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381. 호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81. 호

건방진방랑자 2020. 6. 4. 19:56
728x90
반응형

381.

 

 

()

본 이름이나 자() 이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다.

 

호가(壺歌)

() 나라 왕돈(王敦)이 대장군(大將軍)으로 큰 공을 세웠는데, 만년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술을 마실 때마다 조조(曹操)가 지은 늙은 천리마 구유에 누웠어도 뜻은 언제나 천 리 밖이요, 열사의 나이 비록 늙었어도 장한 그 마음 변함이 없네[老驥伏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타호(唾壺)를 두드려 타호가 모두 깨지곤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호상(豪爽)

 

호가(浩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다.

 

호가(胡笳)

호인(胡人)들이 갈대의 잎을 말아서 만든 피리를 말하는데, 그 소리가 매우 애원(哀怨)의 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 나라 때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서 들여왔다 한다.

북진()나라 유곤(劉琨)이 진양성(晉陽城)에서 호인(胡人)의 기병(騎兵)에 포위되었을 때에, 달 밝은 밤에 성루(城樓)에 올라가 호가를 부니, 호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향 생각에 젖어서 포위를 풀고 돌아간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62 유곤열전(劉琨列傳)/ 인용: 疲兵行(안수)

 

호가박(胡笳拍)

후한(後漢) 때 채옹(蔡邕)의 딸 문희(文姬)가 지은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을 말하는데 가락이 매우 애처롭다 한다.

 

호가행(浩歌行)

당 나라 이하(李賀)가 지은 칠언 고시의 제목으로, 봄날에 교외에서 벗들과 술자리를 벌여 놀면서 자신의 불우함을 큰소리로 노래한 것이다. 이하시집(李賀詩集)卷一 호가(浩歌)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림. 자신은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남의 권세를 믿고 위세를 부림. 강한 자의 위세를 빌어 약한 자에게 군림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호각(弧角)

구면상(球面上)의 양대원(兩大圓)이 서로 교착하여 이루어진 각()을 이른다.

 

호각지세(互角之勢)

호각(互角)은 쇠뿔의 양쪽이 서로 길이나 크기가 같다는 데서 나온 말, 서로 겨루는 형세.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아주 팽팽하고 대등한 상황을 말한다.

 

호경(呼庚)

군량미가 떨어진 것을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3년 조(), “()의 신숙의(申叔儀)가 공손유산씨(公孫有山氏)에게 군량미를 요청하자, 대답하기를, ‘만약 수산(首山)에 올라가서 경계호(庚癸乎)라고 외치면 보내주겠다.’ 하였다.” 하였는데, 이에 대한 두예(杜預)의 주(), “()은 서방으로 곡식을 주관하고, ()는 북방으로 물을 주관한다.” 하였다.

 

호계(壺界)

신선 세계를 말한다. 동한(東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어떤 노인을 따라 술병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 신선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82방술열전(方術列傳)비장방(費長房)

 

호계(虎溪)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 서남쪽에 있는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 앞의 시내 이름이다. () 나라 때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이곳에 살면서 손님을 전송할 때 이 시내를 건넌 적이 없었는데 하루는 도잠(陶潛)과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하면서 진진한 얘기를 나누다가 그만 호계를 건너자 호랑이가 울었으므로 한바탕 크게 웃고 헤어졌다. 본시 호계를 건너면 호랑이가 울곤 하였다 한다. 연사고현전(蓮社高賢傳)

 

호계별(虎溪別)

호계는 계곡 이름이다. () 나라 때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 있을 적에 하루는 도잠(陶潛)과 육수정(陸修靜) 두 고사(高士)를 전송하면서 3인이 서로 도의(道義)가 부합하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도 모르게 호계를 지나쳐 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호계삼소(虎溪三笑)

혜원대사는 여산(廬山)에 있으면서 어떤 귀한 손님이 왔다가 가더라도 산문 밖에 있는 호계(虎溪)까지 밖에 전송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은 도연명(陶淵明)과 사령운이 왔다 가는데, 그들을 전송하며 이야기하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시내를 건너 얼마를 더 갔었다. 그제야 깨닫고 세 사람이 모두 크게 웃었다 한다. 그래서 그것을 호계삼소(虎溪三笑)라 한다.

 

호계평류(瓠繫萍流)

매달려 있는 뒤웅박처럼 계속 머물러 있게 되거나 물에 떠내려가는 부평초마냥 길을 떠나게 되거나 실의에 차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호공(壺公)

정두원의 호가 호정(壺亭)이다.

 

호공(胡公)

후한(後漢)의 호광(胡廣)을 가리킨다. 후한서(後漢書)44 호광전(胡廣傳)

 

호공능축지(壺公能縮地)

옛날에 호장공(胡長公)이라는 사람은 축지법을 잘했다고 한다.

 

호관(壺關)

중국 호구산(壺口山)을 말한다.

 

호관(虎觀)

진사시(進士試)를 용호방(龍虎榜)이라 부른 데서 나온 말로, 나라에서 과거를 치르는 장소를 말한다.

 

호관친림(虎觀親臨)

() 나라 장제(章帝)가 백호관(白虎觀)에 모든 선비들을 모아 경의(經義)를 토론하게 하고 친히 결재하였다. 그 논의(論議)를 기록한 것이 백호통(白虎通)이란 책이다.

 

호광(毫光)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털()에서 나온다는 빛을 말한다.

 

호구(狐丘)

고향을 잊지 아니한다. 여우가 죽을 때는 제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죽는다고 한다. / 유의어: 호사수구(狐死首丘)

 

호구(虎丘)

중국 오현(吳縣)에 있는 산 이름이다. 오 나라 임금 합려(闔廬)를 장사지낸 지 3일 만에 범이 묘 위에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호구(虎丘)라 하였다 한다. 호구 동서에 절이 있는데 동의 것은 동사(東寺), 서의 것은 서사(西寺)라고 이른다. 월절서(越絶書)

 

호구지계(狐丘之戒)

다른 사람으로부터 원망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호구지책(糊口之策)

입에 풀칠이나 하는 방책. 겨우 끼니를 이어가기 위한 방책. 먹고 살 방법을 이름

 

호군련세시수처(縞裙練帨是誰妻)

소식(蘇軾)매화시(梅花詩), “흰 치마 보얀 수건이 옥천 가의 집이라네.” 했는데 냇가의 매화꽃을 가리킨 말이며, 한유(韓愈)의 오얏꽃을 읊은 시에 흰 치마 보얀 수건과 다름이 없네.” 한 것은 오얏꽃이 매화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임포(林逋)는 매화와 학을 사랑하여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삼았다 한다.

 

호권(虎圈)

범을 기르는 곳을 이른다. 전하여 범 기르는 곳을 관장하는 소신(小臣), 즉 호권색부(虎圈嗇夫)의 준말로, 낮은 벼슬을 비유하기도 한다.

 

호기(呼旗)

48일 아이들이 장대에 종이를 오려붙여 이것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미포(米布)를 요구하여 놀이 비용으로 삼았는데 그 장대를 말한다.

 

호기(灝氣)

천지의 정대(正大)하고 강직(剛直)한 기운을 말한다.

 

호기진등(豪氣陳登)

아무리 유명 인사라 하더라도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예 상대도 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 나라 진등이 국사(國士)의 명성을 갖고 있는 허사(許汜)가 찾아왔을 때, 손님 대접도 하지 않고서 자기는 큰 침상 위에 누워서 자고 허사는 그 밑에서 자게 했던 고사가 있다. 삼국지(三國志)7

 

호노(楛砮)

호시석노(楛矢石砮)의 약칭으로 탱자나무 비슷한 나무로 만든 화살과 돌화살촉이라는 뜻인데, 주 나라 때 동방 민족인 숙신국(肅愼國)에서 공물로 바치던 것이다. 국어(國語)魯下

 

호당(湖堂)

문신들에게 여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하던 곳. 사가독서(賜暇讀書)하는 독서당(讀書堂)을 말한다. 조선 세종 8년에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왕명에 따라 시작하였고 병자호란 후 폐지되었다.

 

호당독서(湖堂讀書)

문관(文官) 가운데 문학에 뛰어난 사람에게 말미를 주어 오로지 학업을 닦게 하던 일. / 유의어: 사가독서(賜暇讀書).

 

호대(縞帶)

멀리 흘러가는 강물이 마치 하얀 띠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쓴 표현이다.

 

호도격주(號咷擊柱)

한 고조(漢高祖)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는 진() 나라의 의법(儀法)을 모두 버리고 간소화시키자, 뭇 신하들이 술을 마시며 공()을 다투고, 취한 자는 혹 망녕되이 부르짖으면서 칼을 뽑아 기둥을 치기도 했던 일을 가리킨 말이다. 한서(漢書)』 「숙손통전(叔孫通傳)

 

호두(虎頭)

()나라 때의 화가 고개지(顧愷之). 그의 소자(小字)가 호두(虎頭)이므로 세칭 고호두라 한다. 세상에서 재()ㆍ서()ㆍ치()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호두(鄠杜)

() 나라 때 서도(西都) 근방 부풍(扶風)에 있는 호현(鄠縣)ㆍ두양현(杜陽縣)을 말한다. 한서(漢書)』 「원후전(元后傳)여름에는 어숙현(篽宿縣)ㆍ호현ㆍ두양현의 사이에서 노닌다.” 하였다. / 인용: 詰楊吏(허격)

 

호두수부(虎頭水府)

서주(徐州)의 성동(城東)에 석담(石潭)이 있어 사수(泗水)와 통하는데, 날이 가물 때에는 그 석담 가운데 범의 머리를 넣어주면 구름이 있고 비가 내린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十六 기복용행서(起伏龍行序)

 

호두연타청모장(壺頭鳶墮靑茅瘴)

후한(後漢)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공격하며 호두산에 이르렀을 때 혹독한 무더위를 만나 역사(疫死)하는 사졸들이 늘어나고 자신도 병에 걸리자 찌는 듯 치솟아 올라오는 독기에 솔개도 물속에 툭툭 떨어지나니, 고향에서 편히 살자던 소싯적의 그 말을 누워서 떠올린들 어떻게 될 수가 있겠는가[毒氣熏蒸 仰視鳥鳶跕跕墮水中 臥念少游平生時語 何可得也].”라고 탄식했던 고사가 있다. 청모(靑茅)는 향기가 독한 남방의 띠풀이다. 동관한기(東觀漢記)』 「마원전(馬援傳)

 

호두전신(虎頭傳神)

호두(虎頭)는 동진(東晉) 때의 문인화가(文人畫家)인 고개지(顧愷之)의 자. 고개지는 매양 사람을 그릴 때마다 수년 동안 눈을 그리지 않으므로 누가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초상을 그려서 정신(精神)을 전하는 것은 바로 이 눈동자에 달려 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호량(濠梁)

안휘성(安徽省) 봉양현(鳳陽縣)에 있는 호수(濠水)의 가교(架橋). 옛날 장자(莊子)가 자기 친구인 혜자(惠子)와 함께 호량에서 노닐면서 물고기의 낙()에 대하여 서로 얘기를 나누었던 데서 온 말로, 즉 친구들끼리 물가에서 노닒을 비유한 것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호량변(濠梁辨)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장자(莊子)와 혜자(惠子)가 호량(濠梁)의 강 위에서 어락(魚樂)에 대해 서로 논쟁한 것이다.

 

호량유(濠梁游)

친한 벗끼리 둘이 만나 노닒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가 자기 친구인 혜자(惠子)와 함께 호수(濠水)의 다리에 앉아 물고기를 구경하며 노닐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호려(虎旅)

호분(虎賁)과 여분(旅賁)으로, 즉 위사(衛士)를 가리킨다.

 

호려(胡廬)

호려(胡盧)와 같은 말로, 목구멍 사이에 나오는 웃음소리를 말한다[喉間的笑聲]

 

호련(瑚璉)

()와 연()은 모두 고대에 종묘(宗廟)에서 서직(黍稷)을 담던 소중한 제기(祭器)로서, 그 귀중함으로 인해 큰 임무를 감당할 만한 재능을 소유한 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자공이 묻기를 저는 어떠한 그릇입니까?’ 하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너는 호련이다.’고 하였다[子貢問曰:“賜也何如?” 子曰:“女器也.” :“何器也?” :“瑚璉也.”].” 하였다.

 

호련기(瑚璉器)

훌륭한 인재를 말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자공(子貢)저는 어떻습니까?’ 하니, 공자(孔子)너는 그릇이다.’ 하였다.’무슨 그릇입니까?’ 하니, ‘호련이다했다[子貢問曰 賜何如 子曰 汝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하였다.

 

호령(狐嶺)

남태령의 별칭이다.

 

호로(葫蘆)

당 나라 등산거(鄧山居)가 독약을 화살에 발라 짐승을 쏘았는데 그 자리에서 넘어지므로 모호로(毛葫蘆)라 하였다.

의양화호로(依樣畫葫蘆)의 준말로, 곧 옛사람을 본뜨기만 하고 새로운 생각을 창안해 내지 못함을 이른다. () 나라 도곡(陶穀)의 시에 가소롭다 한림 도 학사는 해마다 모양따라 호로병을 그리누나[堪笑翰林陶學士 年年依樣葫蘆].” 하였다.

약초의 이름인 호로파(葫蘆巴)의 준말인데, 본초(本草)에 의하면 이 약초를 의가(醫家)에서 장부(臟腑)의 허냉증(虛冷症)에 쓴다고 되어 있다.

 

호룡도(虎龍韜)

병법(兵法)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을 말한다. () 나라 여상(呂尙)이 지은 육도(六韜)라는 병서(兵書) 속에 용도(龍韜)와 호도(虎韜)의 편명이 들어 있다.

 

호리(蒿里)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른다. 옛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혼백이 여기에 머문다고 하므로, 전하여 묘지를 말한다.

 

호리(毫釐)

극히 미세한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경해(經解)호리에서 잘못되면 천 리까지 틀려진다[差若毫釐 繆以千里]” 하였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호리건곤(壺裏乾坤)

호리병 속에 펼쳐져 있다고 하는 신선 세계를 가리킨다.

 

호리곡(蒿里曲)

사람이 죽어 상여가 나갈 때에 부르는 노래. 즉 만가(輓歌)를 말한다. 해로가(薤露歌)는 왕공(王公)ㆍ귀인(貴人)에 대한 것에 반해, 호리는 사대부와 서인(庶人)에 대한 것이다.

 

호리별유천(壺裏別有天)

후한(後漢) 때 한 노인이 시장에서 약()을 팔았는데, 자기 점포 머리에 병 하나를 걸어 놓고 있다가 시장을 파하고 나서는 매양 그 병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는데, 다만 비장방(費長房)이 그것을 알고 그 노인에게 가서 재배(再拜)하고 인하여 노인을 따라서 그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옥당(玉堂)이 화려하고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가 그득하여 함께 술을 실컷 마시고 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호리애만(蒿里哀挽)

죽은 이를 애도하여 짓는 장송가(葬送歌)를 말하는데, 왕공(王公) 귀인(貴人)들에 대해서는 보통 해로곡(薤露曲)이라 하고, 사대부와 서인에 대해서는 호리곡(蒿里曲)이라 한다. 사기(史記)』 「전담열전(田儋列傳)

 

호리옥경(壺裏玉京)

술단지 속은 신선 세계를 말하고, 옥경(玉京)은 신선들이 사는 천상의 나라를 말한다. 동한(東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에서 약을 파는 노인이 술단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따라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신선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82방술열전(方術列傳)비장방(費長房)

 

호리유천(壺裏有天)

동한(東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시중에 어떤 노인이 약을 팔면서 가게 앞에다가 술단지() 하나를 걸어 놓고는 시장이 파하자 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비장방이 누각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그 노인에게 가서 노인과 함께 그 술단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옥당(玉堂)이 있었으며, 그 안에서 좋은 술과 기름진 안주가 끊임없이 나왔다. 이에 둘이 함께 마시고는 취해서 나왔다. 후한서(後漢書)82방술열전(方術列傳)비장방(費長房)

 

호마(胡麻)

참깨이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연간에 유신(劉晨)과 완조(阮肇)가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서 약을 캐다가 두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들이 집으로 데리고 가서 호마밥을 지어주었다 한다. 속제해기(續齊諧記)

 

호마연북풍(胡馬戀北風)

호마(胡馬)는 북쪽 오랑캐의 말이고, 월조(越鳥)는 남쪽 월() 나라의 새이다. 고문진보(古文眞寶)전집(前集) 고시(古詩) 행행중행행(行行重行行)북쪽 오랑캐의 말은 북풍에 의지하고, () 나라의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트네.” 하였다.

 

호마호우(呼馬呼牛)

훼예(毁譽)를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름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도(天道)에 보인다.

 

호모경(胡母敬)

() 나라 태사령(太史令)을 지냈음. 사주(史籒)의 대전(大篆)을 간소화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었음.

 

호모부가(毫毛斧柯)

수목을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는 미세할 때에 예방해야 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호묘(湖泖)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삼묘호(三泖湖)를 가리킨 것으로, 예찬(倪瓚)이 평소에 삼묘호를 왕래하면서 풍류를 즐겼다 한다.

 

호문(互文)

이리저리 연결되는 문체.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평생에 백우선도 영락했고 평생에 교룡갑도 영락했다.”는 식으로, 윗구의 평생이 아랫구에도 내려가고, 아랫구의 영락이 윗구에도 올라와서 전체의 뜻을 보완해 준다.

 

호미(狐媚)

음사한 방법을 써서 다른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을 말한다. 진서(晉書)』 「석늑재기(石勒載記), “대장부가 행하는 일은 정정당당하여 일월처럼 환해야 하는 법이니, 끝내 조맹덕(曹孟德)이나 사마중달(司馬仲達) 부자(父子)처럼 고아나 과부를 속여 여우처럼 미혹시켜서 천하를 차지하지는 않겠다.” 하였다.

 

호박가(胡拍笳)

채양(蔡襄)이 호가 십팔박(十八拍)을 썼는데, 안방 여인의 자태가 있었다.

 

호배(虎拜)

천자를 배알하여 절하는 것을 말한다. ()는 주 선왕(周宣王)때의 어진 신하 소목공(召穆公)의 이름이다. 시경(詩經)대아(大雅) 강한(江漢)소호는 엎드려 머리 조아리고 임금님 은덕을 사례했네[虎拜稽首 對揚王休].”에서 나온 말로, 대장이 임금께 절하는 것을 말한다.

 

호백구(狐白裘)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을 여러 장 모아 이어서 만든 갖옷. 귀족고관 대작(高官大爵)만이 입을 수 있었던 데서 귀족의 상징물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호구(狐裘)라고도 말한다.

 

호복기사(胡服騎射)

어떤 일에 착수할 만전의 태세를 갖추다란 뜻의 고사성어다.

 

호복림중석(虎伏林中石)

()나라 이광(李廣)이 사냥 나갔다가 풀 속의 돌을 보고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살이 박히기에 가서 보니 돌이었다. 사기(史記)卷一百九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호복의(濠濮意)

호량(濠梁)장자(莊子)와 혜자(惠子)가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논한 곳이고, 복수(濮水)는 장자(莊子)가 초() 나라 왕의 초빙도 거절한 채 낚시를 하던 곳으로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나오는 곳이다.

②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 간문제(簡文帝)가 화림원(華林園)에 들어가서는 좌우를 돌아보며 마음에 맞는 곳을 찾으려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울창하게 우거진 이 수목 사이에 들어서니, 호량과 복수 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저절로 든다[會心處不必在遠 峠然林木 便自有濠濮間想也].”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호부(虎符)

범 모양으로 만든 구리 병부로 동호부(銅虎符)라 하여 군국(郡國)의 수상(守相)들이 지녔으며, 대나무로 만든 죽사부(竹使符)는 격하되어 군사를 징발할 때에만 사용되었다. / 인용: 雲巖破倭圖歌(유득공)

 

호부견자(虎父犬子)

아버지는 잘났는데 아들은 못나고 어리석다는 뜻이다.

 

호분(胡紛)

기름과 분을 섞어 죽과 같이 만든 도료. 석명(釋名) 석수식(釋修飾)胡紛, , 餬也. 脂和以塗面也.”라 하였다.

 

호분(虎賁)

범이 짐승을 때려잡듯 하는 용사(勇士)를 말한다. () 나라의 벼슬 이름인데, 용력 있는 장사를 여기에 편입시켜 호사(虎士) 8백 인을 거느리고 왕이 출입할 때에 앞뒤에서 호위하는 일을 맡았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은 호분(虎賁)의 군사가 백여 만이다[虎賁之士百餘萬].” 하였다.

본래 제왕(帝王)을 호위하던 주대(周代)의 관명인데, 후세에 용맹한 군인의 의미로 쓰였다. 시경』 「목서(牧書)()무왕(武王)은 융거(戎車)3백 냥()이고 호분이 3백 인이다.” 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마가 많이 낀다. 좋은 일이 있을 땐 이상하게도 이를 방해하는 궂은 일이 많이 생김. 또는 좋은 일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그 만큼 노력과 고충이 뒤따른다는 말

 

호사무인송주전(好事無人送酒錢)

() 나라 양웅(揚雄)이 가난해서 좋아하는 술도 못 먹고 있었는데, 호사자(好事者)들이 가끔씩 술과 안주를 가지고 찾아와서 배우며 노닐었다 한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

 

호사수구(狐死首丘)

고향을 잊지 않음. 여우가 죽을 때면 제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설림훈(說林訓)

 

호사유피(虎死留皮)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김과 같이 사람도 죽은 뒤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말

 

호사유피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호사인(好事人)

물으러 오는 사람. 한 나라 양웅(揚雄)은 술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집이 가난해 마시지를 못했는데, 호사자(好事者)가 술과 안주를 싸들고 와서(載酒肴) 종유(從游)하며 배웠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서(漢書)』 「양웅전친(揚雄傳贊)

 

호사자(好事者)

술병을 들고 찾아와서 글을 묻는 사람들을 말한다. () 나라 양웅(揚雄)이 좋아하는 술도 못 먹을 정도로 집이 가난하였는데, 인적이 드문 그 집에 이따금씩 호사자가 술과 안주를 들고 찾아와 글을 배웠다는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87 양웅전친(揚雄傳贊)

 

호사필수구(狐死必首丘)

여우는 죽을 때 반드시 머리를 살던 언덕으로 향한다.

 

호사휴호지(好事携壺至)

() 나라 양웅(揚雄)이 집안이 가난하여 좋아하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있었는데, 호사자들이 술과 안주를 싸들고 와서 종유(從游)하였다고 한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

 

호산(壺山)

여산(礪山)의 옛 이름이다.

 

호상(滈翔)

높이 날다.

 

호상(湖湘)

동정호(洞庭湖)와 상강(湘江)을 말한다.

 

호상락(濠上樂)

장자(莊子)와 혜시(惠施)가 징검다리 위(濠梁之上)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토론을 벌인 이야기가 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호상원지(濠上遠志)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만나 호량(濠梁)위에서, 뛰노는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 문답하던 시속을 초월한 뜻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호생(好生)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好生之德 洽于民心의 대문이 있다.

 

호성홀혜패(胡星忽彗孛)

안녹산(安祿山)이 반기(叛旗)를 들고 일어난 것을 말함인데, 안녹산은 원래 흉노(匈奴) 족속이었다.

 

호소(縞素)

흰색의 상복(喪服)을 말한다.

 

호손입낭(胡孫入囊)

호손(胡孫)은 원숭이의 별칭이다. () 나라 매성유(梅聖兪)가 끝내 관직 하나를 얻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당서(唐書)를 개수(改修)하라는 조칙을 받자, 자기 아내에게 내가 실록을 개수하게 되다니, 얻기 힘든 호손이 자루 속에 절로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吾之修書 可謂胡孫入布袋矣].”고 했다는 일화가 구양수(歐陽修)귀전록(歸田錄)2()에 수록되어 있다.

 

호수(狐首)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인지상정을 말한다. 여우가 죽을 때에 옛날 살던 곳으로 머리를 둔다는 狐死首丘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호수(湖叟)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의병장이었던 정세아(鄭世雅), 그의 호가 호수(湖叟)이고 자는 화숙(和叔),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호수(虎宿)

백호(白虎)의 성수(星宿)로서 즉 서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호수매치(胡首埋置)

국경을 침범하였다가 잡혀 참수된 호인의 머리를 한성부(漢城府)가 호인이 왕래할 때 지나는 길가에 묻어두어 징계가 되게 하는 것.

 

호수면낭(皓首當年未免郞)

() 나라 풍당(馮唐)이 흰머리가 되도록 낮은 관직인 낭관(郞官)으로 있다가 문제(文帝)가 마침 낭서(郞署)를 지나다가 그와 문답하여 보고 그의 인재를 알아준 일이 있다.

 

호수한사(皓首漢駟)

젊은 나이에 사신(使臣)으로 호국(胡國)에 들어가 억류생활을 하다가 19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보니 머리가 이미 하얗게 변했다는 한() 나라 소무(蘇武)의 고사로 사람의 불우(不遇)를 말한다.

 

호숭(呼嵩)

한 무제(漢武帝)가 숭산(嵩山)에 올랐더니, 신하들이 말하기를, “산이 만세(萬歲)를 세 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였다. 여기서는 곧 만세를 부른다는 말이다.

 

호승(胡僧)

서역(西域)에서 온 중을 말한다.

 

호승(胡繩)

향기로운 풀 이름이다. 굴원(屈原)이소경(離騷經)에 자기 자신을 깨끗하고 향기롭게 가꾼다는 뜻으로, “계수나무를 들어 난초 꿰달고, 호승으로 노끈을 길게길게 꼬리[矯菌桂以紉蘭兮 索胡繩之纚纚].”하였다.

 

호승(胡僧)

인도의 중이란 뜻이다.

 

호시(楛矢)

호목(楛木)으로 만든 화살인데, 주 무왕(周武王) 때에 숙신씨(肅愼氏)가 이 화살을 조공했다는 데서, 즉 사방 오랑캐들이 중국에 귀순하여 조공함을 말한다. 국어(國語)』 「노어(魯語)공자(孔子)가 진() 나라에 있을 때 새매가 진후(陳侯)의 뜨락에 날아와서 죽었는데 돌촉의 싸리나무 화살에 관통된 것이 길이가 한 자가 넘었다. 진후가 사람을 시켜 새매를 가지고 공자에게 가서 물으니 공자가 이르기를 이 새매가 멀리 왔다. 이 화살은 숙신씨(肅愼氏)의 화살이다.’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시(怙恃)

믿어서 의지하는 것. 자식의 호시는 부모요, 신하의 호시는 임금이다. 시경(詩經)소아(小雅) 육아(蓼莪)아버지가 없으면 누구를 믿으며 어머니가 없으면 누구를 의지하랴!” 하였다.

 

호시(虎市)

저자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을 하면 믿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호시(弧矢)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아들을 낳았음을 말한다. 옛날에 아들을 낳으면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화살 여섯 개로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을 향하여 한 개씩 쏘았던 데서 온 말인데, 그것은 곧 남아(男兒)가 사방에 웅비(雄飛)하기를 축원하는 뜻에서라고 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호시석노(楛矢石砮)

탱자나무 비슷한 나무로 만든 화살과 돌화살촉이라는 뜻인데, 주 나라 때 동방 민족인 숙신국(肅愼國)에서 공물로 바치던 것이다. 국어(國語)』 「()

 

호시원(弧矢願)

호시는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화살로, 천하를 경략하고자 하는 큰 뜻을 말한다. 옛날에 아들이 태어난 뒤 3일이 지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서 천지 사방에 활을 쏘아, 남아로 태어났으면 응당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품어야 함을 표상하였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호시장도(弧矢壯圖)

천하를 경략하고자 하는 큰 뜻을 말한다. 고대에 아들이 태어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쑥대로 화살을 만들어서 천지 사방에 활을 쏘아, 남아로 태어났으면 응당 사방을 돌아다닐 뜻을 품어야 함을 표상하였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호시지(弧矢志)

호시는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을 말한다. 쑥은 어지러움을 막는 풀이고 뽕나무는 모든 나무의 근본이라 하여 상고 때 사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만든 활에 쑥대화살 여섯 개를 천지와 동서남북에 쏘아 보내 장부의 뜻이 원대하여 천지 사방에 있음을 표시하였다 한다. 곧 장부의 원대한 포부를 말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호시탐탐(虎視耽耽)

범이 사나운 눈초리로 먹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날카로운 눈초리로 형세(形勢)를 노려보는 것을 말한다.

 

호식내열(虎食內熱)

장자(莊子)』 「달생(達生)옛날 노() 나라의 단표(單豹)라는 사람은 바위굴 속에 살면서 물만 마시어 나이 70세가 되어서도 얼굴이 어린애 같았는데 불행히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고, 장의(張毅)라는 사람은 아무데라도 가리지 않고 두루 다녔는데 나이 40세에 내열병(內熱病 심장에서 열이 나는 병)이 나서 죽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 뒤떨어진 것을 보충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정신)을 기르는 데만 전적으로 힘쓰지 말고, ()을 너무 드러내지도 말아서 안과 밖이 똑같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지인(至人)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한 데서 온 말이다.

 

호아(虎兒)

미불(米芾)의 아들 미우인(米友仁)의 이름이 호아이다.

 

호아(虎牙)

장군(將軍)의 명호(名號), 동한(東漢)의 용장(勇將)인 개연(蓋延)과 요기(姚期)가 각각 호아장군과 호아대장군에 임명된 고사가 전한다.

 

호아(胡娥)

흉노(匈奴)의 여자를 이른다.

 

호아멱추성(呼兒覓秋聲)

() 나라 구양수(歐陽修)가 가을 기운이 만물을 숙살 조락(肅殺凋落)시키는 데에 느낌이 있어 지은 추성부(秋聲賦)구양자(歐陽子)가 밤에 글을 읽는데 서남쪽에서 쌀쌀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내가 아이를 불러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나가 보라 하였더니, 아이가 들어와 말하기를 별과 달은 밝고 깨끗하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으며, 사방에 인기척은 없는데 소리가 나무 사이에서 났습니다.’고 했다.” 한 데서 온 말로, 즉 가을이 왔음을 비유한 말이다.

 

호안(胡眼)

불자(佛者)의 눈을 이른다.

 

호앙천랑(胡昂天狼)

호묘성(胡昴星)과 천랑성(天狼星). 옛날에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이 두 별이 나타나 요기(妖氣)를 부린다고 믿었다.

 

호어(濠魚)

호수(濠水)에서 사는 피라미로, 한가롭게 노니는 물고기를 말한다.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와 호숫가 봇둑 위를 걷다가, “피라미가 나와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군. 피라미는 참 즐거울 거야.” 하니, 혜자가, “자네는 피라미가 아닌데 어떻게 피라미가 즐거울 것이란 것을 아는가?”하자, 장자(莊子),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가?”하니, 혜자가, “나는 자네가 아니라서 본시 자네를 알지 못하네. 자네도 본시 피라미가 아니니 자네가 피라미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네.” 하였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호언장담(豪言壯談)

실지 이상으로 보태어서 허풍쳐 하는 말이다.

 

호연(浩然)

맹호연(孟浩然)인데, () 나라 양양(襄陽) 사람이다. 시로 명성이 크게 났으며, 왕유(王維)와 함께 왕맹(王孟)으로 불렸다.

 

호연지기(浩然之氣)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도 큰 원기(元氣),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 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 사물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호연희연(皞然熙然)

광대하고 자득한 모양을 말한 것으로, 즉 성왕(聖王)의 정치는 마치 천지의 자연과 같아서, 백성들이 그 태평 성대에 살면서도 전혀 누구의 덕으로 그렇게 사는지조차 모르는 아주 자연스러움을 말한다.

 

호염읍(胡髥泣)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서 솥을 주조하고 나자, ()이 호염(胡髥; 턱수염)을 내려 황제를 맞이하니, 황제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므로, 소신(小臣)들은 함께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뜨린 황제의 궁검(弓劍)과 용의 수염만 안고 통곡했던 데서 온 말로, 역시 임금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호오(好惡)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

 

호오봉(胡五峰)

오봉(五峰)은 송() 나라 학자 호굉(胡宏)의 호이다.

 

호우(湖右)

호서(湖西), 곧 충청도(忠淸道)를 말한다.

 

호우호마(呼牛呼馬)

장자(莊子)』 「천도(天道)저번에 자네가 나를 소라고 불렀을 때 내 자신도 소라고 생각했고 나를 말이라 불렀을 때 또한 말이라 생각했다.”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에 대한 남들의 실없는 칭찬이나 비방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원(胡元)

() 나라가 이민족(異民族)에게서 일어났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호원감목(胡元監牧)

() 나라 때에 제주도를 거마(車馬)를 관장하는 방성(房星)의 분야(分野)라 하여 이곳에 말의 목장(牧場)을 두고 단사관(斷事官)이나 만호(萬戶)를 두어 목축을 주관했던 데서 온 말이다.

 

호월(胡越)

()는 북쪽 지방에, ()은 남쪽 지방에 있었으므로 거리가 먼 것을 칭한다. 매우 소원(疏遠)함을 비유한 말이다.

 

호월고풍(壺月高風)

() 나라 도학자 이통(李侗)의 높은 인격을 말한다. 송사(宋史) 428등적(鄧迪)이 일찍이 주송(朱松)에게 말하기를 원중(愿中)은 마치 빙호추월(冰壺秋月)과 같아 한 점 티가 없이 맑게 비치니 우리들이 따라갈 수가 없다.’ 하였다.” 하였다.

 

호위(虎闈)

궁성의 호문(虎門)과 같은 말로, 호문의 좌측에 있던 국자감(國子監)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성균관(成均館)을 말하기도 한다.

 

호위(虎衛)

왕의 근위병을 가리킨다.

 

호위문견(胡威問絹)

호위(胡威)는 진() 나라 호질(胡質)의 아들. 그의 아버지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적에 위가 가서 뵙고 돌아오는데, 비단 한 필을 주므로 위가 꿇어 앉아 아버님께서 청백하신데 어디서 이 비단을 얻으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질이 이것은 내 봉급에서 남은 것으로 너의 생활에 보태주는 것이다.” 하자, 위가 그제서야 받았다. 진서(晉書)卷九十

 

호유(胡荽)

향초의 이름이다.

 

호음(湖陰)

조선 시대 문신(文臣)정사룡(鄭士龍)의 호이다.

 

호의(狐疑)

여우처럼 의심이 많아 우유부단(優柔不斷)하게 결정(決定)하지 못하거나 또는 그런 부류의 사람을 말한다. / 인용: 檄黃巢書(최치원)

 

호의(縞衣)

자신의 아내를 겸칭(謙稱)한 말이다. 시경(詩經)정풍(鄭風) 출기동문(出其東門)흰 저고리 초록 치마가 그래도 나의 사랑이로다[縞衣綦巾 聊樂我員].” 한 데서 온 말이다.

 

호자(胡仔)

() 나라 사람으로, 호는 초계어은(苕溪漁隱)이다.

 

호자(瓠子)

한 무제(漢武帝) 때 이곳에서 황하수가 터졌다고 한다.

 

호자가(瓠子歌)

() 나라 무제(武帝)가 지은 노래 이름이다. 무제 때 황하수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복양현(濮陽縣)에 있는 호자(瓠子)의 둑을 터뜨리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를 시켜서 터진 곳을 메우게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에 무제가 사방에 가 봉선(封禪)한 뒤에 친히 이곳으로 와 급인(汲仁)과 곽창(郭昌)으로 하여금 군사 수만 명을 징발하여 메우게 하였는데, 장군(將軍) 이하가 모두 등에 짐을 지고 가 메우면서 기원(淇園)의 대나무를 모두 잘라다가 채워넣어 마침내 공사를 완공하였다. 그러자 무제가 호자가를 짓고는 이곳에다가 선방궁(宣房宮)을 세웠다. 한서(漢書)6 무제기(武帝紀)

 

호장(壺漿)

어진 관원이 지나가면 백성들이 항아리에 미음을 담아 가지고 바치면서 환영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호장백일선(壺藏白日仙)

()나라 비장방(費長房)이 여남시(汝南市)의 연리(椽吏)로 있었는데, ()에 한 노인이 병() 하나를 매달아 놓고 약()을 팔다가, 일을 마치고 나면 매양 병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데, 비장방이 누상(樓上)에서 그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찾아가 절하고 술과 안주를 대접하며, 같이 병 속에 들어가기를 간청하였다. 병 속에 들어가 본즉, 화려한 집과 좋은 음식들이 가득 찼었다.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신선(神仙)인데 허물을 짓고 귀양왔다.” 하였다.

 

호저(縞紵)

흰 명주띠와 모시옷.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계찰(季札)이 정() 나라의 자산(子産)에게 흰 명주띠를 선사한 데 대하여 그 답례로 자산이 계찰에게 모시옷을 선사한 고사에서 온 말로, 벗 사이의 선물 또는 교의(交誼)의 뜻으로 쓰인다. 좌전(左傳)襄公二十九年

 

호저회(縞紵懷)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오() 나라 계찰(季札)이 정() 나라 자산(子産)에게 흰 명주 띠를 선사하고, 자산은 그 답례로 계찰에게 모시옷을 보낸 고사에서 온 말이다.

 

호전(胡銓)

()의 여릉(廬陵)사람으로 호가 담암(澹菴). 고종(高宗)때 추밀원 편수관(樞密院編修官)으로서 당시 진회(秦檜)가 금()과의 화의를 주장하여 금나라 사신이 강남 지방을 조유(詔諭)한다는 명분으로 임안(臨安)에 이르자, 호전이 글을 올려 진회와 손근(孫近) 및 금나라 사신 왕륜(王倫) 세 사람의 목을 베야 한다고 상소했다가 진회의 노여움을 사, 후에는 길양군(吉陽軍)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후 진회가 죽고 효종(孝宗)이 즉위하여 그를 다시 봉의랑(奉議郞)에 복위시키고 이어 소대(召對)하였다. 송사(宋史)卷三百七十四

 

호접(蝴蝶)

나비.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옛적에 장주(莊周)가 꿈에 범나비가 되었는데, 깨어 보니 바로 장주였다.” 하였다.

 

호접공(蝴蝶空)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蝴蝶)가 되어서 펄펄 날아 다녀 보았는데, 그때에는 자기가 그대로 나비로만 생각하였지 장자(莊子)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꿈을 깨어서 사람이 되고 보니, 자기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으나 실상은 나비가 정말인데 사람이 나비 꿈속에서 잠시 화()한 것인지, 그렇다면 세상은 그 나비와는 관계없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호접몽(胡蝶夢)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는 고사. 장자(莊子)는 꿈도 현실도, 삶도 죽음도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했다. 우리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한낱 만물의 변화상에 불과한 것이다. , 외물과 자아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한 말이다.

 

호접이망양(蝴蝶已亡羊)

호접은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어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고 놀았다는 데서, 꿈꾼 것을 뜻하고 양()을 잃었다는 것은 옛날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고 찾으러 나갔으나 갈림길이 많아서 찾지 못하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이미 잃어버린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열자(列子)』 「설부(說符)

 

호접지몽(胡蝶之夢)

나비의 꿈. 어느 날 장주(莊周,)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꿈에 내가(장주가) 나비가 되어 기분 내키는 대로 유쾌하게 훨훨 날아다니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장주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잠을 깨고 보니 틀림없는 나(장주)였다. 꿈이 워낙 생생하다 보니 도대체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내가 되어 있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와 나비는 겉보기엔 분명 구별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물(만물)은 서로가 본질적으로 같은 하나의 존재이다. 만물들이 세상에 존재할 때 겉모습이 나(사람)와 나비처럼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은 만물들의 단순한 변화일 뿐이지, 서로가 본질이 다른 절대적인 변화가 아니다. , 이 세상 만물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닌 동일한 본질을 가진 하나의 존재이며, 그 만물들은 각기 변화된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물(만물)은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하나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호접진(蝴蝶陣)

진법(陣法)의 하나로 왜적들이 즐겨 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중이던 계사년(1593)에 명 나라에서 구원병으로 나왔던 제독(提督) 이여송은 벽제(碧蹄)에서 왜적의 유인에 말려 그만 진흙 속에 빠져 탄 말이 나오지 못했다. 이여송은 몹시 위급하게 되었는데 지휘사(指揮使) 이유승(李有昇)의 구원으로 다행히 탈출하였으나 이유승은 끝내 왜적에게 잡히어 죽고 말았다. 이여송은 그의 사위 왕심(王審)을 불러 보고 크게 통곡하였다. 제조번방지(再造藩邦志)卷二

 

호정(壺亭)

정두원(鄭斗源)의 호이다.

 

호정교(胡釘鉸)

남부신서(南部新書)에 의하면, 호생(胡生)이란 자는 만두 만드는 것으로 업을 삼으며 백빈주(白蘋州) 가에서 살았는데, 그 곁에 고분(古墳)이 있어서, 매양 차를 마시게 되면 반드시 한 잔을 올리곤 하였다. 하루는 꿈에 어떤 사람이 말하되, “나의 성은 유()인데, 평생에 시()를 잘하고 차마시기를 즐겼었다. 그대가 차를 나눠 준 은혜 감사하고 있으나 갚을 길이 없으므로 그대에게 시를 가르쳐 주고자 한다.” 하므로, 호생은 능하지 못함을 들어 사양하자 유()는 강권하며, “다만 그대 뜻대로만 하면 된다.” 하여, 호생은 마침내 시를 잘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생의 시체(詩體)를 후인들이 호정교체(胡釘鉸體)라 일렀다 한다.

 

호조비화(好鳥飛花)

이 백의 시에, “좋은 새는 봄을 맞아 뒷동산에서 노래하고, 나는 꽃은 술을 보내어 처마 앞에 춤을 추네[好鳥迎春歌後院 飛花送酒舞前簷].”라고 하였다.

 

호주(互足)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말이다.

 

호주(壺洲)

선산(仙山)인 방호(方壺)와 영주(瀛洲)를 뜻하는 시어(詩語)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호주두목(湖州杜牧)

() 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일찍이 호주(湖州)에 가서 친구인 자사(刺史)의 주선으로 10여 세쯤 된 미녀를 만났는데, 이때 두목이 약속하기를 지금은 데려갈 수 없으니, 의당 10년 뒤에 내가 호주자사가 되어 오겠다. 그때에 내가 오지 않으면 다른 데로 시집을 가도 좋다.” 하고는 서로 헤어졌다가 14년 뒤에야 호주자사가 되어 가 보니, 그녀는 이미 시집을 가서 두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를 잠시 만나 보고 헤어지면서 이별을 슬퍼하여 지은 시에 스스로 봄을 찾아간 것이 더디었으니 굳이 슬퍼하며 꽃다운 시절 한할 것 없네 미친 바람이 짙붉은 꽃 모두 떨어뜨리어 푸른 잎 그늘 이루고 열매가 주렁주렁하구나[自是尋春去較遲 不須惆悵恨芳時 狂風吹盡深紅色 綠葉成陰子滿枝]” 한 데서 온 말이다.

 

호중(壺中)

신선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동한(東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에서 약을 파는 노인이 술단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따라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신선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열전(方術列傳)비장방(費長房)

 

호중구화운(壺中九華韻)

소식(蘇軾)의 호중구화시(壺中九華詩)의 운을 이르는데, 호중구화시의 자서(自序)에 의하면 호구(湖口) 사람 이정신(李正臣)이 기이한 돌을 가지고 있는데, 아홉 봉우리가 영롱(玲瓏)하고 마치 격자창 모양으로 생겼으므로, 내가 백 금(百金)을 주고 그것을 사다가 나의 구지석(仇池石)과 짝을 만들고 싶었으나, 마침 남쪽으로 옮겨가게 되어 틈을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우선 이를 호중구화라 명명하고 또 시로써 기록하는 바이다.” 하였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三十八

 

호중멱구환(壺中覓九還)

술병 속은 신선 세계를 말하고, 구환단(九還丹)은 아홉 차례 달인 단약(丹藥)으로, 이를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한다.

 

호중세월(壺中歲月)

선인(仙人) 호공(壺公)이 병 속에서 별천지(別天地)를 누리고 지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별천지의 뜻으로 쓴 말이다.

 

호중일(壺中日)

() 나라 비장방(費長房)이 신선을 따라 병 속에 들어가 본 즉 별천지가 있었다.

 

호중일월(壺中日月)

후한 때 신선 호공(壺公)이 시장에서 약장수를 하면서 장이 파하면 그때마다 병 속(壺中)으로 들어가므로, 시연(市掾)으로 있던 비장방(費長房)이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 별천지(別天地)가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비장방전(費長房傳)

 

호중장일월(壺中藏日月)

선인(仙人) 호공(壺公)의 호로병 속으로 비장방(費長房)이 함께 들어가 보니, 그 안에 일월(日月)이 걸려 있고 신선 세계가 펼쳐져 있더라는 전설이 전한다. 신선전(神仙傳)」 「호공(壺公)

 

호중천(壺中天)

선경(仙境)을 이르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술사(術士) 비장방(費長房)이 선인(仙人) 호공(壺公)을 따라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서 선경의 즐거움을 한껏 누렸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선전(神仙傳)」 「호공(壺公)

 

호중천지(壺中天地)

선경(仙境)이나 승경(勝境)을 가리키는 호천(壺天)을 말한다. 동한(東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시중에 어떤 노인이 약을 팔면서 가게 앞에 술단지() 하나를 걸어 놓고 시장이 파하자 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비장방이 누각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그 노인에게 가서 노인과 함께 그 술단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옥당(玉堂)이 있었으며, 그 안에서 좋은 술과 기름진 안주가 끊임없이 나왔다. 이에 둘이 함께 마시고는 취해서 나왔다. 후한서(後漢書)82 방술전(方術傳)비장방(費長房)

 

호중한(壺中閒)

호중(壺中)은 병 속이란 뜻으로, 후한(後漢) 때 선인(仙人) 호공(壺公)이 시장에서 약을 팔다가 장이 파하면 문득 병 속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이를 본 비장방(費長房)이 한번은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 엄연한 별천지(別天地)가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卷八十二

 

호증(胡曾)

당 나라 사람으로 글에 능하였다. 함통(咸通) 연간에는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의 서기(書記)로 있다가 뒤에 고병(高騈)에게 발탁되었는데, 모든 전주(箋奏)가 그의 손에 의하여 지어졌으며 저서로는 영사시(詠史詩)ㆍ안정집(安定集) 등이 있다. 상우록(尙友錄)卷三

 

호지원(胡地怨)

한 나라 원제(元帝) 때 궁녀인 왕소군(王昭君)이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황제의 총애를 입지 못하다가 궁중 화가(宮中畫家)의 농간에 의해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가게 되었는데, 흉노의 땅으로 갈 적에 비파를 들고 변방 땅을 지나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서 슬퍼한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94흉노전(匈奴傳)

 

호창(浩倡)

소리가 성대한 모양

 

호천(壺天)

선경(仙境)이나 승경(勝境)을 말한다. 동한(東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시중에 어떤 노인이 약을 팔면서 가게 앞에 술단지() 하나를 걸어 놓고 시장이 파하자 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비장방이 누각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그 노인에게 가서 노인과 함께 그 술단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옥당(玉堂)이 있었으며, 그 안에서 좋은 술과 기름진 안주가 끊임없이 나왔다. 이에 둘이 함께 마시고는 취해서 나왔다. 후한서(後漢書)82 방술전(方術傳)비장방(費長房)

 

호천(壺天)

동천(洞天)과 같은데 도가(道家)에서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술이기(述異記)인간의 36개 동천 가운데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은 10개이고 그 나머지 26개는 구미지(九微誌)에 나오기는 하나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호천망극(昊天罔極)

하늘처럼 넓고 커서 다함이 없다는 말로, ‘넓고 큰 부모의 은혜가 하늘과 같이 끝이 없다는 뜻이다.

 

호천세계장(壺天世界藏)

후한(後漢) 때 호공(壺公)이란 선인(仙人)이 시장에서 약()을 팔면서 밤이 되면 병 속으로 들어갔는데, 한번은 시연(市掾) 비장방(費長房)이 그곳을 따라 들어가보니, 완연하게 별천지가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비장방전(費長房傳)

 

호청경(虎聽經)

범이 불경 읽는 소리를 듣는다는 뜻인데, 육귀몽(陸龜蒙)의 고원사시(孤園寺詩)에 의하면 암석 위에는 진리 깨친 사람이요, 창문 앞에는 불경 듣는 범이로다[石上解空人 窓前聽經虎].”하였다.

 

호초축팔백곡(胡椒蓄八百斛)

() 나라 원재(元載)의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니, 호초(胡椒)8백 곡()이요, 다른 재물도 그와 같을 정도로 많았다.

 

호추(胡雛)

범양(范陽)에서 반란을 일으킨 안녹산(安祿山)은 본래 호인(胡人)이었으므로 호추(胡雛)라 하였다.

 

호축계(好祝雞)

전설에 옛날 낙양(洛陽)의 선인(仙人)이 시향(尸鄕)의 북산 밑에서 백여 년 동안 닭을 기르며 살았는데, 천여 마리의 닭에게 각기 이름을 붙여 주어 부르고 싶은 닭의 이름을 부르면 밖에 돌아다니던 닭이 제이름을 듣고 찾아왔다 한다. 열산전(列仙傳)

 

호치(皓齒)

희고 깨끗한 이. 곧 미인을 뜻하는 말이다.

 

호치단순(皓齒丹脣)

아름다운 여자의 붉은 입술과 흰 이를 말한다.

 

호탁씨(壺涿氏)

()시대에 수충(水蟲)제거를 맡았던 사람.

 

호탕백구(浩蕩白鷗)

두보(杜甫)의 시(), ‘백구가 호탕한 데 빠지니 만 리에 누가 능히 깃들랴[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 한 구절이 있다. 이것은 높은 선비가 세속을 멀리 떠나감을 말한 것이다.

 

호포(戶布)

신역(身役)을 지지 않는 양인이 그 대신 국가에 군포(軍布)를 바쳐오던 제도로 하여 파생한 여러 가지 폐단을 막기 위해 새로 시도한 제도. 효종(孝宗)은 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종래에는 그것을 양인들에게만 부과해오던 것을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일정한 양의 베를 바치게 하였다.

 

호포천(虎跑泉)

중국 강서성 구강현 남쪽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 뒤에 있는 샘. ()의 혜원(慧遠)이 연사(蓮社)의 여러 현자들과 상방봉(上方峯) 꼭대기에서 놀면서 물길이 너무 멀어 걱정이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바위 밑을 후벼파서 샘을 만들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청일통지(淸一統志)

 

호표개합(虎豹開闔)

병서에 육도(六韜) 삼략(三略)이 있는데 육도는 용도(龍韜)ㆍ호도(虎韜)ㆍ표도(豹韜) 등이다. 열었다 닫았다는 말은 변화개합(變化開闔)한다는 뜻이다.

 

호표구관(虎豹九關)

임금 곁에 강포한 자들이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초사(楚辭)』 「초혼(招魂)호표들이 천제(天帝)의 궁중문을 지키면서 아랫사람들을 물어 죽인다[虎豹九關 啄害下人些].” 한 데서 온 말이다.

 

호표도(虎豹韜)

강태공(姜太公)의 육도(六韜)ㆍ삼략(三略) 중에 호도(虎韜)ㆍ표도(豹韜)가 있다.

 

호표부(虎豹符)

고대에 왕이 군대를 이동하고 장수를 파견할 때 이용하는 신물(信物)이다. 범의 형태로 구리쇠로 만들며 등에 문자를 새기는데, 이것을 두 쪽으로 나누어 오른쪽은 대궐에 놓아두고 왼쪽은 군사를 거느린 장수나 지방 장관에게 넘겨줬다가 군대를 이동할 때 조정의 사신이 그것을 가져가 서로 맞춰보고 틀림이 없으면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호한부인(呼韓婦人)

()나라 궁녀 왕소군(王昭君)이 흉노(匈奴)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면서 말 위에서 비파를 타서 애절한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호함(頀咸)

()()의 음악 대호(大頀)이고, ()은 요()의 음악 대함(大咸)인데, 전아한 고대의 음악을 말한다.

 

호해(壺孩)

단지에서 나온 아이라는 뜻으로, 궤속에서 나온 신라의 탈해왕(脫解王)과 알지(閼智)에 얽힌 설화인 듯하다.

 

호해(湖海)

호해의 기백이란 광대하고 당당한 호기(豪氣)를 말한다.

호남(湖南)과 해서(海西)이다. 강호와 같은 말이다.

 

호해고루(湖海高樓)

삼국(三國) 시대 위() 나라 진등(陳登)이 당시 위명(威名)이 있었고 또한 오만하기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그가 죽은 뒤, 허사(許汜)가 유비(劉備)와 함께 천하 사람의 인품을 논할 적에 허사가 진등은 호기 높은 호해(湖海)의 선비였다. 옛날 내가 난리를 만나 하비()에 들러 진등을 찾아보았는데, 그는 나를 손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랫동안 얘기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은 큰 와상에 올라가 눕고 나는 아래 작은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니,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는 국사(國士)의 명망을 지니고서도 우국 망가(憂國忘家)를 하지 않음으로써 진등이 그대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러니 무슨 연유로 그대와 얘기를 나누었겠는가. 나같았으면 나는 백척루(百尺樓)에 올라가 눕고 그대는 맨 땅에 눕게 했을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삼국지(三國志)卷七

 

호해기(湖海氣)

호협한 기개를 말한다. 후한(後漢) 말 국사(國士)의 칭호를 받았던 허사(許汜)가 진등(陳登)을 찾아가서 소인배나 발언할 말을 하다가 진등에게 무시당해 형편없는 잠자리에서 자고 나와서는 진등에 대해 호해지사(湖海之士)라서 아직도 호기(豪氣)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한 고사가 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진등전(陳登傳)

 

호해의(湖海意)

세속을 벗어나 은거하고자 하는 뜻을 말한다.

 

호해조역만(岵峐岨嶧巒)

()는 초목이 있는 산이고 해()는 초목이 없는 산이며, ()는 돌산 위에 흙이 있는 것이고 역()은 연결된 산이며, ()은 산이 작으면서도 높은 것이다.

 

호현(弧懸)

상고 때의 풍속에 아들을 낳으면 대문 왼쪽에 활 한 개를 걸어두었다는 데서 태어난 날을 가리킨다.

 

호형염(虎形鹽)

제사에 쓰는 소금으로서, 단단하게 범의 모양으로 만든 소금을 말한다.

 

호형호제(呼兄呼弟)

서로 형이라 부르고 아우라 부른다. , 스스럼없이 형제라 부를 수 있는 아주 절친한 사이.

 

호호(好好)

기뻐하는 모양, 몹시 좋음, 좋은 사람을 좋아함

 

호호(浩浩)

넓고 큰 모양, 물이 엄청나게 많이 흐르는 모양, 길이 길게 이어지는 모양, 번쩍이며 빛나는 모양

 

호호(扈扈)

넓은 마음, 선명한 모양

 

호호(滈滈)

물이 희게 빛나는 모양

 

호호(昈昈)

붉은색 무늬가 있는 모양

 

호호(戶戶)

집집마다

 

호호(昊昊)

크고 성한 모양

 

호호(皓皓)

희고 깨끗한 모양.

 

호호악악(灝灝噩噩)

법언(法言)상서는 호호하며 주서는 악악하니라[商書灝灝甬 周書噩噩甬].” 하였다. 호호(灝灝)는 넓고 휑한 모양, 악악(噩噩)은 엄숙한 모양을 말한다.

 

호호정(浩浩亭)

함경남도 이원(利原)의 객관(客館) 동쪽에 있는 정자로, 동쪽으로는 바다, 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호홀(毫忽)

극히 작은 분량(分量)이나 척도(尺度)를 가리킨 말이다.

 

호화(狐火)

불을 켜 놓고 여우 울음을 한 것을 말한다. () 나라의 폭정(暴政)에 반기를 든 진승(陳勝)은 처음 거사(擧事)할 적에 사람들을 따르게 하기 위하여, ‘진승이 왕이 된다[陳勝王].’는 글을 비단에 쓴 다음 잡아놓은 고기의 뱃속에 넣었으며, 동모자(同謀者) 오광(吳廣)에게 근처의 총사(叢祠)에다가 사람을 시켜 초롱불을 켜놓고 여우의 울음으로 초 나라가 일어나고 진승이 왕이 된다[大楚興 陳勝王].’고 하게 하였다.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

 

호화첨춘(護花添春)

연산군 때 흥청(興淸)들의 보인(保人)을 호화첨춘(護花添春)이라 하였고, 흥청에게 지공하는 명부를 호화첨춘기(護花添春記)라 했다.

 

호활(豪猾)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멋대로 하고 교활하여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強橫狡猾而不守法紀].”라고 쓰여 있다. / 인용: 兎山村舍 錄田父語(서거정)

 

호후(虎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설교 소리가 마치 호랑이 울음처럼 웅장했다는 것. 즉 사자후(獅子吼)와 같다. 사자가 울면 온갖 짐승이 겁내는 것처럼 염불하는 소리에 뭇 마귀가 숨어 버린다는 비유이다. 열반경(涅槃經)

 

호흡분상로(呼吸分霜露)

위세가 대단하여 뭇사람에게 위복(威福)을 마음대로 함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 순제(後漢順帝)의 후비인 양 황후(梁皇后)의 오라비 양기(梁冀)가 발호(跋扈)하여 위세가 천하를 진동하였으므로, 그를 일러 거동은 산해를 돌이키고 호흡은 상로를 변화시켰다[擧動回山海 呼吸變霜露].”고 평한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卷七十八

 

 

인용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어휘놀이터 > 어휘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휘사전 - 383. 혼  (0) 2020.06.05
어휘사전 - 382. 혹  (0) 2020.06.04
어휘사전 - 380. 혜  (0) 2020.06.04
어휘사전 - 379. 형  (0) 2020.06.04
어휘사전 - 378. 협  (0) 2020.06.0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