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론
1. 호학 민족에게 도래한 혁신교육감 시대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求法僧)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論語』 「公冶長」].” 공자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인간됨의 특징을 ‘호학(好學)’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했다. 끊임없이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움 앞에 자신의 가슴을 열어놓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 도올은 묻겠다. 진실로 진실로 우리 한민족처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보냐?
▲ 올핸 1월 12일에 동섭쌤 강의로 배움의 문을 열었고 11월 29일 '아마추어 사회학' 종강으로 배움의 문을 닫았다. 열심히 배웠다.
호학의 민족사, 『팔만대장경』을 보라!
타카쿠스 쥰지로오(高楠順次郞, 1866~1945)가 세계 불교성전의 최고 권위 있는 에디션인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오직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의 위압적인 목판 경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판 한 판 한 판 매 글자에 새겨져 있는 고려인들의 숨결, 그 방대하고도 광활한 지식결구의 지극한 정성을 회상하는 나의 눈시울에는 뜨거운 경외의 기운이 서린다. 고려청자의 그 단아하고 세련된 빛깔과 곡선미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과연 요즘처럼 시험만 잘 보는 이지적 계산에 밝은 영수의 천재, 그런 인간들이었을까? 삼천대천세계를 한 공간에 압축해놓은 듯한 석굴암의 장중웅려(莊重雄麗)한 화장세계의 한 땀 한 땀의 끌자국이 과연 김대성 한 사람의 작품일까보냐?
이 모든 것, 우리 민족이 문아(文雅)하고, 화려하고도 세련된 자취를 이 지구상에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최근 기러기아빠들의 피눈물 나는 인생역정이 말해주듯, 이 민족 전체가 호학의 열정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 존재의 결실이 아니고 또 무엇이랴!
▲ 도올 선생은 우리나라 문화 유산에 호학의 기운이 서려 있다고 말한다.
국민의 심상 속에 박근혜는 선거에 관한 한 헤라클레스처럼 보인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이다. 희랍신화에서 영웅(hero)이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는 중간자적 존재이다. 그래서 영웅은 무수한 운명적 과업을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영웅은 결국 죽는다. 아버지가 신이지만 인간 엄마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웅의 죽음을 살펴보면 ‘휘브리스(hybris)’와 관계되어 있다. 휘브리스란 자기에 대한 지나친 과신, 오만을 의미한다. 『일리아드』 속의 아킬레스도 휘브리스 때문에 목숨을 잃고 만다. 박정희의 신화가 살아있는 한 박근혜는 헤라클레스처럼 많은 과업을 무난히 수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의 휘브리스는 박정희 신화 그 자체를 소멸시켜가고 있다. 제우스의 방패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요번 선거는 박근혜의 눈물이 지켜낸 헤라클레스적 대과업의 일환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와중에도 혁신교육감 시대가 도래했다.
▲ 2014년 6.4 지방선거는 '세월호심판론'을 넘어선, '박근혜 살리기'였다. 그래서 반절의 실패, 반절의 성공이었던 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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