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태의 시집에 쓴 문
설초시집서(雪蕉詩集序)
홍세태(洪世泰)
시는 천기로 짓기에 작은 기술이 아니다
詩者一小技也. 然非脫略名利, 無所累於心者, 不能也. 蒙莊氏有言曰: “嗜欲深者其天機淺.” 歷觀自古以來工詩之士, 多出於山林草澤之下, 而富貴勢利者未必有焉. 以此觀之, 詩固不可小, 而其人亦可以知之矣.
최승태와의 인연과 그의 시적 기상
雪蕉崔子紹氏, 家傳詩學, 擩染旣深, 而其天才實奇逸絶塵. 初師太白, 晩好雪樓七子, 歌行長篇, 才格翩然, 有俊發騰踔之氣. 余少時甞從公遊三角山之香林寺, 寺在嶽頂, 峭壁千仞, 瀑布倒懸. 公披髮鶴立于其上, 臨風高詠, 聲徹雲際, 詠罷引筆大書巖石之上. 此時見公之襟抱飄洒, 氣調淸越, 風塵外物也. 盖其心泊然, 於世間事, 無一掛意, 而所嗜者詩耳. 此其詩之所以工, 而余之所取於公者, 不特以詩也. 凡山水琴酒之樂, 未甞不與之同, 而當其形忘意得, 毫視萬物, 亦未甞不與之同其趣也.
최승태의 유고를 남기게 된 과정
壬戌余有日本之役, 公爲燕市之遊, 及其後先還國, 而公竟以病死. 嗚呼! 自公之逝, 于今二十餘年, 友朋相識零落殆盡, 平生酒壚, 有邈若山河之歎, 悲夫. 今年春, 從其子世衍覔其遺藁. 遂自抄選, 得若干首以遺之, 俾藏于家焉.
가난한 위항인의 시가 특별한 이유
或者曰: ‘詩能窮人’, 崔子之窮, 以詩工耳, 詩不可爲也. 夫人之窮達, 有命在天, 豈係於詩之工不工耶? 見今世之不爲詩而窮者何限, 窮等耳, 寧詩. 彼生爲守錢虜, 死尸未冷而名已滅者, 亦何足道哉.
或又謂: ‘楊子雲祿位容㒵不能動人, 未免有覆瓿之譏. 今崔子委巷士, 詩雖工, 孰肎爲之傳也?’ 此尤不然, 『詩』三百篇, 大抵多婦人孺子之作而夫子述之. 人苟有之, 不患不傳, 第患其不能子雲耳. 吾知斯集後有具眼者見之, 其將曰: ‘必傳’無疑也.
噫世道溷濁, 文塲荊棘, 卽無論閭巷, 至於大夫之間, 罕聞有詩, 此今日詩道之幾乎亡矣. 余於是益歎公詩之不可復得, 而倂記其所感於中者, 以爲序. 歲在旃蒙作噩姑洗之月, 南陽洪世泰序. 『雪蕉遺稿』
해석
시는 천기로 짓기에 작은 기술이 아니다
詩者一小技也.
시라는 것은 하나의 작은 기술에 불과하다.
然非脫略名利,
그러나 명성과 이끗을 벗어나 다스리지 않고,
無所累於心者, 不能也.
마음에 쌓인 것이 없으면 지을 수가 없다.
蒙莊氏有言曰: “嗜欲深者其天機淺.”
그래서 장자【蒙莊: 蒙縣의 漆園吏를 지낸 莊周를 가리킨다.】도 “욕망이 깊은 이는 천기가 얕다.”라고 말【옛적의 진인은 자면서 꿈꾸지 않고 깨어선 근심하지 않았으며, 맛을 달게 여기지 않고, 숨은 길고도 길었다. 진인의 숨은 발꿈치까지 닿지만, 대중의 숨은 목구멍에만 미친다. 굴복하는 사람은 목구멍으로 말을 함이 옹알이하는 것 같고, 욕망이 깊은 이는 천기가 얕다[古之真人, 其寢不夢, 其覺無憂, 其食不甘, 其息深深. 真人之息以踵, 衆人之息以喉, 屈服者, 其嗌言若哇, 其耆欲深者, 其天機淺. 『莊子』, 「大宗師」]】을 하였다.
歷觀自古以來工詩之士,
두루 예로부터 이래로 시를 잘 짓는 사람을 살펴보니,
多出於山林草澤之下,
대부분 산림이나 풀이나 연못에 은둔하는 이들에게서 나왔지,
而富貴勢利者未必有焉.
부귀하거나 권세 있고 이끗을 따르는 이라고 해서 반드시 잘 지은 것은 아니었다.
以此觀之, 詩固不可小,
이로써 보자면 시는 본디 작은 기술이 아니며,
而其人亦可以知之矣.
시를 잘 짓는 사람 또한 알 만하다.
최승태와의 인연과 그의 시적 기상
雪蕉崔子紹氏, 家傳詩學, 擩染旣深,
설초 최자소【崔承太(?∼1684): 조선 후기의 위항 시인이다. 자 子紹, 호 雪蕉임. 崔奇男의 아들로 형조와 승문원의 아전으로 다녔으며, 洛社의 동인으로 활약함. 1682년 북경을 다녀왔으며, 『雪蕉遺稿』를 남김.】는 집에서 전해오는 시학에 영향을 받음이 이미 깊었고,
而其天才實奇逸絶塵.
그의 하늘이 내린 재주는 실제로 기이하고 방일하며 탈세적이었다.
初師太白,
초반엔 이태백을 스승 삼았고,
晩好雪樓七子, 歌行長篇,
만년엔 설루칠자의 가행과 장편을 좋아했으며,
才格翩然, 有俊發騰踔之氣.
재주와 격조가 뛰어나 재기가 발출되고 고원한 기상이 있었다.
余少時甞從公遊三角山之香林寺,
나는 어려서부터 일찍이 공을 따라 삼각산 향림사에서 노닐었는데,
寺在嶽頂, 峭壁千仞, 瀑布倒懸.
절은 산 정상에 있어 가파른 절벽이 천인이나 되는 곳엔, 폭포가 거꾸로 달려 있었다.
公披髮鶴立于其上, 臨風高詠,
공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학 자세로 그 위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높이 읊으니
聲徹雲際, 詠罷引筆大書巖石之上.
소리가 구름의 뚫는 듯했고 읊기를 마치면 붓을 잡고선 바위 위에 대서특필했다.
此時見公之襟抱飄洒,
이때에 공의 포부는 맑고도 깊었으며
氣調淸越, 風塵外物也.
기상은 청명하고 우월하여 세속의 때를 도외시했다.
盖其心泊然, 於世間事,
대저 그 마음에 욕심이 없어 세상사에
無一掛意, 而所嗜者詩耳.
조금도 괘념치 않았고, 즐기는 것은 시뿐이었다.
此其詩之所以工,
이것이 공의 시가 공교해진 까닭이지만
而余之所取於公者, 不特以詩也.
나는 공에게 배운 것이 다만 시 뿐만이 아니었다.
凡山水琴酒之樂, 未甞不與之同,
무릇 산과 물, 비파와 술의 즐거움을 일찍이 함께 같이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而當其形忘意得, 毫視萬物,
몸이 사라지고 뜻이 얻어짐에 이르러선 붓으로 만물을 보임에
亦未甞不與之同其趣也.
또한 일찍이 함께 뜻을 같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① | ② |
몸이 사라지고 뜻이 얻어짐에 이르러선 붓으로 만물을 보임에 또한 일찍이 함께 뜻을 같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형체에 당하여선 득의함을 잊어버려 털끝 같이 만물을 하찮게 보았으니, 또한 일찍이 그런 취향을 함께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
뜻에 따라 시로 풀어내는 표현능력 | 세상을 하찮게 보는 탈세의 기상 |
최승태의 유고를 남기게 된 과정
壬戌余有日本之役, 公爲燕市之遊,
임술(1682)년에 나는 일본에 사신으로 갔고, 공은 연경에서 노닐가,
及其後先還國, 而公竟以病死.
내가 좀 더 늦게 귀국하였는데, 공은 마침내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었다.
嗚呼! 自公之逝, 于今二十餘年, 友朋相識零落殆盡,
아! 공이 돌아가심으로부터 20여년이 흘러 서로 알던 벗들은 영락하여 거의 사라졌고,
平生酒壚, 有邈若山河之歎, 悲夫.
평생 술잔을 놓던 상이 아득한 듯하나 마치 산과 물은 탄식 같으니, 슬프구나!
今年春, 從其子世衍覔其遺藁.
금년 봄에 그의 아들 세연을 따라가 그의 유고를 찾아냈다.
遂自抄選, 得若干首以遺之, 俾藏于家焉.
마침내 스스로 좋은 작품을 선별하여 약간 수를 얻어 보내 집에 보관하게 하였다.
가난한 위항인의 시가 특별한 이유
或者曰: ‘詩能窮人’,
어떤 이는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라고 하던데,
崔子之窮, 以詩工耳, 詩不可爲也.
최자의 곤궁함은 시를 공교하게 했을 뿐, 시가 그리한 건 아니다.
夫人之窮達, 有命在天,
무릇 사람의 곤궁함과 영달은 운명으로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지,
豈係於詩之工不工耶?
어찌 시가 공교하느냐, 공교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단 말인가?
見今世之不爲詩而窮者何限,
지금 세상을 보니 시를 짓지 못하면서 곤궁한 이는 얼마나 많은가.
窮等耳, 寧詩.
그래서 곤궁할 뿐이니, 어찌 시를 지으랴.
彼生爲守錢虜, 死尸未冷而名已滅者,
저들은 살아선 수전노가 되었다가 죽어선 시신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이름이 이미 사라진 자들이니,
亦何足道哉.
또한 어찌 말할 만하겠는가.
或又謂: ‘楊子雲祿位容㒵不能動人,
어떤 이는 또한 ‘양자운은 녹봉과 지위와 용모가 사람을 움직이지 못했고
未免有覆瓿之譏.
그가 지은 『태현경』이 장독대의 뚜껑이 되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今崔子委巷士, 詩雖工,
그런데 지금의 최자는 위항인으로 시가 비록 공교하나
孰肎爲之傳也?’
누가 기꺼이 그걸 전하려 하겠느냐?’라고 말한다.
此尤不然, 『詩』三百篇,
이것은 더욱 그렇지 않으니, 『시경』 300편은
大抵多婦人孺子之作而夫子述之.
대저 아녀자의 작품이 많은데 부자께서 그것을 기록하셨다.
人苟有之, 不患不傳,
그러니 사람은 진실로 시가 전해지지 않음을 근심치 말고,
第患其不能子雲耳.
다만 자운처럼 할 수 없음을 근심할 뿐이다.
吾知斯集後有具眼者見之,
나는 아노니, 이 시집이 훗날 안목을 갖춘 자가 그것을 보고서
其將曰: ‘必傳無疑’也.
‘반드시 전해야 하니, 의심하지 마라’라고 할 것이다.
噫世道溷濁, 文塲荊棘, 卽無論閭巷,
아! 세도가 혼탁하고 문장 짓는 것이 괴로워 곧 여항은 논할 것도 없이
至於大夫之間, 罕聞有詩,
대부의 사이에 이르러서도 ‘좋은 시가 있다’라는 말이 드물게 들리니,
此今日詩道之幾乎亡矣.
이것은 오늘날에 시도가 위태로워진 것이다.
余於是益歎公詩之不可復得,
나는 이에 더욱 공의 시를 다시 얻지 못함을 탄식하며
而倂記其所感於中者, 以爲序.
심중에서 느낀 것을 아울러 기록하며 서문을 쓴다.
歲在旃蒙作噩姑洗之月, 南陽洪世泰序. 『雪蕉遺稿』
세 전몽작악 고세의 달【旃蒙: 古甲子의 十干 가운데 乙을 가리킴.】에 남양 홍세태가 쓴다.
| 시? | 재능 | 논의 |
선비들이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펼 수 없게 되면 기괴함을 탐색하며 원망과 한탄이 나옴. |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만드는 건 아님. 곤궁해져야만 시가 공교해짐. | 매성유의 시가 좋다는 평판이 자자함 → 시를 그에게 배우려는 마음도 있음 → 하지만 그를 조정에 천거하는 사람은 없음. | |
| | ‘시능궁인’이 맞기도 하나, ‘시능달인’이기도 함 → 하지만 중요한 건 窮達이 아닌 후대까지 전해지느냐이기에 서문을 씀. | |
사물을 모방하고 귀신의 정신을 빼앗기에 조물주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 성정이 발현된 것. 시적 재능은 하늘이 부여해준 것으로 빼앗지 못한다. | ‘시능궁인’이란 논의는 얼핏 보면 맞는 것처럼 보임 → 그러나 시적 재능은 하늘이 부여해준 것임 → 그러니 주어진 재주를 받아들이고 운명을 즐기면 됨. | |
성정의 은미함을 드러내고 조화의 오묘함을 캐내는 것. | 작은 재주지만, 하늘이 부여해준 것으로 사람을 영달케 해준다. | 시란 작은 재주이지만 하늘이 부여준 것으로 사람을 영달하게 만들어준다 → 그러니 한 때의 榮達로 볼 게 아니라, 만세토록 榮達하느냐를 기준으로 봐야 함. | |
시는 천기에 의해 지어지는 것으로 작은 재주가 아니다. | 명예와 이익을 벗어나 天機를 간직한 자가 지을 수 있음. | ‘시능궁인’은 맞지 않고 최자소는 곤궁함으로 시가 공교해졌다 → 위항인의 시는 정감이 담긴 것으로 『시경』과 같은 취지를 담고 있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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