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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를 읽다 - 11. 풍경 속의 시인 본문

책/한시(漢詩)

우리 한시를 읽다 - 11. 풍경 속의 시인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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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풍경 속의 시인

 

 

시인이 시속으로 들어가거나 풍경만 묘사하거나

 

 

1. 서경시(敍景詩)

1) 감정은 배제하고 맑은 산과 나무만 포치(布置)한 시.

2) 서경시엔 인간세상의 티끌이 없어 이런 시를 읽으면 한여름 시원한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시원해짐.

 

 

2. 이숭인(李崇仁)제승사(題僧舍)

山北山南細路分 산은 여기저기에 있고 오솔길 나눠지는데
松花含雨落繽粉 송홧가루 비에 젖어 하늘하늘 진다.
道人汲井歸茅舍 스님 우물에서 물 길어 절로 돌아가고
一帶靑烟染白雲 한 줄기 푸른 안개 흰 구름을 물들이네.

 

1) 이 시는 그림을 보고 지은 것으로,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부(文章部)엔 이 시를 보고 스승 이색이 칭찬하여 명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음.

2) 검은 옷을 입은 승려가 시에 등장하지만, 사람이 아닌 풍경으로만 존재하고 있음.

 

 

3. 정도전(鄭道傳)방김거사(訪金居士)

秋陰漠漠四山空 가을 그늘 어둑침침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落葉無聲滿地紅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에 온 산 붉구나.
立馬橋頭問歸路 말 다리머리에 세워두고 돌아가는 길 묻자니,
不知身在畵圖中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1) 이숭인(李崇仁)정도전(鄭道傳)오호도(嗚呼島)란 시로 인한 일화를 통해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는 걸 알 수 있음.

2) 서거정은 동인시화(東人詩話)상권 31에서 이숭인을 창신하면서도 예스러운 사람이라 평했고, 정도전을 호탕하고 분방하여 꾸미지 않았다[李淸新高古, 而乏雄渾; 鄭豪逸奔放, 而少鍛鍊].’고 평함.

3) 서거정은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1에서 이숭인ㆍ정도전ㆍ권근 세 명을 언급하며 세 사람의 성격 차이를 명확히 드러냄.

4) 1구에서 스산한 바람소리가 들리지만 2구에선 무성(無聲)이라 하여 소리를 잠재움.

5) 3구에 시인이 뛰어들어 그림의 일부가 됨.

6) 4구의 소감은 군더더기로 시적 여운과 흥감을 감쇄시켜 3구에서 애써 그림 속으로 들어간 자기를 그림 밖으로 몰아내버리는 사족에 불과함.

 

 

4. 서거정(徐居正)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1에 등장한 정도전, 이숭인, 권근의 묘사

 

정도전, 이숭인, 권근이 평생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도전이 말했다. “북방에 눈이 막 휘날릴 때 가죽옷을 입고 준마에 올라타서 누런 사냥개를 끌고 푸른 사냥매를 팔뚝에 얹은 채 들판을 달리면서 사냥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소.” 이숭인이 이렇게 말했다. “산속 조용한 방 안 밝은 창가에서 정갈한 탁자에 향을 피우고 스님과 차를 끓이면서 함께 시를 짓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라오.” 권근은 이렇게 말했다. “흰 구름이 뜰에 가득하고 붉은 햇살이 창에 비칠 때 따스한 온돌방에서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끼고서 책 한 권을 들고 편안히 누워 있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부드러운 손으로 수를 놓다가 가끔 바느질을 멈추고 밤을 구워서 입에 넣어주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겠지요.”

三峯鄭先生陶隱李先生陽村權先生相與論平生自樂處.

三峯曰: “朔雪初飛, 貂裘駿馬, 牽黃臂蒼, 馳獵平蕪, 此足樂也.” 陶隱曰: “山房靜室, 明窓靜几, 焚香對僧, 煮茶聯句, 此足樂也.” 陽村曰: “白雪滿庭, 紅日照窓, 燠室溫堗, 圍屛擁爐, 手執一卷, 大臥其間, 美人纖手刺繡, 時復停針, 燒栗啖之, 此足樂也.”

 

 

5. 이용휴(李用休)방산가(訪山家)

松林穿盡路三丫 소나무 숲길 지나니 세 갈래 갈림길
立馬坡邊訪李家 언덕에 말 세우고 이가네 집 찾아가네.
田父擧鋤東北指 밭일하던 할아버지 호미 들고 동북쪽을 가리키니,
鵲巢村裏露榴花 까치 둥지 있는 마을, 석류꽃 보이는 집.

 

1) 벗의 집을 찾아가다 길이 헛갈려 농부에게 물어보고 그 집을 확인하는 장면이 묘사됨.

2) 시인의 번다한 말 대신, 붉게 핀 석류꽃을 보여줘 잔상을 남김.

3) 시인은 풍경의 귀퉁이에 선 존재로 석류꽃, 까치집, 농부보다 크지 않음.

 

 

 

묘사하는 이숭인, 시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전

 

 

1. 이숭인(李崇仁)촌가(村家)

赤葉明村逕 淸泉漱石根 붉은 잎사귀가 시골길 밝히고 맑은 샘 바위 뿌리를 씻기누나.
地僻車馬少 山氣自黃昏 땅은 궁벽져 수레와 말 없고, 산기운은 절로 어슴푸레하네.

 

1) 작은 붓으로 자신이 사는 집을 맑게 그려 시인의 모습을 철저히 격리시킴.

2) 시인의 모습은 철저하게 풍경과 격리되어 있어 보이지 않음.

 

 

2. 정도전(鄭道傳)산중(山中)

山中新病起 稚子道衰客 산속에서 새로운 병이 생기니 어린 아이 나보고 쇠하였다고 말하네.
學圃親鋤藥 移家手種松 채마밭 기술을 배워 친히 호미질하고 약치고 집을 옮겨 손수 소나무 심었지.
暮鐘何處寺 野火隔林舂 저물녘 종소리 울리니 어느 절인가? 들풀은 수풀 너머에서 활활 타오르네.
領得幽居味 年來萬事慵 은거하는 맛을 깨달았으니, 올핸 만사가 귀찮기만 하구나.

 

1) 혁명의 불꽃이 일기 전의 작품으로 은자의 모습이 그려짐.

2) ‘대숲을 보호하려 길을 둘러 내었고, 산을 아껴 누각을 작게 세웠다[護竹開迂徑 憐山起小樓]’라는 구절을 통해서는 자신의 모습을 풍경의 중심에 놓아 은자일 때나 득세했을 때나 자신이 그린 풍경의 주인공이 되려함을 볼 수 있음.

 

 

3. 정도전(鄭道傳)철령(鐵嶺)

鐵嶺山高似劍鋩 철령의 산은 높아 마치 칼끝 같고,
海天東望正茫茫 하늘 저편 해동을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하네.
秋風特地吹雙鬢 가을바람이 다만 땅에서 두 귀밑머리에 불어오니,
驅馬今朝到朔方 말 몰아 오늘 아침에 북방에 이르렀지.

 

1) 혁명의 꿈을 꾼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긴 창을 든 무장의 모습이 강하게 비침.

2) 고산준령과 망망대해는 정도전의 기상을 드러내는 아우라로 존재함.

 

 

4. 정도전(鄭道傳)봉천문(奉天門)

春隨細雨渡天津 봄은 가랑비 따라 천진교를 건너서 오고,
太液池邊柳色新 태액지 가의 버들빛 싱그럽다.
滿帽宮花霑錫宴 사모에 궁화를 가득 꽂고 내려주신 잔치에 참가했더니,
金吾不問醉歸人 호위도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검문하지 않네.

 

1) 혁명 완수 후 높은 벼슬을 받아 명에 들렸을 때 지은 시로 호기로움이 느껴짐.

2) 자신의 처지는 쉴 새 없이 바뀌었지만 작품 속에 스스로를 던져 중심이 되도록 했다는 점에선 같음.

3) 풍경의 주인공으로 거나하게 술에 취해 궁궐문을 나서고 있음.

 

 

5. 이숭인(李崇仁)호종성남(扈從城南)

郊甸秋成早 君王玉趾臨 교외의 가을걷이 이른데, 군왕은 옥 같은 발걸음으로 임하셨네.
觀魚前事陋 講武睿謨深 물고기 구경하던 옛 일은 비루한 일이지만, 군사훈련하던 슬기로운 꾀는 깊기만 하네.
鼓角滄江動 旌旗白日陰 북 두드리고 나팔 부니 푸른 강 움직이고 깃발 나부껴 환한 해 떴음에도 그늘졌다.
詞臣多侍從 會見獻虞箴 글 쓰는 신하들 많이 모시며 따랐으니 마침내 군왕께 경계하는 글 드리겠지.

 

1) 이숭인이 정도전보다 관각시에 능했음.

2) 정도전의 조카 황현이 이 시를 보고 맑고 부드러워 당시(唐詩) 같다고 평했고, 정도전에게 보여주자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동인시화(東人詩話)상권 51에 실려 있음.

3) 이러한 시는 자신이 모습이 드러나야 하는 정도전의 스타일이 아님. 글 잘하는 신하들 틈에 이숭인이 끼어 있겠지만, 이숭인은 자신의 모습을 전혀 드러내려 하지 않음.

 

 

 

 

인용

목차

한시사 / 略史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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