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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 자한 - 16. 공자, 물을 예찬하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 자한 - 16. 공자, 물을 예찬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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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공자, 물을 예찬하다

 

 

子在川上, :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 音扶. , 上聲.

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然其可指而易見者, 莫如川流. 故於此發以示人, 欲學者時時省察, 而無毫髮之間斷也.

程子: “此道體也. 天運而不已, 日往則月來, 寒往則暑來, 水流而不息, 物生而不窮, 皆與道爲體, 運乎晝夜, 未嘗已也. 是以君子法之, 自强不息. 及其至也, 純亦不已.”

又曰: “以來, 儒者皆不識此義. 此見聖人之心, 純亦不已也. 純亦不已, 乃天德也. 有天德, 便可語王道, 其要只在謹獨.”

愚按: 自此至篇終, 皆勉人進學不已之辭.

鄭玄曰: “, 往也. 言人年往如水之流行, 傷有道而不見用也.”

 

 

 

 

 

 

해석

子在川上, :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께서 시냇가에 서계시다가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그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 音扶. , 上聲.

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천지의 조화는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이 이어져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한 순간도 멈추질 않으니 이게 바로 도체(道體)의 본연이다.

 

然其可指而易見者, 莫如川流.

그러나 가리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시냇물의 흐름 만한 게 없다.

 

故於此發以示人,

그러니 여기에서 발언하여 사람에게 보여줬으니,

 

欲學者時時省察, 而無毫髮之間斷也.

배우려 하는 사람은 늘 성찰하여 잠깐이라도 쉼이 없도록 하라.

 

程子: “此道體也.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이것은 도체(道體).

 

天運而不已, 日往則月來,

하늘의 운행이 그치지 않아 해가 가면 달이 나오고,

 

寒往則暑來, 水流而不息,

추위가 가면 더위가 나오며 물의 흐름이 쉬지 않아

 

物生而不窮, 皆與道爲體,

만물이 남이 무궁하여 모두 도()와 일체가 되어

 

運乎晝夜, 未嘗已也.

밤낮으로 운행하여 일찍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是以君子法之, 自强不息.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자강불식하니

 

及其至也, 純亦不已.”

지극함에 이름엔 순순함이 또한 그침이 없다.”

 

又曰: “以來, 儒者皆不識此義.

또한 말했다. “한나라부터 이후로 유자들은 모두 이 뜻을 알지 못했다.

 

此見聖人之心, 純亦不已也.

여기서 성인의 마음이 순수하여 그침이 없음을 보니,

 

純亦不已, 乃天德也.

순수하여 그침이 없는 것은 곧 천덕(天德)이다.

 

有天德, 便可語王道,

천덕(天德)이 있어야 곧 왕도를 말할 수 있으니,

 

其要只在謹獨.”

그 요체는 다만 신독(愼獨)이다.”

 

愚按: 自此至篇終,

내가 생각하기로 여기서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는

 

皆勉人進學不已之辭.

모두 사람을 권면하여 배움에 나아감에 그치지 말라는 뜻이다.

 

鄭玄曰: “, 往也.

정현이 말했다. “()는 간다는 것이다.

 

言人年往如水之流行,

사람의 삶이 흘러가는 게 물이 흐르는 것과 같으니

 

傷有道而不見用也.”

도가 있지만 등용되지 못함을 속상했다는 말이다.”

 

가슴이 뭉클하다. ‘논어’ ‘자한(子罕)’편의 이 장()을 읽으면 냇가에서 사색에 잠긴 노수(魯叟, 노나라 노인 공자)를 만날 것만 같다. 천상(川上)은 냇물 위가 아니라 냇가를 말한다. 장소를 가리키는 말 뒤의 상()은 그 언저리라는 뜻을 지닌다. 서자(逝者)의 서()는 어떤 곳을 향해 간다는 말이다. 여사부(如斯夫)의 사()는 이 차()와 같아서, 공자가 바라보는 이 냇물을 가리킨다. 구절 끝의 부()는 감탄 종결사이다. ()는 그쳐 쉼, 지식(止息)이다. 불사주야(不舍晝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자(逝者)의 함의(含意)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맹자는 근원 있는 샘물을 가리키고, 그것은 또 학문에 근본이 있는 자를 비유한다고 보았다. 곧 맹자는 이루에서 근원 있는 샘물은 위로 퐁퐁 솟아 나와 아래로 흐르면서 밤낮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파인 구덩이들을 모두 채우고 난 뒤에야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사방의 바다에 이르게 된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고 하여 영과(盈科, 구덩이를 채우다)의 취지로 풀이했다.

이에 비해 동진의 학자는 서자(逝者)란 세월의 흐름을 말하며, 시대가 쇠퇴해서 도()가 일어나지 않자 공자가 근심한 것이라고 여겼다. 송나라의 정이와 주희는 천지화생(天地化生)의 기틀과 천제건행(天體健行)의 운행이 밤낮으로 쉬지 않음을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정약용은 우리의 생명이 간단(間斷)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환기시킨 말이라고 해석했다. 특이하게도 조선 말기의 이유원(李裕元)은 공자의 이 말에 삶의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여겼다.

이 장()은 천상지탄(川上之嘆)이라는 성어로도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공자가 냇물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無常)함을 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간단(間斷) 없는 정진(精進)을 연상하여 탄식한 것이 아니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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