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공과 안회, 둘 중에 누가 나은가?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女, 音汝, 下同.
○ 愈, 勝也.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一, 數之始. 十, 數之終. 二者, 一之對也. 顔子明睿所照, 卽始而見終; 子貢推測而知, 因此而識彼. “無所不悅, 告往知來”, 是其驗矣.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與, 許也.
○ 胡氏曰: “子貢方人, 夫子旣語以不暇, 又問其與回孰愈, 以觀其自知之如何. 聞一知十, 上知之資, 生知之亞也. 聞一知二, 中人以上之資, 學而知之之才也. 子貢平日以己方回, 見其不可企及, 故喩之如此.夫子以其自知之明, 而又不難於自屈, 故旣然之, 又重許之. 此其所以終聞性與天道, 不特聞一知二而已也.”
○ 『論語集解』曰: “包曰: ‘旣然子貢不如’ 復云: ‘吾與女俱不如’者, 蓋欲以慰子貢也.”
해석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공자께서 자공에게 “너와 안회, 누가 나은가?”라고 물으셨다.
女, 音汝, 下同.
○ 愈, 勝也.
유(愈)는 낫다는 뜻이다.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자공이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두 가지를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一, 數之始. 十, 數之終.
일(一)는 숫자의 시작이다. 십(十)은 숫자의 마지막이다.
二者, 一之對也.
이(二)이라는 것은 일(一)의 대칭이다.
顔子明睿所照, 卽始而見終;
안자는 밝은 지혜가 비추는 이로, 시작에 나가면 끝을 보았고,
子貢推測而知, 因此而識彼.
자공은 추측하여 알아 이로 인해 저것을 알았다.
“無所不悅,
「선진」3에서 안회를 칭찬하며 ‘기뻐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과,
告往知來”,
「학이」15에서 자공을 칭찬하며 ‘갈 것을 알려줬더니, 올 것을 안다’라고 한 것이
是其驗矣.
이것의 증험이다.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공자께서 “같지 않지! 나와 너는 안회와 같지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與, 許也.
○ 胡氏曰: “子貢方人, 夫子旣語以不暇,
호인(胡寅)이 말했다. “자공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자, 부자께선 ‘그럴 겨를이 없다’고 하셨고,
又問其與回孰愈, 以觀其自知之如何.
또한 ‘안회에 더불어 누가 낫나?’라고 물어, 스스로 앎이 어떠한지를 보려 하였다.
聞一知十, 上知之資, 生知之亞也.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 것’은 상지(上智)의 자질로 생이지지(生而知之)에 버금간다.
聞一知二, 中人以上之資, 學而知之之才也.
‘하나를 듣고 둘을 아는 것’은 중인(中人) 이상의 자질로 학이지지(學而知之)의 재주다.
子貢平日以己方回,
자공은 평일에 자기로 안회와 비교하였고
見其不可企及, 故喩之如此.
미칠 수 없음을 보았기 때문에 비유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夫子以其自知之明,
부자께선 자공이 스스로를 아는 것이 분명하고
而又不難於自屈, 故旣然之,
또한 스스로 굽히기를 어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又重許之.
또한 거듭 그를 허여하신 것이다.
此其所以終聞性與天道,
이런 이유 때문에 자공은 끝내 성(性)과 천도(天道)를 들었으니,
不特聞一知二而已也.”
다만 ‘문일지이(聞一知二)’일 뿐만은 아니었다.”
○ 『論語集解』曰: “包曰: ‘旣然子貢不如’
『논어집해』에서 말했다. “포씨가 ‘이미 자공의 안회만 못함’을 허여하였다고 말했고
復云: ‘吾與女俱不如’者,
다시 ‘나와 너는 모두 안회만 못하다’고 말한 것은
蓋欲以慰子貢也.”
대체로 자공을 위로하고자 한 것이다.”
오여여부지(吾與女弗如) | |
정자, 주희 | 何晏, 도올 |
나는 너의 안회와 같지 않다는 것을 허여하노라. | 나와 너는 안회와 같지가 않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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