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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한글역주, 제52장 - 이스라엘의 스물넷 예언자는 죽은 자들이다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52장 - 이스라엘의 스물넷 예언자는 죽은 자들이다

건방진방랑자 2023. 3. 2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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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스물넷 예언자는 죽은 자들이다

 

 

52

1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가로되, “스물넷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서 예언하였나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당신을 지목하여 말하였나이다.” 2그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면전에 있는 살아있는 자를 보지 아니 하고, 죽은 자들만을 이야기 하는구나!”

1His followers said to him, “Twenty-four prophets have spoken in Israel, and they all spoke of you.” 2He said to them, “You have disregarded the living one who is in your presence and have spoken of the dead.”

 

 

나 도올이 인간적으로 매우 사랑하는 도마의 로기온이다. 여기 스물넷

예언자들(twenty-four prophets)’에스드라스 제2(2 Esdras)(14:45)에는 구약 전체의 문헌을 ‘24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여기 스물넷 예언자들이란 24서의 24주인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구약의 책들을 세는 방식이 다르다. 토라(모세 오경) 5, 네비임(전예언서+후예언서) 8, 케투빔(성문서) 11, 도합 24. 이들이 예언한 내용이 모두 예수 당신을 메시아로 지목하고 말하고 있다고 도반들이 생각하여 예수에게 여쭈운 것이다. 도반들은 구약의 예언의 권위에 의하여 예수의 메시아됨의 확고한 근거가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의 대답은 바로 이러한 구성(construction)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파기하는 것이다.

 

나는 한때 한국기독교계에 구약은 기독교인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명제를 선포함으로써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단지 내가 한국신학대학에 다닐 때, 나의 선생님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씀해주신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토록 거센 반대의 반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구약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헌 약속이다. 물론 유대인들은 자신의 성경을 히브리 바이블이라고 말하지 구약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구약이라는 말은 신약이 생겨나면서부터 상대적으로 생겨난 말일 뿐이다. ‘구약은 엄밀하게 말해서, 유대인의 바이블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성스러운 경전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문헌일 뿐이다. 고린도후서 3:14~16에 있는 바울의 메시지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자!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날까지 구약(the old covenant)을 읽을 때에 모세가 뒤집어 쓴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그 너울은 벗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도다! 오늘날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너울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께로 돌아갈 때에는 그 너울이 벗겨지리라.

 

 

신약(新約)’이란 새로운 계약이다. 구약의 하나님인 야훼와 예수의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동일한 존재로 간주될 수 없다. ‘야훼는 어디까지나 유대인들의 민족신이다. 그것이 제아무리 유일신임을 강조해도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과의 유일한 계약을 보장하는 유일한 신일 뿐이다. 그 유일신은 기실 타 이방민족 신들과의 투쟁을 위한 절대적 가치의 뭉침이다. 유대교의 유일신론(Jewish monotheism)은 유대민족의 투쟁전략이요, 투쟁이론일 뿐이다(Monotheism, in short, was fighting doctrine. N. T.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63). 따라서 그러한 질투와 징벌의 야훼는 예수의 가슴속에 없다. 예수는 야훼를 말하지 않는다. 오직 아빠(Abba)’를 말할 뿐이다. ‘아빠는 민족신이 아닌 개체의 심층이다.

 

그러나 여기 예수의 아버지와 구약의 야훼가 동일하다고 강변을 하는 신학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용인해줄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용인해서도 아니 될 중요한 사실은 그 하나님과 새로운 사랑의 계약을 맺었다면, 이전의 율법적 헌 계약은 당연히 파기되어야 마땅하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동일한 상대와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 그 증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헌 계약서는 찢어버려야 한다. 그것은 이미 법적으로 무효가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8:7을 보라!

 

 

저 첫 계약이 하자가 없었더라면 둘째번 계약을 요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느니라.

 

 

당연히 신약을 맺었으면 구약은 파기되어야 한다. 단지 구약을 파기한다고 해서 구약이라는 소중한 문헌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약의 이해를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구약이라는 골동품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구약의 배경이 없는 신약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구약은 신약에 대한 레퍼런스일 뿐이며 결코 기독자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구약을 신앙의 대상으로서 강요하는 목사는 신약의 파기자이며, 기독교를 배교하는 불한당일 뿐이다. 어찌 그렇게 대원칙을 위배하는 모리배를 기독교의 목사라 말할 수 있으리오?

 

나의 이러한 논의를 가장 강렬하게 뒷받침하는 예수의 목소리가 바로 본 장에 실려있는 것이다. 예수는 말한다:

 

 

나는 과거 스물넷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서 나를 지목하여 메시아라고 했다고 해서 내가 메시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죽은 자들이다. 나는 살아있는 자이다. 어찌하여 너희는 너희 면전에 우뚝 서있는 살아있는 자를 무시하고 죽은 자들의 예언에 의거하여 나를 쳐다보려 하느뇨? 나는 살아있는 자이니라!

 

 

이 예수의 말씀은 어찌하여 너희는 현재 내가 말하는 것으로부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느냐?’(Th.43)는 책망이나, ‘죽은 자의 안식을 운운하는 도반들에게 너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미 지금 여기에 와 있다’(Th.51)라는 책망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여기 예수는 서장에서 사용된 살아있는 예수(the living Jesus)’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있는 자(the living one)’라는 표현으로 대치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도마복음 편집자의 세심한 주의가 숨겨져 있다고 사료된다. 맥락적으로 너무 강하게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서 지목하면 예수도 또다시 과거의 예언자처럼 죽은 인물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 예수는 지금 이스라엘 성경의 문헌화된 예언을 거부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죽은 문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예수의 육성을 우리(독자들)의 실존의 면전에서 전하는 영원히 살아있는 자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살아있는 자살아있는 소리를 편집자는 구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너희 면전에 있는 살아있는 자를 보라는 사상은 이미 AD 50년 전후에 있었던 사상흐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후에 요한복음에도 일부 반영되었을 것이다(5:37~40; 8:52~53).

 

풍류신학’ ‘3교회등을 말하며 우리의 토착적 신학을 추구하는 소금(素琴) 유동식(柳東植) 선생의 사상도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삼태극적 통전(統全. 4:6)을 말하고 있다. 영성을 매개로 인간과 예수와 하나님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영원히 살아있는 예수를 나의 실존의 본래성과 동일시할 때만이 예수는 우리 삶의 의미체가 된다. 예수는 결코 구약의 예언자들이 말하는 메시아가 아니다. 그는 메시아됨을 철저히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그의 아들됨의 순결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이 교회에서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27서 정경목록을 선포하는 부활절 메시지를 낭독했다. 이곳에는 마가의 무덤을 비롯하여 55대까지의 콥틱교황들이 묻힌 무덤이 들어 있다. 아타나시우스20대 교황이다. 이들은 오히려 로마 가톨릭교회야말로 사도의 정통성에서 빗나간 방계라고 말한다. [임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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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제상관도표

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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