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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3장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까지 - 아타나시우스의 로마유학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3장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까지 - 아타나시우스의 로마유학

건방진방랑자 2022. 3. 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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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의 로마유학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는 동방의 주교였지만, 서방 로마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외로운 사상가였다. 그는 그의 생애에서 제2차로 박해를 받았을 때, 아리우스파가 동방의 지배자인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의 지지를 얻어 아타나시우스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했을 때, 아타나시우스는 현명하게도 로마로 유학을 했다. 당시 서방 로마는 콘스탄티우스의 지배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타나시우스는 망명생활을 새로운 지지기반의 획득으로 역이용했다.

 

아타나시우스는 로마의 주교(교황) 율리우스 1(Julius )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이탈리아의 주교 50명이 모인 지역 종교회의에서는 그의 무죄를 만장일치로 선언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원래 희랍어에 정통한 인물이었으나, 이 기회를 활용하여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서방 성직자들과 우아한 담론을 직접 벌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서방 로마의 황제인 콘스탄스(Constans)를 카푸아, 로디, 밀라노, 베로나, 파두아, 아퀼레이아, 트레베스 등지에서 직접 알현할 기회를 얻었고, 콘스탄스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획득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콘스탄스 황제로 하여금 가톨릭교회가 처한 역경과 위험을 개탄하고 선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의 결정과 신앙과 영광을 본받도록 부추겼다. 이에 콘스탄스 황제는 정통파 옹호를 위하여 유럽의 군대와 재력을 동원한다는 결의를 선포하는 한편, 자기 형이며 동방의 황제인 콘스탄티우스(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관할)에게 간결한 최후통첩을 보내 아타나시우스를 즉각 복직시키지 않으면 자신이 친히 육해군을 이끌고 가서 그를 직접 알렉산드리아 주교 자리에 앉히겠다고 통보했다. 알렉산드리아 주교 자리에 사람을 하나 복직시키기 위하여 동ㆍ서로마의 일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황제들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당시의 기독교라는 문제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종교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이미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로마 사회는 급격히 해체되어 갔고 콘스탄티누스 이전부터 시작된 병영황제시대의 전국시대적 무질서와 난맥상, 지배계급간의 무력충돌은 콘스탄티누스 1인황제시대로 접어들면서 가라앉는 듯했으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사후 다시 폭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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