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술이 떡이 되어 돌아오는 남편의 사연
4b-33. 제나라 사람으로 처를 한 명, 첩을 한 명 거느리고 특별하 게 벼슬하지도 못한 채 집에서 빈둥빈둥 살아가는 인물이 있었다【여기 ‘처실(處室)’의 ‘실(室)’은 집을 의미하는데, ‘처한다’는 동사에는 우리가 보통 ‘처사(處事)’라고 말할 때와 같이 벼슬하지 않고 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주희는 앞에 ‘맹자왈(孟子曰)’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문장의 맛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졸렬한 문헌비평이다. 앞에는 객관적 서술이고 저 끝에 ‘유군자관지 이후부터가 맹자의 평 ‘ 어로 보면 될 것이다. ‘유군자관지(由君子觀之)’앞에 ‘맹자왈’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 또한 불필요하다. 이 장은 특별한 문학적 서술이며, 그 글이 매우 명료하고 아름 답다】. 그 양인(良人)【‘양(良)’은 후세의 ‘랑(郞)’과 같은 용법이다. ‘남편’의 뜻이다】이 외출을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부르도록 먹고 취기가 오른 채 어슬렁어슬렁 귀가한다. 그 부인이 누구와 더불어 마시고 먹느냐고 물어보면, 같이 마시고 먹는 자는 모두 부자요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뿐이었다. 4b-33. 齊人有一妻一妾而處室者, 其良人出, 則必饜酒肉而後反. 其妻問所與飮食者, 則盡富貴也. 그런데 그 현명한 부인은 그 첩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남편이 외출하기만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부르도록 먹고 귀가한다. 그런데 누구하고 그렇게 배부르도록 먹고 마시냐고 물어보면 모두 부자와 신분이 고귀한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한 번도 그런 유명한 부자나 고귀한 사람이 우리집에 온 적이 없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내 일은 내가 남편이 가는 곳을 뒤따라가서 살펴보리라【沃案: 앞 장의 ‘간(瞷)’과 같은 자를 썼다. 32장과 33장은 동일인에 의한 기록일 것이다】.” 其妻告其妾曰: “良人出, 則必饜酒肉而後反; 問其與飮食者, 盡富貴也, 而未嘗有顯者來, 吾將瞯良人之所之也.”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자기 몸을 비스듬히 숨겨 가면서 남편이 가는 곳을 뒤따라갔다. 그런데 성 안의 대로를 가면서도 내내 그 누구 한 사람과도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지 못했다. 드디어 그는 동쪽 외성밖에 공동묘지의 무덤 사이로 곧바로 가더니, 또 거기서 제사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갔다. 그리고 묘제를 지내고 남은 잔반들을 구걸하여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족하면 좌우를 둘러보면서 다른 묘소로 옮겨갔다. 이것이 바로 남편이 배불리 먹는 방법이었다. 蚤起, 施從良人之所之, 徧國中無與立談者. 卒之東郭墦閒之祭者, 乞其餘; 不足, 又顧而之他, 此其爲饜足之道也. 그 부인은 얼른 집에 돌아와, 그 첩에게 말하였다: “이보게! 남편 이란 죽을 때까지 우러러보며 섬겨야 하는 사람이라오. 그런데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니!” 그첩과 더불어 그 남편을 원망하면서 정중(庭中)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것도 모르고, 여전히 게드름을 피면서 팔자걸음으로 밖에서 돌아와서는 그 처첩에게 교만을 떠는 것이었다. 其妻歸, 告其妾曰: “良人者, 所仰望而終身也. 今若此.” 與其妾訕其良人, 而相泣於中庭. 而良人未之知也, 施施從外來, 驕其妻妾. 진실로 유덕한 군자의 눈으로 이 세상사람들을 평가한다면, 부귀 를 추구하고 이익과 영달(榮達)을 갈구하는 사람치고, 그 처첩이 부끄러워 서로 부둥켜안고 울지 아니 할 자가 그 몇 사람이 있으랴! 由君子觀之, 則人之所以求富貴利達者, 其妻妾不羞也, 而不相泣者, 幾希矣. |
『맹자』 전체를 통하여서도 가장 문학적 향기가 드높고 그 사회풍자(social satire)가 신랄한 파편으로 꼽히는 명문장이다. 동방인들은 본시 철학이라는 것을 ‘필로소피(philosophy)’라는 어떤 특정한 진리추구의 영역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문ㆍ사철을 반드시 비해야만 사상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논리를 논리로써만 펼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은유나 비유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가슴을 파고드는 진실이 강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파편은 참으로 위대한 문학이요 철학이요 역사다. 그 시대상을 말하고 있지만 참으로 오늘날 강남 번화가를 비실비실 돌아다니고 있는 모든 화려한 인물군에게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는 만고불변의 통리(通理)라고 할 것이다.
진실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매일매일 재벌이나 국회의원이나 판검사나 명성 높은 자들과 한정식집에 앉아있는 사람들, 과연 그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공동묘지의 썩은 뼈다귀들이 벌이는 잔치, 그 이상의 무엇이 있으랴!
여기 맹자의 비판은 민중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고도의 지식과 권세를 소유한 사대부들을 향해, 너희들의 자화상을 여기 한번 비추어보라 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이루」편이 끝났다. 「이루」편이 잡찬(雜纂)이라고는 하지만 무엇인가 치밀한 편집의도가 느껴지며 결코 후대의 삽입 같은 것은 단정짓기 어렵다. 「이루」 역시 맹자 당대에 이루어진 편집으로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결코 살아있는 역사적 맹자의 어록의 범위에서 크게 일탈함이 없는 진실한 기록이라고 판단된다.
다음부터 「만장」이 시작되는데, 만장은 앞서 3b-5에서도 했지만 맹자의 중후한 고제로서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고 역사에 밝았던 인물이었다. 「만장」은 만장이라는 제자의 필록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 만장과 맹자와의 문답은 상편에 1ㆍ2ㆍ3ㆍ5ㆍ6ㆍ7ㆍ8ㆍ9의 8장, 하편에 3ㆍ4ㆍ6ㆍ7ㆍ8의 5장, 도합 13장에 이른다. 만장과의 대화가 거의 이 한 편에 담겨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편이 만장 본인이나 만장학파의 사람들에 의하여 성립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상편에는 거의 ‘만장문왈(萬章問曰)’로 되어있는 반면, 하편에는 거의 ‘만장왈(萬章曰)’로 되어있는데 필자가 다르거나, 같은 필록자일지라도 연대에 따라 달리 표현한 것인지 상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크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주목할 만하다.
「등문공」 하5와 「진심」 하37에도 ‘만장문왈(萬章問曰)’로 표현한 파편이 실려있는데 이 두 파편은 본시 「만장」편에 속해있던 같은 계열의 장임에 틀림이 없으나, 『맹자』 전체의 편집을 고려하여 각기 특별한 이유가 있어 분립되어 나간 것이다. 특히 「진심」 하37의 파편은 「진심」 하38의 마지막 파편과 더불어 『맹자』 전체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만장」의 내용에 관해서는 읽어가면서 습득하는 것이 그 정도(正道)일 것이다.
用功不緩不急 | 공부에 힘쓰되 늦추지도 말고 보채지도 말라. |
死而後已 |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것이 공부나라. |
若求速其效 | 공부의 효과가 빨리 나기를 구한다면 |
則此亦利心 | 그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라. |
若不如此 | 만일 이같이 아니 하면 |
戮辱遺體 | 어버이에게서 물려받은 몸뚱이를 욕되게 함이니, |
便非人子 | 그것은 곧 사람의 아들 된 도리가 아니니라. -율곡 「자경문」 중에서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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