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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뒷골목의 등불 -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본문

책/한문(漢文)

뒷골목의 등불 -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건방진방랑자 2020. 4. 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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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그때 밤은 하마 삼경으로 내려왔다. 우러러 창 밖을 보았다. 하늘빛이 갑자기 열릴 듯 모여들어 은하수가 환해지는가 싶더니만 더욱 멀리로 날리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가 놀라 말하였다. “저건 어찌된 건가요?” 어른께서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자네 그 옆을 좀 살펴보게.” 대개 등촉불이 막 꺼지려하여 불꽃이 더 크게 흔들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좀 전에 보았던 것이 이것과 서로 비치어서 그런 것임을 알았다.

時夜已下三更. 仰見窓外, 天光焂開焂翕, 輕河亙白, 益悠揚不自定. 余驚曰: “彼曷爲而然?” 丈人笑曰: “子試觀其側.” 蓋燭火將滅, 焰動搖益大. 乃知向之所見者, 與此相映徹而然也.

이윽고 밤은 깊어 자정 무렵이 되었다. 창밖으로는 은하수가 길게 꼬리를 늘이며 중천에 가로 걸려 있다. 그러더니 문득 은하수 아래로 한 줄기 빛이 희게 열리더니만 길게 흔들리며 요동을 치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저 불빛이 뭐지요?” 그러자 선생은 웃으며 에이, 이 사람! 옆을 좀 보게. 그게 다름 아니라 꺼져가는 등불 빛일세 그려.” 기름을 다 태운 심지는 꺼지기 직전 마지막 안간힘을 쓰느라 불빛을 흔들었고, 그 불빛이 때마침 하늘에 가로 걸려 있던 은하수 아래를 헤집고 들었던 모양이다.

 

 

잠시 후 등불이 꺼졌다. 두 사람은 캄캄한 방 가운데 앉아 웃고 얘기하며 自若하였다. 내가 말했다. “예전에 말이죠. 어르신께서 저와 한 마을에 사실 때 한 번은 눈오는 밤에 어르신을 찾아 뵈었었지요. 어르신께서는 절 위해 손수 술을 뎁혀 주셨구요. 저도 손으로 떡을 집어 흙난로에다 구웠는데, 불기운이 올라와 손이 너무 뜨거워 자꾸만 떡을 재 속으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서로 보면서 몹시 즐거워 했었지요. 이제 몇 해 사이에 어르신께선 머리가 벌써 하얗게 세시고, 저 또한 수염과 머리털이 희끗해졌군요.” 이 말 때문에 서로 한참동안 슬퍼하며 탄식하였다. 이날 밤으로부터 13일이 지난 뒤에 이 글을 쓴다.

須臾燭盡. 遂兩坐黑室中, 諧笑猶自若. 余曰: “昔丈人與余同里, 嘗雪夜訪丈人, 丈人爲余親煖酒, 余亦手執餠, 爇之土爐中, 火氣烘騰, 余手甚熱, 數墮餠于灰. 相視甚歡, 今幾年之間, 丈人頭已白, 余亦髭髮蒼然矣.” 因相與悲歎者久之. 是夜後十三日而記成.

그리고는 이내 불빛은 꺼져 버리고 방안에는 암흑이 찾아 왔다.

! 시대의 여명은 아직도 멀었는데, 선생의 창에 흔들리던 불빛을 이서구 그는 한줄기 서광이 비쳐 오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불빛에 연이어 찾아온 것은 환한 광명의 세상이 아니라 칠흑 같은 그믐밤의 암흑 뿐이었다. 이 어찌 슬프지 않으랴! 따지고 보면 선생이 사흘을 내리 굶으며 흐트러진 나날을 보내는 것도 어찌 그 시대의 암담함과 무관할 것이랴.

머쓱해진 제자는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고 만다. “선생님! 예전 눈 오던 밤, 흙난로에 떡 구워 먹던 그 때를 기억하시지요? 술을 덥게 뎁혀 놓고, 안주 대신 꽁꽁 언 떡을 구워 먹겠다고 하다가 손이 뜨거워 재로 떡고물을 묻히던 그 밤 말씀입니다. 그땐 선생님도 참 젊으셨는데요.” 끝에 말은 공연히 해서 안 될 말이었나 싶어 대화는 여기서 다시 막히고 만다. 캄캄한 방안에서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가 침묵하다가 마침내는 비감에 젖고 말았던 것이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흘을 굶고 머슴과 친해진 연암

2. 켜진 촛불 속 희망과 꺼진 촛불 속 절망

3. 연암협에 살던 연암이 서울로 온 이유

4. 연암의 호기로움

5. 기백이 시들어 뜻마저 재처럼 식다

5-1. 총평

6. 한 끼 때우려던 바람이 벼락에 사라지다

7. 한 인물에 대한 극단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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