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맹자』는 고전(古典)이 아니다. 그것은 옛[古] 책[典]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의 혈맥을 흐르고 있는 뜨거운 기운이다. 우리나라 고금에 『맹자』를 완독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맹자』를 읽었는가? 나는 장담할 수가 없다. 퇴계나 다산이 『맹자』를 정확하게 이해했는가? 나는 장담할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은 우리보다 자구(字句)의 의미에 관해 감정적으로 보다 근접한 느낌을 가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들이 정확하게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시대적 사상의 제약이 강했고, 뒷받침하는 문헌의 포괄성이 부족했다. 그리고 맹자라는 역사적 인간을 투시하기에는 그들이 산 시대상의 단일 칼라가 너무 강렬했다. 21세기와 같은 자유분방한 시대상 속에서, 국가나 민족이나 이념을 초월하는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비로소 맹자는 저 멀리 지평선 위로 걸어 나온다.
나도 평생 『맹자』를 읽었다. 그러나 요번에 『맹자』를 역주하면서 비로소 맹자를 만나게 되었다. 여태까지 맹자가 만나지지 않았던 이유는 『맹자』라는 문헌이 논리적으로 소통이 되지 않는 구석이 너무 많아 실제로 그 전체를 세부적으로 다 이해하지 않고 이해되는 부분만을 골라 맹자상을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맹자』라는 텍스트처럼 정확히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료해될 수 있는 문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나의 텍스트 이해가 부족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한문의 도사라 할지라도, 제아무리 『맹자』 전체를 암송하고 있다 할지라도 맹자는 만나지지 않는다. 왜?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여태까지 조선의 학문풍토 속에서는 주자학의 이념으로 형해화(形骸化)된 맹자상이 연역적 전제로서 걸려있었을 뿐 아니라, 살아있는 그 인간을 전국(戰國)이라고 하는 특수한 중원의 역사적 지평 위에서 걸어가도록 만드는 작업이 거의 불가능했다. 맹자의 생애나 연보, 그리고 교류관계나 실제적 시대상의 사건들을 정확히 구성하고, 그 위에서 그의 심장과 혈관과 근육을 살려내는 작업을 감행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맹자는 그냥 공맹사상(孔孟思想)의 주축으로서 추상화된 맹자일 뿐이었다.
맹자의 모든 문답의 정확한 시기나 분위기가 고려되지 않은 채, 그 추상적 논리만을 따라가다 보면 그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역사적으로 살아 숨 쉬는, 그의 입에서 입김이 서리거나 그의 표정에서 감정의 색깔이 표현되는, 그러한 역사적 한 인간을 느낄 수 있도록 『맹자』를 서술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맹자를 우리 실존의 지평 위에 등장시키기 위해 나는 텍스트의 한계를 초극(超克)하려고 노력하였다.
혹자는 나 보고 지나친 의역이나 가필이 있지 않은가 하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번역은 어디까지나 번역일 뿐이다. 원문은 손상되지 않는다. 한문원전은 맹자 당시의 그대로 지금도 존재한다. 번역과 원문의 관계를 정확한 대응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원문을 왜곡했는가? 나의 번역은 어느 누구의 번역보다도 문법적 구조의 치열한 직역(直譯)의 바탕 위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직역을 운운해도 나의 번역 이상의 직역은 없다!
번역은 대응이 아니라 상응이다. 그 상응은 오늘의 살아 숨 쉬는 독자들의 삶의 의미체계와의 상응이다. 많은 고전번역자들이 고전을 읽는 오늘날의 독자들을 그들이 생각하는 형해화된 맹자처럼 형해화 시키려고 노력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래서 고전번역을 많이 읽다보면 그 인간이 핏기를 잃어가고 점점 고리타분한 인간이 되어간다. 소위 ‘공맹사상’의 이념적 신도가 되어가는 것이다. 예수쟁이가 되든, 공맹쟁이가 되든 무엇이 다를 소냐! 예수쟁이와 공맹쟁이가 다른 것은 ‘상식’하나인데, 번역자들 자신이 상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고전이 되면 안 된다. 우리의 상식으로부터 멀어져만 갈 뿐이다.
나는 『맹자』를 한국의 젊은이들이 피끓는 가슴으로, 시중의 소설보다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어떠한 이념이나 고매한 철학을 표방하는 책보다도 더 풍부한 이념과 철학을 제공하는 상식의 책으로서 『맹자』를 한국의 독서계에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과연 나의 노력이 성공했는지는 독자들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
제일 먼저 생각한 부제는 ‘민본(民本)과 혁명(革命)’이었다. 그러나 주석을 진행하면서 『맹자』를 가장 정확히 포괄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한마디는 ‘사람의 길’이라 생각되었다.
2012년 3월 4일 밤
도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서」를 집필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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