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후장(諸侯章) 제삼(第三)
고위공무원에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윗자리에 거(居)하면서도 교만하지 아니 하고, 높은 곳에 처하면서도 자신과 주변을 위태롭게 하지 아니 하고, 삶의 상황들을 제어할 줄 알고 매사의 도수를 지나치지 않게 절제하며, 재화가 가득 차도 그것이 넘치도록 하지마라. 子曰: “居上不驕, 高而不危; 制節謹度, 滿而不溢. 높은 곳에 처하면서도 위태롭게 하지 아니 하니, 그 높은 지위를 오래 지킬 수 있다. 가득차도 넘치도록 하지 아니 하니, 그 부(富)를 오래 지킬 수 있다. 풍요로운 재력과 권위로운 높은 지위가 그 몸을 떠나지 않은 연후에나 비로소 사직을 보전(保全)할 수 있는 것이요, 자기 영내의 인민들을 화목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저 이것이 제후의 효이다. 高而不危, 所以長守貴也. 滿而不溢, 所以長守富也. 富貴弗離其身, 然後能保其社稷, 而和其民人. 蓋諸侯之孝也.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라. 깊은 못에 임하는 듯이, 살 얼음을 밟듯이 조심하며 살아가라.’”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水.’” |
제후의 효는 제후국의 질서를 지키고 그 영내의 인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효의 개념이 ‘바른 통치’라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 효의 맥락을 결코 무시한 장이 아니다. 청와대의 권좌에 있는 자의 효는 자기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정치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효행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후의 효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제후 본인의 부(富: financial power)와 귀(貴: positional strength)가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후 본인의 부귀가 확보되기 위해서는 사치하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절검하고 위태롭게 처신하지 않는 겸허함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이불일(滿而不溢)’이라는 말은 재력에 있어서는 항상 ‘허(虛)’를 유지하는 슬기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노자(老子)적 사유의 깊은 영향이 엿보인다. 『노자』 제15장에 ‘이 도를 보존하는 자는 채우려하지 않는다[保此道者, 不欲盈]’이라는 말이 있는데 왕필(王弼)이 ‘차면 반드시 넘친다[盈必溢也].’라고 주석을 단 것과 상통하는 의미맥락이다. 『노자』 제9장에도 ‘금과 옥이 집을 가득 채우면 그를 지킬 길이 없다. 돈이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길 뿐이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길이다[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라는 말이 있는데 『효경』의 본 장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기실 유(儒)와 도(道)는 삶의 지혜에 있어서 근원적으로 차별이 없는 것이다. 『효경』 안에는 유(儒), 도(道)ㆍ법(法)ㆍ묵(墨) 등등이 다 통섭되어 있다. 『효경』을 유교의 경전으로만 간주하고 이러한 도가사상과의 관련성을 밝히는 주석을 다는 자가 별로 없는데 그것은 매우 편협한 자세이다.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로우 키(low-key)의 겸허한 인생태도를 지녀야 그 높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의 허(虛)다.
마지막의 『시경』 「소민」의 가사 인용도 단장취의라 할 수 있다. 그 맥락이 다르다. 「소민」의 맥락은 대운하를 강행하거나 도성을 신축하거나, 정치지도자가 그릇된 계획(가사 중에는 ‘모謀’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을 세워 국민을 위기에 빠뜨릴 때, 힘없는 인민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탄한 노래이다. 본 장에서는 그러한 의미맥락을 제후가 조심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전환시켰다. 노래가사란 본시 해석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다.
증자의 삶의 최후 순간을 기록한 『논어(論語)』 「태백」의 기술과 내면적 연결이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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