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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상 - 7.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인함에 영향을 받는다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상 - 7.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인함에 영향을 받는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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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인함에 영향을 받는다

 

 

2a-7.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라 해서 어찌 갑옷을 만드는 사람에 비교해서 더 불인(不仁)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갑옷을 뚫어 사람을 죽일 것만을 생각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화살에 갑옷이 안 뚫리어 어떻게 사람을 살릴 것인가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의사와 장의사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의사는 사람 살릴 것만 생각하고 장의사는 사람이 죽어야 먹고 산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직업이나 기술을 선택하는 것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2a-7. 孟子曰: “矢人豈不仁於函人哉? 矢人唯恐不傷人, 函人唯恐傷人. 巫匠亦然, 故術不可不愼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한 동네를 선택하여 사는 것이 아름답다. 택하여 인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논어(論語)4-1. 대저 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높은 작위[尊爵]이며, 인간이 인간다웁게 살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집[安宅]이다(4a-10 참조). 아무도 사람이 인()의 집에 사는 것을 막지 않는데도 바보스럽게 불인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너무도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불인(不仁)하고 부지(不智)하며, 무례(無禮)하고 무의(無義)한 인간은 인간에게 부림을 당해야 싼 인간이다. 하늘이 내려주는 작위조차 없으니 비천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인간이 인간에게 부림을 당하면서 그 부림을 당하는 것을 창피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마치 활의 장인이 활 만드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화살의 장인이 화살 만드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과도 같다. 자기가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이 창피스럽다고 느낀다면 인()을 실천하여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고귀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닌가!
孔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智?’夫仁, 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禦而不仁, 是不智也. 不仁, 不智, 無禮, 無義, 人役也. 人役而恥爲役, 由弓人而恥爲弓, 矢人而恥爲矢也. 如恥之, 莫如爲仁.
 
인자의 삶의 자세는 활 쏘는 사람의 자세와도 같다. 활 쏘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고 정신을 집중한 후에 화살을 발사하며, 발사하여 과녁에 맞지 않으면 게임에서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모든 잘못이 자기에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반성할 뿐이다.”
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간결하지만 많은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 ‘시인(矢人)’함인(函人)’의 문제는 단지 교묘한 비유일 뿐, 인간세의 직업이나 기술에 대한 보편적 언어로서 이해되어서는 아니 된다. ‘시인(矢人)’도 반드시 인간세에 존속되 어야 할 직업이며, 시인이라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천하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칼 가는 장인에게 칼을 갈아달라고 부탁하자, 그 칼날을 만져보고,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자의 칼이지, 검도를 추구하는 달인의 칼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칼 갈기를 거부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장인의 세계는 시인이나 함인이나 다 동일한 경지를 추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가 소기하는 대의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맹자는 이런 류의 달변을 순우곤 같은 직하의 논객 교류하면서 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하지 못한 자는 인한 자에게 사역을 당할 뿐이라는 논리는 나이브한 유교의 사회계층논리를 암시하고 있다. 즉 인한 유덕자일수록 사람을 부릴 수 있는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은 이와 같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의 활쏘기의 비유는 중용(中庸)14의 논리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역시 사맹학파(思孟學派)’라는 규정을 회피하기 어려운 연속성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맹자는 자사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기는 했어도, 자사라는 인간에 대한 특별한 귀속감 같은 것은 표출하지 않는다. 활만 드는 사람의 비유로 시작하여 활쏘기의 비유로 끝난 것은 맹자의 화술의 달함을 나타내준다. 그 사이에 많은 다른 주제들을 담으면서도 비슷한 언어로써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웁게 사는 궁극적 소이연이 인작(人爵)을 얻음에 있지 아니 하고 천작(天爵)을 얻음에 있다는 맹자의 사상을 나는 심히 좋아한다고(고자16).

 

나는 ()’()’의사장의사로 번역했는데 나의 번역은 타당성이 있다. 여기서 무당은 단순한 무당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무의(巫醫)’이며()’라는 글자를 보면 무당이 상처에 술을 부어 치료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은 목수라고 해석했지만 이것은 단순한 목수가 아니라 사람 관을 짜는 것만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이기 때문에 장의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욱 포괄적 원의에 접근한다. 독자들은 번역은 의미의 상응성이라는 나의 번역이론을 상기해주면 좋겠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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