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부록 7.1. 중관학을 토착화하여 탄생한 쫑카파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부록 7.1. 중관학을 토착화하여 탄생한 쫑카파

건방진방랑자 2022. 3. 16. 12:04
728x90
반응형

부록 7.1. 중관학을 토착화하여 탄생한 쫑카파

 

 

쫑카파(Tsong-kha-pa, 1357~1419)는 티벹 4대종파의 하나인 겔룩파의 개종자이다. 그가 개종한 겔룩파 계보에서 달라이라마제도가 확립되었다. 달라이라마가 티벹의 정치적ㆍ종교적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치가 확립됨에 따라 쫑카파는 티벹 최대의 사상가로서 추앙되었고 그 부동의 권위가 확보되었다.

 

그는 중국역사로 이야기하면 원나라가 쇠망하고 명나라가 새왕조의 터전을 닦아가고 있던 전환기의 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포은 정몽주나 삼봉 정도전과 대략 동시대의 사람이다. 보조 지눌에 비하면 2세기 후의 인물이다. 그러니까 티벹불교의 역사는 연대적으로 같은 시기에 발전한 우리나라 조선조의 유교역사와 비교되면 그 문화사적 이해가 용이하다.

 

쫑카파 이후 달라이라마제도와 더불어 발전한 티벹불교 5백여 년의 역사는 용수(龍樹) 중심의 중관학(中觀學)의 역사라고 한다면, 조선왕조 5백 년의 신유학의 역사는 주자(朱子) 중심의 주자학(朱子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티벹은 용수학(龍樹學)을 중심으로, 조선은 주자학(朱子學)을 중심으로 그 문명의 윤리적 핵을 형성시켰던 것이다. 용수와 쫑카파의 관계는, 주자(朱子)이퇴계(李退溪)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퇴계가 그러하듯이 쫑카파도 결코 독창적인 사상가라 하기는 어렵다. 그는 중관학의 집대성자이며 그것을 티벹의 풍토에 알맞게 재해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학문의 깊이는 경이로운 수준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에 전달된 용수학은 용수의 중론(中論)십이문론(十二門論), 데바(提婆, Āryadeva)백론(百論)(Śataśāstra)이라는 삼론(三論)의 극히 제한된 범위에 그친 것이며 그 내용도 기존의 입론(立論)을 파()하는 데 그치는 준대승적인 소극적 부정론(Negativism)이었지만, 티벹의 쫑카파에게 전달된 용수학은 대승불교와 밀교 전체를 포괄하고도 남을 매우 다양한 인도논사들의 논의가 모두 포섭된, 그리고 유식학의 문제의식을 극복한 중관학(中觀學)이었다. 쫑카파는 용수의 중관학을 중심으로, 소승의 율()과 대승의 이론, 그리고 밀교적 실천을 통합하고, 미륵의 미래불사상을 대중에 보급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불적 사상을 페스티발화시켜 성ㆍ속의 융합을 꾀하고, 간덴(dGa-' ldan)사원, 데풍사원, 세라사원을 건립하였다.

 

 

 

 

인용

목차

본문

금강경

반야심경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