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不尙賢, 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지니. |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이 되지 않게 할지니. |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
욕심낼 것을 보이지 말라! 백성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어지럽지 않게 할지니. |
是以聖人之治, 시이성인지치, |
그러하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
虛其心, 實其腹; 허기심, 실기복; |
그 마음을 비워 그 배를 채우게 하고, |
弱其志, 强其骨. 약기지, 강기골. |
그 뜻을 부드럽게 하여 그 뼈를 강하게 한다. |
常使民無知無欲, 상사민무지무욕, |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이 없게 하고 욕심이 없게 한다. |
使夫智者不敢爲也. 사부지자불감위야. |
대저 지혜롭다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한다고 하지 못하게 한다. |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
함이 없음을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
1.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란 꿈(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20세기 인류 정치사를 특징 지우는 가장 거대한 이벤트는 뭐니 뭐니 해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요, 공산사회와 민주사회의 대립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21세기를 특징 지우는 인류 정치사의 현실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공산주의가 거의 소멸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진정으로 물어야 할 것은, 과연 20세기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의 세기였냐는 것이다. 과연 인류는 그러한 양립(兩立)의 구조 속에서 살았던 것인가? 맑스와 예수라는 두 유대인은 좌(左)ㆍ우(右)의 진영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던 것인가? 과연 소련이라는 강대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양분(兩分)해서 철의 장막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꿈속에 있을 때는 꿈이 꿈인지를 알지 못한다. 깨었을 때 비로소 꿈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장자의 지혜로운 말이다. 그런데 꿈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의 깨어 있는 현실이 또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깸이 올 적에 비로소 나의 현실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대각(大覺)이 오면 나의 깨어 있는 현실이 또 하나의 대몽(大夢)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2.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던 적은 없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원적 대립이라는 것은 하나의 현실이 아닌 꿈이었을 수도 있다. 소련 즉 러시아는 도무지 역사가 일천하고, 역사적으로 아주 미개한 후진국이었을 뿐 아니라, 재정이나 기술이나 도덕ㆍ문화의 자체 축적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였다. 우리나라의 최근세사(最近世事)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라사(俄羅斯)는 일본의 전함과도 대항키 힘든, 로일전쟁(露日戰爭, 1904)에서 이미 께임도 안 되는 참패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매우 빈곤한 나라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러한 수준의 나라가 어떻게 갑자기 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푸쉬킨(Pushkin, 1799~1837)이나 톨스토이(Tolstoy, 1828~1910)나 도스토예프스키(Dostoyevsky, 1821~1881)와도 같은 위대한 문호가 몇 명 나왔다고 대답될 수 있는 문제일까? 과연 진실로 그토록 초강대국이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바오로 교황이 바웬사(Lech Wałęsa, 1943~)-고르바쵸프(Mikhail Gorbachev, 1931~)를 조정하여 하루아침에 그 거대한 공산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으며, 비록 그러한 정체(政體)의 변화가 왔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엊그제까지 세계최강의 초강대국이 하루아침에 그토록 못 먹고, 남대문시장에까지 와서 빌어먹는 비루먹은 사람들이 되었을까?
이렇게 명백한 현상들을 분석해볼 때, 우리의 해답은 너무도 명료하다. 소련은 하나의 픽션이었던 것이다. 맑스형님은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털보아저씨에 불과했던 것이다. 철의 장막(Iron Curtain)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모종의 요구에 의하여 잠시 둘러쳐졌던 병풍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세계무대의 한 공연세트였던 것이다. 이 공연의 제작자ㆍ연출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자국의 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픽션이 소련이었다는 것은 오늘날 정치학도들의 상식이다.
다시 말해서 냉혹하게 분석하자면, 우리가 살았던 20세기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던 적은 없다. 자본주의만 있었고, 자본주의의 존재양식의 다양한 한 방편의 형태로서 공산주의라는 경제체제가 존재했을 뿐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연이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하나의 주의로서, 20세기에 공산주의와 대립하여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집단이 자연 발생시키는 시장의 구조에 내장되어 있는 하나의 유통체계일 뿐이다. 그것이 산업혁명의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이라는 특수한 양식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특수한 것인양 확대 해석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 내려온 것이며,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는 인성(Human Nature)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2500년전의 노자도 우리와 똑같이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자본주의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자본주의 경쟁체제로 휘몰아넣는 방법
노자가 말하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노자는 요새의 경제학자들처럼 매우 복잡한 수량적 이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자의 경제분석은 더 진솔하고 쉽게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다.
노자는 자본주의를 ‘인간의 욕망을 자극시키는 재화의 유통’이라고 규정한다. 노자는 여기서 분명히 ‘화(貨)’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고어(古語)에서 ‘화(貨)’는 ‘곡(穀)’과 대비되는 단어며, 그것은 분명 도시산업구조에서 발생되는 상품(Goods)을 의미한다. ‘곡(穀)’은 농경사회에서 자급자족 가능한 곡식의 생산이다. 그런데 이 화(貨)의 세계는 ‘쟁(爭)’이라는 근원적인 모랄의 구조 속에서 틀지워져 있다고 갈파한다. ‘쟁(爭)’이란 인간에게 보다 많은 상품의 구매를 자극하게 만드는 인센티브(incentive)의 경쟁적 생산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경쟁심리를 자극한다.
노자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얻기 어려운 재화의 품귀현상을 조장하는 방법이라고 갈파한다. 난득지화(難得之貨)를 끊임없이 귀(貴)하게 만들어 인간을 경쟁구조 속으로 집어넣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끊임없는 상품의 생산을 재촉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욕심이 날 만한 상품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고 한군데 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전 국민을 도둑놈으로 만든다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의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윤의 추구를 위해서는 다 같이 도둑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을 자본주의의 경쟁체계로 휘몰아 넣는 방법은 문화적으로도 위대한 사람들의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우상을 향해 모든 사람들이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인간이 더 많은 지식을 추구하려 하고, 인간이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하려 하고, 인간이 도덕적으로 더 고매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모든 문화적 분위기가, 자본주의적 경쟁체제를 조장케 만드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는 분위기를 유지한다.
간디와 같은 성자를, 에이브라함 링컨과 같은 인권의 수호자를, 케네디와 같은 멋있는 대통령을,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를 숭상케 만든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인센티브의 끊임없는 생산에 실패한다고 한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를 숭상케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가치관으로 인하여 자본과 관련된 엄청난 산업구조가 태동되는 것이다. 인간은 본시 ‘E=MC²’을 몰라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E=MC²을 앎으로써 우주를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원자폭탄을 만들게 되고, 물리학과가 생겨나고, 대단한 과학교육의 열기가 생겨나고, 나사와 같은 엄청난 기관이 생겨나고, 스페이스를 탐색하는 엄청난 예산과 부대산업들이 생겨난다. 훌륭한 사람을 숭상한다 하는 것은 곧 이러한 자본주의적 문명 전체의 구조와 유기적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현인을 숭상치 않으면 백성이 다투지 아니하고[不尙賢, 使民不爭],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만들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놈이 되지 아니하고[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된다[不見可欲, 使民心不亂]라는 이 세 마디의 언급 속에서 노자는 인간의 사회제도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인 자본주의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맑스와 노자의 차이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의 인센티브에 기초한 인간사회의 본연(本然)이라고 한다면 노자는 그것을 본연(本然)의 그 모습대로 시인하기만 하는가?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노자가 말하려는 것은 본연(本然)에 대한 당연(當然)이다. 공산주의라는 것도 20세기에 인류가 자본주의라는 본연에 대하여 시도한 하나의 당연(當然)이다. 자본주의가 인류의 현실적 모습이라고 한다면 공산주의는 인류가 실현해야 할 이상적 모습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가 유욕(有欲)의 현실이었다면 공산주의는 무욕(無欲)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상 당연(當然, must)은 시연(是然)ㆍ본연(本然) 앞에 무기력하다. 그것은 1세기의 좌절로 끝나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자기갱생의 한 방편으로서의 안티테제(Antithese)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회ㆍ경제체제에 대하여, 노자는 국가의 개입을 원하는가, 완전한 방임을 원하는가? 이에 대한 노자의 입장은 매우 복잡하다. 일단 노자의 정치철학은 철저한 자연주의, 즉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 맡긴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취함으로, 외면적으로는 제도의 개입이 없는 무정부적 방임주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3장의 분석은 우리에게 그렇게 간단한 해답만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유위(有爲)라는 것은 이미 인간세에 엄존하는 죄악이다. 그러나 유위에 대하여 무위(無爲)를 제시한다고 하는 것이, 단순한 방임의 수단으로 인하여 유위가 무위로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유위를 무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치가 없이는 유위의 치달음을 억제할 길은 없다. 물론 노자는 유위를 무위화시키는 또 하나의 유위적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자』 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억제의 방법론의 전제를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위가 저지르는 문제를 우리는 유위적 방법에 의하여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유위의 악순환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라는 유위를 해결하는 방법이 공산주의라는 또 하나의 유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제도적 문제를 공산주의라는 제도로 대치시키려고만 했다는데 사회주의 진영의 크나큰 실패가 있었다. 맑스는 인간의 유위적 욕망의 세계를 분석하는 데만 주력했지, 그 욕망을 지어내고 있는 인간성 그 자체의 심연의 분석이 없었다. 욕망의 구체적 실현으로 나타나는 ‘노동’의 긍정과, 그 노동의 가치적 분배, 그것을 보장하는 제도적 개혁만을 생각했다. 맑스에게는 제도론만 있었고, 인성론이 없었다. 유위의 긍정의 다른 양식만이 존재했고, 유위의 본질적인 부정 즉 무위론이 없었다. 이것이 맑스와 노자가 크게 다른 점이다.
5. 문명 안에 반문명적 역설을 지닐 때(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노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방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본 장에서 ‘성인의 다스림[聖人之治]’, 즉 국가의 개입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국가의 개입은 제도적 개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연에 대한 재인식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쟁(爭)의 현실로만 치닫는 것, 인간의 욕망의 극대화라는 경향성은, 본래적인 본연이 아니라 문명이 장난질 쳐놓은 왜곡된 본연(本然)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위(有爲)에 대한 무위(無爲)가, 더 인간의 본연(本然)의 모습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 그러한 사고의 회전이, 우리는 노자에게서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부쟁(不爭)을 말하고, 불상현(不尙賢)을 말하고, 불귀(不貴)를 말하고, 불견(不見)을 말한다[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그것은 성인지치(聖人之治)의 임페라티브(Imperative, 책무)인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세의 자본주의적 경향성 그 자체의 제도적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경향성에 역행(逆行)하는 방향에서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왜곡된 인간의 본연(本然)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인간의 모든 문화는 비자본주의적 인간의 본연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인간세의 문화가 비자본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역설을 노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욕망에 대한 포지티브 피드백은 인간 자체의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욕망에 대한 피드백은 반드시 네가티브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문명을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편이다. 문명은 결국 인간의 나태와 안락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문명은 반드시 반문명적 문화의 역설을 지닐 때만이 지속성을 지닐 수 있다.
6. 교육의 모랄은 철저히 비자본주의적이어야 한다
불견가욕(不見可欲)!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말라! 욕심낼 것을 계속 보여주는 것만이 우리는 자본주의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욕심낼 것만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악순환은 결국 자본의 파괴와 자연의 파괴와 인간의 파괴를 가져온다. 그러한 인센티브를 억제하는 방향에서 국가의 개입, 즉 성인의 다스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비극은 이미 ‘도가도비상도(道可道, 非常道)’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가도지도(可道之道)의 언어로 진입하면서 이미 문명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왜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인의 다스림은 이러한 왜곡(歪曲)을 다시 역으로 해곡(解曲)시키려 하는 것이다. 견가욕(見可欲)의 현실에 대해 성인의 다스림은, 우리의 자손들의 교육이 불견가욕(不見可欲)의 반문명적(反文明的) 역행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나태와 안락을 최소화시키는 반문명(反文明)의 문화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모든 교육의 모랄은 철저히 비자본주의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상현(不尙賢)ㆍ부쟁(不爭)의 교육이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마저 자본에 종속시킨다면 그것은 인간의 파멸을 가져올 뿐이며, 자본의 해체만을 가져올 뿐이다. 비자본주의적 인간의 본연의 보존만이 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교육마저 자본주의적 쟁(爭)의 효율을 위한 모랄에만 종속된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자본의 싸이클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7. 네 뜻을 약하게 하고 네 뼈를 강하게 하라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이상적 정치)은 그 마음을 비워[虛其心] 그 배를 채워주고[實其腹], 그 뜻을 약하게 하여[弱其志] 그 뼈를 강하게 해준다[强其骨]. 여기서 심(心)이란 인간의 타율신경계의 모든 복잡한 이론을 말한다. 복(腹)은 인간의 자율신경계의 상징이다. 자율신경계의 특징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그것은 곧 ‘자연(自然)’이다. 그것은 곧 무위(無爲)를 말하는 것이다.
有爲 | 無爲 |
마음[心] | 배[腹] |
뜻[志] | 뼈[骨] |
우리 몸의 뜻[志]이란 간사한 것이다. 이랬다 저랬다 마음먹기에 따라 제멋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뼈는 우리의 사유가 쉽사리 먹히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몸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이면서도 말이 없고, 생각이 없다. 그것은 묵묵히 바윗덩어리처럼 거기 있을 뿐이다. 인간의 뜻이란 쓸데없는 일을 벌리기 좋아한다. 욕망의 지향성에 따라 많은 유위의 세계를 지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뼈를 갉아먹기만 하는 피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뜻 있는 일을 했다’고 하는 많은 자위감은, 때로는 하잘 것 없는 유위적 문명의 장난의 한 굴레일 수도 있다. 네 뜻을 약하게 하고 네 뼈를 강하게 해라!
왜 그렇게 바보스럽게 마음을 가득 채울 생각만 하느뇨? 마음일랑 비우고 배나 채우려므나! 불행한 소크라테스가 행복한 돼지보다 낫다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인 상념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러한 상념에 브레이크를 건다. 마음을 비우고 네 배때기나 불려라! 생각없이, 배때기나 불리는 인간이 노자의 이상(理想)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소크라테스의 불행이 진정 우리 문명을 위하여 필요한 불행인가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재고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배로 산다! 이것은 우리의 통념을 깨는 노자의 지혜다. 그리고 이것은 뇌중심의 서양 인체해부학에 대하여 오장육부 복부중심의 한의학적 인간학의 지혜로운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청하는 것이다.
8. 백성을 무지하게 무욕하게 만들라(常使民無知無欲)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무지ㆍ무욕하게 하라[常使民無知無欲]!
이 노자의 한 마디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은 1969년 안암동의 강의실에서였다. 아주 가냘프기 이를 데 없는 자그마한 선생님, 소근소근 귓속말씀 하시듯 잔잔하게 미소짓는, 우리시대의 석학, 김경탁(金敬琢, 1906~1970)선생님의 강의 속에서였다. 왜 위대한 통치자인 성인은 백성을 무지하게 만들고, 뭇 사람을 무욕하게 만드는가? 얼핏 어린 소년인 나에게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지만 그 언어의 과격성과 그 신랄한 역설은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 파고 들었다. 나는 지금 유식해질려고, 유지(有知)해질려고 이 노자오천언(老子五千言)을 공부하고 있거늘, 내가 공부하고 있는 노자(老子) 선생님께서는 나를 무지스럽게 만들려 하신다. 뭔가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남았지만 통쾌하고 장쾌했다! 백성을 무지하게 만들고, 무욕하게 만들라! 이 한 마디 때문에 유가(儒家)사상가들은 『노자(老子)』 일서(一書)를 우민(愚民)정책의 이단서로 휘몰았다. 이 한 마디 때문에 『노자(老子)』는 만고(萬古)의 금서(禁書)가 된 것이다. 어떻게 성인이 백성을 무지스럽게 만든단 말인가?
여기 내가 대학교 때 『노자(老子)』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평생을 지키게 된 습관을 하나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나 도올의 존재의 파라독스요, 가려움이다. 나는 평생 테레비를 보고 살지 않았다. 나는 평생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 보고 살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신문에 글을 쓰고, 그러면서 나는 테레비에 시청률을 끌려는 속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 존재의 기만성인가?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살면서 평소 테레비를 보고 살지 않는다는 것은 얼핏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밋션 임파시블(Mission Impossible)처럼 들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실 나는 그렇게 무지한 가운데도 세기를 무난히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정보에 어두운 사람이라는 소리는 안 들었다.
9. 노자가 무지(無知)를 권하는 이유
우리 인생은 지금 문명 속에 있다. 문명은 현재 너무 지나친 정보와 지식의 덩어리다. 문명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이물 밀듯이 닥쳐오는 정보와 지식에서 소외되면 한 시도 못살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테레비를 집에서 안 봐도 시내(市內)를 잠깐 나갔다 와도, 요즈음은 사방에 테레비가 보인다. 길거리에 달려있는 대형 테레비에 나오는 타이틀만 보아도 모든 정보가 한눈에 압축해서 들어온다. 구태여 집에서 테레비 보느라고 시간 쓰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 누가 보고서를 썼느니 누가 서류를 훔쳤느니 빼냈느니 북풍이 어쩌니 총풍이 저쩌니 물방울 다이아가 쌓여 있었느니 달러뭉치가 냉장고에 차있었느니, 신창원이가 신출귀몰 돌아다니고 있느니, 잡혔느니…… 이런 정보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고 생애의 모든 정력을 기울여 그러한 정보의 일련의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한 달만 지나놓고 보면 그것은 단 한 줄의 스치는 이야기도 안 되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전 국민이 한달 동안 그러한 정보의 흐름의 작품 속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보인가? 과연 이것이 지식인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그 많은 지식도, 신문을 한달동안 장악하는 엄청난 정보가 지푸라기 한 조각의 가치도 없을 수 있는 것과도 같이, 우리 삶에 한오라기 지푸라기의 가치조차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정보에 대한 무지를 우리는 과연 무지(無知)라고 불러야 할까?
내가 무엇인가 딴 데 열중했기 때문에 신문을 일년동안 전혀 안 봤다고 치자! 일년 후에 논설위원 한 분과 까페에 앉아 한 시간만 잡담을 나누어도 일년 신문의 정보가 다 내 머리 속에 들어올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가 나에게 일년 늦게 입력되었다고 내 인생에 무슨 큰 타격이 있을리도 만무하다.
그리고 더더욱 나보다 더 그런 정보에 둔감하게 살아도 되는 사람들이 소위 우리 백성의 99%를 형성한다고 확언해도 큰 무리가 없는 발언이다. 도대체 왜 우리 백성은 이렇게 지식과 정보에 시달려야 하는가? 노자가 말하는 것이 과연 무지(無知)일까? 노자가 말하는 것은 무지(Ignorance)가 아니다. 무식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의 무지는, 인간이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관심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불필요한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영혼의 순결함(Purity), 그리고 인격의 소박함, 그리고 생활의 단순함(Simplicity)이다. 순결, 소박, 단순! 이런 것들을 노자는 ‘무지무욕(無知無欲)’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10. 열렬한 앎의 갈망 속에 한세기를 보내다(使夫智者不敢爲也)
노자는 연이어 말한다. “그놈의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좀 뭘 한다고 뎀벼들지 못하게 하라[使大智者不政爲也]!”
나는 어쩌다 그 유명하다는 하바드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하바드대학 동창회에 해당되는 것이 한국에 있다. 하바드 클럽(Harvard Club)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하바드 클럽 속에는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벼라별 잡동사니가 다 들어있다. 학계, 재계, 언론계, 정치계, 법조계, 종교계 …… 도무지 안 들어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묻겠다. 왜 이렇게 벼라별 어중이 떠중이가 다 하바드를 나왔는데 왜 우리나라가 요모냥 요꼴이냐?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하바드대학에 보내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향학열에 불타있는데, 서울대학 보내지 못해 안달인데…… 생각해보라! 우리나라가 과연 하바드대학 나오고 서울대학 나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매일 매일 독직(瀆職)ㆍ오직(汚職)ㆍ사직(辭職) 사건이 터지고, IMF가 터지고, 폭력, 테러, 왕따, 강간, 살인, 음흉한 음모 사건이 터지고 또 터진단 말인가? 이것이 도무지 누구의 죄인가? 문명의 죄업을 한번 총체적으로 점검해보자! 지식을 소유했다 하는 사람들(知者),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智者), 이들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인가?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긴 문제인가? 우리나라가 과연 무식해서 탈인가? 유식해서 탈인가?
19세기 말기쯤만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학문의 모든 것은 무지의 바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지(有知)를 동경했다. 무지를 탈출해서 유지의 나라로 갈 것을 동경했다. 그것을 우리는 개화(開化)라고 불렀다. 어둠을 탈피하여 밝음으로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우리는 개명(開明)이라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의 학문을 배우고, 서양의 종교를 배우고, 서양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을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신앙하고, 자본주의를 가속화시키고,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이광수의 소설에 깔려있는 정조나, 심훈의 상록수를 생각해 보라! 우리 개화기의 제비새끼 같은 아동들은 얼마나 지식의 열망 속에 불타 있었던가? 사각모에 망또를 걸친 이수일, 심순애와 비극적 사랑을 나누는 이수일이 그 얼마나 동경의 대상이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열렬한 갈망 속에 한 세기를 보내고 난 우리 민족이 이제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이켜 보자! 우리가 그렇게도 얕보았던 우리 전통사상의 지혜는 우리의 일세기를 근원적으로 반성케하는 21세기적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1. 유지(有知)에서 무지(無知)에로 탈출해야 할 21세기
우리의 20세기가 무지(無知)로부터 유지(有知)에로의 탈출이었다고 한다면, 노자는 말한다. 우리의 21세기는 유지로부터 무지에로의 탈출이 되어야 한다고, 노자가 과연 우민사상가일까? 무지로부터 유지에로의 탈출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생각해보라!
나 김용옥의 일생을! 유지에의 갈망 때문에 애를 태우며 그 얼마나 많은 어프리케이션(application)을 내고, 그 얼마나 많은 학점과 디플로마(diploma)를 따야 했는가? 그 얼마나 많은 장학금을 주선해야 했으며, 피땀 맺힌 향학의 열정적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는가? 이런 김용옥이 수천수만명이 모여져서 만들어진 세기가 우리 조선민족의 20세기가 아니었든가? 생각해보자! 무지로부터 유지에로의 탈출이 그토록 어려웠다고 한다면, 유지로부터 무지에로의 탈출 또한 그토록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노자의 슬기를 우리는 이 3장을 읽으며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노자철학의 매우 철저한 반주지주의적 (anti-intellectualistic) 정조(情調)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자(老子)의 반주지주의적 정조를 이해하면서 내가 서두에서 말한 21세기 문명의 3대 과제, 인간과 환경의 어울림, 종교와 종교의 어울림, 지식과 삶의 어울림이라는 화해의 주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화나 개명, 발전이나 진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개화나 진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존재의 근원으로의 회귀인 것이다. 직선적 발전을 가능케 하고 있는 원융한 순환의 무한성을 파괴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후에 나오는 ‘빔[虛]’라는 주제와 관련시켜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12. 형식 논리적 모순이 담긴 ‘위무위(爲無爲)’(爲無爲, 則無不治)
제일 마지막 질의 ‘위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라는 말은 텍스트의 문제와 더불어 노자사상의 근원적 성격에 관하여 많은 논란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구절이다. 먼저 무위(無爲)란 문자 그대로 ‘함이 없음’이다. 그런데 무위(無爲)라는 동명사구문을 목적어로 받는 본 동사를 보아라! 무엇으로 되어 있나?
동사(V) | 목적어(O) |
爲 | 無爲 |
함 | 함이 없음을 |
함이 없음을 함(爲)이라고 하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동사로 되어 있다. 함이 없음이란 곧 ‘함’의 소실인데, 어찌 또 ‘함이 없음’을 ‘한다’는 말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함이 없음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형식 논리적 모순이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건대 인간의 언어는 형식논리가 아니다. 형식논리는 오로지 수학에만 가능한 것이며, 수학은 과학언어의 방편일 뿐이다. 물리학자가 쓰는 일상언어 조차도 형식 논리적으로는 모순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형식논리화할 수 있다는 20세기의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의 믿음은 컴퓨터 언어의 뼈대를 제공하는데 수단적 가치가 조금 있었을지는 몰라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자격미달의 철학이었을 뿐이다. 분석철학자로 우리가 알고 있는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은 어떤 의미에서 분석철학의 기본 이념을 파괴하고자 했던 장본인이었다.
13. 무위(無爲)란 적극적인 개세(改世)의 진리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함이 없음[無爲]’이란, 함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백하게 함의 대상(목적)으로서의 ‘함이 없음’이다. 무위(無爲)란 곧 위(爲)의 부정이 아니라 위(爲)의 긍정이다. 무위(無爲)는 인간의 욕망과 분별과 허위의식과 교만의식과 거공(居功)의 집착에서 나오는 작은 위(爲)가 아니라, 그러한 모든 유위(有爲)를 넘어서는 커다란 위(爲, 大爲)인 것이다. 그것은 위(爲)의 부정으로서의 무위(無爲)가 아니라, 곧 무적(無的)인 위(爲)인 것이다. 위(僞)가 사라진 순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함이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무위(無爲)를 위(爲)해야 하는 것이다. 무위(無爲)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노자는 한순간도 저 푸른 수풀 속 암자에서 도를 닦고 앉아 있는 도인(道人)의 무위(無爲)를 말하지 않는다. 노자는 은자의 도가 아닌 현자의 도를 말하며, 피세의 진리가 아닌 적극적 개세(改世)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노자는 현실의 혐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위무위(爲無爲)! 즉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적극적 위(爲)의 대상이다. 그것은 마치 『금강경(金剛經)』에서 여래가, 이 세계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라 이름할 수 있고, 모든 모습[相]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모습이라 이름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같다.
여태까지는 ‘여래설세계비세계 시명세계(如來說世界非世界, 是名世界). (13-7)’, ‘여래설삼십이상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如來說三十二相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13-9)’ 등의 구문을 ‘이것의 이름이 단지 세계요’, ‘이것의 이름이 단지 상(相)’이라고 하여, 세계(世界)와 상(相)을 명언(名言)으로서 부정한 듯이 잘못 이해하였다. 그러나 『금강경』의 설법(說法)은 이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요, 이름할 수 있는 것, 이름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이름 이전에 우리의 사유의 전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가 곧 세계가 아니요, 구원이 곧 구원이 아니요, 나의 상(相)이 곧 나의 상(相)이 아니라고 하는 철저한 아상(我相, 我想)의 부정이다. 그러나 구극적으로 세계는 세계요, 구원은 곧 구원이요, 나는 곧 나인 것이다. 노자의 무위(無爲)도 함의 기피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적극적인 사회철학이요, 정치철학이요, 구원의 진리며, 처세의 행동이다.
14. 무위(無爲)를 실천할 때, 완벽하게 질서잡힌 사회가 된다
이러한 우리의 논의가 노자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아니라, 노자 자신의 강력한 발언이라는 것은 바로 ‘위무위(爲無爲)’를 조건절로 하고 있는 최후의 주절에서 여실하게 증명된다. 위무위(爲無爲)! 그 다음에 노자는 무어라 말했던가? 무불치(無不治)!
조건절 | 주절 | ||
爲無爲 | (則) ⇒ |
無不治 |
노자는 치(治, 다스림)를 거부하는 철학이 아니요, 곧 치(治, 다스림)의 철학인 것이다. 노자의 철학은 치세의 철학이요, 노자의 무위(無爲)는 곧 치세의 방편인 것이다.
위무위(爲無爲)하면 어떻게 되는가? 무불치(無不治)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불(無不)’은 이중부정이다. 그것은 곧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가 된다. 즉 ‘함이 없음을 함’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음’을 위한 것이다. 위무위(爲無爲)는 피세의 방편이 아니요, 완벽한 치세(治世)의 방편인 것이다. 노자의 정치철학의 요점은 곧 무위(無爲, 함이 없음)를 실천할 때, 그 사회의 지도자와 백성이 다 함께 무위(無爲)를 실천할 때, 비로소 완벽하게 질서 잡힌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치(治)라는 것은 곧 ‘질서’를 말하는 것이다. ‘치(治)’는 ‘(어지러움)’의 반대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회를 ‘다스린다[治]’하는 것은 곧 그 사회를 ‘질서있게 함’ 즉 ‘질서지우는 것’이다. 위무위(爲無爲)가 소극적 인성(人性)의 주장이 아니라 무불치(無不治)의 적극적 치세(治世)의 주장이라는 것은 바로 이 3장의 마지막 구절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15. 마지막 구절의 판본상 문제
그런데 이 마지막 구문과 관련하여 재미난 판본의 문제가 있다. 이 3장 마지막 구절과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 유명한 ‘무불위(無不爲)’의 구문이 37장과 48장에 나오고 있다.
3장 | 爲無爲, 則無不治 |
37장 | 道常無爲, 而無不爲 |
48장 | 無爲, 而無不爲 |
37장과 48장의 ‘무불위(無不爲)’의 맥락은 뒤에서 다시 상술하겠지만, 이미 무불치(無不治)의 논의의 맥락에 따라 우리는 이를 쉽게 해석할 수 있다. ‘道는 항상 함이 없음으로 곧 하지 않음이 없다.(37)’, ‘함이 없음에 이르게 되면 곧 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48)’
3장에는 무위(無爲) 앞에 위(爲)가 있지만 37장, 48장에는 위(爲)가 없다. 그러나 그 해석은 동일하다. ‘무위(無爲)’를 조건절로 본다면 그것은 함을 하지 않으면’의 뜻이 된다. 함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함이 없음으로 곧 하지 않음이 없다. ‘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무엇이든지 다 잘 된다는 뜻이다. 무위(無爲)와 무불위(無不爲)는 형식논리적으로 반대의 뜻이지만, 이 반대적 상황은 곧 일치되는 맥락에 놓이게 됨으로써 서로의 뜻을 명료하게 해주고 보강해준다.
무위(無爲)의 궁극적 존재의의는 무불위(無不爲)라는 것이다. 그것은 위무위(爲無爲)가 무불치(無不治)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우리의 논의의 맥락 속에서 쉽게 료해(了解)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3년 출토된 백서(帛書)는 현 금본(今本)의 체제와 거의 유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갑(甲)ㆍ을(乙) 양본(兩本)에 모두, 공교롭게도 이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구문이 빠져 있는 것이다. 37장의 경우는 ‘도항무명(道恒無名)’으로만 되어 있고, 48장의 경우는 그 부분이 마모되어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16. 무위(無爲) 사상과 무불위(無不爲) 사상의 견해를 제시한 고명선생(高明先生)
당대(當代)의 고문자학의 대가인 고명선생(高明先生)은 『백서노자(帛書老子)」를 교주(校注)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백서 갑(甲)ㆍ을(乙) 두 본의 전면적 교감을 보고 난 후에, 나는 『노자(老子)』의 원본은 단지 ‘무위(無爲)’만 말했을 뿐이며, 기껏해야 ‘무위이무이위(無爲而無以爲)’를 말했을 뿐,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를 말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의 사상은 본시 『노자(老子)』에서 나온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전국(戰國)말기에 출현한 일종의 새로운 관념인 것이다. 이것은 곧 이 시기에 노자(老子)의 ‘무위(無爲)’ 사상(思想)에 대한 개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조된 노자(老子)사상의 단편이 『장자(莊子)』 외편(外篇)이나 『한비자(韓非子)』, 『여람(呂覽)』, 『회남자(淮南子)』 등의 책에 인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通過帛書甲乙本之全面勘校, 得知老子原本只講無爲, 或曰無爲而無以爲, 從未講過無爲而無不爲.
無爲而無不爲的思想本不出於老子, 它是戰國末年出現的一種新的觀念, 可以說是對老子無爲思想的改造, 曾散見於莊子外篇韓非子呂覽及淮南子等書. 『帛書老子校注』 (中華書局, 1998), p.425.
고명(高明)선생의 주장은 노자사상의 오리지날한 증대 속에는 무위(無爲)사상만 들어있지, 무불위(無不爲)의 사상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무위(無爲)만을 말했지, 무위(無爲)의 적극적 정치사회철학적 실천의 논리인 무불위(無不爲, 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경(德經)』 제일 첫 장인 38장에 나오는 구문을 인용하여 ‘(上德)無爲而無以爲(也)’까지 밖에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위이무이위(無爲而無以爲)’의 ‘무이위(無以爲)’는 앞의 ‘무위(無爲)’의 내용을 부연하는 종속적 의미밖에는 없다. 즉 무위(無爲)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써(以) 하는 행위(爲)가 아니라는(無) 뜻이다. 즉 무위(無爲)의 가치적 고착성을 거부하는 어떤 내용을 설명부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불위(無不爲)’의 사상은 정치철학적 관심이 증대된 전국만기(晚期)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찬입(竄入)되었거나 한초(漢初)의 황로학파(黃老學派)의 정치사상을 반영하는 후대의 프라그먼트(fragment)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명(高明)의 주장은 백서(帛書)의 출현 이후 매우 강력한 지지를 얻었고, 또 학계에 그러한 노학(老學)의 발전경로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그러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변(異變)이 터진 것이다. 신자료(新資料)의 출현으로 고증가들의 시세는 치솟았다가 폭락하고 또 급등하기도 하는 요즘 증권시장의 꼬락서니 같다.
20년 후, 1993년, 곽점초묘(郭店楚墓)가 출토되면서 문제가 되는 백서(帛書)의 부분과 일치되는 현행본 37장과 48장의 죽간(竹簡)이 나온 것이다. 곽점죽간(郭店竹簡)에 문제가 되는 37장ㆍ48장의 부분이 모두 실려있는 것이다. 자아!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렇게 흥미로운 일이 또 있을까? 보다 2세기가 앞선 죽간(竹簡)자료에 동일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해답은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17. 곽점죽간 출토로 까오밍[高明] 선생의 견해는 무너지다
1)
37장은 ‘도항망위야(道恒亡爲也)’로 되어 있어, 그 부분은 오늘의 왕본(王本)보다는 백서본(帛書本)에 가깝게 되어 있다. 전국중기(戰國中期)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무(無)라는 글자는 쓰이지 않았다. 여기서 망(亡)은 무(無)로 바꾸어 이해하면 된다. ‘무(無)’의 고자(古字)가 곧 ‘망(亡)’이다. 무(無)는 춤춘다는 뜻인 ‘무(舞)’라는 글자를 후대에 가차한 것이다. 그러니까 무(無)라는 글자는 ‘없다’는 뜻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단지 발음이 같아 빌려온 글자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고명(高明)의 주장은 37장의 경우 디펜스가 가능하다. 그러나 48장은?
2)
48장은 ‘망위이망불위(亡爲而亡不爲)’로 정확히 오늘날의 왕본(王本)과 일치(一致)한다. 그럼 고명(高明)은 어떻게 되었나?
요즈음 세계적으로 노자철학계에서는 고명(高明)을 신나게 두드려 패는 논문이 난무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명(高明)은 똥이 되고 만 것이다. 고명(高明)의 학설은 전혀 디펜스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고명(高明)은 누구나 가서 한번 안심하고 때려보는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 고명(高明)을 타이르는 유행어가 있다. ‘무엇이 있다거나 긍정하는 설을 세우기는 쉽다. 그러나 무엇이 없다거나 부정하는 설을 세우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說有易, 說無難]’ 까오밍[高明] 선생(先生)! 조심허시게!
사실 새 자료를 보고 까오밍을 신나게 까는 놈들은 치사하다. 까오밍처럼 새로운 학설을 세우느라고 고심했던 흔적도 없이…… 그러나 48장의 죽간자료(竹簡資料)는 이미 전국중기의 사실을 제공하는 문헌이므로, 무불위(無不爲)사상이 전국말기의 날조라는 까오밍의 주장은 물론 틀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의 사상은 노자의 원래 사상의 고층대에 속하는 것이다.
까오밍은 왜 그렇게 틀린 주장을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문자학만을 좁게 천착하고 철학이나 사상을 넓게 섭렵하질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병통인 것이다. 너무 좁게 노자를 축자적(逐字的)으로 바라 본 것이다. 백서(帛書)자료에도 분명히 제3장이 실려있고 그 을본(乙本)에 ‘무불치(無不治)’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무불치(無不治)의 사상이 곧 무불위(無不爲)의 사상과 동일한 논리구조라는 것을 인정했어야 했다. 무불치(無不治)만 내가 새기듯이 바르게 생겼어도, 무불위(無不爲)가 노자의 오리지날한 사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는 성립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도 노자사상을 소극적인 무위(無爲, 함이 없음)의 수신철학(修身哲學)으로 좁게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자 무위(無爲)는 무불위(無不爲)의 결과를 수반한다. 아니 무위(無爲)는 어쩌면 무불위(無不爲)를 지향하는 방편적 무위(無爲)였을지도 모른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결코 소극적 은둔이나 피세(避世)의 철학이 아니라 적극적 치세의 행동철학이요, 유위(有爲)의 세계를 무위적(無爲的)으로 개변하려는 혁명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18. 왕본(王本)과 백서(帛書) 을본(乙本)간의 차이
제3장은 앞서 말했듯이(17. 노자철학의 핵심 가치론), 곽점죽간(郭店竹簡)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백서본(帛書本)에는 정연히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놀라웁게도, 오늘 우리가 보는 왕본(王本)과 백서(帛書) 을본(乙本)의 내용은 2千2百년이라는 엄청 난 세월을 하고 있음에도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중국의 고전이 얼마나 정확한 전승(傳承)의 산물인가하는 경이로운 사실을 말해준다. 백서(帛書)의 출토는 기본적으로 중국고전의 권위를 높여준 것이다. 그러나 왕본(王本)과 백서(帛書) 을본(乙本)간의 주요한 차이를 여기 한번 샘플로서 제시해 본다.
1)
‘불상현(不尙賢)’이 ‘불상현(不上賢)’으로 되어 있다. ‘현인을 숭상하지 않는다’와 ‘현인을 높이지 않는다’는 별 차이가 없다. 상(尙)과 상(上)은 통한다.
2)
‘사민심불난(使民心不亂)’이 ‘사민불난(使民不亂)’으로 되어 있다. 심(心)이 빠져 있다. 후대에 그 뜻을 더 정교롭게 하기 위해 ‘심(心)’을 첨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는다’와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에서 물론 전자의 표현이 더 총체적이고 단순하고 더 문장의 파라렐리즘(parallelism)에 적합하며, 더 고층대의 문헌이라는 것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3)
‘사부지자불감위야위무위즉무불치(使夫智者不敢爲也爲無爲則無不治)’의 구문이 ‘사부지불감불위이이즉무불치의(使夫知不敢弗爲而已則无不治矣)’로 되어 있다. 이것은 좀 해설을 요한다.
우선 ‘지자(智者, 지혜로운 자)’가 ‘지(知)’라는 한마디로 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다. 지(知)는 곧 ‘지자(知者)’의 약칭일 것이다. 그런데 지자(知者)를 ‘지자(智者)’로 바꾼 것은 후대에 ‘아는 자’에 대하여 그 어감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지혜로운 자’의 뜻으로 변화를 준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는 별 뜻이 없는 통자(通字)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왕본(王本)의 ‘지자(智者)’는 후대 문헌에서는 불교와 관련하여 ‘지혜의 부정’이라는 뜻마저 담는 어떤 효과를 자아냈을 것이다. 하여튼 지자(智者)보다는 지자(知者)가 그 원형임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의 구문이다. 만약 우리가 다음 구문을 쭉 붙여 읽으면 ‘使夫知不敢弗爲而已, 則无不治矣’가 될 텐데 그러면 그 뜻이 정반대가 된다. ‘대저 안다고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그러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 다시 말해서 ‘불감불위(不敢弗爲)’를 붙여 읽으면 이중부정이 됨으로 ‘감히 하지 못하게 한다’가 아니라 ‘감히 하게 한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가 없다. 그럼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다음과 같이 끊어 읽는 것이다.
使夫知不敢, 弗爲而已, 則无不治矣.
대저 안다고 하는 놈들로 하여금
감히 덤비지도 못하게 하고,
뭘 하지도 못하게 할 뿐이다.
그리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바로 고문자(古文字)의 소략함이다.
19. 백서(帛書) 고본(古文)이 왕본(王本)으로 변모하는 과정
그런데 왕필본(王弼本) 계열의 사람들은 이 구문에서 ‘불위이이(弗爲而已)’를 앞쪽 구문 즉 ‘사부지(使夫知)’에 연결시킨 것이 아니라, 뒤의 구문 즉 ‘즉무불치(則无不治)’에 연결시킨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적으로 위문장은 이렇게 끊어진다.
使夫知, 不敢. 弗爲而已, 則无不治矣,
그리고 ‘불위(弗爲)’를 ‘무위(無爲)’로 바꾸어 이해하면:
無爲而已, 則无不治矣
가 될 것이다. 따라서 중간의 ‘이이(而已)’를 빼고 앞에 ‘위(爲)’를 하나 더 첨가해서 문맥을 명료하게 만들면:
爲無爲, 則无不治矣。
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앞의 ‘사부지 불감(使夫知, 不敢)。’의 구문이 너무 소략함으로 지(知)에 놈‘者’를 하나 더 붙이고, 불감(不敢)의 숨은 뜻인 ‘위(爲)’를 하나 첨가해서 그 문의를 쉽게 서술적으로 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장을 앞에서 종지시키는 어조사 ‘야(也)’를 붙인다. 그리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使夫知者, 不敢爲也
백서(帛書)의 고본(古文)이 어떻게 오늘의 왕본(王本)의 모습으로 변모해갔는지 그 변모의 과정을 이렇게 하는 텍스트를 비교해 보면 명료하게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작업이 바로 우리 전문가들이 하는 작업인데, 지금 이것은 대중방송을 위한 저술임으로 이런 작업을 일일이 다 밝힐 수가 없다. 매 장의 문자(文字)를 이렇게 다 풀면 아마도 수십만장의 원고라도 모자랄 것이다. 단지 우리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노자』를 겉으로 보면 아주 단순한 몇 마디의 말같이 보이지만 그 말 이면에는 독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문헌의 방대한 논의들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왔다는 것이다.
『노자』 하나만 하더라도 최소한 『신약성서』 보다는 더 오랜 시간에 걸쳐 더 많은 인구에 의하여 독송된 문헌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부터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1ㆍ2ㆍ3장은 『노자』 텍스트의 전체를 응집시킬 수 있을 만큼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 조금 자세히 서술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1장은 워낙 내용이 방대하여 그것을 2장ㆍ3장만큼도 상세하게 논의치 못하고 지나친 것을 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첫 장부터 너무 본격적으로 강의를 해대면 사람들이 기가 질려서 아예 『노자』 읽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가볍게 탓치(touch)하면서 지나쳤으나 그것은 『노자』 전체를 읽고 난 후에 다시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강의 속에서는 보다 깊게 언급하겠다.
20. 고대(古代) 문장일수록 구어에 가깝기에 허사가 많이 들어 있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중요한 텍스트의 사실을 말해주고자 한다. 왕본(王本)과 을본(乙本)의 제일 마지막 구절을 한번 비교해보자!
帛本 | 王本 |
弗爲而已, 則无不治矣. | 爲無爲, 則無不治. |
왕본(王本)을 보면 ‘이이(而已)’와 ‘의(矣)’와 같은 소위 허사(虛詞)가 빠져 있고 아주 간결한 느낌이 드는 반면, 백본(帛本)을 보면 그런 허사가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있는 듯하여 아주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느낌이 든다. 얼핏 생각할 때, 어떠한가?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문장이 고대(古代) 문장일까?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이 고대(古代) 문장일까?
우리의 일반적 상식은 백서(帛書)가 출토(出土)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문(漢文)의 문체스타일이 간결한 데서 지리한 데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현(現) 왕본(王本)의 문장같이 허사가 빠진 간결한 문장이 더 고대의 문장이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허사가 첨가된 것으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백서(帛書)의 출토(出土)로 이러한 문법학(文法學)의 상식이 일변(一變)하게 되었다. 허사가 많고 구질구질한 문장이 훨씬 더 고졸(古拙)한 고층대의 문법에 속하는 문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일례를 들면, ‘야(也)’니 ‘의(矣)’니 하는 허사가 많이 쓰였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러한 허사가 되어 오히려 간결하고 질박하게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은 사건이다. 그리고 더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요번 새로 발굴된 죽간본(竹簡本)도, 왕본(王本)과 같이 간결하지 않고, 백서본(帛書本)처럼 허사가 많아 그 문사(文詞)가 만연(蔓衍)하다는 사실이다. 이로서 전국(戰國)시대의 문장은 요새 우리가 생각하는 고문(古文)보다 훨씬 더 자수(字數)의 리드믹한 일치가 없는 구질구질한 문장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백서(帛書)나 간서(簡書)의 문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한 문언문(文言文, 문장을 쓰기 위한 문체)이 아니라, 바로 당시의 구어(口語)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완벽한 언문일치(言文一致)의 문장인지는 알 수가 없어도 옛사람들은 참으로 말을 간결하게 했으며, 그 간결한 말끝에 그 의미
의 단락을 주기 위하여 구어적으로 생동감 있는 허사들이 많이 붙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정하는 것이다. 이 백서(帛書)나 간서(簡書)를 생각하면서 나는 『논어(論語)』의 문체를 떠올린다. 『논어(論語)』의 문체는 유독 선진고문(先秦古文) 중에서도 허사가 많기로 유명하다. 아마도 『논어(論語)』의 문체야말로, 당시의 살아있는 구어의 문체를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문헌으로 우리는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사계(斯界)의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젊은 학도들을 위하여 한마디 첨가하는 나의 소박한 소견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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