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의 왕조를
치수(治水) 사업의 공적으로 선양을 통해 순임금의 뒤를 이은 우임금에 이르러 중국은 역사시대로 접어든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중국의 첫 고대국가는 하(夏)나라다. 하나라는 기원전 약 23세기 말부터 기원전 18세기 중반까지 500년 가까이 존재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기록으로는 전하지만 그 기록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공자(孔子)가 편찬한 『시경(詩經)』에 등장하지만, 공자 역시 자신의 시대보다 1000년 이상이나 앞선 옛날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할 수는 없었을 터이다. 공자가 상상만으로 책을 쓰지는 않았을 테니 그의 시대까지는 전설이나 기록이 전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역사 자료라고 할 만한 것은 현전하지 않는다.
하나라는 황허 중류, 지금의 뤄양(낙양, 洛陽)이 있는 지역에 자리 잡았고, 사(姒)씨 성의 씨족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였다고 전한다. 건국자인 우는 선양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그 고대적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왕위의 세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하나라만이 아니라 뒤이은 은나라 때까지도 언제나 왕위가 부자간에 세습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의 왕위 세습은 특별한 경우다. 당시 전 세계 문명 가운데 왕위의 세습이 이루어질 정도로 발달한 나라는 이집트 정도였다.
하나라는 주변 씨족들과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는 한편 여러 가지 정치적ㆍ군사적 연합을 이루면서 발전했다. 비록 아직까지는 하나라의 유물이라고 확정지을 만한 것이 없지만, 기록에 전하는 양성(陽城)ㆍ정저우(鄭州, 정주), 뤄양 등 하나라의 도읍지들을 제대로 발굴한다면 언젠가 그 유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다만 그러려면 어릴 때 들은 트로이 전설을 역사로 믿고 결국 트로이 유적을 발굴해낸 슐리만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러 씨족과 경쟁하거나 연합하면서 존속하던 하나라는 기원전 18세기 중반에 상(商)이라는 성씨를 가진 강성한 씨족에게 멸망을 당했다. 상족의 왕인 탕(湯)은 새로 은(殷)나라를 세웠는데, 하나라가 기록에 명칭이 전하는 중국 최초의 국가라면 은나라는 유물로 실증되는 최초의 국가다(상족이 세운 탓에 은나라를 상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은허(殷墟)라고 불리는 은나라의 유적지가 발굴된 것은 바로 슐리만 같은 중국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899년에 청의 학자인 왕의영(王懿榮, 1845~1900)과 그의 제자 유철운(劉鐵雲, 1857~1909)은 약재로 쓰려던 동물의 뼈에 묘한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냥 약재상이나 아이의 장난이겠거니 하고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금석학(건축물이나 비문에 새겨진 옛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을 공부한 두 사람은 그 문자들이 현대의 것이 아님을 알아보고 뼈의 출처를 열심히 조사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드러난 은나라 유적지는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발굴되었고, 고대에 중원 일대에서 널리 세력을 떨쳤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왕의영과 유철운이 발견한 그 고대 문자는 바로 한자의 옛 형태인 갑골문자였다. 은의 유적지에서는 각종 청동기와 도기, 석기, 농구 등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지만, 그 역사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갑골문자였다. 비록 문헌의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어도 갑골문은 중국 최초의 역사 기록물인 것이다.
▲ 중국의 중원. 황제가 중국 문명을 일으킨 이래 하ㆍ은ㆍ주의 삼대 왕조가 발흥한 황허 중류의 중원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거쳐 양쯔 강 이남의 강남이 개발되면서 중국은 중원과 강남이라는 두 개의 지역적 중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강남은 경제적 중심에 그친 반면 중원은 한족만이 아니라 북방 민족들에게도 언제나 중화의 중심이었다.
갑골문의 내용은 점괘였다. 점괘를 어떻게 역사 기록물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은나라의 성격을 알면 해소된다. 은나라는 점을 쳐서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던 제정일치의 신정(神政) 국가였다【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의 종교를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종교로 여기면 곤란하다. 당시의 종교는 오늘날처럼 개개인이 신앙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활 방식 자체였다】. 그러므로 갑골문은 어느 것보다 은나라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훌륭한 기록이다.
갑골의 재료로는 사슴ㆍ양ㆍ돼지ㆍ소 등의 뼈를 사용했고, 나중에는 ‘갑골(甲骨)’이라는 뜻 그대로 거북의 등껍데기도 썼다. 국가의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때면 은나라의 지배 집단은 이런 동물 뼈의 한 면에 몇 개의 홈을 판 다음 제사를 지내고 나서 그 뼈를 불에 지지거나 구웠다. 그 결과 뼈 뒷면에 갈라진 무늬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을 판독해 하늘의 뜻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무늬 자체가 글씨의 형상을 만들어내지는 않으므로 당연히 무늬를 판독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판독이 곧 점괘가 되었다. 은나라 초기에는 왕이 직접 제사장의 자격으로 점괘를 해석했으나, 점차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고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후기에는 정인(貞人)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무당이 그 일을 대신하고 해석의 결과만 왕에게 보고했다(그렇다면 갑골문은 왕에게 제출하는 국정 보고서인 셈이다). 정인들이 맡았으므로 그 행사를 정문(貞問)이라고 불렀다.
정문은 원시적인 주술처럼 하늘의 뜻을 묻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정치외교적인 행사였다. 그런 탓에 갑골문에는 점괘의 내용과 더불어 은나라 시대의 지명과 관직명, 그리고 전쟁을 비롯한 당시의 수많은 사건에 관한 기록도 있다. 어느 갑골문 기록에 따르면, 은나라는 강씨족(羌氏族)【산둥 반도를 근거지로 삼은 씨족으로, 훗날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는 강태공의 성씨다】 포로 300여 명을 한꺼번에 제물로 바친 일도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면 은나라의 국세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갑골문은 은나라 시대의 생활상도 보여준다. 은나라는 청동기시대에 속하지만 당시 청동기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청동기는 무기나 각종 제기(祭器), 지배 집단의 사치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뿐 백성들의 일상용품에 사용되지는 못했다. 농민의 농기구는 돌칼이나 돌낫 등 여전히 석기였다. 이런 석기로 논밭을 갈고 벼와 보리를 베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도구의 한계 때문에 작업의 효율성을 도모하기가 불가능하다면 노동력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나라의 농경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일하는 집단 경작의 형태를 취했다. 효과적인 치수와 관개, 그리고 인분을 비료로 쓰는 선진적인 농법이 사용되었지만【인분을 비료로 사용하는 것은 동양의 관습이자 지혜다. 서양에서는 동물의 배설물을 오래전부터 비료로 사용했지만 인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그리스도교 이념에 따라 사람의 배설물을 식물의 먹이로 쓴다는 것을 혐오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분을 비료로 쓰는 것은 농사에도 도움이 되지만 도시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서양의 도시에서는 예부터 인분의 처리가 골칫거리였다. 고대에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 세계를 여러 차례 강타한 흑사병의 유행은 도시가 불결한 데도 원인이 있다】, 아무래도 농기구의 후진성으로 은나라의 농업 생산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탓에 이권을 놓고 싸우는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은나라 시대의 전쟁은 주로 씨족들 간의 다툼이었을 뿐 이권 다툼의 성격은 없었다. 이는 뒤이은 주나라 시대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전쟁과 크게 다른 점이다.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에도 은나라의 존재는 기원전 2세기의 역사서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와 있었으나 그전까지는 이 기록을 믿지 않는 학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은나라의 유물을 눈앞에서 보는 이상 이제 은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하나라와 더불어 구름 속의 왕조였던 은나라는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구름을 걷고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자. 은나라의 제사장은 짐승의 뼈를 불에 구워 갈라지는 금을 보고 점을 쳤다. 이 소뼈에 새겨져 있는 문자들은 그 점괘를 기록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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