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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하 - 3. 친구를 사귀는 방법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하 - 3. 친구를 사귀는 방법

건방진방랑자 2022. 12. 28.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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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친구를 사귀는 방법

 

 

5b-3. 만장이 여쭈어 말하였다: “감히 친구를 사귀는 원칙에 관하여 한 말씀 듣고자 하나이다.”
5b-3. 萬章問曰: “敢問友.”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좋은 질문이로다. 친구 사귀는 데도 중요한 원칙이 있으니, 친구 사귐의 사이에는 장유(長幼)의 나이의식이 끼어들면 아니 되고, 귀천의 신분의식이 끼어들면 아니 되고, 연줄이 나 패거리의식이 끼어들면 아니 된다沃案: 천하의 명언이라 할 것이다. 세 번째의 불협형제(不挾兄弟)’를 주희는 해설치 않았고, 조기는 사귀는 사람의 형제 중에 부귀한 인간이 있기 때문에 사귀어서는 아니 된다는 식으로 해석했으나, 그 주제는 이미 앞에서 말한 ()’에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형제등이(等夷)’로 보아 같은 한 동아리라는 의식, 타 인간 패거리와는 다르다는 의식, 혹은 대형교회 나가서 형제자매 찾는 연줄의식으로 보았다. 여기 맹자의 언급은 오륜에 얽매여 예의절차에만 충실한 듯이 보이는 동방문화에 전혀 다른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가 상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래디칼한 언급이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덕과 실력 이외의 어느 것도 끼어들어서는 아니 된다.
孟子曰: “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
 
노나라의 현인이며 상경이었던 맹헌자(孟獻子)()’은 시호이고, 그의 이름은 중손멸(仲孫蔑). 맹손가의 5대 대부로서 현자였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이 모신 사람이다. 고본대학17에 그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는 전차 100승을 소유할 정도의 대부집안 사람이었는데 친구가 5명이 있었다. 한 사람은 악정구(樂正裘)였고, 또 한 사람은 목중(牧仲)이었는데, ~ 나머지 세 사람은 내가 이름을 잊어버렸다沃案: 그 얼마나 리얼한 현장기록인가! 맹자가 이름을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장면까지 그대로 기록하였다. 기독교성서나 이슬람성서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기록방식이다. 그런데 맹헌자가 이 다섯 사람과 벗한 것은 맹헌자 본인이 자신의 가문배경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다섯 사람 또한 맹헌자의 문벌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만약 맹헌자의 가문배경을 의식했더라면 더불어 벗할 수 없었을 것이다.
孟獻子, 百乘之家也, 有友五人焉: 樂正裘牧仲, 其三人, 則予忘之矣. 獻子之與此五人者友也, 無獻子之家者也. 此五人者, 亦有獻子之家, 則不與之友矣.
 
백승의 대부의 경우뿐 아니라, 소국의 군주의 경우에도 이러한 사례가 또 있다. ()나라의 군주, 혜공(惠公)비국(費國)에 관해서는 이설이 많다. 초순의 정의에 매우 자세하다. 춘추시대의 희성(姬姓)의 나라 중에 활국(滑國)이 있었고 비()에 도읍하여 비활(費滑)이라고 불렀다. 장공 16 춘추경문에 유() 땅에서 활백(滑伯) 등 여러 나라 군주가 모여 동맹을 맺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비혜공은 이 활백의 후예일 것이다은 이와 같이 말하곤 했다: ‘나는 자사는 스승으로 모시었다. 안반(顔般)안감(顔敢)이라고도 표기된다은 친구로 사귀었다. 왕순(王順)과 장식(長息)은 신하로서 나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곧 같은 급의 사람이라도 스승할 사람은 스승으로 모시고, 친구할 사람은 친구로 사귀고, 신하할 사람은 신하로 하대했다는 이야기다.
非惟百乘之家爲然也. 雖小國之君亦有之. 費惠公曰: ‘吾於子思, 則師之矣; 吾於顔般, 則友之矣; 王順長息則事我者也.’
 
이런 이야기는 비단 소국의 군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국의 군주의 경우에도 또한 같은 사례가 있다. ()나라 평공(平公)명이 표()이다. 춘추시대의 진나라 군주, BC 557~532 재위, 공자의 윗세대 사람인데 평생을 쓸데 없는 전쟁을 일삼았고, 음질(淫佚)하였고 부렴(賦斂)을 후()하게 하여 국민의 원성을 샀다이 진나라의 현인인 해당(亥唐)당은 진나라의 현인으로서 누항(陋巷)에 은거하고 있었으나 평공(平公)이 방문하여 그가 하라는 대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해당은 기당(期唐)’이라고 쓰기도 하며, 한비자(韓非子)에는 당해(唐亥)’로 되어 있다을 대한 자세도 비슷한 사례이다. 해당이 들어오라고 말하면 들어갔고, 앉으라고 말하면 앉았고, 먹으라 말하면 군말없이 먹었다. 거친 밥과 시레기국이라도 먹으라 하면 배불리 먹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것은 해당이 권유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서 배불리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현자를 벗하는 태도로서는 괜찮은 편이지만 진평공은 여기에서 그치고 말았을 뿐이니 사려가 부족한 인간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제대로 된 군주라면 해당을 등용하여 하늘이 주는 위()를 공유하고, 하늘이 주는 직()을 분담하고, 하늘이 주는 녹()을 나누어 가졌어야 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질 않았다. 이것은 일개 선비가 현자를 존경하는 태도일 뿐이지, 왕공의 지위를 가진 자가 현자를 존경하는 태도가 아니다沃案: 참으로 통쾌하고 명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돈 많은 자가 현자를 대접한다 하면서 식사나 한 끼하고 좋은 말 많이 듣고 그냥 보내는 것은 참으로 얌체짓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어떤 구 체적 성의를 표해야 할 것이 아닌가!.
非惟小國之君爲然也, 雖大國之君亦有之. 晉平公之於亥唐也, 入云則入, 坐云則坐, 食云則食. 雖疏食菜羹, 未嘗不飽, 蓋不敢不飽也. 然終於此而已矣. 弗與共天位也, 弗與治天職也, 弗與食天祿也, 士之尊賢者也, 非王公之尊賢也.
 
()은 제요(帝堯)의 두 따님을 부인으로 맞이하여 요임금을 뵈러 갈 일이 많았다. 요임금은 사위인 순을 자신의 별궁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요임금은 순을 자기 있는 곳으로 초청하여 향연을 열기도 하였 고, 또 순은 자기 별궁으로 요임금을 초청하여 향연을 베풀기도 하였으니, 왔다리갔다리, 서로 번갈아 주()ㆍ빈()이 되었다. 이것은 천자가 필부를 벗한 아름다운 사례 중의 하나이다. 아래 있는 사람으로서 윗 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귀귀(貴貴, 귀한 자를 귀하게 대접한다)라 이르고, 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존현(尊賢, 현자를 높임)이라고 부른다. 귀귀와 존현은 상대방이 누구든지간에 존경해야 할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이니 그 뜻이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舜尙見帝, 帝館甥于貳室, 亦饗舜, 迭爲賓主, 是天子而友匹夫也. 用下敬上, 謂之貴貴; 用上敬下, 謂之尊賢. 貴貴, 尊賢, 其義一也.”

 

맹자는 이 장을 통해서도 역시 자신의 생애의 원칙을 말하고 있다. 평생 전국시대 왕자들의 벗으로서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그로서는 이라는 개념에 나이나 신분이나 귀천이나 재물이나 패거리 의식을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신념은 나이와 신분을 초월하여 벗한다고 하는 전통적 한국인의 을 형성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이를 따지는가 하면 또한 나이를 초월하는 자세가 한국인의 삶에는 배어있다. 우리말에 망년지교(忘年之交)’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맹자의 신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왕공(王公)이나 사회적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벗을 한다고 하는 삶의 자세에는 반드시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천위(天位)와 천직(天職)과 천록(天祿)을 공유한다고 하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써만, 그리고 보는 앞에서 공손하게 하는 제스처로써만 벗됨을 나타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평생을 살면서 절절이 느끼는 문제이다. 나를 데려가려면, 나의 시간을 뺏으려 한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 대접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인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과 정력만을 공짜로 빼먹을려는 녀석들이 너무도 많다. 나는 내 집 밖을 한 발자국 벗어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 이것은 보장되어 있는 사실이다. 나를 안 부르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를 부른다 하면서 내 시간과 정력을 공짜로 빼먹으려 하는가! 지식이나 도덕 이 공짜일 수 없다. 산업사회의 일반상식의 논리를 따라가도 이것은 너무도 염치없는 짓이다. 이러한 허위의식 때문에 학문의 실력자들이 대접을 못 받고 쫄쫄이 굶어야 하는 사태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한 지식인을 대접한다는 것은 그 지식인이 정당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물리적 여건을 만들어주는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 지식인을 구체적으로 대접할 줄 아는 기풍이 다시 진작되어야만 우리사회의 문명이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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