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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공야장 제오 - 24. 좌구명이 부끄럽다고 여긴 사람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공야장 제오 - 24. 좌구명이 부끄럽다고 여긴 사람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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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좌구명이 부끄럽다고 여긴 사람

 

 

5-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번지르르한 말, 꾸민 얼굴빛, 지나친 공손, 이것들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 싫어하는 감정을 감추고 그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
5-24. 子曰: “巧言, 令色, 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14에서 24까지, 21 한 장을 예외로 한다면, 모두 공자의 제자 이외의 인물에 대한 공자의 평어이다. 그 중에서 14~ 20장의 일곱 장은 공자보다 앞선 동시대 열국의 대부에 대한 인물평이라는 의미맥락에서는 매우 동질적이다. 그런데 21장부터 24장까지는 각 장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21장은 노 나라에 있는 제자들을 일반적으로 평한 것이며, 22장은 600년 전의 청렴한 현자를, 23장은 같은 동네에 사는 정직하기로 유명했던 한 사람을, 24장은 전설적인 현인을 평한 것이다. 그런데 이 24장은 다음에 오는 세 장과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독특한 성격을 과시하고 있다.

 

본 장은 좌구명(左丘明)이라는 공자 이전에 존했던 어떤 현인(賢人)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그 현인(賢人)의 태도를 빌어 공자 자신의 삶의 자세를 고백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자의 실존적 고백인 26, 27 마지막 두 장의 서장(序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좌구명(左丘明)논어에서도 여기 단 한 번 언급이 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전기적 자료는 구할 수가 없다. 우리가 보통 좌구명(左丘明)하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라고 하는 희대의 역사서의 저자로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만, 좌씨전의 저자로서의 좌구명(左丘明)과 여기 언급되고 있는 좌구명(左丘明)이 동일인(同人)일 수는 없다. 좌씨전춘추(春秋)라는 경서(經書)에 대한 후대의 전()이며, 그 전()은 대강 전국(戰國)의 중엽(中葉), BC 320년 전후에 성립한 것이다. 그 저자는 위문후(魏文侯)를 섬긴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의 춘추학의 학통을 이은 위()나라의 사관(史官) 좌씨모(左氏某)로 추정되고 있다나는 좌전학(左傳學)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는 카마타씨의 고증을 따랐다. 鎌田正, 左傳成立展開, 東京: 大修館書店, 1963.

 

이릉(李陵)의 화()를 입어 사나이로서 참기 어려운 치욕의 궁형을 당해야만 했던 태사공! 그는 천세의 한을 머금고 부수류체(俯首流涕)하며 사기(史記)를 짓는다. 위대한 서물(書物)들이 모두 그러한 발분(發憤)의 비장한 심정에서 나온 것임을 논()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붓을 휘두른다.

 

 

옛날에 서백은 유리에 억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역(周易)을 추연하였고, 공자는 진ㆍ채에서 액난을 겪고 나서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유배된 후에 이소를 지었으며, 좌구는 실명한 후에 국어(國語)를 지었고, 손자는 다리를 잘린 후에 병법을 논찬하였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으로 좌천된 후에 세상에 여람을 전하였으며; ……

昔西伯拘羑里, 演周易; 孔子戹陳, 作春秋; 屈原放逐, 著離騷; 左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脚, 而論兵法; 不韋遷蜀, 世傳呂覽; ……

 

 

여기에 나오는 좌구실명(左丘失明)’이라는 표현을 정확히 이해하면 현존하는 역사서인 국어(國語)의 저자는 좌구(左丘)였으며, 그는 눈을 잃어버린(失明) 후에 국어(國語)를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명()은 이름 석 자의 한 부분이 아니라, 눈을 잃어버렸다는 사태의 기술의 한 요소이다. 따라서 좌구(左丘)와 좌구명(左丘明)이 동일인인지도 알 수가 없다. 국어(國語)저자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저자가 동일인(同一人)이라는 가설도 엄밀히 분석해보면 성립하기 어렵다. 좌구명(左丘明)에서 그 성()이 좌() 단자인지, (左丘)라는 성인지도 확정짓기 어렵다.

 

아마도 좌씨전의 저자는 단지 좌씨라는 성()만으로 호칭되어 전해 내려오던 사람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좌씨(左氏)’를 보다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싶어서 공자(孔子)가 지칭한 좌구명(左丘明)’이라는 이름이 마침 논어에 보이므로 그 이름을 부회하여 부르게 되었고, 그것을 사마천이 그냥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그리고 후에 유흠(劉歆)은 사마천의 설이 확정적인 정설인 것처럼 고정화시켰다. 이것은 모두 분서(焚書) 이후에 금()ㆍ고문(古文)의 복원과 정에서 생겨난 억측들이다. 이 장에 나오는 좌구명(左丘明)은 현명한 노나라의 대부(大夫)였다고도 하나 그 구체적인 정황은 알 길이 없다. 공자 이전에 노() 나라에 실존했던 현자(賢者)로서 공자의 마음 속 깊은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교언(巧言)ㆍ영색(令色)’은 이미 학이(學而)3에서 나왔던 표현이다. ‘주공(足恭)’은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다리 움직임을 지나치게 겸손하게 하는 작태의 형용이요, 하나는 그냥 추상적으로 지나치게 공손함을 말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족공이라 발음하고 후자의 경우는 주공이라 발음한다. 지나칠 주()로 읽는다주희의 반절도 장수(將樹) 반이고 율곡언해에도 주공으로 되어있다. 나는 신주의 해석에 따라 주공으로 읽는다. 지나친 공손이나 겸손은 모두 교언ㆍ영색과 상통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통된 것은 허위의식이다. 인간세에서 겸손이란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겸손도 내면적 겸손이 있고 외면적 겸손이 있다. 겉으로 겸손하고 공손하게 보이는 인간이 그 내면은 자만과 교만과 무시로 가득 차 있을 수가 있고, 겉으로 좀 무례하게 보이는 인간일지라도 오히려 소박하고 겸허한 성품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에 있는 것이지 그가 얼마나 공손한 외면적 작태를 일삼느냐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겸손의 본질은 개방(open-mindedness)에 있다. 지나친 겸손은 항상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허위와 연계되어 있다. 불쾌(不快)할 때는 불쾌(不快)를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요, 항거해야 할 때는 항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요, 자신감을 과시해야 할 자리에서는 자신있게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 장의 매력은 좌구명치지(左丘明恥之), 구역치지(丘亦恥之)’라는 표현에 있다. 좌구명이란 사람은 보통은 공자의 선학(先學)으로 상정되는 것이지만 설사 그가 공자의 후학(後學)이라 해도 이 문장에는 더욱 그윽한 깊이가 생겨난다. ()라는 일인칭은 매우 인간적이다.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긴 것을 나 또한 부 끄럽게 여긴다는 것은, 그 부끄러움의 강도를 배가시키는 표현이다. 좌구명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부끄럽게 여긴 것을 내가 또다시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함으로써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짓이라는 것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공자의 어투에는 범접키 어려운 역사의 하중과 진실한 권위가 느껴진다. 논어를 읽으면서 너무도 내 마음에 와닿는 것은 다음의 구절에 담긴 진실이다.

 

匿怨而友其人,

 

여기 원망()을 숨긴다()는 표현은, 상대방이 정말 사귀기 싫은 저열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싫다고 하는 감정을 숨기면서 그 인간과 벗하는 위선을 말한 것이다. 인간이 살다보면 내가 싫어하는 인간과 사귀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도 많다. 그러나 나 도올은 일평생을 통하여 내가 참으로 싫어하는 인간과 억지로 단 일초의 시간도 같이 한 적이 없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의 환경을 천혜(天惠)라고 생각한다. 배움과 물음 속에서만 살았고, 집 안이 부족함이 없어 구구히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할 삶의 환경이 부재했다. 대학시절에도 벗할 생각이 없는 동료들과 단 일초도 다방에 앉아 시간을 허비한 적이 없다. 그런 시간이 있다면 나는 홀로 독서를 즐겼다. 폭넓은 인간관계에서 복이 굴러들어온다는 통념은 공자가 말한 적이 없다. 그런 것은 유교가 아니다. 호오를 불문하고 인간관계를 넓게만 유지하려는 것은 허위요 위선이요 자기기만이다. 세상의 선악 판단이 흐려지고 마는 것이다.

 

싫어하는 감정을 숨기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구() 또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노라. 그것을 구()가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도올 또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노라.

 

 

은 장수(將樹) 반이다. ()’는 지나치다는 뜻이다. 정이천은 말하였다: “좌구명(左丘明)은 예로부터 그 명성이 세간에 들렸던 인물이다.”

, 將樹反. , 過也. 程子曰: “左丘明, 古之聞人也.”

 

사량좌는 말하였다: “여기 두 가지의 부끄러움은 담을 뚫고 담을 뛰어넘어 도둑질하는 것보다 더 부끄러워할 만한 짓거리들이다. 좌구명이 이를 부끄럽게 여겼다 하니, 그가 마음을 수양한 경지를 알 만하다. 부자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기노라[구역치지(丘亦恥之)]’라 하셨으니 나를 몰래 노팽(老彭)에게 견주노라[竊比老彭, 7-1]’하신 뜻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배우는 자들을 깊이 경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를 살펴서 직()으로써 마음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謝氏曰: “二者之可恥, 有甚於穿窬也. 左丘明恥之, 其所養可知矣. 夫子自言 丘亦恥之’, 蓋竊比老彭之意. 又以深戒學者, 使察乎此而立心以直也.”

 

 

사량좌가 이 장에도, 앞 장에서 얘기하고 있는 미생고와 관련된 직() 의 주제가 연속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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