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혜
혜가(慧可)
선종(禪宗)의 제2조(祖) 혜가(慧可). 그는 40세 때에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로 후위(後魏)의 고승(高僧) 보리달마(菩提達磨)를 찾아가 눈(雪) 속에 앉아 가르침을 청하여 도를 닦고 의발(衣鉢)을 전수받아 선종(禪宗)의 법통(法統)을 이어 제이조(第二祖)가 되었다.
혜가단비(惠可斷臂)
후위(後魏) 때 고승으로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되었다. 그는 달마에게 도를 받을 때 그의 왼팔을 잘라서 자기의 굳은 뜻을 보였다.
혜각(慧覺)
불교 용어로, 선각자(先覺者)의 큰 지혜를 스스로 깨우쳐 아는 것을 말한다.
혜감(慧鑑)
중(僧) 만항(萬恒)의 시호(諡號). 속성은 박(朴)이다.
혜강(嵇康)
진(晉)의 명사(名士) 자는 숙야(叔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성미가 괴이하여 큰 버드나무 아래서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들기기를 좋아하였다. 일찍이 “양생(養生)을 잘하면 팽조(彭祖)의 수명을 따를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또 양생론(養生論)을 저술하기도 하였으나, 참소를 당해 나이 40에 죽었다. 『진서(晉書)』 「혜강전(嵇康傳)」
혜강라(嵇康懶)
혜강(嵇康)의 글에, “나는 게을러서 머리에 빗질도 아니한다.” 하였다.
혜강라작서(嵇康懶作書)
진(晉) 나라 때 혜강이 자기에게 벼슬하기를 권유한 친구 산도(山濤)에게 보낸 절교서(絶交書)에서 일곱 가지 감당할 수 없는(七不堪) 조건들을 죽 열거했는데, 그중 네 번째의 조건 속에 “나는 본디 글을 잘 짓지 못하거니와 또한 글짓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혜중산집(嵇中散集)』 卷二
혜강양생(嵆康養生)
진(晋)나라 혜강이 양생론(養生論)을 지었으나 뒤에 남의 모함을 입어 죽음을 당한 것을 말한다. 혜강이 상수(尙秀)와 연단(鍊鍛)하고 있을 때 종회(鍾會)가 찾아왔는데, 혜강이 무정하게 대하자 이에 유감을 품고 종회가 문제(文帝)에게 모함을 한 결과 해를 당하였다. 『진서(晉書)』 卷四十九
혜계(醯鷄)
① 신맛으로 인해 술 속에 생긴 술 벌레를 가리키며, 혜계옹 속이란 술 벌레들이 생활하는 술 단지 속으로 극히 하찮고 미미한 세계를 말한다. 『열자(列子)』 「천서(天瑞)」에 “궐소는 습한 곳에서 생기고 혜계는 술에서 생긴다.[厥昭生乎濕 醯鷄生乎酒]” 하고, 『산곡집(山谷集)』 권4 고시(古詩) 연아(演雅)에 “늙은 조개 태 속에는 구슬이 적이 되고 혜계옹 그 안에는 하늘 크기 얼마인고.[老蚌胎中珠是賊 醯鷄瓮裏天幾大]” 하였다.
② 술단지에 생기는 작은 벌레로서, 선생의 가르침으로 학문이 성취됐다는 비유이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에 “공자(孔子)는 도(道)에 있어 혜계를 열어준 사람과 같다. 그분이 술단지의 뚜껑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지의 위대한 참모습을 모를 뻔하였구나[丘之於道也, 其猶醯雞與! 微夫子之發吾覆也, 吾不知天地之大全也].” 하였다.
③ 술 단지에 생기는 초파리 종류의 하루살이 벌레로, 주색(酒色) 등 향락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자들의 비유로 흔히 쓰인다. / 인용: 麴先生傳(이규보)
혜계천(醯鷄天)
초파리인데, 범위가 좁음을 말한다.
혜고(蟪蛄)
매미의 일종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하루살이 버섯은 초하루와 그믐을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라는 내용이 있다.
혜고비(蟪蛄悲)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조균(朝菌)은 초하루와 그믐을 알지 못하고, 매미(蟪蛄)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혜공상(惠公喪)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노(魯) 나라 혜공이 죽었을 때 마침 송(宋) 나라와의 전쟁이 있었고, 태자인 환공(桓公)이 어려서 장례의 의식이 불충분한 점이 있었다. 이에 다시 개장(改葬)을 하였는데, 이때도 혜공의 뒤를 이은 은공(隱公)이 태자인 환공이 있다는 이유로 상주(喪主)가 되기를 사양하여 참여하지 않았다. 『춘추좌전(春秋左傳)』 隱公 1年
혜과우(蹊過牛)
혜전탈생(蹊田奪牛)에서 유래한 말.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경계를 넘어 들어갔다 하여, 그 소를 빼앗은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소를 끌고 넘어간 것은 잘못이지만 소를 빼앗은 것도 징벌이라고 말했다. 가벼운 죄에 무거운 벌을 내리는 경우에 이 말을 쓴다. / 인용: 兎山村舍 錄田父語(서거정)
혜기(惠氣)
여간한 기운. 지기. 신인.
혜능(惠能)
남종(南宗)을 이룩한 육조(六祖) 혜능(惠能)대사. 속성(俗姓) 노(盧)씨. 그가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五祖) 홍인(弘忍)에게 인가(印可)되어 의발(衣鉢)을 전해 받고 남해(南海)에 가서 조계(曹溪)에 살며 남종을 창시했다.
혜련(惠連)
남조(南朝) 시대 송(宋) 나라의 시인인 사영운(謝靈運)의 동생 사혜련(謝惠連)을 가리키는데, 10세에 시작을 잘하였고, 형인 사영운은 그를 사랑하여 더불어 시를 지으면 좋은 구가 얻어졌다고 한다. 후대에는 시문 가운데에서 흔히 동생에 대한 미칭(美稱)으로 쓰이게 되었다.
혜문(惠文)
주후혜문(柱後惠文)의 준말로, 법관(法官)과 무관(武官)이 쓰는 모자이다. 장창의 동생 장무(張武)가 양국(梁國)의 상(相)으로 나가면서 “양국은 대도(大都)로서 이민(吏民)이 조폐(凋敝)한 상태이니, 마땅히 주후혜문(柱後惠文)으로 탄치(彈治)해야 한다.”고 말하자, 장창이 이를 듣고서 웃으며 안심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 「장창전(張敞傳)」
혜문관(惠文冠)
주후혜문관(柱後惠文冠)의 준말로, 법관(法官)이 쓰는 관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 나라 무령왕(武靈王)이 호복(胡服)을 본떠 초미(貂尾)로 치장해서 쓰던 관(冠)인데, 진(秦)이 조(趙)를 멸망시킨 뒤에 이를 근신(近臣)에게 주었다. 무변대관(武弁大冠) 또는 번관(繁冠)이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 「여복지(輿服志)」
혜보(惠甫)
조선 정조 때의 사가(四家)의 하나인 유득공(柳得恭)의 자이다.
혜보(徯父)
한치응(韓致應)의 자이다.
혜산수(惠山水)
혜산천(惠山泉)을 가리킨다. 혜산은 혜산(慧山)으로 쓰기도 한다. 이 샘은 중국 강소성(江蘇省) 무석현(無錫縣) 서쪽인 혜산에 있는데,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혜산천(惠山泉)
혜산(惠山)은 중국에 있는 산. 그 산 밑에 세 못(池)이 있는데, 맑고 맛이 좋다 한다. 부근의 주민들이 그 샘물로 술을 빚어 혜천주(慧泉酒)라 이르는데, 맛이 청렬(淸冽)하다고 하며, 또 그 물로 차를 달이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혜생(嵇生)
삼국시대 위(魏) 나라 초군(譙郡) 사람인 혜강(嵇康)으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기풍이 출중하고 박식하였으며 노장(老莊)을 숭상하였다.
혜생재위루(嵇生才爲累)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하나인 진(晉) 나라 혜강(嵇康)이 악인을 원수처럼 미워하다가 마침내는 종회(鍾會)의 참소를 받고 사마소(司馬昭)에게 살해당하였는데, 그가 죽기 전에 감옥에 갇혀 있을 적에, 옛날 선인(仙人) 손등(孫登)이 “그대는 재주는 많으나 식견이 부족하여 오늘날 세상에서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부디 많은 것을 구하려 하지 말라[今子才多識寡 難乎免于今之世矣 子無多求].”고 한 충고를 떠올리고는, “옛날에 부끄럽게 충고를 받았나니, 지금 손등을 볼 면목이 없구나[昔慙下惠 今愧孫登].”라는 내용의 시 ‘유분(幽憤)’을 지어 자책(自責)하였던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卷49 「혜강전(嵇康傳)」ㆍ『세설신어(世說新語)』 「서일(棲逸)」
혜성하(蹊成下)
문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도리(桃李) 밑에 오솔길이 생겼다.” 하였는데, 그 주에 “도리는 본래 말을 못하지만 꽃과 열매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마다 도리 밑으로 가 자연히 오솔길이 생기게 된다. 이는 이 장군이 말을 안 해도 사람들이 그에게 감화된 것이 있어 믿고 추종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혜소(嵇紹)
『몽구(蒙求)』 「嵇紹不孤(혜소불고)」에 “진(晉) 나라 혜소의 자(字)는 연조(延祖)이다. 그의 아버지 강(康)이 산도(山濤)와 친하였는데, 강이 사형을 당할 무렵에 아들 소에게 ‘산도가 생존해 있으니 너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후에 과연 산도가 소를 천거하여 비서승(祕書丞)이 되었다.” 하였다.
혜숙야(嵇叔夜)
진(晉)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을 말한다. 숙야는 그의 자. 혜강은 방외(方外)의 선비로서 세속을 초탈하여 산택(山澤)에 노닐면서 약(藥)이나 캐며 지냈는데, 갑자기 억울한 누명을 입고 동시(東市)에서 처형되었다. 『진서(晉書)』 卷四十九
혜시오거(惠施五車)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혜시(惠施)는 방술이 많으니 그 책도 다섯 수레가 된다.”는 말이 있다.
혜심환질(蕙心紈質)
마음이 순결하고 성정(性情)이 고아(高雅)한 것을 말한다.
혜안(慧眼)
불가에서 말하는 오안(五眼) 가운데 하나로서 즉 진리(眞理)를 통찰(洞察)하는 안식을 말한다.
혜약(蕙若)
‘매우 향기로운 난초’이다.
혜양(蕙纕)
향초를 허리에 띠는 것을 말하는데 즉 충직함을 비유한 것이다. 『초사(楚辭)』 「이소(離騷)」
혜완(嵇阮)
진(晉)의 명인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으로 죽림(竹林)에 은거하여 술을 마시고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다. 두보(杜甫)의 정건(鄭虔)을 행각하며 지은 유회태주정십팔사호(有懷台州鄭十八司戶) 시에 “당신은 진정 혜완의 부류, 그나마 또다시 세상의 혹평을 받았구려[夫子嵇阮流 更被時俗惡].”라는 구절이 있다.
혜요(彗妖)
혜성(彗星)은 전란(戰亂)을 상징하는 불길한 별로 인식되었다.
혜원(慧遠)
원공(遠公)이라고도 한다.
혜원법사(慧遠法師)
중국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에 백련사(白蓮社)를 세우고 수도하였다.
혜원불금도령음(惠遠不禁陶令飮)
혜원은 동진(東晉) 때의 고승(高僧)인 혜원 법사(惠遠法師)를 말하고, 도령(陶令)은 일찍이 팽택 령(彭澤令)을 지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혜원 법사가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社)에서 혜영(慧永)ㆍ혜지(慧持)ㆍ유유민(劉遺民)ㆍ뇌차종(雷次宗) 등 고사(高士)들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는 도잠을 부르자, 도잠이 “만일 나에게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 즉시 가겠다.” 하니, 혜원 법사가 그것을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혜원유(惠遠遊)
혜원(惠遠)은 중국 정토종(淨土宗)의 초조(初祖)로 숭봉되는 진대(晉代)의 고승(高僧)이다. 여산(廬山) 기슭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18인의 현인과 서로 노닐었는데, 두보(杜甫)의 시에 “그야말로 여산의 길목에 들어서서, 혜원 따라 노니는 듯싶기만 하오그려[似得廬山路 眞隨惠遠遊].”라는 구절이 나온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1 題玄武禪師屋壁
혜위모(蕙爲茅)
『초사(楚辭)』 「이소경(離騷經)」에 “전혜(荃蕙)가 변하여 띠풀이 되었다[荃蕙化而爲茅].” 한 데서 온 말로,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한 것을 비유한 말인데, 여기서는 유능한 사람이 무용지물로 변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혜자(惠子)
이름은 시(施). 전국시대(戰國時代) 송(宋) 나라 사람. 양(梁) 나라의 재상을 지내고 변론(辯論)에 능했으며, 장주(莊周)와 절친하여 자주 토론을 하였다.
혜자기지어(惠子豈知魚)
장자(莊子)와 혜자(惠子)가 호량(濠梁) 위에서 놀 때 물고기가 나와 뛰놀자, 장자(莊子)가 이르기를 “저 물고기가 즐거워서 저렇게 노는 것이다.” 하니, 혜자가 대꾸하기를 “그대가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즐거워하는지를 어떻게 아는가.” 하였는데, 이를 가리킨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혜장(蕙帳)
향초(香草)로 만든 휘장. 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혜장이 비어 있으니 밤에 학은 집 떠난 주인을 원망하네[蕙帳空兮夜鶴怨].” 하였다.
혜전탈우(蹊田奪牛)
‘남의 소가 나의 밭을 밟고 다녔다고 해서 소를 빼앗아간다’는 말로, ‘가벼운 죄에 대한 처벌이 혹독하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 인용: 兎山村舍 錄田父語(서거정)
혜주(惠州)
중국 광동성 혜양현(惠陽縣) 서쪽에 위치한 고을. 송(宋)의 소식(蘇軾)이 귀양살이하던 곳이다.
혜주반(惠州飯)
동파가 혜주로 귀양갔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황정견의 시에 “飽喫惠州飯 細和淵明詩”라 한 구가 있다.
혜중산(嵇中散)
진(晉)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혜강(嵇康)을 말하는데, 중산(中散)은 곧 혜강이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지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그는 시대가 좋지 아니함을 알고 고의로 게으름을 부리고 세상에 나가지 않았었다.
혜초(蕙草)
향초(香草)로, 곧 현자(賢者)의 높은 지조를 표시한다. 주자집주(朱子集註)에, “蕙 草名 本草云薰草也 陳藏器云卽零陵香也”라 했다.
혜함상(嵇含狀)
진(晉)의 혜함이 지은 「남방초목상(南方草木狀)」을 가리킨다.
혜혜(嘒嘒)
매미의 울음소리, 소리가 부드럽고 가락에 맞는 모양
혜홍(惠洪)
송(宋) 나라 각범선사(覺範禪師)의 이른다. 그는 선(禪)에 깊고 또 시를 잘 하였다.
혜화(蕙華)
혜초(蕙草), 좋은 향내가 나는 난초에 속하는 풀.
혜화문(惠化門)
서울의 동북편 문 이름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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