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공과 안회, 둘 중에 누가 나은가?
5-8. 공자께서 자공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너와 안회, 누가 더 나으냐?” 5-8.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나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이옵니다.”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래, 너는 안회만 같지 못하다. 그래! 나와 너 두 사람 모두 안회만 같지 못하다.”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
안회를 공자보다 30세 연하라고 한다면, 자공은 31세 연하이니까, 자공은 안회보다 한 살 어릴 뿐이다. 즉 이 두 사람은 동년배의 사람들로서 공자의 총애를 받았던 탁월한 동량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공자문하에서 막상막하의 라이벌이었을 것이다. 『논어』라는 서물 속에서 안회라는 인물의 탁월함에 관한 신화는 어느 누구도 깰 수가 없다. 안회는 그 신성한 위치를 신비롭게도 보장받고 있다. 『논어』가 결코 한 시대의 일시적 소산이 아니건만 그 역사적 역정을 통하여 그 어느 누구도 안회의 신화에 대하여는 반기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자공도 안회에 못지않은 인물이었다. 유능한 언변과 외교, 그리고 성실한 배움의 자세, 냉철한 상황판단과 상식적 겸손, 그리고 이재(理財)의 능력, 이 모든 면에서 공자의 사랑을 받고도 남을 큰 재목이었다.
이 장의 대화는, 안회가 등장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안회와 무관하게 공자와 자공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일 뿐이다. 그런데 대화를 시작하는 공자의 질문은 매우 짓궂은, 사람을 약올리게 만드는 톤을 깔고 있다. 이 질문에서 우리는 공자라는 인품의 ‘장난끼’를 읽어낼 수가 있다. 공자는 째즈 아티스트였으며 때로 코믹하기 그지없다. 보통 두 사람을 비교하여 그 장본인에게 둘 중에 누가 더 나으냐고 묻는 것은 아무리 선생이라 할지라도 실례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직접적인 질문은 피하거나 간접적인 방식으로 묻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공자의 질문은 당혹스럽게 단도직입적이다.
“너와 안회, 누가 더 나으냐[女與回也孰愈]?”
이러한 당혹스러운 질문을 존경하는 스승으로부터 받았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따위 질문이 어디 있냐고 항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제가 바보로소이다 하고 굴욕적인 항복의 자세를 취할 것인가? 이러한 곤혹스러운 상황을 대처해나가는 자공은 역시 탁월한 외교관다웁게 정치적이면서도 그 소박한 내면의 진실을 잃지 않는다. 자공은 역시 위대하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나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이옵니다[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여기 ‘하감망회(何敢望回)’의 ‘망(望)’은 우리말의 ‘넘나보다’는 뉴앙스가 담겨져 있는 적절한 단어다. 어찌 그 발꿈치나 따라갈 수 있겠냐는 뜻이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은 그야말로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천부적 재질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안회는, 요즈음 과목개념으로 그 학문을 말하자면, 수학의 천재였을 것이다. 머리가 면도날처럼 회전하는 자유자재로운 응용력과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공이 자신에 대하여 자평을 한 것을 보면 매우 절묘한 구석이 있다. 만약 ‘하나를 들어 하나를 안다[聞一以知十]’고 말했다면, 그것은 ‘문일이지십(聞一以知十)’에 대한 완전한 패배의식을 자인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문일지일(聞一知一)은 진보가 없다. 그것은 항상 제걸음이요, 배우는 대로만 알 뿐, 그 배운 지식을 뛰어넘는 추리나 응용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일지이(聞一知二)’는 ‘문일지십(聞一知十)’과도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미 그 가능성을 내포한 차원의 언급이다. 문일지일(聞一知一)과 문일지이(聞一知二)는, 하나. 둘의 차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르다. 문일지일(聞一知一)은 문일지십(聞一知十)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저차원에 속하지만, 문일지이(聞一知二)는 이미 지십(知十)으로 발전될 수 있는 동차원의 능력인 것이다. 비록 곤이학지(困而學之)할지라도 생이지지(生而知之)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 포하고 있는 것이다. 자공은 자신의 능력을 폄하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겸손 하게 낮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공자는 기뻤다. 자공이 친구 안회 앞에서 자기를 낮출 줄 아는 허심탄회한 자세에 감복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이 공자의 말에 대한 주자의 해석은 황간의 소에 지적된 용법을 따른 것이다. 앞의 ‘불여야(弗如也)’는 ‘그래 너는 안회만 같이 못하다’는 공자의 찬동의 뜻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불(弗)’은 ‘불(不)’자보다 더 강렬한 부정의 어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구문의 해석에 이견이 있다. 주자는 두 번째 구문 이 앞의 구문을 반복적으로 풀이하는 성격의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오여여불여야(吾與女弗如也)’의 ‘여(與)’를 “허여하다’로 보았다. 이렇게 되면, 그 구문은 ‘그래 나는 네가 안회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허여한다’는 뜻이 된다.
나는 이 주자의 해석은 공자에 대한 지나친 경건주의에서 유래된 오석(誤釋)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여(與)’는 허여한다는 동사가 아니라, ‘…와(and)’라는 접속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 나와 너 둘다 안회만 못하다.’ 주자는 공자가 안회만 못하다는 공자의 자기 시인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자는 자유인이다. 공자는 제자 앞에서도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자유인이었다. 공자가 처음 자공에 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면, 그 짓궂은 질문 앞에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자공의 훌륭한 인격을 바라보면서 우선 자공이 안회만 못하다는 자의 자기 시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공자는 그러한 겸손한 자공과 길을 함께 한 것이다. 너뿐이 아니야! 그래! 나 또한 안회만 못하지.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스승의 자세를 배운다. 위대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 앞에서 자신의 불초함을 인정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그러한 겸허를 통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격려를 잊지 않는 것이다. 포함(包含)의 고주는 말한다.
이미 한번 자공이 안회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난 후, 또다시 나와 너 둘 다 안회만 같지 못하다고 말한 것은, 자공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스승의 따뜻한 마음씨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旣然子貢弗如, 復云吾與汝俱不如者, 蓋欲以慰子貢心也.
‘女’는 ‘여(汝)’로 발음한다. 이하의 용례가 다 같다. ○ ‘유(愈)’는 더 낫다[勝]는 뜻이다.
女, 音汝, 下同. ○ 愈, 勝也.
‘일(一)’은 수(數)의 시작이요, ‘십(十)’은 수의 끝이다. ‘이(二)’라는 것은 일(一)의 짝(對)이다. 안자의 명철한 지혜가 비추는 범위는, 시작에 즉하여 끝을 곧바로 통찰하는 능력이 있었다. 자공은 차근차근 추측(미루어 헤아림)하여 아는 사람이니, 이것으로 인하여 저것을 인식한다. 「선진(先進)」에서 ‘내 말을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다[무소불열(無所不說)]’이라는 말로 안회를 칭찬하시고, 「학이(學而)」 15에서 ‘지나간 것을 말해주니 올 것을 알아차린다[고왕지래(告往知來)]’라는 말로 자공을 칭찬해주신 것이 바로 이 장의 증거가 되는 다른 표현들이다.
一, 數之始. 十, 數之終. 二者, 一之對也. 顔子明睿所照, 卽始而見終; 子貢推測而知, 因此而識彼. “無所不悅, 告往知來”, 是其驗矣.
‘여(與)’는 허여한다(허락한다. 인정한다)는 뜻이다. ○ 호인이 말하였다: “「헌문」 31에 자공이 사람들을 비교하여 평가하자, 공자께서는 나는 그런 짓을 할 겨를이 없다고 하셨다. 여기서는 또한 자에게 안회와 비교하여 누가 더 낫냐고 물으심으로써 자공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보려하신 것이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은 상지(上知)의 자질로서, ‘생이지지(生而知之)’의 다음이다. ‘문일지이(聞一知二)’는 중등급 이상의 자질로서 ‘학이지지(學而知之)’의 재능이다. 자공은 평소에 자신을 안회에 견주어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비유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부자께서는 자공이 자신을 아는 것이 명료하고, 또 자기를 굽히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옳다 여기시고, 또한 거듭 허여하신 것이다. 자공이 이 때문에 끝내 성(性)과 천도(天道)에 관한 말씀을 듣게 되었고(5-12 주 참조), 단지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 경지에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與, 許也. ○ 胡氏曰: “子貢方人, 夫子旣語以不暇, 又問其與回孰愈, 以觀其自知之如何. 聞一知十, 上知之資, 生知之亞也. 聞一知二, 中人以上之資, 學而知之之才也. 子貢平日以己方回, 見其不可企及, 故喩之如此.夫子以其自知之明, 而又不難於自屈, 故旣然之, 又重許之. 此其所以終聞性與天道, 不特聞一知二而已也.”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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