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을 없애버려라
혹자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에 협력하는 파코미우스와 파코미우스 승려들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단적인 영지주의 문서들이 유포될 수 있었는가 하고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것은 후대의 역사적 가치관을 가지고 초기전승사의 실상을 왜곡하는 매우 기초적인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사실 당시에 이미 누누이 강조했듯이 영지주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지주의에 관하여 깊은 연구를 한 하바드 신학대학의 여류신학자 카렌 킹(Karen L. King)의 말대로 ‘영지주의’라는 것은 결코 실체화될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수사학적 구성물이었을 뿐이다. 영지주의라는 술어 자체가 ‘이단’을 규정하기 위하여 만든 수사학적 허구가 하나의 실제적 현상인 것처럼 그 나름대로 존재화(실체화)되어버린 것이다(Karen L, King, What is Gonosticism? 189).
다시 말해서 파코미우스의 승려들에게는 당시 오직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수도’라는 삶의 과제만 있었고 사상적인 통제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도 이 파코미우스 승려들과 함께 은둔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아리아니즘의 배면에는 광막한, 소위 영지주의로 규정된 헬라ㆍ로마ㆍ이집트의 창조적인 사상의 홍류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홍류를 방치하면 기독교는 일정한 방향이 없이 표류하리라는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파코미우스의 파바우 수도원에는 방대한 콥틱기독교 파피루스 문헌들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이 있었으며 이 문헌들은 공동기도나 공동챈팅에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때는 정경ㆍ외경의 구분이 없었고, 27서 성경의 기준적 개념이 없을 때였다. 물론 불교식의 대장경결집으로 말한다면 모두 당연히 경장(經藏) 속에 편집되어야 할 수트라(sūtra, 正經, 修多羅)들이었다. 아타나시우스의 대주교서한이 체노보스키온지역 파바우 수도원에도 전달되었다. AD 367년 3월말이었다. “외경적 텍스트들은 이단자들의 날조에 불과하다. 사도의 이름을 팔기도 하고, 마치 고문서인 것처럼 집필시기를 위장하기도 하여 순박한 영혼들을 타락시킨다. 이제 27서 이외의 문헌은 읽어서도 아니 되며 소장되어서도 아니 된다. 이제 정경과 외경을 확연히 구분하는 신중한 분별심을 가지고 외경은 없애버려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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