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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전경원, 향랑고사를 수용한 한시의 의미 - 3. 향랑고사 수용 한시와 가족제도, 2) 개가(改嫁)의 불가피성 옹호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전경원, 향랑고사를 수용한 한시의 의미 - 3. 향랑고사 수용 한시와 가족제도, 2) 개가(改嫁)의 불가피성 옹호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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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가(改嫁)의 불가피성 옹호

 

 

최성대의 산유화여가(山有花女歌)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이광정의 경우와는 다른 시각에서 향랑 사건을 형상화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이광정이 한시를 통해 가족제도를 인식하고 형상화한 방식은 ()’이라는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유교적 이념 구현을 목표로 삼았던 반면에 최성대는 110 행으로 구성된 장편 서사한시를 통해 향랑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바탕으로 삼았으되, 낭만적인 상상력을 기초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개가(改嫁)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같은 점이 다른 여타의 작품들과 구분될 수 있는 특징이다.

 

阿叔語香娘 阿女勿悲啼 삼촌이 향랑에게 말하기를 얘야, 슬피 울지 말거라
濛濛黃臺葛 亦蔓黃臺西 저 수북한 언덕의 칡들도 덩굴져 언덕 서쪽으로도 향한단다
香娘語阿叔 妾身不可辱 향랑이 삼촌에게 말하기를 제 몸을 욕되게 할 순 없지요
靑靑水中蘭 葉死心猶馥 푸르고 푸른 물 속의 난초는 잎은 죽어도 마음은 외려 향기롭지요
天地高且廣 道儂那所適 하늘과 땅은 높고도 넓은데 나는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崔成大, ‘山有花女歌’, 73-82, 杜機詩集卷一.

 

인용한 부분은 시댁에서 쫓겨난 향랑이 친정에서도 있을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삼촌 댁에 의탁하였는데, 당시 삼촌과 향랑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여기서 삼촌은 향랑에게 개가(改嫁)’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은근한 어조로 권유한다.

 

다른 작품에서는 이 부분을 삼촌의 직설적인 말하기 방식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음에 반해 최성대는 다분히 낭만적이며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공통된 사실은 개가(改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삼촌이 향랑에게 개가를 권유하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광정, 薌娘謠

爲言汝是農家子 말씀하시기를, “너는 농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見棄惟當去從他 버림을 받았으면 마땅히 다른 데로 시집 가야지
四鄰皆知汝無罪 모든 사람들이 네 죄 없는 것을 다 아는데
胡乃虛老如花容 어찌 이리 부질없이 꽃다운 얼굴로 늙어가겠니? 李光庭, ‘香娘謠’, 27-30, 訥隱先生文集卷一.

 

이덕무, 香娘詩 幷序

叔父曰汝夫 棄汝不復顧 삼촌이 말하기를 너의 남편이 너를 버리곤 다시 돌보지 않는구나
汝家父與母 拒汝不憐汝 너의 친정집 부모들조차도 너를 거부하며 가엾게 여기질 않는구나
吾雖親叔父 不堪留侄女 내가 비록 너의 친삼촌이지만 조카딸이라고 머물게 할 수만은 없구나
少年作棄婦 不如歸他人 어린 나이에 버려진 아낙네가 되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만 못하단다. 李德懋, ‘香娘詩’, 59-66, 靑莊館全書卷二.

 

그런데 이에 대한 향랑의 대답은, “제 몸을 욕되게 할 순 없지요/ 푸르디 푸른 물 속의 난초는/ 잎은 죽어도 마음은 외려 향기롭지요[妾身不可辱/靑靑水中蘭/葉死心猶馥]”라는 표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같은 표현을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당시의 개가금지(改嫁禁止)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규범이 당대 사회에서 얼마나 강력한 강박관념으로 작용했는지는 향랑의, “제 몸을 욕되게 할 순 없지요[妾身不可辱]”라는 언급을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고서 개가를 권유하는 삼촌의 말에 개가(改嫁)가 욕()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만 보더라도 한 사회의 그릇된 이념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질곡에 빠뜨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하튼 이 계열에 속한 작품군에서는 불가피한 경우에 처해진 경우 개가(改嫁)’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시각을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용

목차 / 지도

1. 서론

2. 향랑의 죽음과 가족 제도

3. 향랑 고사를 수용한 한시와 가족제도

3.1. 유교적 열이념의 강조

3.2. 개가의 불가피성 옹호

3.3. 각박한 인정세태 고발

3.4. 질곡된 가족제도 비판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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