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관리들을 경계한 유몽인의 한시
貧女鳴梭淚滿腮 | 가난한 계집이 베 짜면서, 눈물이 뺨에 가득하니, |
寒衣初欲爲郞裁 | 겨울옷 처음에 생각할 땐 낭군을 위해 만들려 했었는데, |
朝來裂與催租吏 | 아침에 와서 세금을 재촉하는 아전에게 찢어서 줬는데, |
一吏纔歸一吏來 | 한 아전이 겨우 돌아가니 다른 한 아전이 오는구나. |
『소화시평』 권하 4번의 여섯 번째 소개된 유몽인의 시는 읽는 순간에 최치원의 「강남녀(江南女)」가 절로 떠올랐다. 60~70년대 우리나라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무수한 시골 남녀들이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올라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장 말단에서 미싱을 돌리며 옷을 만들고 막노동판에서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들의 피와 땀, 그리고 밤잠 못 자가며 일했던 끈기 덕에 우리는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노력은 그들의 성과가 되지 못했다. 사장이 호위호식하고 권력자들이 낚아챘으며 대통령이 착취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태일 같은 사람이 나와 “근무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도 그런 정서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하루 종일 베를 짠다. 추위에 떨 낭군을 생각하며 옷을 짜지만 세금을 독촉하는 관리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세금 대신 비단 반절을 공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막막한 현실에 가슴 시리기만 한데, 4구에선 아예 ‘그조차도 행복했던 게지.’라는 자조적인 느낌이 물씬 든다. 세금을 받은 아전이 겨우 갔는데, 그걸 알기라도 한다는 듯 다른 아전이 와서 세금을 독촉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없는 이에게 더 가혹한 정치, 그래서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라고 할 정도인데 이 시에선 그런 정서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다.
홍만종은 이 시야말로 만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니 섭이중의 시를 예로 들며 ‘이런 시는 시경의 정신에 딱 맞아 떨어진다’는 중국인들의 평가를 게재하며 유몽인의 시 또한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말하니 말이다. 아마도 홍만종 시대에도 유몽인이 시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상황은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긴 그때 이후로 더 많은 시기가 흐른 지금도 유몽인의 시가 결코 ‘과거의 이야기’ 정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조선이나 한국이나 전혀 다르지 않은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최저시급이 1만원 가까이 올라 경제가 휘청이고 자영업자들이 도산하고 있다고 말하는 상황과 무엇 하나 다른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몽인의 시는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는 시다.
하권 4번 | |
禁中東池新竹 | 登鐵嶺 |
임금에게 | |
放鴈 | 臥水木橋 |
욕심을 따르는 무리에게 | |
十月望後雨 | 襄陽途中 |
목민관에게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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