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 제십구(子張 第十九)
편해(篇解)
「자장」편이야말로 ‘자왈’이나 ‘공자왈’이 전혀 없는 모두가 공자의 제자들의 말과 문답으로만 이루어진 특이한 성격의 편이며, 그 성립과정이나 연대가 정확히 추정될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이다. 그러니까 공자 사후의 공문의 활약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어록이라 말할 수 있는 『논어』의 뒤 끝에 그 제자들만의 어록을 첨가한 것은, 실제로 신약성서라고 하지만 예수의 언행록에 해당되는 것은 사복음서뿐이고 그 뒤는 대부분이 사도 바울이라는 이방 전도사의 편지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사태에 속하는 것이다. 사복음서의 반복되는 내용에 비한다면 「미자(微子)」편까지의 18편에 해당되는 공자복음서(Good News about Confucius)의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의 사실성과 그 위용은 어떠한 고대경전도 그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그 방대한 내용 끝에 단 한 편 제자들의 말과 문답을 첨가했다는 것은 실로 『논어』 편집자들의 수준 높은 감각을 말해주는 것이다.
『순자(荀子)』의 「비십이자(非十二子)」편에 자사(子思)ㆍ맹가(孟軻)의 죄(罪)를 성토한 후에 공문의 후학으로서 세 천유(儒)를 들고 있는데 ‘자장씨지천유(子張氏之賤儒)’, ‘자하씨지천유(子夏氏之賤儒)’, ‘자유씨지천유(子游氏之賤儒)’가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본 편의 몸통 부분을 이루는 1~15장은 바로 이 세 사람의 언행록으로 구성되어 있 는 것이다. 순자의 기술이 결코 무근거한 추론이 아니라, 공문에서 초기에 가장 활발했던 세 그룹의 상호교섭과 활약상에 관한 사실(史實)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셈이다. 황소(皇疏)도 이미 이 편을 명료하게 다섯 제자, 즉 자장(子張, 1~2장), 자하(子夏, 3~13장), 자유(子游, 14~15장), 증자(曾子, 16~19장), 자공(子貢, 20~24장)의 5부작 언행록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좀 더 세밀하게 이 다섯 부를 검토해 보자.
1ㆍ2는 ‘자장왈(子張曰)’이다. 그러나 3은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양 학파의 교섭을 시사한다. 그러면서 4부터 시작되는 ‘자하왈(子夏曰)’의 서장적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제3장은 1~3의 자장 파편과 3~13의 자하 파편의 브리지 역할을 한다. 그런데 3~13의 열한 장 중에서 제12장은 또 동일한 성격의 브리지 역할을 과시하고 있다. 제12장은 자하 학파와 자유 학파의 교섭을 나타내며, 뒤에 오는 14~15의 ‘자유왈(子游曰)’ 파편의 서장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브리지로 얽어매어 1장부터 15장까지는 하나의 통일성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제15장이 ‘자유왈’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 친구 ‘자장(子張)’을 평론하고 있어 제1장이 ‘자장왈(子張曰)’로 시작한 것과 상응관계가 있다. 1~15장은 자장으로 시작하여 자장으로 완결된 것이다.
A. 1~3장 자장어록 子張語錄 |
1~2 | ‘자장왈(子張曰)’ 파편 |
3 | 자하(子夏)의 문인(門人)이 자장에게 묻다 B의 자하어록의 서장 역할. 브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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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3~13장 자하어록 子夏語錄 |
4~11 | ‘자하왈(子夏曰)’ 파편 |
12 | 자유(子游)와 자하(子夏)가 서로의 학풍을 비판함. C의 서장. 브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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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자하왈(子夏曰)’파편 | |
C. 12, 14~15장 자유어록 子游語錄 |
14~15 | ‘자유왈(子游曰)’파편 제15장은 자유(子游)의 자장(子張) 평어 |
D. 16~19장 증자어록 曾子語錄 |
16 | 증자의 자장(子張) 평어. 15와 성격 비슷 |
17~18 | ‘증자왈(曾子曰)’ 파편 | |
18~19 | 맹씨 등장. 같이 암송된 것. | |
E. 20~25장 자공어록 子貢語錄 |
20~21 | ‘자공왈(子貢曰)’ 파편 |
22~25 | 자공의 공자(孔子) 디펜스 |
이 전체어록에서 다섯 사람의 등장회수를 비교해보면, 자하(子夏)가 11장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이 자공으로 6장, 자장(子張)ㆍ자유(子游)가 각기 3장씩, 증자(曾子)가 4장이다. 자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확실한 이유가 있다. 공자의 사후에 학문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이 다름 아닌 자하(子夏)였다. 자하는 위문후(魏文侯)를 섬기면서 위나라를 노나라에 못지않은 천하의 학술중심지로 만들었다. 자하의 위문후와의 브레인탱크 형성이 모델이 되어 후대 제나라의 직하학파가 탄생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자하의 문인들이 직하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증자의 3전제자인 맹자가 직하의 사람이다. 그리고 또 자공(子貢)도 제나라에서 객사하여 제나라에 이미 많은 전승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자하ㆍ자유ㆍ자장 3인은 공문의 말년 어린 수제자들로서 라이벌이 되어 활발한 교섭활동이 있었으므로 이 제자들이 당연히 제나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자하어록을 중심에 놓고 자장과 자유의 어록을 앞뒤로 배열하여 하나의 제자어록을 편찬한 것은 제나라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AㆍBㆍC는 제1단계 편집으로서 완료된 것이다. 그 다음에 제나라에 전송된 증자문인들의 증자어록이 제2단계로 첨가된 것이 D이다. 다음에 이 어린 동년배의 제자들의 활약상을 열어놓은 개조(開祖)에 해당되는 대선배 자공(子貢)의 어록이 제나라에 전승되어 온 것을 뒤늦게 깨닫고 제3단계의 편집을 첨가한 것이 E자료인 것이다.
제1단계 편집 | AㆍBㆍC | 자하(子夏)ㆍ자장(子張)ㆍ자유(子游) 어록 |
제2단계 편집 | D | 증자(曾子) 어록 |
제3단계 편집 | E | 자공(子貢) 어록 |
그런데 21ㆍ8ㆍ22장의 언어표현에 『맹자』라는 서물과 같은 표현양식이 발견되며, 제18장의 증자왈파편은 「학이(學而)」 11, 「이인」 20과 관련되지만 전승경로가 다르다. 이렇게 보면 이 편의 편집은 맹자 이후, 순자 이전 제나라의 유학의 제양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단정지을 있다. 자하와 더불어 흥기한 위(魏)나라의 유학이 제나라의 직하를 성립시켰고, 자장, 자유, 증자학파와 교섭을 유지하면서 제나라의 유학이 발전적으로 형성되어간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초기기독교가 팔레스타인지역을 넘어 현금의 터키 소아시아지역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헬레니즘지배영역 전체의 종교로서 확산되어가고 또 궁극적으로 그레코로만의 찬란한 문화적 성취를 갈아엎고 새로운 로마제국의 주류사상으로서 자리잡는 계기를 마련했다면, 이 「자장」편은 초기 공문운동이 노나라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제나라의 직하의 주류를 형성함으 로써 전국시대의 모든 사상물결의 기반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계기를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러나 유학의 경우는 예수운동이 종말론적 기독론(eschatological Christology)으로 변질되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러한 긴박한 민족적 메시아사상의 배경이 없었으며, 기독교가 그 이전의 위대한 문명의 성취를 부정하고 배타적으로 주류를 쟁취한 것과는 달리, 하ㆍ은ㆍ주 삼대로부터 춘추시대까지의 모든 문화적 성취를 활용하고 습하면서 다양한 제자백가의 출현을 오히려 도와주었다는 것이 그 특색이라고 할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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