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네 가지 단서
2a-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고대의 제왕인 선왕(先王)들께서는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인정을 베푸실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차마 어쩌지 못하는 인(仁)한 정치를 실천하기만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손바닥 위에 물건을 놓고 주무르듯이 쉬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왜 사람이 모두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를 설명해볼 필요가 있다. 2a-6.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之掌上. 생각해보자! 지금 어떤 사람이 여기 돌연히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자!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측은한 마음이 엄습할 것이다. 그리고 구하려고 달려갈 것이다. 이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한 것도 아닐 것이요, 동네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함도 아닐 것이요, 구하지 못했다고 욕을 먹을까봐 두려워서 달려간 것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해득실을 가려서 한 행동이 아니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이로 미루어 생각해 본다면 측은지심(惻隱之心)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시비지심(是非之心)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端)【단서. 실마리. 맹아(萌芽)】이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단이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단이 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단이다.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사람이 누구든지 이 네 단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두 팔, 두 다리 사체(四體)【우리가 보통 사지(四肢)라고 말하는 것】를 가지고 있는 것과도 같다【沃案: 나의 몸의 일부로서 체화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몸통에서 사지로 발출되어 나아간다는 이미지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인의예지를 실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해치는 자이며, 자기가 모시는 임금으로 하여금 인의예지를 실천케 하지 못하는 자는 그 임금을 도적놈으로 만드는 자이다. 대저 사람들이 사단이 나의 내면에 구유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또 그것을 확대하여 충만케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불이 처음에는 미약하게 타오르지만 거대한 들판을 태울 수 있고, 샘물이 처음에는 한 줌의 물로 솟아나지만 거대한 바다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번져나갈 것이다. 사단을 잘 확충해나가면 족히 사해를 보전할 수 있지만, 사단을 잘 확충해나가지 못하면 부모님조차 변변히 모시지 못하게 될 것이다.”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
여기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고 말한 것은 맹자가 제선왕과의 대화를 처음으로 기록한 「양혜왕」 상7에서 ‘견우(牽牛)’의 이야기로써 등장했던 것이다. 죄없는 소가 벌벌 떨면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라고 말했던 그 마음을 여기 집중적으로 다시 토론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장 또한 제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며 원래 「양혜왕」 상7과 이장은 연접되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공손추의 기록일 것이다.
이 장은 한국사람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지만 그 세부적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퇴계(退溪)와 고봉의 사칠논쟁도 이 장의 해석을 뼈대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장은 성선설(性善說)의 궁극적 근거로서 잘 인용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실상인ㆍ의ㆍ예ㆍ지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 설명은 ‘인(仁)’ 하나에 국한되고 있고, 의(義)ㆍ예(禮)ㆍ지(智)는 설명되고 있질 않다. 인 하나만의 예로써 나머지를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인ㆍ의ㆍ예ㆍ지에서 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측은지심’의 일상적 예로서 든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상황을 검토해보아도 맹자의 논리에 대한 반론은 무수히 가능하다.
예를 들면, 유자입정의 상황을 별 분별심이 없는 아동이 바라보았다 고 하자! 과연 가슴이 철컹 내려앉으면서 순간 구하려고 달려갈 것인가? 아마도 그 아동은 별생각없이 돌멩이가 우물(옛 우물은 깊게만 파고 지평과 같이 되어 있어 테두리를 높게 쌓지를 않았다)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쳐다보았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최한기(崔漢綺, 1803~1877)도 인간이 직접 적인 감각경험이나 간접적인 감각경험을 거치지 않고서는 맹자가 말하는 그러한 측은지심의 행동패턴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최한기는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맹자의 성선의 선천적 근거를 비판하는 것이다. 과연 맹자의 측은지심은 이러한 논의로써 반박될 수가 있는가?
맹자가 말하는 인간은 그 애초의 출발점 자체가 생리적 인과체계가 아니라, 선의지로 충만되어 있는 도덕적 인간(Moral Man)이다. 그러한 전제가 없으면 맹자와 백날을 얘기해봤자말짱 꽝이다. 어린애가 우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무 전제 없이 출척하는 심사가 생겨 반사적으로 달려가는 것은, 이미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도덕적으로 단련되어 온 인간이다. 측은지심은 인간이 문명사회를 건설한 이래 기나긴 세월의 사회교화를 거쳐 인간의 내면에 자연적으로 스며들게 된 존재의 기반이다. 다시 말해서 맹자에게는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한 선천과 후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한 후천적 학습이 선천적 도덕의식이 될 수도 있고, 선천적 도덕의식이 후천적 학습을 방향지을 수도 있다. 유자입정을 바라보는 인간은 사회화된 인간이며 언어화된 인간이며 역사화된 인간이며 문명화된 인간이며 도덕화된 인간이다. 다시 말해서 유자입정의 순간에 비공리적, 무전제적 선의지가 발동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무측은지심(無惻隱之心), 비인야(非人也)】. 그는 인간됨의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인간의 다자인(Dasein)을 생리적으로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측은함’이라는 감정을 노출시키는 심적 현상일 뿐이다. 측은지심이 곧 인(仁)이라는 덕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화되어 있는 덕의 ‘단(端, tip)’일 뿐이다. 따라서 ‘단(端)’은 인이라는 덕이 표현된 심적인 현상이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감정에 속하는 것이다. ‘가슴이 덜컹하는 측은’도 감정이다. 따라서 ‘사단(四端)’은 ‘기(氣)’가 아니라 ‘리(理)’라고 말하는 후대의 논설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사단도 칠정의 선한 형태일 뿐이라고 하는 고봉의 논의는 정당한 것이나, 고봉은 애석하게도 퇴계(退溪)의 논박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 했다. 맹자의 논의를 후대의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고 하는 분별적 카테고리 속에서 논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자학(朱子學)적 테제를 가지고 맹자의 웅혼한 융통(融通)의 심(心)을 성(性)과 정(情)으로 갈라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오류이다. 맹자에게 있어서는 심 그것이 곧 성선의 근거일 뿐이다.
동중서(董仲舒)가 맹자의 인ㆍ의ㆍ예ㆍ지에 신(信)을 더하여 ‘오상(五常)’ 운운한 것은 매우 졸렬한 것이다. 유학의 본령이라 말할 수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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