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선왕이 두리번거리며 딴 얘길하다
1b-6. 맹자께서 제선왕에게 일러 말씀하시었다: “왕의 신하 중에 지금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죠. 그 사람은 사신으로 가있는 동안 자기 친구에게 처자식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초나라에서 돌아와보니 그 처자식이 모두 추위에 떨고 아사지경이었습니다. 이 경우 왕께서는 그 신하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b-6. 孟子謂齊宣王曰: “王之臣有託其妻子於其友, 而之楚遊者. 比其反也, 則凍餒其妻子, 則如之何?” 왕이 말하였다: “나는 그 신하를 버리고 다시는 기용하지 않을 것이오. 자기 친구를 분별하는 능력도 없고 처자를 추위에 굶주리게 하였으니 나의 신하의 자격이 없소이다.” 王曰: “棄之.”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면 또 왕의 군대를 통솔하는 참모총장격인 장수가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선왕은 말하였다: “나는 그 장수를 해임시키겠습니다.” 曰: “士師不能治士, 則如之何?” 王曰: “已之.” 말씀하시었다: “그렇다면 또 국내 사경(四境) 전체의 민생고가 가중되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문이 꽉 막힌 왕은 좌우를 둘러보며 딴청을 하였다. 曰: “四境之內不治, 則如之何?” 王顧左右而言他. |
불과 74글자밖에 안되는 짧은 담화이지만 『맹자』 전체 서물 중에서도 가장 맹자의 변론술의 묘미를 잘 나타낸 묘문(妙文)으로 이름 높다. 그리고 그 숨어있는 함의의 강력함은 맹자의 비판정신의 예리함을 잘 드 러내고 있다.
사신으로 갈 정도의 신하의 경우에서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의 경우를 거쳐 왕 자신의 상황으로 올라가면 똑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신하를 버리고, 장군을 해임했다면, 이제 왕이 국민에 의하여 버려지고 해임될 수밖에 없다. 즉 국민이 왕을 해임할 권리를 갖는다는 혁명사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논리를 면전에서 다 간파하는 제선왕의 태도는 너무도 귀엽다. 즉 ‘좌우를 돌아보며 딴청을 부린다[顧左右而言他]’는 왕의 멀쓱한 태도의 묘사는 못난 왕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 왕들의 품격을 전해주는 것이다. 누가 만약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면전에서 ‘해임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면, 사찰과 세무조사, 그리고 검찰 압력 등 벼라별 더티한 추행이 이어졌을 것이다. 21세기 민주사회에서 오히려 맹자처럼 직언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앞 장에서도, ‘나는 재물을 좋아하는 병통이 있다[寡人有疾, 寡人好貨]’든가 ‘여색을 좋아 하는 병통이 있다[寡人有疾, 寡人好色]’든가 하는 고백도 왕의 순진무구한 성격을 나타내는 아주 실제적 디테일이 잘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왕이 맹자를 조롱하는 분위기의 반론을 편 것이라 하지만 그렇게 해석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단지 왕도를 못 실천할까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여색을 밝힌다는 왕의 고백에 부인만을 사랑하라는 딴 차원의 여색을 말하는 맹자의 시치미도 참 코믹한 것이다. 서로가 진지하게 대화를 하면서도 여유가 있는 것이다. 현재 민주사회의 지도자가 오히려 그러한 비판정신을 접할 기회가 없어져 가고만 있는 것이다. 언론이 정치에서 분리되고, 언론 자체가 또 하나의 권력으로 타락해버리는 작금의 세태에서는 정치에 대한 진정한 내면적 비판이 유실되고 있는 것이다.
본 장의 매우 짧지만 해석에 있어서 많은 이견(異見)이 있다. 우선 제일 먼저 맹자의 질문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如之何]?’의 대상이 친구라고 보는 견해이다. 다시 말해서 ‘기지(棄之, 그를 버린다)’의 의미를 ‘친구와의 우정을 끊겠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조기가 그렇게 해석하였고[言當棄之, 絶友道也], 주자가 그를 계승하였다[棄, 絶也]. 우리나라는 워낙 주자의 권위가 강해 오늘까지도 아무도 이에 반론을 펴지 않는다. 그러나 맹자의 물음 자체가 ‘왕지신(王之臣)’을 주어로 한 것이며, 대화의 포인트도 왕 자신의 태도나 결단을 물은 것이다. 그리고 ‘기(棄)’라는 동사의 함의도 왕의 입장에서 더이상 기용할 생각이 없다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왕이 갑자기 자기 신하의 입장으로 내려가서 친구와 단교하겠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어불성설이다. 혹자는 왕이 처자를 동뇌(凍餒)하게 만든 그 놈을 기용치 않겠다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나, 도무지 어불성설이다. 신하의 친구는 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두 번째 질문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예외없이 ‘사사(士師)’를 옥사(獄事)를 다루는 관리로 푸는데, 이것도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그 최초의 오류가 조기의 주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사는 옥관리이다. 옥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士師, 獄官吏也. 不能治獄, 當如之何]?’
『논어(論語)』에 보면 노나라의 현인 유하혜(柳下惠)가 세 번 ‘사사(士師)에 임명 되었으나 세번 다 파면되었다’(18-2)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사사(士師)’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우리가 판관(判官)이나 형리(刑吏)로 해석하는 것은 『주례』의 추관사구(秋官司寇)의 직제에 대사구(大司寇), 소사구(小司寇), 사사(士師), 향사(鄕士) 등등의 위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맹자의 논리의 진행에 있어서 갑자기 대사도 아닌 아랫 계급의 ‘사사(士師)’가 나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례』라는 문헌의 성립이 왕망(王莽, BC 45~AD 23)의 시대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맹자』의 언어는 『주례』의 명에 의하여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맹자』의 자연스러운 언어가 『주례』의 도식적 언어보다 빠르고 더 일상언어적인 것이다. 『맹자』의 언어는 그냥 소박하게 전국시대의 상식으로 풀어야 한다.
그 전체 문장은 ‘사사불능치사(士師不能治士), 즉여지하(則如之何)?’라는 매우 단순한 구문이다. 여기서 앞의 ‘사(士)’와 뒤의 ‘사(士)’는 문장구조상으로 동일한 명사 유니트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문장구조는 명백해진다: ‘사(士)의 사(師)가 사(士)를 잘 다스릴 수 없다면 …’ 그런데 모두 군대용어라는 것은 동네집 개라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사(士)’는 전국시대 때 장수(군대의 통솔자)의 의미로 수없이 쓰이는 말이며, ‘사(士)’는 원래 오늘날 ‘사관(士官)생도’라는 말에서 보여지듯이 장교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전국시대에는 ‘사졸(士卒)’을 총칭하는 뜻으로 잘 쓰였다. 따라서 상기의 구문은 ‘사졸의 장수가 사졸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다.
맹자의 담론에 깔린 전체 논리구조는 이와 같은 것이다. 즉 첫째로 인륜에 의하여 처자식은 남편에게 위탁된 것이다. 따라서 남편은 처자식의 안위에 관하여 상황여하를 불문하고 책임이 있다. 둘째도 마찬가지로, 군대의 장군에게는 왕권에 의하여 사졸이 위탁된 것이다. 장군은 상황여하를 불문하고 사졸의 안위에 관하여 책임이 있다. 셋째도 마찬가지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위는 천명에 의하여 왕에게 위탁된 것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위와 복지를 지키지 못하면 최고의 지도자는 혁명되어야 한다. 더 이상 천명을 수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본 장을 어렸을 때부터 심히 사랑해왔다. 그래서 내가 이 장에 대한 느낌이 강렬한 것이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편 다음에 사사기라는 편이 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이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가나안땅에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태동된 지파들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이들을 ‘judge’라고 영역하기 때문에 ‘사사(士師)’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사사들의 실제행동양식을 보면 재판관이 아니라, 야훼의 명령을 바르게 판단하여 수행하는 군사적 지도자들이다. 하여튼 구약의 ‘사사’라는 표현도 이 맹자의 언어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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