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쟁장(諫爭章) 제이십(第二十)
불의를 당하면 간쟁하라
증자가 여쭈어 말하였다. ‘자애(慈愛)와 공경(恭敬)과 안친(安親: 부모를 편안하게 해드림)과 양명(揚名) 등등에 관해서는 삼(參),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감히 떨리는 마음으로 묻고 싶습니다. 자식이 아버지의 명령을 좇기만 하면 효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曾子曰: “若夫慈愛龔敬安親揚名, 參聞命矣. 敢問子從父之命, 可謂孝乎?” 공자께서 의외라는 듯이 말씀하시었다: “아가! 너 뭔 말을 하고 있는 게냐, 뭔 말을 하고 있는 게냐! 너 자신이 뭔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구나! 예로부터 천자(天子)에게 천자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신하가 일곱만 있어도, 비록 천자가 무도한 사람일지언정 천하를 잃는 법은 없었다. 제후에게 제후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신하가 다섯만 있어도, 비록 제후가 무도한 사람일지언정 나라를 잃는 법은 없었다. 대부에게 대부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신하가 셋만 있어도, 비록 대부가 무도한 사람일지언정 가(家)를 잃는 법은 없었다. 사(士)에게 그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벗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몸이 명예로운 이름을 잃는 법은 없었다. 아버지에게 그의 잘못을 간쟁해주는 아들 한 사람만 있어도 그 몸이 불의(不義)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子曰: “參, 是何言與, 是何言與! 言之不通耶! 昔者, 天子有爭臣七人, 雖無道, 弗失天下; 諸侯有爭臣五人, 雖無道, 弗失其國; 大夫有爭臣三人, 雖無道, 弗失其家; 士有爭友, 則身弗離於令名; 父有爭子, 則身弗陷於不義. 그러므로 불의를 당하면 자식은 아비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신하는 임금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불의한 상황에 당면하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한다 해서 어찌 효라 일컬을 수 있겠느뇨?” 故當不誼, 則子不可以不爭于父; 臣不可以不爭於君. 故當不誼, 則爭之. 從父之命, 又安得爲孝乎!” |
이것은 순자(荀子)의 합리주의 정신이 반영된 『효경』」의 위대한 사상이다. 소효(小孝)와 대효(大孝)의 문제는 이미 설진(說盡)하였다. 본 장의 언어는 매우 명료하다. 독자들은 이 한마디만 기억해주면 좋겠다. ‘당불의, 즉쟁지(當不義 則爭之)! 불의를 당하면 투쟁하라!’
여기 재미있는 것은 증자라는 캐릭터의 등장이다. 『효경』은 「개종명의장」으로부터 증자가 공자를 시좌(侍坐)하고 있다가 공자의 가르침을 청하여 듣는 방식으로 시작하였다: “게 앉거라! 내가 너에게 가르침을 주겠노라!”하면서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치달으면서 증자가 다시 등장한 것은 전체적으로 그러한 드라마적 구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증자는 ‘꾸지람’을 들으면서 소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시하언여(是何言與)’를 두 번 반복한 것은 공자의 말습관을 나타낸다. 『논어(論語)』의 5-4, 6-23, 6-26, 9-12, 11-8 등의 용례를 보라.
내가 여기 ‘아가’라고 번역한 것은 실제로 공자의 나이 73세 때에 증자의 나이 27세였다. 가장 어린 제자그룹에 속하였던 것이다. 증자는 자신의 ‘불민(不敵)’을 처음부터 말하였고, 여기서도 좀 아둔한 모습으로 그려짐으로써 공자의 위대한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여지게 되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종일 공자의 말씀을 듣고 또 듣고 졸리는 눈을 부벼가며 아둔한 듯 질문을 던지는 증자의 모습이 귀여운 데가 있다. 증자는 「선진」 2의 사과십철(四科十哲)에도 끼지 못했고, 「선진」 17에 ‘좀 아둔한 사람[參也魯]’이라고 가볍게 평가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증자는 겸손했고 꾸준히 공자의 가르침의 적통을 이어 가장 중요한 공자의 학단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 20장의 대화가 끝나고 21장에서 연애시가 인용되며 아랫사람(신하)의 도리가 설파된 후, 최후 22장에서 누구나 실존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는 상친(喪親)’의 슬픔을 말하면서 효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부각시키는 『효경』의 저자는 전체적으로 놀라운 구성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지막 22장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마치 장중한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을 듣는 듯하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그런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효자지사종의(孝子之事終矣)’라는 말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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