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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문학사적(文學史的) 위상(位相) 목차(目次) 1. 머 리 말 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금오신화(金鰲新話)』1. 김시습(金時習)에 대한 긍부정의 평가(評價)2. 김시습(金時習)의 사상적 내력3. 『금오신화(金鰲新話)』, 중국의 영향만 볼 것인가, 자생적인 의미로 볼 것인가4. 작품별 분류와 특징, 그리고 감상 3. 작품별 분석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1) 만복사저포기의 의미 탐구2) 만복사저포기 총평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1) 이생규장전, 구조적 측면의 의미2) 이생규장전, 의미론적 측면의 의미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1) 취유부벽정기란 몽유소설2) 취유부벽정기, 역사적 상상력을 담아내다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1) 남염부주지는 김시습의 사상소설2)..
4. 맺음말 지금까지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문학적 위상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근년에 와서는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소설문학(小說文學)의 효시로 보아 온 학설에 이의를 제가한 논문도 여러 편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수이전(殊異傳)』나 『삼국유사(三國遺事)』 유편들 가운데서 이미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싹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진술한 바와 같이 조선의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출현하기까지의 제반 여건들은 매월당(梅月堂)시대를 여는 예비 과정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면, 역시 본격적 전기작품(傳奇作品)으로서의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위상을 원상회복할 수밖에 없다. 『금오신화(金鰲新話)』가 『금오신화(剪燈新話)』의 영향을 입었다고 볼 때 그 시간적 격차가 4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瞿..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용궁부연록, 몽유록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는 한생(韓生)의 용궁체험을 담고 있다. 이 작품(作品)에서는 바다 속의 용궁이 아니고 송도(宋都, 開城) 천마산(天磨山)의 용추(龍湫) 박연(朴淵)이 용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어느 날 한생(韓生)은 천상에서 내려온 청삼(靑衫) 복두(幞頭)의 종자를 따라 날개 달린 준마(駿馬)를 타고 하늘을 날아 용궁에 다다른다. 함인지문(含仁之門)을 지나 용궁에 이르니 용왕이 반겨 맞이하고 함께 초대한 조강신(祖江神)ㆍ낙하신(洛河神)ㆍ벽란신(碧瀾神)과 더불어 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용왕은 자신의 무남독녀가 화촉동방(花燭洞房)을 꾸밀 별당을 지어 가회각(佳會閣)으로 이름하고 상량문(上樑文)을 지어 바치게 하기 위해 문사(..
2) 남염부주지란 사상서로 현실을 비판하다 염라의 자기부정 여기서 염라왕(閻羅王)은 세간의 상식이 용인하는 염라왕(閻羅王)이 아니다. 박생(朴生)의 지론에 동조하여 인간을 심판하는 염라국을 오히려 부정하고, 백성을 그릇 인도하는 왕의 횡포를 비판하고 세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박생(朴生)을 옹호하고, 끝내는 그 박생(朴生)이 마음에 들어 염라국왕의 자리까지 물려주는데 이른다. 작자의 의도는 박생(朴生)과 염라왕(閻羅王)의 대화를 통하여, 오히려 염라왕(閻羅王)이나 저승의 존재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패러독스를 이용함으로써 현실적 행위와 사상을 더 강하게 부인해 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매월당(梅月堂)은 염라왕(閻羅王)이라는 가상 인물을 통하여 작가가 처한 시대의 이념적 모순과 정치 사회의 모순과 정치 사회의..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남염부주지는 김시습의 사상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 가운데서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매월당(梅月堂)의 사상을 압축하고 있는 대표적 사상소설(思想小說)이다. 작자 자신의 철학적 온오(蘊奧)를 설명하기 위하여 서정성을 제거하였으며, 따라서 여타 작품(作品)에서 볼 수 있는 시적 문체를 거세(去勢)하였다. 박생(朴生)과 염라왕(閻羅王)과의 대화를 통하여 박생(朴生), 즉 매월당(梅月堂)이 평소 생각하던 철리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사회관을 낱낱이 피력하고 있다. 자유로운 논술을 펴기 위하여 그는 몽유(夢遊)의 형태를 빌려와 염부주(閻浮洲)라는 한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 두고 그곳을 탐방하여 염라왕(閻羅王)을 만나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염라와의 문답으로 자신..
2) 취유부벽정기, 역사적 상상력을 담아내다 반존화주의 사상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의 특색은 홍생(洪生)과 기씨녀(箕氏女)의 교환처럼 역사적 사건을 그 배경으로 깔고 있는데 있다. 나는 은나라 임금의 후손이며 기씨의 딸이라오. 나의 선조(기자)께서 실로 이 땅에 봉해지자 예법과 정치제도를 모두 탕왕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였고,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으로써 백성을 가르쳤으므로, 문물이 천년이나 빛나게 되었었소. 갑자기 나라의 운수가 곤경에 빠지고 환난이 문득 닥쳐와, 나의 선친(준왕)께서 필부(匹夫)의 손에 실패하여 드디어 종묘사직을 잃으셨소. 위만(衛滿)이 이 틈을 타서 보위(寶位)를 훔쳤으므로, 우리 조선의 왕업은 끊어지고 말았소. 弱質, 殷王之裔, 箕氏之女. 我先祖, 實封于此, 禮樂典刑, 悉..
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취유부벽정기란 몽유소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는 홍생(洪生)과 기씨녀(箕氏女)의 만남을 작품화(作品化)하고 있다. 개성(開城)의 홍생(洪生)은 팔월 한가위날을 맞아 동무들과 평양 저자에 피륙과 면사를 싣고 와 대동강가에 배를 대어 놓고 그곳 기생들과 수작하게 된다. 마침 성중의 친구 이생(李生)을 만나 잔치를 벌이고 배를 불러 달빛을 싣고 부벽정(浮碧亭) 밑에 이르러 배를 매어두고 부벽루(浮碧樓)에 올라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며 회고의 시를 읊는다. 그러자 문득 한 여인이 나타나 홍생(洪生)이 시를 듣고 자신도 시를 써 화답(和答)하였다. 그녀는 은왕실(殷王室)의 후손인 기씨(箕氏)의 딸인데 선고(先考)가 필부(匹夫)의 손에 패하여 나라를 잃고 위만(衛滿)이 그 틈을..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이생규장전, 구조적 측면의 의미 송도(宋都)의 이생(李生)은 국학에 가던 도중 최가의 담장 안을 엿보다가 아름다운 최낭자(崔娘子)를 보고 마음이 끌리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곧 꽃다운 인연을 맺지만, 이를 눈치 챈 이생(李生)의 아버지는 그를 멀리 울주농장(蔚州農場)으로 쫓아버리고, 이를 상심한 최낭자(崔娘子)는 그를 사모하여 몸져눕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그녀의 부모는 곧 매자(媒者)를 이가에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고, 드디어 양인은 결혼하여 끊겼던 사랑을 다시 잇게 된다. 그러나 그 뒤 홍건적의 난을 만나 이생(李生)은 겨우 목숨을 구하였으나, 최낭자(崔娘子)는 끝내 정조를 지키려다 피살되고 만다. 난 후 이생(李生)은 죽은 최낭자(崔娘子)의 환신(..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1) 이생규장전, 구조적 측면의 의미 송도(宋都)의 이생(李生)은 국학에 가던 도중 최가의 담장 안을 엿보다가 아름다운 최낭자(崔娘子)를 보고 마음이 끌리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곧 꽃다운 인연을 맺지만, 이를 눈치 챈 이생(李生)의 아버지는 그를 멀리 울주농장(蔚州農場)으로 쫓아버리고, 이를 상심한 최낭자(崔娘子)는 그를 사모하여 몸져눕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그녀의 부모는 곧 매자(媒者)를 이가에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고, 드디어 양인은 결혼하여 끊겼던 사랑을 다시 잇게 된다. 그러나 그 뒤 홍건적의 난을 만나 이생(李生)은 겨우 목숨을 구하였으나, 최낭자(崔娘子)는 끝내 정조를 지키려다 피살되고 만다. 난 후 이생(李生)은 죽은 최낭자(崔娘子)의 ..
3. 작품별 분석 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만복사저포기의 의미 탐구 남원의 노총각 양생(梁生)은 어느 날 만복사(萬福寺)를 찾아가 부처님과 함께 저포(摴蒲)놀이를 하여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한 여인을 배필로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여인은 왜란에 의해 죽은 처녀의 환신(幻身)이었다. 이튿날 양생(梁生)은 그녀의 권유에 따라 여인이 살고 있다는 마을로 따라가 거기서 사흘 밤을 머물게 되는데 그곳은 무덤 안이었다. 다음 날은 여인의 대상날로 양생(梁生)은 헤어짐에 앞서 그녀에게서 은주발 하나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이것이 증거물이 되어 그들은 보련사(寶蓮寺)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재(齋)가 끝나자 여인은 양생(梁生)과의 인연이 다하였음을 말하고 마침내 혼자서 훌훌 저승으로 떠나 버렸다. 양..
2. 김시습(金時習)의 사상적 내력 이러한 상반되는 평가는 그의 사상적 편력을 통하여 다시 문제를 제기해 준다. 스스로 성명으로 일찍 성대해졌지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은둔했다. 정신은 유학자인데 자취는 불자로 당시에 괴상하게 보여질까봐 부러 미치광이 행세를 하여 실제를 가리었다.自以聲名早盛, 而一朝逃世. 心儒蹟佛, 取怪於時, 乃故作狂易之態, 以掩其實. 율곡의 「김시습전(金時習傳)」 가운데 이 글에서 보면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 하여 본심은 유교인데 행적은 불교(佛敎)였으므로 시대에 괴상하게 보일까봐 일부러 미친 짓을 함으로써 사실을 엄폐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자(李耔)도 ‘행유이적불(行儒而跡佛)’ ‘불적이유행(佛跡而儒行)’이라 하여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하물며 나는 청빈하여 유교를 행세..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문학사적(文學史的) 위상(位相) 1. 머리말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지금까지 작가론적(作家論的) 측면(側面), 작품론적(作品論的) 측면(側面), 비교문학적(比較文學的) 측면(側面)에서 많이 연구(硏究)되어 왔다. 작가론은 그의 생애와 사상을 추적하는 연구(硏究)가 중심이 되었으며, 연구(硏究) 분량이 가장 많은 작품론(作品論)은 작가와 작품(作品)의 상관성, 작품(作品)의 구조분석, 사상성 내지 우의성(寓意性), 근래에는 성리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다양한 연구(硏究)성과가 집적되어 왔다. 비교문학적(比較文學的) 논문은 그리 많지는 않으나 주로 『금오신화(剪燈新話)』ㆍ가비자(伽婢子)와의 관계를 다룬 논문들【근래 東方比..
63. 도를 깨친 김시습의 이야기 金東峰時習五歲以奇童名, 英廟召試「三角山」詩, 大奇之. 後佯狂爲髡, 居山中, 所賦詩極多, 皆率口信手, 止遣興而已, 未嘗留意推敲. 然所造超越, 有非凡人所可及. 其「無題」詩: ‘終日芒鞋信脚行, 一山行盡一山靑. 心非有想奚形役, 道本無名豈假成. 宿露未晞山鳥語, 春風不盡野花明. 短笻歸去千峯靜, 翠壁亂烟生晩晴.’ 非悟道者, 寧有此語. 해석 金東峰時習五歲以奇童名, 동봉 김시습은 5살 때 기동(奇童)으로 이름이 났고 英廟召試「三角山」詩, 大奇之. 세종【영묘(英廟): 세종의 능호인 ‘영릉(英陵)’에서 따온 이름】이 불러 「삼각산」시로 시험하여, 크게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後佯狂爲髡, 居山中, 훗날 거짓 미친 척하여 터벅머리(스님)가 되어 산속에서 살며 所賦詩極多, 皆率口信手, 시를 짓기..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에 가다 단종(端宗)의 비운이 서린 고장,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의 중심무대인 영월에 왔다. 나의 후반기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월에 오고 싶었다 영월엔 언젠가 한 번 오고 싶었다. 그건 순전히 영화 탓이다. 밀양은 『밀양』이란 영화 때문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이곳 또한 영화로 인해 친근감이 느껴져 오고 싶었다. 이곳에 오면 ‘최곤(영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비해 영월읍은 꽤 컸다. 영양군, 봉화군 등 작은 고장들을 지나왔기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영월에 간다고 하니 꼭 가보라고 추천해준 곳이 있다. 굽이치는 계곡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청령포(淸冷浦)와 삼촌에 의해 권력의 희생양이 된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莊陵)이다. 이곳을 ..
4회: 여인의 집을 찾아가는 길 김시습(金時習) 時月掛西峯, 鷄鳴荒村, 寺鐘初擊, 曙色將暝. 女曰:“兒可撤席而歸.” 隨應隨滅不知所之. 女曰: “因緣已定, 可同携手.” 生執女手, 經過閭閻, 犬吠於籬, 人行於路. 而行人不知與女同歸, 但曰: “生早歸何處?” 生答曰: “適醉臥萬福寺, 投故友之村墟也”至詰朝, 女引至草莽間, 零露瀼瀼, 無逕路可遵. 生曰: “何居處之若此也?” 女曰: “孀婦之居, 固如此耳.” 女又謔曰: “於邑行路 豈不夙夜 謂行多露” 生乃謔之曰: “有狐綏綏, 在彼淇梁. 魯道有蕩, 齊子翶翔.” 吟而笑傲. 遂同去開寧洞. 해석時月掛西峯, 鷄鳴荒村, 이때 달이 서쪽 봉우리에 걸리자 닭이 황량한 마을에서 울었고 寺鐘初擊, 曙色將暝. 절의 종이 처음으로 치며 어둠이 밝아지려 했다. 女曰:“兒可撤席而歸.” 여인이 말..
50. 김시습의 시와 위작 논란 金時習五歲, 以奇童名. 英廟召試「三角山」詩, 詩曰: ‘束聳三峯貫大靑, 登臨可摘斗牛星. 非徒岳岫興雲霧, 能使王都萬世寧.’ 後佯狂被緇. 有詩曰: ‘趙吠眞榮兆, 飛黥是禍胎. 羊頭如欲爛, 柴盡爾園梅.’ 韓明澮以‘太公釣魚圖’求詩, 題贈曰: ‘風雨蕭蕭拂釣磯, 渭川魚鳥識忘機. 如何老作鷹揚將, 空使夷齊餓采薇.’ 蓋有所諷矣. 或言, 「三角山」詩, 乃世所僞作. -『芝峯類說』 해석 金時習五歲, 以奇童名. 김시습은 다섯 살 때 기이한 아이로 소문났다. 英廟召試「三角山」詩, 세종이 불러들여 「삼각산三角山」이란 시제로 시를 짓게 했더니, 詩曰: ‘束聳三峯貫大靑, 登臨可摘斗牛星. 非徒岳岫興雲霧, 能使王都萬世寧.’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束聳三峯貫大靑 세 봉우리를 묶어 세워 하늘을 뚫었으니, 登臨..
김시습金時習: 1435(세종 17)~1493(성종 24)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ㆍ동봉(東峯)ㆍ청한자(淸寒子)ㆍ벽산청은(碧山淸隱)ㆍ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임. 1435년 서울의 성균관 북편 마을에서 태어남. 1439년 5세 세종이 승정원으로 불러 재주를 시험하고 갸륵히 여겼으며 온 나라 사람들이 ‘오세(五歲)’라 부름. 1449년 15세 어머니를 여의고 강릉 외가에 내려가 무덤을 지킴. 1454년 20세 외숙모마저 사망하자 다시 상경함. 부친이 중병으로 눕자 계모를 맞이함. 훈련원(訓鍊院)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맞아 장가듦. 1455년 21세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독서하던 중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사건을 접함. 그 후 10년 동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