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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하라, 송경운전과 17세기 전주 재현 - 4. 결론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김하라, 송경운전과 17세기 전주 재현 - 4. 결론

건방진방랑자 2022. 7. 1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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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결론

 

 

이상과 같이, 17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활동한 한 악사의 생애를 추적해 보았다. 73년간 지속된 송경운의 삶은 대략 158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파 연주에 오롯이 바쳐진 그의 시간은 1627정묘호란을 기점으로 질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는 그가 속한 공간이 달라진 점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송경운은 50세 무렵까지는 서울의 화려한 잔치마다 불려 다니며 최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렇게 분주하고 몸값 높은 연예인으로 살아가던 송경운이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는 점은, 근거지를 전주로 바꾼 이후 그의 삶에서 충일하게 배어나는 고요한 기쁨과 대비했을 때 비교적 선명해진다. 이런 질적 변화를 대비하는 이기발의 서술방식에는, 송경운이 전주로 내려온 것이 이 악사에게 큰 행운이었다는 판단이 개입해 있다.

 

이기발은 송경운이 악사로 초빙된 서울의 잔치 자리가 보여주는 흥성스러움과 거기 내포된 공허함, 송경운이 전주로 이주하여 얻은 도성 서쪽 집의 내밀한 아름다움, 평범한 청중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송경운의 모습, 송경운이 이승을 떠날 때의 달빛과 비파 소리 등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제시함으로써, 음악을 통해 자기완성에 이른 한 선인(善人)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그의 생생한 장면 묘사를 따라 가노라면 이기발이 언젠가 서울의 화려한 잔치 자리의 한 참석자였을 것이고, 또 전주 도성 서쪽 집 정원에서 비파를 연주하는 송경운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컨대 이기발은 송경운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을 터이며 이와 같은 입전인물과의 인연과 만남은 송경운전의 문학적 성취와도 관련되어 있다.

 

송경운전의 특별한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작품에 입전인물의 형상이 그 자체로 잘 재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 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는 점인데, 이는 작가와 입전인물 사이의 두터운 인연과 교감에 기인한다. 이에 이 작품을 통해 작가 이기발의 내면까지도 엿볼 여지를 갖게 된다.

 

이기발은 송경운과의 해후를 재현한 장면에서 인격적인 완성에 다가간 음 악가의 만년을 아름답게 그려냈으며, 아울러 중앙관료로서 치열한 삶을 살다가 병자호란 이후 전주로 귀향하여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입전인물과 은근히 오버랩했다. 이처럼 한 악사를 입전하며 사대부 작가 이 기발은 선한 이웃인 송경운의 존재에 힘입어 전주에서의 삶을 초심대로 잘 영위해 나갈 전망을 갖게 되지 않았나 한다.

 

 

참고문헌

 

이기발(李起浡), 서귀유고(西歸遺稿)

박지원(朴趾源), 연암집(燕巖集)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김진영 외, 한국시조감상, 보고사, 2012.

김형술, 진아’(盡我) 정신으로 본 양사룡전(梁四龍傳)의 입전의식, 국문학연구39, 2019.

노동은, 한국음악과 장인문화, 한국학연구8,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 소, 1996.

박길남, 칠실(漆室) 이덕일(李德一)<우국가>(憂國歌) 28장에 나타난 현실 비판의식, 시조학논총15, 1999.

박희병, 조선후기 예술가의 문학적 초상, 한국고전인물전연구, 한길사, 1992.

성당제, 정묘호란시(丁卯胡亂時) 소현분조(昭顯分朝)와 세자(世子)의 역할 - 소현분조일기(昭顯分朝日記)를 중심으로, 규장각31, 2007.

송방송, 조선후기 장악원 관련 인물 열전-악장등록, 장악원악원이력서, 전악선생안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42, 2009.

송지원, 한국음악의 거장들, 태학사, 2012.

안세현 편역, , 불후로 남다, 한국고전번역원, 2018.

이홍두, 군공논상(軍功論賞)을 통한 조선조 천인의 신분변동-공사천(公私賤)의 신분상승을 중심으로-, 동국사학29, 1995.

임형택 편역, 한문서사의 영토1, 태학사, 2012.

조해숙, 시조 한역의 사적 전개양상과 그 시조사적 의미, 한국시가연구15, 2004.

홍성덕 외 역, 국역 전주부사, 전주시 전주부사번역편찬위원회, 2014.

 

 

Abstracts

 

“Song Kyoeng-un's biography” of Yi Ki-bal and the Representation of 17th Century JeonjuSino-Korean Literature Class with Historical Geography

 

Kim, Hara

 

“Song Kyoeng-un's biography” is a Sino-Korean prose of Yi Ki-bal’s. Song Kyoeng-un, the protagonist of this work is a famous lute player of the 17th century Joseon. He is a well-known figure in Korean music and literature history.

Yi Ki-bal is a literary man of gentry class who was born and raised in Jeonju. He started his central bureaucracy career in Seoul since 1625, in his mid-20s. He left Seoul after 1636, the Qing invasion of Joseon, and spent his life in his hometown.

Song Kyoeng-un was born as a slave of Yi Dam who was a member of the royal clan lived in mid-1580 of Seoul. Song was a lute player in Seoul in his mid-50s and enjoyed great fame and escaped from slavery. But he moved to Jeonju after the Later Jin invasion of Joseon in 1627 and spent the rest of his life at the age of 73. In this paper, Yi Ki-bal's brother was identified as the son-in-law of Yi dam and used as the link between the writer and the protagonist.

Yi Ki-bal was acquainted with the lute player's reputation while in

Seoul, and after returning to Jeonju, he was able to meet and interact with Song and observe the beautiful and full old age of this artist. The names of Jeonju's mountains and rivers mentioned in this prose can prove Song's residence and give his narrative a concrete background.

 

Key words : “Song Kyoeng-un's biography” 宋慶雲傳 , Song Kyoeng- un宋慶雲, Yi Ki-bal李起浡, the castle town of Jeonju全州城, national musician樂師

 

 

이 논문은 20191022일에 투고되었으며, 20191118일에 심사 완료되어 20191120일에 게재가 확정되었음.

 

 

 

 

인용

목차 / 원문

1. 송경운전(宋慶雲傳), 선한 음악가 송경운의 전기

2. 악사(樂師) 송경운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

(1) 임진왜란(1592)과 정묘호란(1627)을 통과하며

(2) 정묘호란을 계기로 달라진 삶의 공간: 서울과 전주

3. 전주에서 다시 만난 송경운과 이기발(李起浡)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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