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남염부주지는 김시습의 사상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 가운데서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는 매월당(梅月堂)의 사상을 압축하고 있는 대표적 사상소설(思想小說)이다. 작자 자신의 철학적 온오(蘊奧)를 설명하기 위하여 서정성을 제거하였으며, 따라서 여타 작품(作品)에서 볼 수 있는 시적 문체를 거세(去勢)하였다.
박생(朴生)과 염라왕(閻羅王)과의 대화를 통하여 박생(朴生), 즉 매월당(梅月堂)이 평소 생각하던 철리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사회관을 낱낱이 피력하고 있다. 자유로운 논술을 펴기 위하여 그는 몽유(夢遊)의 형태를 빌려와 염부주(閻浮洲)라는 한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 두고 그곳을 탐방하여 염라왕(閻羅王)을 만나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염라와의 문답으로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다
박생(朴生)은 불교(佛敎)ㆍ무격(巫覡)ㆍ귀신(鬼神) 등의 설에 의심을 품고 중용과 역경을 읽은 후 자신의 견해를 믿게 되었으며, 극락과 지옥설에 대해서도, 하늘과 땅은 한 음과 한 양 뿐인데 어찌 이 천지 밖에 또 다른 천지가 있겠느냐고 자문하고, 자신이 일찍 지은 「일리론(一理論)」이란 글을 통하여 불가설을 부인하고 있다.
염라왕(閻羅王)은 염부주(閻浮洲)를 다스린 지 일만 년이 넘는다고 했다. 문답이 시작되어, 주공(周公)ㆍ공자(孔子)ㆍ석가(釋迦)가 어떤 사람인가의 질문에 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가르침은 정도(正道)로써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일이며 석가(釋迦)의 법은 사도로써 설문하여 사도를 물리치는 것이란 해답을 얻는다.
귀신(鬼神)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염왕(閻王)은 ‘귀는 음의 정기요 신은 양의 정기이며, 귀와 신은 조화의 자취요 음양의 양능(良能)으로 살아 있을 때는 인물이라 하고 죽으면 귀신(鬼神)이라 하나 본디는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속에서 제사를 받는 귀신(鬼神)과 조화의 귀신(鬼神)도 다르지 않다는 답변에 이어, 요괴(妖怪)의 정체를 묻는 물음에 귀란 굽힌다는 뜻이요, 신이란 편다는 뜻이며 조화의 신은 굽혔다 폈다 할 수 있으나 울결(鬱結)된 요괴들은 굽혔다 폈다 할 수 없으며 조화의 신은 자취가 없으나 요괴는 각각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 대문은 김시습(金時習)의 「귀신(鬼神)」 또는 「신귀설(神鬼說)」에서, 기가 모였다가 흩어지면 귀신(鬼神)의 이도 남지 않으며, 천지자연에 대한 제사는 다만 기가 바르게 움직인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기일원론적(氣一元論的) 귀신론(鬼神論)으로도 설명된다【趙東一, 鬼神論과 敍事文學, 韓國古典文學硏究會 발표요지(水安堡, 1988)】.
박생(朴生)은 이어 극락과 지옥이 존재에 대해서 묻고 지옥의 명부(冥府)에는 시왕(十王)이 배치되어 죄인을 심판한다는 설에 대하여 염라왕(閻羅王)의 부정적인 해답을 통하여 염라국의 존재를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정신과 기운은 곧 흩어지고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뚱이는 땅으로 내려가 근본으로 돌아가는데 결코 캄캄한 저승 속에 머무는 일이 없을 것이라 말한다. 또 갑자기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기는 당장 흩어지지 않고 여귀(厲鬼)나 원귀(寃鬼)가 되어 결국은 소멸하고 마는 것이므로 부처님께 재(齋)를 올리고 시왕께 제사지내는 일은 속임수라고 하였다. 사람이 윤회(輪廻)를 멈추지 않고 이승을 떠나면 저승에 산다는 내세관(來世觀)에 대해서도, 정기가 흩어지면 소멸된다고 하여 결국 윤회사상(輪廻思想)을 부인하고 있다. 여기서 보면 율곡이 그의 「김시습전(金時習傳)」에서 말한 이른바 ‘심유적불(心儒跡佛)’의 본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염라왕(閻羅王)이 통치하는 염부주(閻浮洲)에는 전생에 부모나 왕을 죽인 대역(大逆)이나 간흉(奸凶)들이 많은데,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자면 박생(朴生) 같은 바른 생각의 소유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영라왕이 자신은 이미 시운(時運)이 다하였고 박생(朴生)도 인세의 시운이 다하였으니 염부주(閻浮洲)에 돌아와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양인의 합의를 기념하는 축하연은 역사의 평가에 집중된다.
임금에 대한 생각
화제가 고려의 건국에 미치자, 치자는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하지 말 것이며 덕망이 없는 자가 권력으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되며, 천명이 가버리고 민심이 떠나버리면 더 이상 나라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미치게 됨을 염라왕(閻羅王)은 말한다. 간사한 신하가 벌떼처럼 일어나고 난리가 잦은데도 임금이 백성들을 위협하여 그것을 잘한 일로 생각하고 명예를 구한다면 결코 나라가 평안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박생(朴生)이 제기하는 일련의 문제들은 철학적인 데에서 점차 정치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정치적인 화제는 현실적인 데로 접근한다. 음양(陰陽) 귀신(鬼神)의 도와 군자ㆍ소인의 변(辨)ㆍ고금(古今)의 치란(治亂)은 자취를 구명하되 귀신(鬼神)에 대한 결론은 무신론에 귀착시켰다. 그리고 유불양교의 차이점은 정직(正直)과 탄망(誕妄)에 있으며 고금의 치란은 위정자(爲政者)의 현불초(賢不肖)에 매여 있음을 명증(明證)하고 있다【李家源,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금오신화(金鰲新話)』解題, 통문관, 1959.】.
이러한 우주관(宇宙觀)ㆍ유불관(儒彿觀)ㆍ귀신관(鬼神觀)ㆍ치란관(治亂觀)은 매월당(梅月堂)의 고금제왕국가흥망론(古今帝王國家興亡論), 고금군자은현론(古今君子隱顯論), 고금충신의사총론(古今忠臣義士摠論), 인재설생재설(人才說生財說)ㆍ명분론(名分論)ㆍ사생론(死生論)ㆍ불의부귀여부운변(不義富貴如浮雲辨) 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세조(世祖)의 왕위찬탈(王位簒奪)에 불만을 품고 두타(頭陀)의 형상으로 세상을 등지고 살면서 양왕(佯狂)으로 위정자들을 매도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생애와 매우 근사한 일치점을 보여주고 있다【金容德,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의 構成分析, 古典小說硏究의 方向, 새문사, 1985.】.
염라의 자기부정
여기서 염라왕(閻羅王)은 세간의 상식이 용인하는 염라왕(閻羅王)이 아니다. 박생(朴生)의 지론에 동조하여 인간을 심판하는 염라국을 오히려 부정하고, 백성을 그릇 인도하는 왕의 횡포를 비판하고 세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박생(朴生)을 옹호하고, 끝내는 그 박생(朴生)이 마음에 들어 염라국왕의 자리까지 물려주는데 이른다.
작자의 의도는 박생(朴生)과 염라왕(閻羅王)의 대화를 통하여, 오히려 염라왕(閻羅王)이나 저승의 존재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패러독스를 이용함으로써 현실적 행위와 사상을 더 강하게 부인해 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매월당(梅月堂)은 염라왕(閻羅王)이라는 가상 인물을 통하여 작가가 처한 시대의 이념적 모순과 정치 사회의 모순과 정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해 보려는 의도를 이 작품(作品)을 통해 실현하려 하고 있다【趙東一, 韓國小說의 理論, p.236.】.
우리 염주땅은 실로 야만의 나라이다. 옛 하우(夏禹)의 발자취 이르지 못하였고 주목왕(周穆王) 발자취도 미친 적이 없다. 붉은 구름 햇빛을 덮고 독한 안개 공중을 막아 목마를 때 녹은 구리 마시며 주리면 뜨거운 쇳조각을 먹고 야차(夜叉)ㆍ나찰(羅刹) 아니면 발붙일 곳 없고 도깨비패 아니면 기운도 펼 수 없다. 화성 천리요 철산 만첩이라 민속이 한악하니 정작 없으면 간사함을 판단할 수 없고 신성한 위엄 없으면 조화를 베풀 수 없다.
이제 동국의 박모는 사람됨이 정직하여 사리사욕에 치우치지 않으며 굳세고 씩씩하여 결단성이 있고 재질이 유달라 모든 백성의 기대에 어김이 없으리니 경은 마땅히 도덕과 예법으로 인민을 지도할 것이며 온 누리를 태평하게 하여 주오.
炎洲之域, 實是瘴厲之鄕, 禹跡之所不至, 穆駿之所未窮. 彤雲蔽日, 毒霧障天, 渴飮赫赫之洋銅, 飢餐烘烘之融鐵, 非夜叉羅刹, 無以措其足, 魑魅魍魎, 莫能肆其氣. 火城千里, 鐵嶽萬重, 民俗强悍, 非正直無以辨其姦, 地勢凹隆, 非神威不可施其化.
咨! 爾東國某, 正直無私, 剛毅有斷, 著含章之質, 有發蒙之才, 顯榮雖蔑於身前, 綱紀實在於身後, 兆民永賴, 非子而誰? 宜導德齊禮, 冀納民於至善, 躬行心得, 庶躋世於雍熙.
이 인용문은 염라왕(閻羅王)이 박생(朴生)에게 내린 선위문(禪位文)이다. 박생(朴生)의 재질이 빼어나며 정직하여 사리사욕에 치우치지 않고 도덕과 예법으로 백성을 다스릴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역으로 현실에 정직이 통용되지 않으며 도덕과 예법이 통용되지 않는 불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란 뜻도 된다. 이는 초두의 ‘의기고매, 견세불굴(意氣高邁, 見勢不屈)’이라 하여 뜻이 매우 고매하고 시세에 아부하지 않았다는 박생(朴生)의 서술과도 일치한다.
결말 부분의 ‘기출문 만거자 차질복철 생복지경기이각 내일몽야(旣出門 挽車者 蹉跌覆轍 生伏地驚起而覺 乃一夢也)’에서 보면 문을 나서 수레 끌던 사람이 헛디뎌 수레바퀴가 넘어지자 그 바람에 박생(朴生)도 엎어졌는데 놀라 깨달으니 한바탕 꿈이었다고 하였다. 입몽(入夢)의 과정은 박생(朴生)이 거실에서 밤에 등불을 돋우고 글을 읽다가 베개에 기대어 옷을 입은 채 잠이 들었는데 문득 한 나라에 이르니 바다 속의 한 섬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입몽(入夢)에서 보면 ‘양해중일도서(洋海中一島嶼)’로 설정된 염부주(閻浮洲)가 각몽(覺夢)에서는 수레를 타고 나오다 깨는 ‘차질복철(蹉跌覆轍)’로 되어 있다. 각몽(覺夢) 후 서책이 책상 위에 흩어져 있고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상황은 몽중세계를 현실과 자연스레 연결하는 기법으로, 박생(朴生)은 장차 죽을 일을 염두에 두고 집안일을 미리 정리한 후 세상을 떠나 이웃집 사람의 꿈을 통해 박생(朴生)이 염라왕(閻羅王)이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박생(朴生)과 염왕(閻王)은 매월당(梅月堂)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박생(朴生)이 현실이라면 염왕(閻王)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생(朴生)은 이미 해답을 가지고 현실의 제반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염왕(閻王)의 입을 통하여 추구해 나간다. 박생(朴生)이 염라왕(閻羅王)의 후계자가 되었으니 결국 염라왕(閻羅王)의 해답은 박생(朴生) 자신의 해답이다. 매월당(梅月堂)은 귀신관(鬼神觀)ㆍ유불관(儒彿觀)ㆍ이상관(理想觀)ㆍ치국관(治國觀) 등 평소 자신의 생각과 현실의 갈등 관계를 박생(朴生)과 염라왕(閻羅王)의 대화를 통해 문제 삼고 있으며, 저승을 부정하는 염라왕(閻羅王)의 역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정당하며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 작품(作品)은 결국 김시습(金時習) 당대의 현실 비판을 의도한 작품(作品)으로, 염라왕(閻羅王)은 성리학적 현군(賢君)으로 설정하고 그를 통해 지옥(地獄)ㆍ윤회(輪廻) 등 불설의 타당성을 부정케 함은 시군(時君)에 대한 묵시적 비판이며 이는 불교(佛敎)로써 불교(佛敎)를 비판하는 역설적 수법이기도 하다【김명호, 김시습(金時習)의 文學과 성리학사상, 韓國학보 35집, 1984.】.
인용
1. 머리말
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금오신화(金鰲新話)』
3. 작품별 분석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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