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교와 유일신교
6명의 황제가 1명의 황제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타협이 이루어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현명한 술책이었다. 6명의 황제란 ‘다신교’ 를 의미한다. 1명의 황제란 ‘일신교’를 의미한다. 로마의 황제는 옥타비아누스 이래로 신성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3세기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방불케하는 혼란기를 거치면서 황제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설사 콘스탄티누스가 무력으로 내란을 제압하고 독존의 1인 황제가 된다 해도 그 권위가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로마는 어디까지나 공화제를 거친 시민사회였기때문에 황제등극의 권위준거가 로마시민과 로마원로원에 있었다. 황제 스스로 자기에게 권위를 부여할 수 없었다. 공화정시대에는 최고의 권력자인 집정관을 시민집회에서 선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로마를 건설해보려는 야심 찬 콘스탄티누스가 자기의 불가침의 신성한 1인 절대권력을 새롭게 보장하기 위해서 그러한 자기 정치권력구조와 유사한 이론적 구조를 가지는 종교의 백업이 필요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모든 이방의 종교들을 검토해 보아도 기독교 만한 후보가 없었다. 기독교의 신은 유일하고,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며, 독재적이고, 일방적이고, 구속사적이다. 로마의 신들은 많고, 친근하며, 인간적이며, 삶에 즐거움을 주며, 쌍방적이고, 민주적이고, 동반적이다. 희랍-로마의 신들은 ‘인간의 구원’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지 않는다. 구원은 인간이 이성의 외침에 따라 스스로 행하는 것이며, 신들은 그 과정을 돕는 친구들일 뿐이다. 로마의 신탁은 절대적인 명령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선남선녀들이 동네 어귀 서낭당에서 비는 지역신들의 흠향에 대한 반응일 뿐이었다. 인문주의가 만개한 자신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전성시기에는 여유로운 로마인들은 유대이즘전통의 유일신사상은 신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억지춘향의 미신이라고 간주했다. 배타적인 그들의 독선이 매우 촌스럽고 유치하게 보였다. 그러나 쇠잔기에 들어선 허약한 로마인들에게 강력하고도 배타적인 유일신사상은 희망이고 위안이고 방황할 필요없는 절대적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허약해진 사람들에게는 초기기독교가 제공하는 공동체적 소속감은 위대한 위로였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크리스챤조직을 자기의 절대권력의 기반으로 교묘하게 활용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로마제국에 산재한 기독교교구 주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능한 모든 재정적 특권을 주었다. 최초의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를 쓴 카이사레아의 주교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4세기 콘스탄티누스와 동시대 활약)는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이후 기독교에 개종하는 사람들은 대개 ‘신앙보다는 이권 때문’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티누스의 통치야말로 신의 섭리의 실현이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야말로 주님의 제13 사도라고 극구의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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