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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379. 형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79. 형

건방진방랑자 2020. 6. 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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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

시인(詩人)들이 매화를 매형(梅兄)이라고 쓰는데, 이것은 황정견(黃庭堅)의 수선화(水仙花) (), “산번화는 아우요, 매화는 형이다[山礬是弟 梅是兄].” 한 데서 나온 것이다.

 

()

우공구주(禹貢九州)의 하나. 지금의 호남(湖南)의 땅. ()하여 초()나라의 땅.

 

()

선기옥형(璿璣玉衡)으로서 혼천의(渾天儀)로도 불리며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기구이다. 서경(書經)虞書 요전(舜典)

 

형가(亨嘉)

()』 「건괘(乾卦)형은 훌륭한 사람들의 모임이다[亨者 嘉之會也].”에서 나온 말로서 우수한 인물들이 일시에 성대하게 모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형가(荊軻)

전국 때 제() 나라 사람. 연 태자(燕太子) ()을 위하여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였다. 연태자가 진시황을 죽이려고 자객(刺客) 형가를 보내며, 신물(信物)로 독항(督亢) 땅을 바치겠다고 지도(地圖)를 함에 넣어 보내었는데, 형가가 지도 밑에 감추었던 비수(匕首)로 진시황을 찌르려다가 실패하자, 진시황이 크게 노하여 연나라를 쳐서 멸하였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형강(荊江)

금강(錦江)의 별칭이다.

 

형갱(鉶羹)

경건하게 차린 제사 음식을 말한다.

 

형경(荊卿)

진시황(秦始皇)을 암살하려 했던 자객 형가(荊軻)의 존칭인데, 진시황(秦始皇)의 녹로검(鹿盧劍)에 오히려 죽임을 당하였다. 도연명집(陶淵明集) 4권에 영형가(詠荊軻)’라는 오언시(五言詩)가 전한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형경분월계(衡鏡分月桂)

형경(衡鏡)은 과거에서 인재를 뽑기를 저울과 거울처럼 평()하고 밝게 한다는 것이며, 월계는 과거에 오르는 것을 달 가운데 계수꽃을 꺾는 데 비한다.

 

형경전(荊卿傳)

형경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자객(刺客) 형가(荊軻)를 말한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형고(滎皐)

형양(滎陽)과 성고(成皐). 모두 유방(劉邦)항우(項羽)가 크게 싸우던 곳.

 

형공(荊公)

() 나라 때의 재상으로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진 왕안석(王安石)을 말한다.

 

형군문(邢軍門)

임진란 때 우리나라에 왔던 명 나라 장수 형개(刑玠)이다.

 

형극(荊棘)

가시덩굴로, 소인들에 비유한 말이다.

 

형극동타영(荊棘銅駝影)

나라가 망한 것을 탄식한 말이다. 동타(銅駝)는 동()으로 만든 낙타(駱駝)를 말하는데, 동진(東晉) 때 색정(索靖)이 매우 선견지명이 있어 천하가 곧 어지러워질 것을 예측하고는 낙양 궁문(洛陽宮門) 앞에 서 있는 동타를 가리키면서 얼마 후에는 가시숲 속에 섰을 너를 보겠구나.” 하며 탄식한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색정전(索靖傳)

 

형극매동타(荊棘埋銅駝)

세상이 난세라는 말이다. ()의 색정(索靖)이 선견지명이 있었는데, 앞으로 난세가 닥칠 것을 미리 알고 낙양(洛陽)의 궁문 앞에 세워진 구리낙타를 가리키며 탄식하기를, “네가 가시밭 속에 있게 되는 꼴을 보겠구나.” 하였다는 것이다. 진서(晉書)』 「색정전(索靖傳)

 

형낭독서자(螢囊讀書子)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에 나오는 차윤(車胤)을 가리킨다.

 

형담창화(荊潭唱和)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 4권 중의 형담창화시서(荊潭唱和詩序)에 의하면, 형남(荊南)의 복야(僕射) 배도(裴度)와 호남(湖南)의 양공(揚公)이 주고받은 시를 모아 책으로 만든 것이라 하였다.

 

형둔(亨屯)

일이 제대로 풀린다는 형통(亨通)이란 말과 그의 반대말인 일이 꼬이고 막힌다는 곤액(困厄)이란 말을 합한 말이다. / 인용: 大寶箴(장온고)

 

형등(螢燈)

진서(晉書), “차윤(車胤)이 박학(博學)하였는데 집이 가난하여 기름을 구할 수 없어 여름철에는 반딧불을 잡아 사낭(紗囊)에 담고 밤새도록 글을 읽었다.”라고 보인다.

 

형림(蘅林)

산에 나는 두형(杜蘅)이라는 향초(香草)의 숲을 말한다.

 

형만(荊蠻)

중국 남방의 오랑캐 이름이다.

 

형망환이극(形忘歡已極)

장자(莊子)』 「양왕(讓王)뜻을 기르는 자는 형체를 잊는다[養志者忘形].”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의 형체 등 겉치레를 잊고 상대방과 마음을 주고받아 한없이 기쁘다는 것이다.

 

형모(衡茅)

형문(衡門)과 모옥(茅屋)을 줄인 말로, 보잘것없는 누추한 집을 말한다.

 

형문(衡門)

나무막대기를 가로질러서 대문을 만든 것으로, 오두막집의 초라한 사립짝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말한다. 시경(詩經)진풍(陳風) 형문(衡門), “형문의 아래 깃들 만하도다. 샘물이 졸졸 흐름이여 주림을 잊겠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 하였다.

 

형문(荊門)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장강(長江) 가에 있는데, 형세가 몹시 험고하여 옛날부터 파촉(巴蜀)과 형오(荊吳) 사이의 요새였다.

 

형박(荊璞)

() 나라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얻은 박옥(璞玉)으로, 전하여 현량(賢良)한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형박삼헌(荊璞三獻)

() 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드리니 왕이 속인다 하여 그 왼발을 잘랐다.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또 드리니 또 속인다 하여 그 오른발을 잘랐다. 문왕(文王)이 서자, 이에 박옥을 안고 형산 아래서 울거늘 왕이 사람을 시켜 물으니, 그가 말하되, “()이 발 잘린 것을 서러워함이 아니오라, 보옥을 돌이라 일컫고 곧은 선비를 속임꾼이라 하니, 그래서 서러워하노이다.” 왕이 사람을 시켜 그 박옥을 쪼개니 과연 그 속에 옥이 있었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형범숙존(荊凡孰存)

초왕(楚王)이 범군(凡君)과 같이 앉았는데, 초왕의 좌우(左右)에서 범()이 망하였다고 세 번 외쳤더니, 범군이 ()이 망했다는 것이 나의 존()한 바를 상실(喪失)시키지 못하며, ()의 존()한 것도 왕의 존한 바를 존하게 하지 못한 것이니, 이로써 본다면 범이 망한 것도 아니고 초가 존한 것도 아니다[凡之亡也, 不足以喪吾存. 夫凡之亡不足以喪吾存, 則楚之存不足以存存].” 하였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

 

형벽수주(荊璧隋珠)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형벽은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변화(卞和)의 화씨벽(和氏璧)을 말하고, 수주는 뱀이 수후(隋侯)에게 보은(報恩)했다는 명월주(明月珠)를 말한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형벽유장박(荊璧猶藏璞)

아름다운 자질을 비유하는 말이다. 형산에서는 좋은 옥이 많이 나는데, 갈기 전에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 말이다.

 

형봉(衡峯)

중국 형산(衡山) 남쪽에 있는 회안봉(回雁峯)을 가리키는데, 이 봉우리가 매우 높으므로 기러기가 가을이면 이곳에 와서 이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그냥 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형부나함택(荊府羅含宅)

() 나라 나함(羅含)이 환온(桓溫)의 별가(別駕)로 있을 때, 형주(荊州)의 강릉(江陵) 서쪽 소주(小洲) 위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던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92 문원전(文苑傳)羅含傳 / 두보(杜甫)의 시에 유신과 나함 모두 강릉에 집이 있었건만, 봄 오고 가을 가며 누구의 집이 되었는고[庾信羅含俱有宅 春來秋去作誰家].”라는 표현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21 舍弟觀赴籃田取妻子到江陵喜寄

 

형산(荊山)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으로 옥()이 나는 명산이다.

 

형산(衡山)

형주(衡州)에 있는 남악(南岳)으로, 일찍이 한유(韓愈)가 산양(山陽)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다가 이곳을 경유하면서 시를 지었다.

 

형산운자제(衡山雲自霽)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말이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형악묘(衡嶽廟)에 알현(謁見)하였을 적에, 때마침 가을 장마가 들어 음산한 기운이 잔뜩 꼈으므로, 마음을 가다듬어 기도를 드렸더니 구름이 걷히고 날이 말끔히 갰다고 한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조주 한 문공 묘비(潮州韓文公墓碑)

 

형산읍옥(衡山泣玉)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변화(卞和)가 형산에서 옥박(玉璞)을 얻어 여왕(厲王)에게 바치자, 옥이 아닌 돌로 왕을 기만했다 하여 그의 왼쪽 발꿈치를 베었다. 그 후에 다시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역시 옥이 아니라 하여 또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베었다. 그래서 변화가 그 옥박을 안고 형산 아래에서 통곡하였다 한다.

 

형상(荊桑)

뽕나무의 일종으로 오디가 많이 열린다 한다.

 

형석(衡石)

()은 저울이고, ()120근을 말하는데, 진시황(秦始皇)이 매일 반드시 120근의 각종 서류를 재결(裁決)했던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형설(螢雪)

동진(東晉)차윤(車胤)이 집이 가난하여 반딧불이를 주머니에 많이 잡아넣어 그 불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눈()빛에 의지해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딧불이와 눈으로 쌓은 공.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면서 열심히 학업에 정진(苦學) 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한 것을 비유한다. 중국 동진(東晋) 때의 차윤(車胤)은 가난한 시절 얇은 비단 주머니에 넣은 반딧불이의 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은 눈() 빛에 책을 비추어 글을 읽었다는 고사가 있다.

 

형수(荊樹)

가시나무 숲으로, 형제간에 함께 살아온 곳이란 뜻이다. 옛날에 어떤 형제가 갑자기 헤어지게 되었는데, 문밖에 가시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탄식하기를, “나무들도 오히려 함께 모여서 즐겁게 사는데, 하물며 우리가 갈라 서서야 되겠는가.” 하고는, 다시 화목하게 지냈다고 한다. 효자전(孝子傳)

가시나무로, 옛날 형제 세 사람이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오직 자형수(紫荊樹) 한 그루만 남았으므로, 이를 3분으로 쪼개서 나누어 갖자고 서로 의논하였는데, 그 다음날 이 나무가 불에 탄 듯이 절로 말라죽었다. 그러자 그 형이 크게 놀라고 슬퍼하여 나무를 쪼개지 않으니, 그 나무가 다시 살아나서 꽃이 피므로, 형제들이 서로 감동하여 분가하지 않고 아주 우애 있게 살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제해기(齊諧記)

 

형수화(荊樹花)

형수(荊樹)는 마편초과의 낙엽 활엽 관목인 작살나무를 말한다. 잎은 길둥근 모양으로 마주 나고 여름에 자줏빛의 잔꽃이 피어 정원의 관상수로도 쓰인다. () 나라 때 조성(朝城) 사람 전진(田眞)이 두 아우인 경()ㆍ광()과 함께 부모의 재산을 나누어 갖기로 의논하여 전부 고르게 배분한 뒤에 집앞에 있는 작살나무만 남았는데, 그것마저 베어 세 동강으로 잘라 갖기로 합의하고 이튿날 나가 보니 불에 타버린 것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전진은 깜짝 놀라 말하기를 나무는 본디 한 뿌리인데 동강낸다는 말을 듣고 말라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나무보다 못한 것이다.” 하자, 나무가 다시 살아났으며 그에 감동한 형제들은 재산을 도로 합치고 효도하는 가문이 되었다 한다. 곧 형제가 함께 사는 정겨운 고향집에 비유한다. 당 나라 허혼(許渾)정묘시집(丁卯詩集)』 「제최처사산거(題崔處士山居)형수에는 꽃이 있어 형제들 즐거워하고 유자 숲에 열매 없어 자손들이 바쁘다네[荊樹有花兄弟樂 橘林無實子孫忙]”하였다.

 

형승지지(形勝之地)

지세(地勢)가 험고(險固)한 요해지(要害地)를 가리킨다.

 

형신홀개합(形神忽開闔)

닫기는 것은 자는 것이요, 열리는 것은 깨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형악(衡岳)중국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큰 산 이른다.

 

형애제공(兄愛弟恭)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다.

 

형액월제감구내(衡扼月題堪區耐)

장자(莊子)』 「마제(馬蹄), “말이 굴레도 고삐도 없이 마음대로 풀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이 본성인데 백락이 나와서 굴레를 씌우고 고삐를 매니 말은 본성을 잃고 말았다[夫馬陸居則食草飮水, 喜則交頸相靡, 怒則分背相踢. 馬知已此矣! 夫加之以衡扼, 齊之以月題, 而馬知介倪闉扼鷙曼詭銜竊轡. 故馬之知而能至盜者, 伯樂之罪也].” 하였다.

 

형약(蘅若)

향초(香草)인 두형(杜蘅)과 두약(杜若)을 말한다. 형약(蘅若)()’은 이때 상성(上聲) 마운(馬韻)으로 압운하였으므로 ()’()’의 반절(反切)로 읽어야 한다. / 인용: 贈左蘇山人(박지원)

 

형양(桁楊)

죄인의 수족에 채우는 형구(刑具)를 말한다.

 

형양(滎陽)

정홍명을 가리킨다. 형양이 중국 하남성(河南省) 정현(鄭縣)인 까닭에 정씨(鄭氏)를 보통 형양으로 일컫고 있다.

 

형양(衡陽)

중국 형산(衡山) 남쪽 즉 형양(衡陽)에 회안봉(回雁峯)이 있는데, 이곳을 기점으로 해서 기러기들이 남북으로 왕래하며 이동한다고 한다. 참고로 왕발(王勃)등왕각서(滕王閣序)기러기의 군진이 추위에 놀라, 형양 물굽이에 소리가 끊어졌네[雁陣驚寒 聲斷衡陽之浦].”라는 표현이 있다.

 

형양금(荊楊金)

형주(荊州)와 양주(楊州)에서 나는 금으로, 품질이 좋은 금을 말한다.

 

형양묵흔(滎陽墨痕)

형양(滎陽)은 시(), (), ()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던 당() 나라 정건(鄭虔)을 가리킨다. 집이 가난해 종이를 구할 수 없자 감나무 잎에 붓글씨 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신당서(新唐書)202

 

형양안(衡陽雁)

무슨 일을 아주 단절하지 못하고 늘 도로 되풀이하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형양(衡陽)에 회안봉(回鴈峯)이 있는데, 기러기가 언제나 이 산봉우리에 이르러서는 봉우리가 너무 높아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고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형여(荊廬)

형산(荊山)과 여산(廬山)의 합칭이다. 형산은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으로 옥()이 나는 명산이고, 여산은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명산이다.

 

형역(形役)

마음이 육체적 생활의 노예가 되어 사역(使役) 당하는 것을 말한다. 외물(外物)로 인해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구속됨을 말한다. 도연명(陶淵明)귀거래사(歸去來辭)이미 스스로 마음을 가지고 형체의 역사 삼았으니 어찌 실의에 빠져 슬퍼만 하리오[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하였다.

 

형옥(荊玉)

형산(荊山)에서 나오는 옥으로 초() 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의 박옥(璞玉)을 얻어서 세 차례에 걸쳐 초 문왕(楚文王)에게 올린 일이 있었음. 바로 화씨벽(和氏璧)을 말한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형원(荊猿)

몹시 슬프게 우는 원숭이를 말한다.

 

형이상하(形而上下)

형이상은 형기(形氣)가 나타나기 전으로 바로 이치를 말하고 형이하는 형기가 나타난 후로 바로 기운을 말한다.

 

형인(衡人)

주례(周禮)의 관명으로 특히 산림을 관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형인양월(荊人兩刖)

유명한 변화읍벽(卞和泣璧)의 고사이다. 초 나라 사람 변화가 옥돌을 얻어서 초 여왕(楚厲王)에게 바쳤으나 속임수를 쓴다고 여겨져 왼쪽 발이 잘렸는데, 무왕(武王) 때 또 바쳤다가 같은 이유로 오른쪽 발마저 잘리자 원통한 심정으로 옥돌을 안고 울었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형제이난(兄弟二難)

형제가 서로 우열이 없이 덕행이 똑같이 뛰어남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 진식(陳寔)의 여섯 아들 가운데 기()와 심() 두 아들이 가장 덕행이 뛰어났는데, 진식이 그들을 평하기를 원방(元方)은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季方)은 아우 되기가 어렵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卷六十二

 

형제혁장(兄弟鬩墻)

형제가 담장 안에서 싸운다. 동족상쟁(同族相爭)을 말한다.

 

형주(荊州)

당 현종(唐玄宗) 때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낸 한조종(韓朝宗)인데, 평소에 숨은 인재를 발탁하길 좋아하여 최종지(崔宗之)ㆍ엄무(嚴武) 등을 조정에 천거하였으므로 당시의 선비들이 그의 인정을 받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이백(李白)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평생에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지기보다는 한형주가 한번 알아주기를 원할 뿐이다[生不用封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라고 하였다.

호남성(湖南省)을 말한다.

 

형주고사(荊州古事)

형주(荊州)의 고사란 곧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선주(先主)가 위() 나라 조조(曹操)의 공격을 받아 쫓겨서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에게 가 의지하고 있었던 일을 가리킨 것이다. 삼국지(三國志)卷三十二

 

형주면(荊州面)

() 나라 때 명신(名臣) 한조종(韓朝宗)을 말한다. 그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에 이백(李白)이 글을 올려 이르기를 살아서 만호후 봉함이 필요치 않고, 다만 한 형주를 한 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소원이다.” 하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卷二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

 

형주하행득신조(荊州何幸得身遭)

() 나라 한조종(韓朝宗)이 형주 장사(荊州長史)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 주어 사인(士人)의 추앙를 받았는데, 이백(李白)이 그에게 보낸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이 세상에 태어나 만호후가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그저 한형주를 한 번이라도 보았으면 좋겠다[生不用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고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는 글이 실려 있다.

 

형창(螢窓)

() 나라 때 차윤(車胤)이 밤에 개똥불을 모아서 그 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으며 고학(苦學)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서재를 말하기도 한다.

 

형창설안(螢窓雪案)

중국 진()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글을 읽고, 손강(孫姜)이 눈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 갖은 고생을 하며 꾸준히 학문을 닦은 공을 이른다.

 

형처(荊妻)

가난한 집 부녀라는 뜻이다. 자기 아내의 겸칭으로도 쓰인다. 후한(後漢)의 처사(處士) 양홍(梁鴻)의 아내 맹광(孟光)이 가시나무로 만든 비녀[荊釵]를 꽂고, 거친 베로 지은 치마를 입던 데서 온 말이다.

 

형초(荊楚)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말한다.

 

형피수돈(形疲瘦頓)

몸이 피곤하고, 마르고 초췌하다.

 

형해구이망(形骸久已忘)

우정(友情)이 매우 친밀하여 자기의 형체도 잊어버리고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을 말한다.

 

형해득실(形骸得失)

형해를 벗어나는 것은 불교의 유심론(唯心論)의 진리를, 득실을 하나로 본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도()의 본체에서 보면 하나같이 같다는 노장(老莊)의 설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

 

형해자소혜중산(形骸自笑嵇中散)

육신에 대한 집착을 멀리 떠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혜 중산은 진() 나라 때 중산대부(中散大夫)에 임명되었던 혜강(嵇康)으로, 일찍이 양생론(養生論)을 지었으며 직접 연단(鍊丹)을 하기도 하였다. 진서(晉書)49

 

형형(泂泂)

물이 맑고 깊은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다.

 

형혹(熒惑)

화성(火星)의 별칭이다. 하늘의 법성(法星)으로 이 별이 나타나면 재화와 병란(兵亂)이 뒤따른다 한다. 춘추위(春秋緯)적제(赤帝)의 신()이 형혹이 되어 남방에 위치한다.” 하였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계하기(季夏紀)

 

형화(荊花)

형제를 비유한 말이다. 옛날 전진(田眞)의 형제 3인이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나니, 오직 자형수(紫荊樹) 한 그루만 남았으므로, 이것을 셋으로 쪼개서 나누자고 의논하고서 다음 날 그 나무를 베러 가보니, 나무가 이미 말라 버렸다. 그래서 전진이 크게 놀라 아우들에게 말하기를, “이 나무의 뿌리가 하나인지라, 장차 쪼개 나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마른 것이니, 우리는 나무만도 못하다.” 하고는, 나누었던 재산을 다시 합하여 형제간에 아주 화목하게 살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속제해기(績齊諧記)』 「자형수(紫荊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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