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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 3. 작품별 분석, 3) 취유부벽정기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금오신화의 문학사적 위상 - 3. 작품별 분석, 3) 취유부벽정기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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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취유부벽정기란 몽유소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는 홍생(洪生)과 기씨녀(箕氏女)의 만남을 작품화(作品化)하고 있다. 개성(開城)의 홍생(洪生)은 팔월 한가위날을 맞아 동무들과 평양 저자에 피륙과 면사를 싣고 와 대동강가에 배를 대어 놓고 그곳 기생들과 수작하게 된다. 마침 성중의 친구 이생(李生)을 만나 잔치를 벌이고 배를 불러 달빛을 싣고 부벽정(浮碧亭) 밑에 이르러 배를 매어두고 부벽루(浮碧樓)에 올라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며 회고의 시를 읊는다.

 

그러자 문득 한 여인이 나타나 홍생(洪生)이 시를 듣고 자신도 시를 써 화답(和答)하였다. 그녀는 은왕실(殷王室)의 후손인 기씨(箕氏)의 딸인데 선고(先考)가 필부(匹夫)의 손에 패하여 나라를 잃고 위만(衛滿)이 그 틈을 타 왕위를 도적질함으로써 조선(朝鮮)의 왕업이 끊어졌다고 말한다. 자신은 신인(神人)의 인도로 광한전(廣寒殿)에 올라 수정궁(水晶宮) 항아의 향안(香案) 받드는 시녀를 삼았는데 문득 고국 생각이 나서 잠시 부벽루(浮碧樓)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홍생(洪生)은 여인에게 다시 40()의 시를 요청하였는데 여인은 짓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다. 홍생(洪生)은 무료히 그녀가 남긴 말을 서책에 기록하고 다시 시 한 수를 읊은 후 날이 샐 무렵 배를 대었던 물가로 돌아간다. 친구들의 물음에 그는 사실을 감추고 다만 장경문(長慶門) 밖 조천석(朝天石)에서 낚시질로 밤을 새웠다고 말한다. 그 후 홍생(洪生)은 그 여인을 잊지 못하고 병을 얻어 신음하다가 신녀의 꿈을 꾸고 죽으니 사람들은 그가 우선시해(遇仙屍解)했음을 믿었다는 것이다.

 

 

몽유소설의 형식이 녹아나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사몽비몽, 사진비진(似夢非夢, 似眞非眞)’이라 했으니 몽유소설(夢遊小說)의 형식이며, 홍생(洪生)과 죽은 기씨녀(箕氏女)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으니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인귀교환소설(人鬼交換小說)이라고 할 수 있다. 홍생(洪生)이 부벽정(浮碧亭)에서 만났던 여인을 잊지 못해 병상에 누워 있던 어느 날 그는 또 다시 꿈을 꾼다.

 

 

우리 아가씨께서 선비님의 이야기를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상제께서 선비님의 재주를 사랑하시어, 견우성 막하(幕下)에 붙여 종사관으로 삼으셨습니다. 옥황상제께서 선비님께 명하셨으니 어찌 피하겠습니까?

主母奏于上皇, 上皇惜其才, 使隸河鼓幕下爲從事. 上帝勅汝, 其可避乎?

 

 

우리 아씨가 당신 재주를 아까워하여 상제께 여쭈어 견우성 막하의 종사벼슬에 명하였으니 빨리 부임하라는 천상녀(天上女)의 전갈을 받는 꿈을 꾼다. 그 후 그는 깨끗이 목욕하고 향을 피우고 자리를 정리한 뒤 잠깐 누웠다가 문득 세상을 떠난다. 홍생(洪生)과 기씨녀(箕氏女)는 다만 시만을 서로 주고받았을 뿐 남녀 간의 육체적인 접촉은 가진 바 없다.

 

雲雨陽臺一夢間, 양대에서 뵈온 님 다만 일장춘몽인가
何年重見玉簫還. 가신님 어느 해에 퉁소불고 돌아오리.
江波縱是無情物, 대동강 푸른 물결 비록 무정하다마는
嗚咽哀鳴下別灣. 임 여윈 저곳으로 슬피 울며 흘러가네.

 

그러나 위와 같은 홍생(洪生)의 시에서나, 기녀가 떠난 후 그는 좋은 인연을 얻었으나 마음에 쌓인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서운함그는 기이하게 만났지만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 것이 서운하여[因念奇遇而未盡情欸]을 술회한 대문에서 보면 애틋한 감정의 교환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홍생(洪生)은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처럼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향불을 피우고 자리에 누웠다가 세상을 떠나 기씨녀(箕氏女)를 찾아 떠난다李慧淳,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나타난 人鬼交換說話類型的 考察, 前揭書..

 

 

반존화주의 사상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의 특색은 홍생(洪生)과 기씨녀(箕氏女)의 교환처럼 역사적 사건을 그 배경으로 깔고 있는데 있다.

 

 

나는 은나라 임금의 후손이며 기씨의 딸이라오. 나의 선조(기자)께서 실로 이 땅에 봉해지자 예법과 정치제도를 모두 탕왕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였고,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으로써 백성을 가르쳤으므로, 문물이 천년이나 빛나게 되었었소. 갑자기 나라의 운수가 곤경에 빠지고 환난이 문득 닥쳐와, 나의 선친(준왕)께서 필부(匹夫)의 손에 실패하여 드디어 종묘사직을 잃으셨소. 위만(衛滿)이 이 틈을 타서 보위(寶位)를 훔쳤으므로, 우리 조선의 왕업은 끊어지고 말았소.

弱質, 殷王之裔, 箕氏之女. 我先祖, 實封于此, 禮樂典刑, 悉遵湯訓, 以八條敎民, 文物鮮華, 千有餘年. 一旦天步艱難, 灾患奄至, 先考敗績匹夫之手, 遂失宗社. 衛瞞乘時, 竊其寶位, 而朝鮮之業墜矣.

 

 

여기서 보면 여인은 은왕실의 후손인 기씨(箕氏)의 딸인데 선조가 이 땅의 왕이 되어 예법과 정치 제도를 탕왕(湯王)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고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을 행해 천년이나 문물이 빛났으나 국운이 갑자기 비색해져 선고(先考, 準王)가 필부의 손에 패하여 마침내 국가를 잃게 되고 위만이 이를 틈타 왕의를 도적질하여 조선(朝鮮)의 왕업이 여기서 끊기고 말았다고 하였다.

 

매월당(梅月堂)은 단군에서 비롯되는 민족사의 정통 속에 기자를 포함하는 반면 주무왕(周武王)과 위만(衛滿)을 적대 세력으로 파악하는 동이문화권(東夷文化圈) () 중화문화권(中華文化圈)의 대립을 의식했으며, 따라서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의 핵심적 갈등은 반존화적 민족주의 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李相澤, 남염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道家的 文化意識, 韓國古典小說硏究, 中央出版社, 1981..

 

이상택은 이어서 기자와 위만이 다 같이 중국에서 왔으나 기자는 동이문화권의 동류민족으로 포용되고 위만은 주무왕과 함께 동이족의 적대세력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을, 최동(崔棟)조선상고민족사(朝鮮上古民族史)등에서는 기자가 동이족고토(東夷族古土)인 동방조선(東方朝鮮)에 이주한 사실과 위만이 한족유민(漢族流民)으로 조선왕(朝鮮王) ()을 속여 나라를 빼앗은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존화적(反尊華的) 민족의식(民族意識)을 고취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만이 기자의 나라를 빼앗았다는 내용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으로 생각해 볼 때 단종(端宗)의 실위와 세조(世祖)의 왕위찬탈(王位簒奪)을 상징하는 내용으로 보는 것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하겠으나, 이 문제는 왜 굳이 위만이 나라를 빼앗고 기자가 나라를 빼앗기는 여탈(與奪)관계로 설정하였느냐의 문제는 재고의 여지가 남는 문제라고 하겠다朴晟義, 東峯 김시습(金時習)금오신화(金鰲新話), 韓國古代小說史, 日新社, 1958..

 

 

초월적 현실주의관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에 등장하는 기씨녀(箕氏女)위만에 의해 朝鮮의 왕업이 끊어진 후 단군을 만나 해중도(海中島)에 들어가 함께 불사약을 먹고 신선이 된다. 십주삼도(十州三島)의 편력이 끝나자 옥황상제가 계시는 광한전에 들어가 수정궁으로 항아를 찾아가 그곳에서 향안을 받드는 시녀의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문득 고국 생각이 나서 조상의 무덤에 참배하고 부벽정(浮碧亭) 구경을 마침 나왔던 길이라고 하였다. 기씨녀(箕氏女)가 선계의 여인임을 확인하는 대문으로는 홍생(洪生)의 초대연에 차린 음식이 모두 人世의 것이 아니어서 딱딱하여 먹을 수 없으므로 신호사(神護寺)의 절밥과 주암(酒巖)의 잉어반찬을 얻어와 별도로 대접하는 장면을 들 수가 있다.

 

기녀가 홍생(洪生)의 곁을 떠나는 장면은 척필능공이서, 막측소지(擲筆凌空而逝, 莫測所之)’라 하여 붓을 던지고 공중으로 높이 오르니 간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녀가 떠난 뒤에는 곧 회오리바람이 불어 그녀가 지은 시와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자리마저 걷어가 버려 인세(人世)에 신선이 내려왔던 자취를 없애고자 하였다고 하였다.

 

어느 날 꿈속에서 천상에서 내려온 담장여인(淡妝女人)을 만나 홍생(洪生)견우성 막하의 속관(屬官)을 삼겠다고 전하는 기녀의 전갈을 받은 뒤로는 곧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맞는다. 현실에서의 죽음은 곧 그녀와의 천상재회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한갓 현실도피의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作品)에서는 오히려 현실을 떠남으로써 정화되고 안정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초월적 현실주의관을 살펴볼 수 있다崔三龍, 금오신화(金鰲新話)悲劇性超越問題, 韓國古小說硏究, 二友出版社, 1983..

 

 

선관사상

 

작품(作品)의 결말 죽음의 대목에는 빈지수일 안색불변 인이위우선시해(殯之數日 顔色不變 人以爲遇仙屍解)’라고 하여 시체를 빈소에 안치한 지 수일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으며 그 때 사람들은 그가 신선을 만났으므로 죽음에서 해탈되었기 때문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선시해(遇仙屍解)’의 이른바 도가적(道家的) 초월주의(超越主義)는 미학적 뿌리를 중국에서 찾기보다 이능화(李能和)의 한국도교사(韓國道敎史)나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단군신화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기씨녀(箕氏女)가 신인의 도움으로 동천복지(洞天福池) 십주삼도(十洲三島)를 유람하다가 월궁 광한전에 올라 천신이 되고 잠시 지상고토(地上故土)에 하강했다가 다시 천상본향(天上本鄕)으로 회귀해 가는 이야기 전개는 천상본향의 낙원회복을 갈망하는 지상인의 실낙원(失樂園)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인간본연의 선관사상(仙觀思想)에 동의하게 된다李相澤, 남염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道家的 文化意識, 前揭書.

 

홍생(洪生)과 기녀의 만남은 이 작품(作品)이 역사적 상황이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련성을 갖느냐의 문제는 역사주의적 또는 사회학적 분야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다만 양인이 현실에서 잇지 못한 사랑의 사연을 지상에서 지속해 보려는 초월적 현실주의사상과 도가적(道家的) 신선사상(神仙思想)이 이 작품(作品)에 혼용되어 지배하고 있어, 금오신화(金鰲新話)가운데서도 한 차원 높은 작품(作品)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인용

목차 / 지도

1. 머리말

2.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금오신화(金鰲新話)

3. 작품별 분석

1.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2.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3.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4.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5.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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