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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번뇌가 끊어지니 마음이 시원해지다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번뇌가 끊어지니 마음이 시원해지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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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끊어지니 마음이 시원해지다

 

 

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ā samyak-saṃbodhi)를 증득하고 카시 사르나트에 있는 다섯 비구들을 향해 떠나면서 싯달타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이것은 참으로 내가 접한 한 인간의 지적 자신감의 표현으로서는 극상의 포효다최봉수 옮김, 마하박가』 Ⅰ, pp.556. 南傳大藏經3-15. T. W. Rhys Davids and Hermann Oldenberg, The Mahāvagga, in The Sacred Books of the East, edited by F. Max Müller (Delhi: Motilal Banarsidass, 1974), Vol. XIII, p.91. 상기의 세 번역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이 세존의 말은, 그가 가야와 우루벨라 마을 사이에 있는 큰길을 가고 있을 때, 아지바카(Ājīvalka)교파의 우파카(Upaka)라는 사람이 세존의 깨끗하고 밝은 모습을 보고 그대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게송으로 답하는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I have overcome all foes;

모든 것을 알았다.

I am all-wise;

나는 일체의 제법에 물들여지지 않았고

I am free from stains in every way;

모든 것을 버렸다.

I have left everything;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and have obtained emancipation by the destruction of desire.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스승으로 칭하리오!

Having myself gained knowledge,

whom should I call my master?

나에겐 스승이 없다.

I have no teacher;

나와 비견할 자도 없다.

no one is equal to me;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간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in the world of men and of gods no being is like me.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I am the holy One in this world,

나는 이 세간에서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로다.

 

나는 무상(無上)의 스승이다.

I am the highest teacher,

나는 홀로 모든 것을 바르게 깨달아

I alone am the absolute Sambuddha;

청량하고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다.

I have gained coolness (by the extinction of all passion)

and have obtained Nirvāna.

나는 법륜을 굴리기 위해 카시의 도성으로 간다.

To found the Kingdom of Truth

I go to the city of the Kāsīs (Benares);

어두운 이 세상에 불멸의 북을 울리기 위해.

I will beat the drum of the Immortal in the darkness of this world.

 

 

싯달타의 오도송(悟道頌)으로 꼽히는 이 마하박가의 게송에서도 제일 먼저 등장하는 말은,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다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깨달음의 가장 원초적인 사태는 모든 것을 알았다이다. 그렇다면 싯달타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안 것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 오도에 등장하는 몇 마디를 우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짧은 오도송 속에도 우리가 여태까지 논의해온 많은 테마들이 함축되어 있다. 여기에도 해탈(解脫, mokṣa)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해탈은 갈애가 다한 해탈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고 있다. 즉 해탈이란 여기서 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갈애가 다해버린[空竭, 공갈] 마음의 상태이다. 방광대장엄경에는 오도송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方廣大莊嚴經卷第九, 成正覺品第二十二, 大正3-596..

 

煩惱悉已斷 諸漏皆空竭

번뇌가 모두 끊어졌도다! 모든 잡념이 사라졌도다!

更不復受生 是名盡苦際

괴로운 생존을 다시 반복치 않으리, 이를 일러 고가 다했다 하노라.

 

 

여기 제3구인 갱불부수생’(更不復受生)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해탈(解脫, mokṣa)의 원래적 의미인 윤회적 삶으로부터의 벗이남이라는 맥락을 확인할 수 있지만, 역시 보다 근원적 의미는 번뇌가 끊어지고 잡념(, )()는 범어 ‘āsrava’의 의역이다. 여기서 누는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누는 본래 流入의 의미였다. 번뇌나 업이나 고난이 몸 속으로 새어들어 온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이 누는 새어 나간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번뇌는 눈ㆍ코ㆍ입ㆍ귀 따위의 6근으로 밤낮 새어나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우리 마음을 흘러 달아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누를 더 이상 흐를 것이 없는 상태로 비우는 것을 누진(漏盡, āsrava-kṣaya)이라 했고 공갈(空竭)이라 했다. 나는 여기서 제1구의 번뇌와 중복되기 때문에 그냥 잡념이라는 표현을 차용하였다.이 사라진 마음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열반(涅槃, nirvāṇa)이라는 말은 청량하고 적정한 경지라는 표현으로 드러나 있다. 동대문 밖에 청량리’(淸凉里)라는 동리 이름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청량리라는 이름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예로부터 그곳에 얼음공장이 있었나? 청량음료를 많이 팔았나? 아니면 그 동네가 특별히 시원한 바람이 불었나? 경북 봉화, 경남 합천 등지에 청량사’(淸凉寺)라는 고찰이 있듯이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청량산에 있는 사찰,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원효창건설과 의상창건설이 있다. 경상도 합천군 가야면 황산리 매화산 기슭에 있는 사찰.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 삼국사기최치원이 즐겨 놀았다는 기록이 있음., 청량이란 본시 불교용어로서, 번뇌의 불길이 꺼져서 마음이 시원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번뇌의 불길이 다 꺼져서 시원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 즉 청량한 상태를 달다는 열반이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생각할 때, 흔히 그 교리의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삼법인(三法印)이니 사법인(四法印)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이다. 그렇다면 불타의 보리수나무 밑의 성도의 내용은 이 세 법인으로 압축되는 것일까?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열반적정(涅槃寂靜) 이 세 법인이면 붓다의 성도의 내용은 다 완결되는 것일까? 무엄하게도 나 도올은, 이러한 도식적 이해야말로 불교의 이해를 망치는 근원이요, 삼법인은 결코 근본불교의 정신을 바르게 전달하는 방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망언인가?

 

 

 간지스 강에 떠내려 가는 삼법인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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