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격적인 제문
제문祭文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로서, 흔히 제물祭物을 올려 축문祝文처럼 읽게 되어 있다. 그 형식은 보통 글의 서두에 ‘언제 누가 누구를 위해 제문을 지은바 제수를 갖춰 곡하며 읽는다’라는 말을 한 다음 망자亡者의 언행을 찬미하거나 망자와 자기 사이의 특별한 일을 거론하면서 망자를 추모함이 일반적이다. 서두에 제시되는 ‘언제 누가 누구를 위해 제문을 지어 제수를 갖춰 곡하며 읽는다’라는 말은 산문으로 되어 있으며, 극히 간단한 진술이게 마련이다. 이 말 뒤에 이어지는 제문의 본문은 산문일 경우도 있고 4언의 운문일 경우도 있다. 한편, 제문은 진실한 감정을 토로하되 그 문체와 어조는 공손하고 경건함이 일반적이다.
이 글은 제문의 일반적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보통의 제문은 그 서두에 언제 누가 제문을 쓰며 망자는 누구며 제문을 쓴 사람과 망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등을 간단히 밝히고, 그에 이어 조촐한 제수를 갖춰 곡하며 글을 읽는다는 말을 하고, 그러고 나선 망자를 추모하는 말을 기다랗게 쭉 늘어놓은 뒤 맨 끝에 ‘상향尙饗’하고서 끝맺는다.
제문의 이런 일반적 형식에 비추어볼 때 이 글의 서두는 파격 중의 파격이라 할 만하다. 서두에 나와야 할 말은 일체 나오지 않고 다짜고짜 “살아 있는 석치라면(生石癡)” 운운하는 말로 시작됨으로써다. 형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제문은 그 어조와 문체 역시 대단히 파격적이다. 제문은 비록 진실한 정을 표출함을 귀하게 여기는 장르이긴 하나 그럼에도 그 어조와 문체는 공손하고 점잖아야 한다. 그리고 슬프다는 뜻을 갖는 영탄사인 ‘차호嗟乎’라든가 ‘오호嗚呼’라는 말을 되풀이해 사용하면서 비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함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제문에는 그런 단어가 일체 발견되지 않으며, 공손하고 점잖다기보다 비속하다 못해 상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이처럼 이 제목은 그 형식에서부터 어조와 문체에 이르기까지 심한 파격과 일탈을 보여준다.
독자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 연암이 쓴 여러 장르의 글을 읽어오면서 연암의 파격적인 글쓰기를 여러 차례 목도했을 줄 안다. 하지만 이 글처럼 그 장르적 규범으로부터의 심한 일탈을 보여주는 글은 여태껏 없었다. 연암은 대체 무슨 심보로 하필 정석치의 제문에 이다지도 심한 파격을 구사한 것일까? 여기에는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의도와 사연이 있을 터이다. 다시 말해 연암은 이 글에서 단지 그 내용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파격적인 형식과 문체를 통해서도 뭔가 이 글을 쓴 당시 자신의 기본과 심리상태를 전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글을 읽어 나가면서 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 전문
인용
1. 파격적인 제문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8. 사라져 버린 본문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12. 총평
- 석치石癡: 정철조鄭喆祚(1730~1772)의 호다. 소북小北 집안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정운유鄭運維(1704~1772)의 아들이다. 18세기의 저명한 산림 학자인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이며, 남인南人인 이가환李家煥의 처남이다. 1774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과 정언을 지냈다. 홍대용(1731~1783), 황윤석黃胤錫(1729~1791) 등과 친교가 있었으며, 영ㆍ정조 때의 뛰어난 자연과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뛰어나 정조의 초상화 제작에 관여한 적이 있다. 벼루 제작에 조예가 깊어 ‘석치(硯石, 즉 벼룻돌에 미친 바보라는 뜻)’라고 자호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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