 이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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