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탄탈로스의 갈증
고전문학사(古典詩學史)를 통해 볼 때,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는 뚜렷한 하나의 시론이라기보다는 시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각기 자기의 입장에 따른 찬반이 덧붙어 그 논의의 양상은 자못 흥미롭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논의는 서정이라는 문학 본래의 기능에 대한 다른 측면에서의 접근이다. 시는 궁한 뒤에 좋다는 명제는 예외를 인정치 않는 사실 명제도 아니고, 의당 그래야만 할 당위명제도 아니다. 이것의 진리값을 놓고 역대로 많은 논란이 있어 온 것은 당연하다.
불평즉명(不平則鳴)ㆍ발분서정(發憤抒情)ㆍ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등의 논의는 궁극적으로 동일성(Identity)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동일성은 ‘자기 자신을 자기자신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즉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적 관념적 자아와 실제의 자아 사이에 아무런 편차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궁(窮)의 상황이 가져다 준 실의나 좌절감은 시인의 내부에 그렇지 않았던 상태와의 괴리감을 인식시킨다. 이는 결국 시인 내부의 마땅히 그리 되어야 할 규범으로서의 자아와, 그렇지 못한 현실의 자아 사이의 괴리감에 대한 인식이다.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활동을 크게는 이러한 인간 내부의 두 개의 자아를 일치시켜 나가려는 몸짓으로 볼 수 있다면, 궁(窮)의 상황은 보다 나은 예술 작품의 창조를 위한 충분조건이 된다.
회재불우(懷才不遇), 즉 재주를 품고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니 여기에서 갈등이 생기고, 이 갈등을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 대상에 투사하여 해결하려고 했다. 결과로 얻은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공(工)이라는 평가요, 자신의 입장에서는 항구적일 수는 없으나 동일성의 상태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다는 위안이다. 상실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회복에의 갈망도 커지는 것이니, 동일성의 추구란 현실과 자아, 혹은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에 형성된 파국적 관계를 청산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호적(胡適)은 그의 『백화문학사(白話文學史)』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잠(陶潛)과 두보(杜甫)는 해학적 풍취가 있는 사람들로, 궁하고 쓰라린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코 풍취(風趣)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우스운 소리도 하고 통속적인 자유시를 쓰는 풍취를 지녔기 때문에 비록 궁핍하고 배고픈 가운데서도 발광하지 않았으며 타락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궁(窮)하되 그 궁(窮) 속에 침몰해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결코 풍취(風趣)를 포기하지 않는 독립불구(獨立不懼)의 정신, 시(詩)의 공(工)은 이러한 정신 안에서만이 보장된다. 시인은 탄탈로스와도 같은 존재다. 맛있는 음식과 샘물을 두고도 영원한 갈증과 갈망 속에서 헤매인다는 탄탈로스(Tántalos). 시인은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인용
3. 시궁이후공과 시능궁인
7. 탄탈로스의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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