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천문학ㆍ수학ㆍ지리학 등 학문에 뛰어났던 그대
석치가 죽자 시신을 둘러싸고 곡하는 이들은 석치의 처첩과 함께, 아들과 손자, 친척들인데, 그 곁에 함께 모여 곡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석치 유족의 손을 잡고 이렇게 위로한다. “훌륭한 가문의 불행입니다. 철인哲人이 어찌해 이렇게 되셨는지……” 그러면 그 형제와 아들과 손자들이 절하고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대꾸한다. “저희 집안의 흉액입니다.” 석치의 벗들은 서로 이렇게 탄식한다. “이런 사람은 정말 쉽게 얻을 수 없는데……” 함께 모여 조문하는 이들도 실로 적지 않다. 한편, 석치에게 원한이 있던 자들은 평소 석치더러 병들어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곤 했거늘 이제 석치가 죽었으니 그 원한을 갚은 셈이다. 죽음보다 더한 벌은 없는 법이니까. 세상에는 참으로 삶을 한낱 꿈으로 여기며 이 세상에 노니는 사람이 있거늘 그런 사람이 석치가 죽었다는 말을 듣는담녀 껄껄 웃으며 “진眞으로 돌아갔구먼!”이라고 말할 텐데, 하도 크게 웃어 입안에 머금은 밥알이 벌처럼 날고 갓끈은 썩은 새끼줄처럼 끊어질 테지. 石癡死而環尸而哭者, 乃石癡妻妾昆弟子姓, 親嫟固不乏. 會哭者握手相慰曰: “德門不幸, 哲人云胡至此?” 其昆弟子姓拜起, 頓首對曰: “私門凶禍.” 其朋朋友友相與歎息言, “斯人者固不易得之人.” 而固不乏會吊者. 與石癡有怨者, 痛罵石癡病死, 石癡死而罵者之怨已報, 罪罰無以加乎死. 世固有夢幻此世, 遊戱人間, 聞石癡死, 固將大笑, 以爲歸眞,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 |
철인哲人이란 지혜가 탁월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제문이나 애도하는 말에서 죽은 사람을 높일 때 이 단어를 쓴다. 정석치는 천문학과 수학, 지리학 등의 학문에 빼어났는데, 그 학문적 면모를 보여주는 두어 개의 기록을 아래에 소개한다.
대사간 운유運維의 아들 집이 서울 집거동集巨洞에 있는데 그는 경술년庚戌年(1730)에 태어났으며 과거科擧 문장에 능하고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한바, 마테오 리치가 남긴 학문을 근본으로 삼은 지 20여 년이나 되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서학서西學書(서양의 자연과학에 대한 책)들이 가득 쌓여 있는데, 비록 그 동생이라고 하더라도 방에 들어오는 걸 허락지 않았다. -황윤석의 『이재난고頤齋亂藁』
석치는 문예적 교양이 높았을 뿐 아니라 뛰어난 기예를 지녔다. 그래서 기계로 움직이는 여러 기구들, 이를테면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기구, 물건을 높은 데로 나르는 기구, 회전 장치를 한 방아, 물을 퍼 올리는 기구 따위를 능히 마음속으로 궁구하여 손수 제작해냈다. 모두 옛날의 것을 본떠 현재에 시험하여 세상의 쓰임에 이바지하고자 한 것이다. -박종채의 『과정록』 1권 25번
石癡文雅, 有絕藝. 凡機轉諸器, 如引重ㆍ升高ㆍ磨轉ㆍ取水之類, 能心究手造. 皆欲倣古試今, 需諸世用也.
관상대 위에 있는 여러 기구들은 혼천의渾天儀나 선기옥형璇璣玉衡(일종의 천문관측 기구) 같은 것일 듯하며, 뜰에 비치해 둔 것은 내 친구 정석치의 집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석치는 대나무를 깎아 손수 여러 천문 관측기구를 만들었는데 다음 날 가서 찾아보면 이미 다 부숴버리고 없었다. 언젠가 홍덕보(홍대용)와 함께 석치의 집에 간 적이 있다. 두 사람은 황도黃道와 적도赤道, 남극과 북극에 관해 서로 토론하면서 혹은 머리를 젓고 혹은 고개를 끄덕이곤 하였다. 그 내용은 모두 난해하여 알아듣기 어려웠으며, 나는 조느라 자세히 듣지도 못하였다. 새벽에 보니 두 사람은 아직도 어두운 등불 아래 서로 마주 앉아 토론을 하고 있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盖臺上諸器, 似是渾天儀ㆍ璿璣玉衡之類, 而庭中所置, 亦有似吾友鄭石癡家所見者. 石癡甞削竹手造諸器, 明日索之, 已毁矣. 甞與洪德保共詣鄭, 兩相論黃赤道南北極, 或擺頭, 或頤可. 其說皆渺茫難稽, 余睡不聽, 及曉, 兩人猶暗燈相對也.
▲ 전문
인용
1. 파격적인 제문
5. 석치를 저주한 사람들
7. 진짜로 네가 죽었구나
8. 사라져 버린 본문
10. 울울하던 그날 함께 하던 벗
12.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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