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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한문학에 나타난 이속의 수용 양상 - 1. 문제의 제기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김영주, 한문학에 나타난 이속의 수용 양상 - 1. 문제의 제기

건방진방랑자 2022. 10. 2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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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학에 나타난 이속(俚俗) 수용 양상

속언(俗諺)을 중심으로

 

김영주(金英珠)

*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부교수 / 전자우편 : kyjkyj333@hanmail.net

 

 

국문초록

 

 

한문학에서의 이속(俚俗)의 수용 여부는 특정한 시기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작가 개인의 문학관 내지 창작관의 영향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 비리하고 저속하다고 여겨지는 속언으로 제한하기는 하였지만, 조선 전기부터 작가들은 비리한 속언을 그들의 문학 작품 속에 수용하고 있으며 그 수용 의도 역시 실용성과 교훈성의 측면에서부터 유희적인 해학이나 조롱 그리고 문학의 효과적인 수사기교 그리고 대상을 직관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려는 변증적 연구의 자료로서도 활용하고 있다.

 

이로 볼 때, 한문학에서의 이속의 수용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한문학의 특화된 양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전시기에 걸치는 한문학의 다양한 양상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주제어 : 俚俗, 俗諺, 실용성, 교훈성, 해학, 유희, 문학, 변증

 

 

1. 문제의 제기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속문학(俗文學)’의 개념을 대아지당(大雅之堂)에 오르지 못하고 학사대부들에게 중시되지 못한 채 민간에서 유행되며 대중에 의해 애호되던 문학으로 정리하였다. 그리하여 속문학에 광범위하게 시가(詩歌)民歌民謠初期詞曲, 희곡(戱曲), 소설(小說), 강창(講唱)變文諸宮調寶卷彈詞鼓詞 등을 포함시켰다. 이것은 구어와 문언의 간극이 심각하지 않은 중국의 언어적 특성에 기반하여 구어체를 주로 활용한 원()ㆍ명대(明代)의 희곡이나 소설, 강창 등을 주로 지칭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鄭篤(1965), 中國俗文學史 (), 臺灣 商務印書館, 1~2.

 

 

 

문단에 세속이 개입되는 걸 꺼려하는 풍조

 

우리나라는 민담, 전설, 설화, 속요, 속언, 속담 등을 한문으로 기록하였지만 그것들은 당대의 가치관에 근거한 선별의 과정을 거쳤다. 우리의 한문학은 그 형식이 그러하였듯이 내용면에서도 비교적 보수적이었고 폐쇄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초의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는 신라 때에 수사지업(修辭之業)이 생겼고 고려 말에 의리지학(義理之學)이 등장하였으며, 조선조의 홍유석학(鴻儒碩學)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고서야 비로소 의리(義理)로 글을 지어 학문과 문장이 일치하는 문장이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견지에서 수사나 의리의 일방에 경도되는 창작 경향을 비판하여 문장의 화려함을 추구하면 내실이 부족해지고 훈고(訓詁)와 어록(語錄)에 집중하면 글이 되지 못하여 마침내 서로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고 비판하였다金允植, 雲養集卷10, 素山遺稿序, 395. 我東人文之闢, 才千餘年耳. 修辭之業, 始於羅季, 義理之學, 昉於麗末. 至于本朝, 聲明休彰, 鴻碩相望, 始以義理爲辭令, 學問文章粹然出于一道. 若專治詞章者, 雖工不齒也. 及其弊也, 尙文辭者, 長於雕繪紛澤而實不掩華, 主學問者習於訓詁 語錄而言之不文, 互相訾謷, 分爲二道.. 이와 같이 20세기까지도 한문을 매체로 하는 대다수의 문인지식인들의 문학에서는 여전히 도리(道理)와 문사(文辭)의 관계가 관건이었으며 ()’의 수용은 어려운 일이었다.

 

정조 때의 시서화(詩書畵)의 삼절(三絶)로 불리던 강세황(姜世晃, 1713~1791)도 대중적인 유행에 대해서는 몹시 천박한 일 즉 속된 것으로 여겼다. 그는 세속적인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산수를 좋아하는 벽()보다 더하다고 할 정도로 세속적으로 전락한 산수유람의 실태를 비난하였다姜世晃, 豹菴稿卷4, 遊金剛山記, 373. 遊山是人間第一雅事, 而遊金剛, 爲第一俗惡事, 何也? 非謂金剛之不足遊也, 而金剛獨以海山仙區, 靈眞窟宅, 大擅一邦之名, 童兒婦女, 莫不自齠齔 而慣於耳而騰於舌. …… 今之販夫庸丐野婆村嫗, 踵相躡於東峽者, 彼惡知山之爲何物? …… 亦只隨衆逐隊, 以平生一遊爲能事, 向人誇張, 有若上淸都遊帝鄕, 其未曾遊者則歉愧如恐不能齒於恒人. 余之所憎厭謂之第一俗惡事者. 此也. 余於中歲, 或有人要偕遊此山者, 至於備糧費 而懇請不已者, 而余不欲一往, 盖憎俗之心, 有以勝於愛山之癖也. 사대부의 심신 수양 방법의 하나인 산수유람이 세속화, 대중화되는 것에도 증오심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던 것을 보면 문사에 ()’을 개입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우뚝하게 솟아난 홍길주의 논의

 

그러나 문장에 세속적인 것 즉 이속(俚俗) 또는 비속(鄙俗)한 것을 수용하자는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홍길주(洪吉周, 1786~1841)의 저작에서 그와 같은 견해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속담(俗談) 중에 문장에 쓰일 만한 것이 매우 많은데,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며 문장에서 시속의 비리한 풍속이나 속언, 방언들을 수용하여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절기(絶奇)한 문장을 창작하는 재료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잡저의 문장에 속담을 사용한 적이 있으며, 속담은 이해력을 증진시키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洪吉周, 睡餘瀾筆58. 東諺可入文詞者甚多, 而無用之者. 如別人荳瓣大, 別人屍不如我微恙, 先喫後鬱鬱, 笞先受爲快, 胡桃殼蔫液不肯予人之類, 俱不害爲絶奇文料. 又如別人唱歌胡不聽, 到餘音而徑議其失腔, 好歌曲罕聆方好之類, 尤大有助於應世接人之際, 不獨可入文詞而已. 縛線 針腰, 驅牛鼠穴, 余嘗取用於雜著述中, 此等說, 古人書中, 非不具有, 而悟人之易, 諺勝於古書..

 

 

 

기존 연구서의 방향

 

그렇다면 기존의 연구에서는 한문학의 이속(俚俗) 수용 양상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하였는가?

 

임형택은 이조 후기의 사회에 수용되지 못하고 영락한 지식인들이 그들의 불평한 심사를 풀어낸 것이 배해체(俳諧體), 언문풍월(諺文風月) 등의 희작화(戱作化)이며 이러한 대중적ㆍ통속적 지향은 한문학 전통에 있어 이질적ㆍ이단적인 발전이라고 분석하였다임형택(1985), 李朝末 知識人分化와 문학(文學)戱作化 傾向金笠 硏究 序說 , 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 창작과비평사, 42~52. 참조..

 

심경호는 19세기의 한시의 전개 양상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조선후기의 민요취향의 한시는 지배계급의 일부가 서민의 의식을 한시에 끌어들인 것으로 이해하였다심경호(2000), 19세기의 한시의 전개에 대한 일고찰, 한국문학연구1, 고대 민족문화연구소, 236. 참조.. 또 유희(柳僖)의 문학세계를 검토하여 문학의 소재, 정돈되지 않은 구법과 행문, 비함축적이며 비의론적인 유기(遊記) 등을 토대로 통속으로 요약하고 이를 19세기 중간 지식인들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단서로 제안하였다심경호(2009), 柳僖의 한문문학에 나타난 통속성, 고전문학연구 35, 한국고전문학회..

 

박무영은 조선후기 특히, 19세기의 한문학을 여성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저변화/속화그리고 고도의 지적 수련 경험에 바탕하는 놀이화를 나타내는 속화/고급화로 분석하였다박무영(2008), 19세기 한문학의 계열과 논점, 한국한문학연구 41..

 

 

 

조선 전시기 속어의 양상 연구의 미비

 

앞서 살펴본 문헌기록이나 기존 연구에서 조선후기 한문학에서의 이속(俚俗)의 수용 현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조선 전시기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며 그것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구체적인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고찰한 연구는 없다. 본고에서는 조선후기 한문학의 이속(俚俗) 수용 양상을 고찰하는 방법의 하나로 문장에서의 속언(俗諺)오늘날 俗談의 사전적인 개념은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言俗, 속된 이야기. 世諺俗說등이다(국립국어원(1999), 표준국어대사전). 이 가운데 학술적인 용어로는 의 개념이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조희웅의 연구에 의하면, 20세기 이전에는 속담이라는 용어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대개 을 비롯하여 과 결합한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또 한국고전번역원과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의 고전문헌 검색 기능을 이용하여 관련 어휘를 찾아본 결과를 통계적으로 정리한 것에서도 의 사용이 월등히 많았다. 그리고 에 현재의 속담개념이 일부로서 포함되기는 하였지만 오늘날과 같이 전폭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傳說俗信語또는 우리말 따위의 의미 등이 폭넓게 내재되어 있었다(조희웅(2008), 俗談 , 어문학논총vol.27, 국민대학교 어문학연구소, 1~6면 참조). 뿐만 아니라 필자가 조희웅의 조사방법을 참조하여 한국문집총간을 대상으로 東諺鄙諺俗談俗語俗言俗諺諺所謂諺曰諺有之俚言俚諺里諺常談의 사용빈도를 확인해 본 결과 계열의 사용 횟수가 가장 많았고 俗談이 사용된 경우는 30건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속담에 가까운 문장의 활용도 계열에서 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본고에서는 오늘날의 속담개념과 구분하여 전설ㆍ속어ㆍ속담ㆍ속신어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서 俗諺을 정의하여 본고에서 사용하기로 한다.) 수용에 대한 제가의 견해와 구체적인 활용의 양상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인용

목차

1. 문제의 제기

2. 조선조 제가의 속언 인식

3. 속언 활용의 제양상

1. 공식적 언어생활에의 활용

2. 문학 창작의 재료로 활용

1) 함축과 비유, 참신성의 조성

2) 한시의 소재로 활용

3) 해학과 조롱의 수단

4) 변증 재료에의 활용

4.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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