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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한시 문학의 종장 - 1. 한말의 사대가(개요)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한시 문학의 종장 - 1. 한말의 사대가(개요)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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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한시(漢詩) 문학(文學)의 종장(終章)

 

 

1. 한말(韓末)의 사대가(四大家)

 

 

구한말(舊韓末)1800년대 후반부터 1910년대에 이르는 4,50년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전의 전통시대와 그 이후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의 불연속상에 놓인 불행한 시기였으며 또한 전통질서의 극복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침탈을 부정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주어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과정에서 지성인들의 대응 방식은 크게 개화(開化), 위정척사(衛正斥邪), 동학(東學) 등의 상이한 활동을 통해 민족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시대적 당위는 그대로 표출되었다. 1890년대의 독립신문(獨立新聞)(1896)이나 황성신문(皇城新聞)(1898)에 게재된 초기의 일부 국문시가와 일본에서 직수입한 신소설과 같은 산문에는, 개화라는 시대의지가 집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반면, 재야(在野)사림(士林) 또는 우국지사(憂國志士)의 한시문(漢詩文)이나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에 게재된 우국경시가(憂國警時歌)등에는 척외적(斥外的)인 시대의지가 줄기차게 나타나 있고, 동학(東學)의 이념을 담은 동학가사(東學歌辭)에 종교적 이념과 함께 민족 자주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한편 전통시대의 한국문학의 주류를 담당해 온 한시문학은 구한말에 들어 그 종장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서구라는 이질적인 충격에 의하여 대두된 개화(開化)’라는 새로운 시대의지가 끝내는 망국으로 치달아야 했던 역사적 모순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이 시기의 문인들이 담당하여야 할 시대사적 임무는, 망국이라는 역사적 모순을 극복해야만 하는 민족적인 노력으로 집약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문학은 쉽사리 우국문학(憂國文學)으로 변신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문인으로는, ()에 있어서 추금(秋琴) 강위(姜瑋)ㆍ단농(丹農) 이건초(李建初)ㆍ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ㆍ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ㆍ매천(梅泉) 황현(黃玹) 등을 들 수 있으며 문()으로는 미산(眉山) 한 장석(韓章錫)을 비롯하여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ㆍ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 그리고 시문(詩文)에 양미(兩美)한 인물로는 영재(寧齋)창강(滄江)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는 추금(秋琴)과 같이 타고난 신분질서의 굴레 때문에 벼슬이나 영예와 같은 거 추장스러운 영광은 염두에 두지도 못하고, 빼어난 재주로 인하여 일본 및 청나라로 이끌려 다니면서 개화의 물결 속에서 일생을 보내야만 했던 시인이 있었는가 하면, 운양(雲養)과 같이 그 생의 대부분을 묘당(廟堂)에 바치고서도 변전무쌍(變轉無雙)한 일생을 파란만장으로 엮어가야만 했던 문인도 있었다. 그러나 추금(秋琴)이나 운양(雲養)의 경우를 예외로 한다면 이들은 거개가 선비로서의 매서운 절조를 닦아 그 생의 대부분을 문학수업에 바친 시인이요 문인이었다. 즉 구한말의 문인ㆍ절사(節士)들은 전통적인 사장학(詞章學)의 전통 속에서 시부(詩賦)와 문장을 수련하고 추구하였던 이들이지만, 망국의 불행한 상황이 그들의 의식을 우국경시(憂國警時)의 충정(衷情)으로 몰아가곤 했던 것이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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