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랑(香娘)고사를 수용한 한시(漢詩)의 의미
전경원(전통문화연구회 상임연구위원, 건국대 강사)
1. 서론
사회는 언제나 규범과 욕망 사이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조화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끊임없이 만들어간다. 욕망과 규범에는 자연(自然)과 인위(人爲)의 법칙이 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준거들이 지향해야 할 당위는 대동(大同)과 상생(相生)의 원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 힘겹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고단한 현실 가운데서도 규범과 욕망이 과연 우리의 삶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하여 성찰해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많은 규범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가 만든 규범에 의해 우리의 인간다운 삶이 파괴되거나 질곡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완전할 수 없기에 그러한 인간이 만든 규범 또한 최고의 선을 지향할 뿐이지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향랑(香娘)’과 관련된 사건 역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규범에 대한 냉엄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향랑(香娘)’ 사건은 1702년(숙종 28년) 9월 6일, 경상북도 선산군【당시의 지명(地名)으로는 ‘일선(一善)’府에 해당한다.】에서 발생한 향랑이라는 아낙네의 죽음에 관한 사건이었다【사건의 개요는 대략 다음과 같다. 향랑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유순하고 품행이 방정하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부덕한 계모 밑에서 성장하였으나 항상 공손하고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향랑이 나이 17세 되던 해에 임칠봉이라는 세 살 연하인 14세의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남편이 포악하게 굴자 처음에는 나이가 아직 어려서 그렇겠거니 하며 성장하기를 기다렸으나 나이를 먹을수록 학대가 더욱 심하였다. 시부모도 어찌할 수가 없어 20세 되던 해에 향랑은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계모는 한 번 출가한 자식이 어찌 다시 돌아오느냐며 계속 구박을 하여, 향랑은 어쩔 수 없이 숙부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숙부가 향랑을 개가시키려고 하자 향랑은 한 번 혼인한 여인은 개가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는 다시 시댁으로 가지만 남편과 시부모의 박대를 받게 된다. 결국은 자신의 몸을 의지할 데가 없어진 향랑은 자결을 결심하고는 낙동강 가에서 나무하러 온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죽음을 증거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여자 아이에게 「산유화」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고는 자결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당시 선산의 부사였던 조귀상(趙龜祥)이 이를 기록하여 남겼으며, 후대의 많은 문인들이 이 향랑사건을 토대로 많은 전(傳)【趙龜祥, 「香娘傳」,『善山邑誌』卷二, ‘善山人物條’. 成大中,『海叢』冬, 傳記類. / 李光庭, 「林烈婦薌娘傳」,『訥隱先生文集』, 卷二十. / 李安中, 「香娘傳」,『海叢』冬, 傳記類. / 李 鈺, 「尙娘傳」,『文無子文抄』金鑢,『藫庭叢書』, 卷十九.】과 한시(漢詩)【李光庭, ‘香娘謠’,『訥隱先生文集』卷一. / 金昌翕, ‘山有花三章’,『三淵集拾遺』卷一. / 申維翰, ‘山有花曲’,『靑泉集』卷二. / 崔成大, ‘山有花女歌’,『杜機詩集』卷一. / 李安中, ‘山有花’, ‘山有花曲’, 「丹邱子樂府」金鑢,『藫庭叢書』卷三十. / 李友信, ‘山有花’, 「竹莊散稿」金鑢,『藫庭叢書』卷一. / 李魯元, ‘山有花曲’, ‘山有花後曲’, 「栢月堂小稿」金鑢,『藫庭叢書』卷七. / 李德懋, ‘香娘詩’,『靑莊館全書』卷二. / 李學逵, ‘山有花’,『嶺南樂府』. / 李裕元, ‘山有花’,『林下筆記』卷八,『海東樂府』.】 작품을 남기게 된다.
현재까지 향랑 고사에 대한 연구는 운문과 산문의 두 분야로 나뉘어져 진행되어 왔다. 운문의 경우는 「산유화가(山有花歌)」의 연원과 전승과정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고, 산문의 경우는 한문 소설인 「삼한습유(三韓拾遺)」를 중심으로 향랑의 고사가 기록된 다양한 문헌의 영향 관계에 주목하는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
운문에 대한 연구 성과는 「산유화가」에 대한 문헌적 소개와 작품의 감상을 위주로 하고 있는 이재욱【이재욱, 「소위 山有花歌와 산유해, 미나리의 교섭」, 『신흥』1932. 6.】, 이종출【이종출, 「山有花歌 小考」, 『무애화탄기념논문집』, 1963. 2.】의 연구와 「산유화가」의 기원과 부여지방의 「산유화가」와 선산 지방의 「산유화가」의 관계와 그 전파 경로 등에 관하여 논의했던 조재훈【조재훈, 「山有花歌 硏究」, 『백제문화』7․8합집 (공주사대 부설 백제문화연구소, 1975).】의 성과, 그리고 다양한 지역의 「산유화가」를 비교 검토하여 현대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검토한 김영숙【김영숙, 「山有花歌의 樣相과 變貌」, 『민족문화논총』2,3집(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 1982).】, 구전되는 여러 지방의 노래를 채록하여 문헌 기록과의 비교를 통하여 「산유화가」의 기원을 살피고, 부여지방에서 불리는 「산유화가」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던 김균태【김균태, 「山有花歌 硏究」, 『한국판소리․고전문학연구』(아세아문화사, 1983).】의 연구가 있었다. 이 외에도 향랑 고사를 수용한 한시에 대한 연구로 이안중(李安中), 이우신(李友信), 이노원(李魯元) 등의 한시 작품인 일련의 「산유화가」를 소개․검토한 이가원【이가원, 「山有花小考」, 『아세아연구』18호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1965).】의 연구와 이광정(李光庭)과 최성대(崔成大)의 서사한시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현실을 남성의 시각으로 다룬 작품들에 대한 박혜숙【박혜숙, 「남성의 시각과 여성의 현실」, 『민족문학사연구』9호(민족문학사연구소, 1996).】의 연구가 있었다.
산문 분야의 연구 성과로는 초기에 김태준【김태준, 『조선소설사』(학예사, 1939), 166쪽.】이 『조선소설사』에서 「삼한습유(三韓拾遺)」에 대하여 언급한 이래로 김기동【김기동, 「三韓拾遺 연구」, 『국어국문학』25, (국어국문학회, 1962).】, 조태영【조태영, 『傳 양식의 발전 양상에 관한 연구』(서울대 석사논문, 1983).】, 이춘기【이춘기, 「香娘설화의 소설화 과정과 변이」, 『한양어문』(한양대 국어국문학과, 1986).】, 김균태【김균태, 『이옥의 문학이론과 작품세계의 연구』(창학사, 1986).】, 김 영【김 영, 「訥隱 李光庭 文學 硏究」(연세대학교 박사논문, 1987).】, 박옥빈【박옥빈, 「香娘故事의 文學的 演變」, (성균관대 한문학과 석사논문, 1982).】, 박교선【朴敎善, 「香娘傳記의 三韓拾遺로의 定着」(고려대 교육학석사논문, 1988).】, 박수진【박수진, 「香娘 故事 변용양상 연구」(계명대학교 교육학석사논문, 2000). 이 논문에서는 ‘香娘’ 고사를 토대로 한 최근까지의 연구성과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 바람.】 등의 성과가 마련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 논문에서는 기존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수용하되 향랑 고사를 수용한 한시 작품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한시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향랑 사건을 바라보는 사대부들의 현실 인식과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적 쉽게 드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2장에서는 실증적 측면에서 고찰하기 위해 당시의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제도사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향랑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본 후, 3장에서는 그 같은 향랑의 사건을 수용하는 사대부들의 현실인식과 태도가 한시 작품에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겠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통해 향랑의 고사를 수용한 한시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밝혀지리라 기대한다.
인용
1. 서론
3. 향랑 고사를 수용한 한시와 가족제도
3.1. 유교적 열이념의 강조
3.2. 개가의 불가피성 옹호
3.3. 각박한 인정세태 고발
3.4. 질곡된 가족제도 비판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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