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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 3. 작품별 분석, 1) 만복사저포기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 3. 작품별 분석, 1) 만복사저포기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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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품별 분석

 

 

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만복사저포기의 의미 탐구

 

남원의 노총각 양생(梁生)은 어느 날 만복사(萬福寺)를 찾아가 부처님과 함께 저포(摴蒲)놀이를 하여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한 여인을 배필로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여인은 왜란에 의해 죽은 처녀의 환신(幻身)이었다. 이튿날 양생(梁生)은 그녀의 권유에 따라 여인이 살고 있다는 마을로 따라가 거기서 사흘 밤을 머물게 되는데 그곳은 무덤 안이었다. 다음 날은 여인의 대상날로 양생(梁生)은 헤어짐에 앞서 그녀에게서 은주발 하나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이것이 증거물이 되어 그들은 보련사(寶蓮寺)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재()가 끝나자 여인은 양생(梁生)과의 인연이 다하였음을 말하고 마침내 혼자서 훌훌 저승으로 떠나 버렸다. 양생(梁生)은 그 후 그 여인을 사모하여 장가도 들지 않았으며,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다가 그 마친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정절을 지키려다 희생된 영혼과의 기연(奇緣)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현실적 인물 양생(梁生)과 죽은 여인의 영혼과의 인귀교환(人鬼交換)을 다룬 흥미로운 작품(作品)이다. 이른바 명혼소설(冥婚小說)의 대표적인 작품(作品)이다.

 

구성상으로 보면 만복사(萬福寺)에서의 만남 무덤에서의 동거 보련사에서의 재회 두 사람의 이별의 순으로 기술되어 있다. 만복사(萬福寺)의 저포(摴蒲)놀이가 매개가 되어 양생(梁生)이 평소에 소원하던 아름다운 여인을 부처님에게서 점지 받게 되는데, 매월당(梅月堂)명주일록에서 보면 그가 선행승(善行僧)과 더불어 저포(摴蒲)놀이를 한 시를 남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생애를 형상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梅月堂全集 14, 溟洲日錄. 與善行鬪摴蒲戱題. 여인의 상사(狀辭)를 통해 살펴보면 그녀는 왜란에서 정절을 지키려다 희생된 여인의 영혼이었다.

 

 

왜구가 쳐들어오자, 싸움이 눈앞에 가득 벌어지고 봉화가 여러 해나 계속되었습니다. 왜놈들이 집을 불살라 없애고 생민들을 노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우로 도망하였습니다. 우리 친척과 종들도 각기 서로 흩어졌었습니다.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소녀의 몸이라 멀리 피난을 가지 못하고, 깊숙한 규방에 들어 앉아 끝까지 정절을 지켰습니다. 윤리에 벗어난 행실을 저지르지 않고서 난리의 화를 면하였습니다. 저의 어버이께서도 여자로서 정절을 지킨 것이 그르지 않았다고 하여, 외진 곳으로 옮겨 초야에 붙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지가 벌써 삼 년이나 되었습니다.

倭寇來侵, 干戈滿目, 烽燧連年. 焚蕩室廬, 盧掠生民, 東西奔竄, 左右逋逃. 親戚僮僕, 各相亂離. 妾以蒲柳弱質, 不能遠逝, 自入深閨, 終守幽貞. 不爲行露之沾, 以避橫逆之禍. 父母以女子守節不爽, 避地僻處, 僑居草野, 已三年矣.

 

 

이 대문에서 보면 여인의 죽음의 원인은 전란과 정절을 목숨보다 아끼는 항거에서 찾을 수 있다. 시경에서 보면 행로지점(行路之沾)’의 떳떳함을 그 여인은 자랑하였고 따라서 두 사람은 서로 만나자 의기가 맞아 만복사(萬福寺)의 판호(板戶)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날이 새자 여인은 인연이 이미 정해졌음을 말하고 곧 인도하여 자신이 거처하는 집으로 양생(梁生)을 안내한다.

 

여기서 보면 양생(梁生)은 여인과의 만남을 비밀로 하고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함께 지나가지만 길가는 사람들은 여인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양생(梁生)도 다만 만복사(萬福寺)에 취와(醉臥)했다가 친구를 찾아 가는 길이라고만 말한다[適醉臥萬福寺, 投故友之村墟也].

 

 

개령동 집은 무덤과 은완(銀椀)이란 매체

 

개녕동(開寧洞)野藁蔽野, 荊棘參天, 有一屋은 곧 무덤 속을 의미한다. 그곳의 사흘은 인세의 3년과 같다고 하였다. 비록 작별하지만 재회가 약속되어 있다며 정()ㆍ오()ㆍ김()ㆍ유씨(柳氏) 등 여인들의 송별시(送別詩)에 이어 은완일구(銀椀一具)를 선물로 보련사의 재회를 언약하고 둘은 이별한다.

 

보련사에서의 재회는 은완(銀椀)이 매체가 되어 여인과의 부부관계를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된다. 주인 부부는 왜란에 죽은 딸의 시신을 개령사 옆에 가매장해 두고 장사를 미루어 왔는데 오늘이 딸의 대상날이라고 했다. 여기서 양인은 행동을 함께 했으나 부모에게는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휘장 옆에서 동숙했으나 끝내 영인의 실체는 잡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무형 중에 엉켜 나타났으나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

 

매월당(梅月堂)은 그의 신귀설(神鬼說)에서 음양 이기의 작용으로, 기가 모여 태어나면 사람이 되고 흩어져 죽으면 귀가 된다고 했으며, 기가 멸하면 이 역시 없어져 아무 징조도 없게 되는 상태가 귀()라고 하였다. 다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피살되면 그 기가 무형 중에 엉켜 있으나 오래되면 자연히 흩어지고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왜구의 난에 정조를 지키려다 억울하게 죽은 양생(梁生)이 만난 여인의 기는 아무 징조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기 전에 무형 중에 엉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趙東一, 韓國小說理論, p. 230. 이러한 귀신관(鬼神觀)은 매월당(梅月堂)생사설(生死說)과도 연관된다. 생과 사는 기의 취산작용(聚散作用)으로, 기가 모여 태어나면 사람이 되고 기가 흩어져 죽으면 귀가 된다는 것이다梅月堂全集 20, 生死說. 그러므로 이 여인은 다만 억울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일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으나 곧 다시 그 형체를 감추지 않으면 안 된다. 여인이 먼저 이별을 고한다.

 

 

애닮게도 업보(業報)를 피할 수가 없어서 저승길을 떠나야 하게 되었습니다. 즐거움을 미처 다하지도 못하였는데, 슬픈 이별이 닥쳐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운우(雲雨)는 양대(陽臺)에 개고 오작(烏鵲)은 은하에 흩어질 것입니다. 이제 한번 헤어지면 뒷날을 기약하기가 어렵습니다.

自恨業不可避, 冥道當然. 歡娛未極, 哀別遽至. 今則步蓮入屛, 阿香輾車. 雲雨霽於陽臺, 烏鵲散於天津. 從此一別, 後會難期.

 

 

업보는 불가피하며 명도가 당연함을 말하고, 이로부터 이별하게 되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다고 말함은 분명한 유명의 구분을 선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음날 양생(梁生)은 개령동을 찾아가 여인의 무덤에 제사지내고 제문을 지어 조상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여인은 공중에 나타나 양생(梁生)을 불러, 자신은 천발(薦拔)을 힘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음을 말하고, 양생(梁生)도 착한 업을 닦아 함께 속세의 누를 벗어나도록 당부한다.

 

현실적으로 죽은 여인과의 사랑은 불가능하다. 죽는다는 것은 기가 소멸하여 아무 징조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더욱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양생(梁生)이 현실에서 그녀를 만나 사랑을 누렸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은 만복사(萬福寺)의 판방(板房)에서, 개령동에서, 보련사 소장에서 거듭되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그러나 끝내 화합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필연적인 별리(別離)를 통해 증명된다. 이렇게 되자 두 사람은 합리적인 사랑의 장소로 다시 공간을 이동한다. 여인은 양생(梁生)의 천발에 힘입어 다른 나라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했고, 양생(梁生)도 현세에서 다시 장가들지 않고 그 여인을 좇는 것으로 종결된다.

 

生後不復婚嫁, 入智異山採藥, 不知所終.’의 마지막 표현은, 현세에 대한 부정을 통해 그 여인에 대한 사랑의 성취를 강조한 역설법이라고 해석된다.

 

 

결말에 대한 각 학자들의 평가

 

강진옥강진옥, 금오신화(金鰲新話)와 만남의 문제 古典小說硏究方向, 새문사, 1985., 비현실적 존재인 상대와의 만남은 주인공에게 공간적 이동을 통한 내면적 변모를 체험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 그 결과 그들의 존재 양식까지 변모시켜 새로운 차원의 존재론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혜순(李慧淳)李慧淳,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나타난 人鬼交換說話類型的 考察, -李崇寧先生 古稀記念 國語國文學論叢, 1977.은 이 작품(作品)이야말로 김시습(金時習)의 솜씨가 가장 많이 번뜩이는 작품(作品)으로, 남자의 호구를 얻으려는 적극성과 여자의 괴로움을 면하고자 하는 원망이 잘 짝을 이루고 있는 작품(作品)으로, 결합과 이별이 반복되는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 비해서는 그 구성이 한층 단순화되어 있는 작품(作品)이라고 하고 있다.

 

김일열(金一烈)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에 나타난 운명의 하강과정 가운데 그 주요부를 뽑아 확대하면서 거기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 작품(作品)이라고 비교 평가하고, 따라서 행복에서 불행으로 진전되는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는 달리 이미 불행한 자(梁生)가 더욱 불행해지는 모습을 보인 비극소설(悲劇小說)로 평가하고 있다金一烈, 금오신화(金鰲新話)考察, 朝鮮傳奇言語文學, 韓國語文學會, 螢雪出版社, 1976..

 

한편 김성기(金聖基)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서 양생(梁生)이 여인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양생(梁生)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보조자를 필요로 하는데, 첫째는 양생(梁生)이 부처와 더불어 하는 저포희(樗蒲戱), 둘째는 보련사에서 양생(梁生)과 낭자의 환신(幻身)이 함께 드리는 예불, 셋째는 양생(梁生)이 낭자의 환신(幻身)과 이별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해 올리는 재가 그것으로, 이러한 단계적 교섭을 통해 이 작품(作品)은 완성에 달하여 종결에 이르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金聖基,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 나타난 心理的 考察, 韓國古典산문硏究, 張德順先生 華甲紀念論叢, 同化文化社, 1981..

 

설중환(薛重煥)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한의 해소라는 측면에서 해석하여 양생(梁生)이 여귀를 만나 현실계의 소원을 성취하고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또한 여귀는 원한으로 떠돌다가 양생(梁生)으로 인하여 자신의 한을 풀고 바라던 저승에 남자 몸으로 태어나 자신의 소원을 이룬다는, 한의 구조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薛重煥, 金鰲新話硏究, 高大 民族文化硏究叢書 15, 1983..

 

 

이 작품은 김시습의 심정을 우의로 풀어낸 작품

 

그런데 이 작품(作品)은 단순히 작품(作品)의 형식적 구조도 검토의 중요 대상이기는 하지마는 이 작품(作品)의 김안로(金安老)술이우의(述異寓意)’의 표현에서 보는 것처럼 작자 자신의 우의(寓意)를 어떤 형태로든지 표현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가원(李家源)은 이 작품(作品)을 들어 동봉(東峯) 자신이 일찍이 44세의 노총각 신세가 되었음도 엄치할 사실이 못되거니와 양생(梁生)의 상처(喪妻)ㆍ파산(破産) 등의 장면도 동봉(東峯) 자신의 일과 흡사하며 그 여인이 천발(薦拔)을 얻어 타국의 남자로 태어난 것은 신라의 분황사비(芬皇寺婢)가 지었다는 원왕생가(願往生歌)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했다李家源, 금오신화(金鰲新話), 通文館, 1959, 解題」】.

 

이재수(李在秀)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전 작품(作品)이 모두 작자의 우의(寓意)적 표현 아님이 없음을 말하고, 특히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양생(梁生)은 경주 용장사에 머무를 때의 작자의 처지와 매우 혹사함을 말하면서 김시습(金時習)과 양생(梁生)의 생애를 도표로 대비해 보여주고 있다李在秀, 韓國小說硏究, 宣明文化社, 1969, p.62..

 

이렇게 보면 본 작품(作品)은 곧 작자 자신의 생애를 우의(寓意)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현실의 자아를 이상적 자아로 형상화한 과정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훌륭한 한편의 비극적 전가작품(傳奇作品)이다. 불우한 주인공 양생(梁生)의 비극이 있고 현실에서 사랑을 끝내 성취하지 못하고 떠난 환녀(幻女)의 비극이 있다. 게다가 거기에는 왜란이란 전란이 개재되어 양인의 만남을 근원적으로 비극화하는 동인을 만들고 있다. 주인공이 처해 있는 삶과의 싸움이 처절해질수록 비극은 가속화된다. 불우한 주인공이 전란에 피살된 환녀(幻女)를 현실에서 만난 것 자체가 비극의 출발이요 삶의 처절화이며, 끝내는 삶의 거부를 통해 비극의 절정을 이룬다. 이는 곧 동봉(東峯) 자신의 세조정변(世祖政變)을 토해 사회와 맞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처절한 싸움이며 그 싸움에서 좌절할 수 없었던 작자 정신의 문학(文學)적 표현이 곧 비극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용

목차 / 지도

1. 머리말

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금오신화(金鰲新話)

3. 작품별 분석

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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