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용궁부연록, 몽유록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말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는 한생(韓生)의 용궁체험을 담고 있다. 이 작품(作品)에서는 바다 속의 용궁이 아니고 송도(宋都, 開城) 천마산(天磨山)의 용추(龍湫) 박연(朴淵)이 용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어느 날 한생(韓生)은 천상에서 내려온 청삼(靑衫) 복두(幞頭)의 종자를 따라 날개 달린 준마(駿馬)를 타고 하늘을 날아 용궁에 다다른다. 함인지문(含仁之門)을 지나 용궁에 이르니 용왕이 반겨 맞이하고 함께 초대한 조강신(祖江神)ㆍ낙하신(洛河神)ㆍ벽란신(碧瀾神)과 더불어 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용왕은 자신의 무남독녀가 화촉동방(花燭洞房)을 꾸밀 별당을 지어 가회각(佳會閣)으로 이름하고 상량문(上樑文)을 지어 바치게 하기 위해 문사(文士) 한생(韓生)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한생(韓生)은 이에 비단폭을 받아, 『시경(詩經)』 「관저(關雎)」 장(章)의 ‘窈窕淑女君子好逑’와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비룡재천 리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을 인용하여 한 편의 글을 짓고 다시 단가(短歌)로써 용궁의 경사를 하례하게 된다. 주연(酒宴)이 시작되자 미희(美姬)들의 「벽담곡(碧潭曲)」ㆍ「회풍곡(回風曲)」에 이어 용왕도 「수룡음(水龍吟)」 한 곡을 불러 흥을 더하게 된다. 용왕의 명으로 곽개사(郭介士, 게)의 팔풍무(八風舞), 현선생(玄先生)의 구공무(九功舞)가 더욱 흥을 돋우고, 이어 조강신(祖江神)ㆍ낙하신(洛河神)ㆍ벽란신(碧瀾神)의 시에 이어 한생(韓生)의 장편시이십운(長篇詩二十韻)이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한생(韓生)은 파연(罷宴) 후 용궁관람을 허가 받고, 용왕이 하늘에 조회할 때 치장하는 능허각(凌虛閣), 번개를 맡은 전모(電母)의 거울, 우레를 맡은 뇌공(雷公)의 북,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 용왕의 칠보곳간 등을 두루 구경한다. 떠남에 임하여 한생(韓生)은 용왕으로부터 산호반(珊瑚盤) 위에 야광주(夜光珠)와 빙초(氷綃) 두 필을 받아 사자의 등을 타고 바람과 물을 가르는 서각(犀角)에 힘입어 현세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몽유록소설의 특징
이윽고 그 소리가 그쳐서 눈을 떠보았더니, 자기 몸이 거실에 드러누워 있었다. 한생이 문 밖에 나와서 보았더니 커다란 별이 드문드문 보였다. 동방이 밝아 오고 닭이 세 홰나 쳤으니, 밤이 오경쯤 되었다. 재빨리 품속을 더듬어 보았더니 진주와 비단이 있었다.
聲止開目, 但偃臥居室而已. 生出戶視之, 大星初稀. 東方向明, 鷄三鳴而更五點矣. 急探其懷而視之, 則珠綃在焉.
이 인용문을 보면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처럼 이 작품(作品) 역시 몽유록(夢遊錄)의 형식을 빌고 있다. 새벽녘에 꿈을 꾼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이 하도 선연하여 꿈속의 물건을 찾아보았더니 용왕에게서 받은 야광주(夜光珠)와 빙초(氷綃)가 그대로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수법은 ‘깨여 사면을 바라보니, 구름과 연기는 천지에 가득하고 새벽빛은 창망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고 김진사가 적은 책자만 남아 있을 뿐이다[覺而視之, 雲烟滿地, 曉色蒼茫. 四顧無人, 只有金生所記冊子而已].’라 하여 꿈을 깬 후 김진사가 기록한 책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표현처럼 몽유사연(夢中事緣)을 현실에서 긴밀히 연결하려는 표현의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용궁부연록, 결말에 대한 해석
한생(韓生)은 용왕에게서 받은 야광주(夜光珠)와 수초를 상자 속에 고이 간직하여 소중한 보물로 삼고 남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았으며, 이 일로 하여 한생(韓生)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지 않고 명산에 들어갔는데 그 마친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야광주(夜光珠)와 빙초(氷綃)는 한생(韓生)의 꿈속에서 얻은 소중한 선물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자신의 용궁 체험의 증거물이므로 현실의 남에게 보여서도 이해되지 못하는 물건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그는 상자 속에 고이 간직하여 보물로 삼았으며 세상의 명리를 등지고 ‘입명산, 부지소종(入名山, 不知所從).’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作品)의 결말은 작자의 이원적(二元的) 세계관(世界觀)을 그래도 보여준다. 꿈으로 상징되는 세계는 현실세계와 배치될 수밖에 없다. 현실에 맞서는 또 하나의 세계는 몽중의 상량문(上樑文) - 용왕의 환대 – 명주ㆍ빙초 – 장지건상(藏之巾箱)- 부지소종(不知所從)으로 이어진다. 여타의 작품(作品) 결말도 대개 이와 유사한데, 이는 그의 시 가운데서 자주 ‘지여시사괴(志與時事乖)’【梅月堂詩集 1, 「自貽」(註 20)】 또는 ‘루견신세상위여원착방병(屢見身世相違如圓鑿方柄)’【上柳襄陽陳情書(註 22)】이라 하여 세상과 자신의 뜻이 서로 어긋나고, 자신과 세상이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기둥을 박는 것 같이 잘 들어맞지 않았다는 구절 가운데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세조정변(世祖政變) 이래 매월당(梅月堂)의 편력은 관서지방(關西地方)에서부터 비롯되는데, 그의 「탕유관서록후지(宕遊關西錄後志)」(1458)에는 자신이 만약 벼슬길을 떨치지 못하였더라면 이 아름다운 산수를 자유롭게 노닐지 못하였을 것이라 하며 관서(關西) 편력을 통하여 150여 수의(守義) 시를 남기고 있다. 거기에는 천마산(天磨山)【烟霞浮靉靆 松檜響凄凉 絶頂非人世 憑虛試欲望(遊天磨山)】, 박연폭포(朴淵瀑布)【蒙崖萬丈何雄哉 上有泓潭千尺深 蟄龍睡起怒不禁 噴出明珠千萬斛(飄淵)】에 대하여 읊은 시도 있다.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와의 유사점
용궁을 박연폭포(朴淵瀑布) 표연(飄淵)으로 설정한 것은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에서 여선문(余善文)이 체험한 해중의 용궁과는 다르나, 후대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이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에서 최생이 두타산(頭陀山) 용추(龍湫)를 통하여 용궁에 나아가는 수법과 비슷하다.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에는 광리왕(廣利王)의 초청을 받은 여선문이 용궁에 나아가 신축한 영덕전(靈德殿)의 상량문(上樑文)을 짓는다. 초대연의 참석자로는 광연왕(廣淵王)ㆍ광덕왕(廣德王)ㆍ광택왕(廣澤王)이 등장한다. 미녀들이 등장하여 능파지사(凌波之詞)와 채련곡(採蓮曲)을 노래하고 선문(善文)은 수궁경회시이십운(水宮慶會詩二十韻)을 짓는다. 잔치를 파하자 광리왕은 파려반(玻瓈盤)에 야광주(夜光珠)와 통천(通天)의 서각(犀角)을 담아 글값으로 답례한다.
‘후역불이공명위의 기가수도 편유명산 부지소종(後亦不以功名爲意 棄家修道 徧遊名山 不知所從)’은 ‘기후 생불이명리위회 입명산 부지소종(其後 生不以名利爲懷 入名山 不知所從)’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에서는 최생이 결국 두타용추(頭陀龍湫)를 통해 용궁을 찾아가는데, 거기에는 동선(洞仙)ㆍ도선(島仙)ㆍ산선(山仙)의 삼선(三仙)이 초대되어 있었으며 파연(罷宴) 후 귀가길에는 동선(洞仙)이 주는 연명(延命)의 선약(仙藥)을 받아 학을 타고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말미의 ‘기후생입산채약 부지소종 증공노거무주암 다설차사(其後生入山採藥 不知所從 證空老居無住菴 多說此事)’에서 보면 종결법은 같으나 증공(證空)이 늦도록 무주암(無住菴)에 살면서 최생의 체험을 후세에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서 한생(韓生)과 더불어 초대된 인물은 조강신(祖江神)ㆍ낙하신(洛河神)ㆍ벽란신(碧瀾神)이라고 했다. 조강(祖江)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지는 곳이요. 낙하(洛河)는 한강의 속칭이며, 벽란(碧瀾)은 개성부(開城府) 서쪽 삼십리에 있는 나루를 이른다. 그러므로 본 작품(作品)은 송도(宋都)의 명승 박연폭포(朴淵瀑布, 龍湫)를 용궁으로 설정하고 주변의 한강 임진강 등의 제신(諸神)이 한생(韓生)과 어우러지는 용궁세계를 허구화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곽개사(郭介士)ㆍ현선생(玄先生)ㆍ강하군장(江河君長) 등은 조정백관을 이르고, 소운기(掃雲器)ㆍ전모경(電母鏡)ㆍ뇌공고(雷公鼓)ㆍ초풍탁(哨風橐)ㆍ쇄수추(灑水箒) 등은 세종의 천문의기ㆍ측우기ㆍ자격루 등 과학기구를 가리키며 상량문(上樑文)을 청함은 세종께서 시습을 불러 그이 재명을 친시한 것으로 봄은 박성의(朴晟義)도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朴晟義, 東峯김시습(金時習)과 『금오신화(金鰲新話)』, 前揭書】.
이처럼 한생(韓生)의 체험을 김시습(金時習)의 성장체험과 대비해보면 거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리고 용왕이 한생(韓生)에게 부탁한 상량문(上樑文)처럼 김시습(金時習)의 재명을 인정하는 일문으로도 보아진다.
꿈에서 깨어난 후 명리를 떠났다는 것
그러나 작품(作品)을 단순히 한 작가의 자서전적 기록으로 속단해 버릴 경우 그 작품(作品)의 문학적(文學的) 위상(位相)에 손상을 입힐 염려가 있다. 「제전등신화후(題剪燈新話後)」에서 이미 보는 것처럼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이나 「용당영회록(龍塘靈會錄)」 등을 읽은 경험이 이 작품(作品)의 골격을 이루고, ‘夙著異靈 載諸傳奇 國家歲時 以牲牢祀之’에서 보는 것처럼 박연용추(朴淵龍湫)에서 예부터 용신이 있어 이를 국가에서 명절이면 큰 소를 잡아 제사하는 우리 전통적 민속신앙을 전래, 용궁사상과 결부시켜 창작해낸 작품(作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한생(韓生)의 용궁 환대는 상대적으로 현실에서의 작자의 소대(疏待)를 의미한다. 꿈을 깨자 용궁에서 받은 선물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꿈속에서 누렸던 환대를 격하할 수 없다는 절대적 가치 부여를 의미한다. 그 후 세상의 명리를 생각지 않고 명산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비록 패배자가 될지라도 끝까지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세상으로부터의 횡포를 거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趙東一, 『小說의 출현-금오신화(金鰲新話)의 경우』, 韓國文學通史, 권 2, 2005.】.
인용
1. 머리말
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금오신화(金鰲新話)』
3. 작품별 분석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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